안성금 - 인간, 그 본질에 대한 물음
-그림은 언어 이전이라 생각하며-
1984. 10 / 2회 개인전 - 안성금
무명(無明)
생명공학이 염색체를 합성하여 사람이 사람을 만들어 내려는 정도로
인류문명이 발달해 왔지만 우리들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인성의 부재가 수없이 펼쳐지는 역사에, 현재에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속고 속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세간(世間)
부처는 모든 사물, 모든 인간에 불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인간의 정신성을, 혹은 내가 너를, 네가 나를 결국은
인간 자신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이 하나의 존재를 인간이라 불리울 수 있게 하는가.
오한(惡寒)
내게 있어 예술행위는 이데올로기를 추구하자는 것도,
현상을 재현하자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 혼과 육신, 내면에 차 있는 수많은 모순.
이것이 내가 추구하고 있는 작품의 저류이며 나를 통한 인간,
그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써 나의 작업은 이루어진다.
화선지가 아닌 천과 먹의 만남은
종이와는 또다른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때때로 거칠게 거부되기도 하고, 합일 되기도 하는데
이런 일 모두가 '사람'과의 만남을 위한 뼈아픈 과정이 된다.
"어두움 속에서
눈을 뜨다.
낮의 그 공허한 개념들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삶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것이 본래 모습인 양
사람들에게 짙게,
혹은 여리게 묻어 있는
고뇌......"
안성금
1958년 전북생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인디펜던츠전, 한국화 8인의 작업전, 한국화 오늘의 상황전, 아시아 현대미술전, 수묵의 현상전,
젊은 의식전, 자화상전, 묵, 여류 7인전, 쟁점전, 한국화 청년작가전, 삶의 미술전, 호안 미로 국제드로잉대상전...
epilogue
박진화와 함께
서울민미협공동대표
시절이었던가 그녀가 광주엘 왔다.
80년대 초입에 그린 이 그림들과 이 작가의
프로필 그대로 난 첫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새빨간 겉표지에 새까만 먹이 인상적이었던 옛 팜플릿
덕이었으리라. 그날 밤 그녀는 말하고 나는 마셨다. 그녀는
갸웃거렸고 나는 푹 수그렸다. 이것은 항쟁의 진앙, 미술운동의
시원 '광주'를 향한 자리였다. 그녀는 퍽 자분자분한 스타일이었고
그것은 의외였다. 80년대의 미술 가운데 대부분이 유화였다면 그녀는
수묵이었으며 대형 무명천을 저지른 과묵함에 무겁고 강렬한 것들이었다.
80년대 한국은 노인도 소년도 스님도 사제도 모두 구도자였으며 잠 깬 메
시아였다. 침묵의 응시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그래서 '부활'에 '해탈'에 있었던
것 아닐까. 하여 시제는 늘 '중음'이다. 악귀 마져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보면 그저 바라봄 내지 보냄 같은 제의의 순간이다. 내 소싯적은 거의
양노원(광주천혜경노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100 여 분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들
이었고 난 그 아들이었으니 하루 걸러 세상을 뜨는 광경을 입관에서 매장까지 보며
자랐다. 종치기 판용씨의 종소리는 과연 마술이었다. 예배당에 모이는 종소리는 모두
방석을 들고 나오게 하지만 초상에 치는 종소리는 모두 무명저고리 하얀 노인으로
걸어나오게 했다. 안성금의 먹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내 옛 '중음의 에덴'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조금도 무겁지 않으며 차라리 그 중음신의 침묵이 더
편했다. 안성금은 내게 침묵과 수다를 동시에 남기고 사라진
미술계에서 가장 가늘고 실팍한 여자다.
2008. 4. 23 김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