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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실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영혼들이
거쳐 가야 하는 곳, 연옥
우리는 누구나 구원을 갈망하며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벌을 받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 곁에서 천상의 행복을 누리기를 기도한다.
모든 신앙인의 관심사인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많은 신학자들의 연구와 많은 기적으로 여러 사실들이 알려져 있지만 천국으로 가기 위하여
거치는 ‘연옥’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도 않으며 별달리 알려진 것도 없다.
그러나 연옥은 묵상 중에 연옥에 대한 많은 환시를 본 성녀 데레사가 “성인 중에 연옥을 거쳐 가지 않은 이는 세 명 밖에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모든 이들이 필수적으로 가게 되는 곳이다.
이 책은 꼭 알아야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연옥에 대해 연옥 영혼들과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연옥의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막연히 연옥을 지옥불이 불타는 무서운 장소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담긴 연옥 영혼들의 모습 또한 하나같이 고통스럽다. 그들은 현세의 삶에서 범한 죄에 따라 다양한 잠벌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연옥 영혼들은 절망에 빠져 있지 않다. 연옥 영혼들은 오히려 희망에 가득차 있다.
연옥에서 받는 고통은 영혼의 구원과 천상에서의 영원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죽은 뒤 되살아난 이들이 현세에 머무르기 보다 다시 연옥에 가기를 희망한다는 이야기는 연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서운 고통의 장소만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책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들은 연옥이 단순히 현세에서의 잠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준비하는 장소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 책은 연옥 영혼들과 만난 체험을 바탕으로 연옥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각 체험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연옥의 존재 여부나 연옥에 들어가는 사람, 장소, 시간, 고통의 등급 등 신자들이 평소에 가졌을 법한 의문을 풀어줄 뿐만 아니라 연옥 영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기도와 미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연옥 영혼들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신앙 자세를 다잡으며 한 차원 높은 영성적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지은이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연옥 영혼들을 접한 이들의 체험을 하나하나 읽어가노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연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연옥에서 인류를 정화시켜 마침내는 구원시키려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성 필립보 네리와 왕자
16세기 로마 시몬 가(家)의 왕자 바오로가 여덟 살에 죽었다.
바오로는 언제나 성 필립보 네리에게 고해성사를 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왕비는 성 필립보 네리에게 임종 때에 있어 달라고 청했다.
“그때가 되면 알려주십시오.”
그날 밤 바오로의 병세가 대단히 나빠졌다.
날이 새기 전에 심부름꾼이 성인을 부르러 갔다. 마침 미사가 시작되었기에 미사를 끝마치자마자 성인은 아이에게로 갔으나
이미 한 시간 전에 아이는 죽었다는 것이었다.
성인은 아이의 손을 잡고 슬픔에 잠겨 침대 곁에 꿇어앉아 기도했다.
그러자 아이는 홀연 눈을 뜨고 성인에게 말했다.
“아, 신부님이세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고백할 때에 죄를 잊어버렸었어요.”
(이 말을 들은 부모 형제의 기쁨을 상상해 보라.)
잠시 후 아이의 고백을 듣기 위하여 신부만 혼자 남았다. 고해성사가 끝나고 성인은 모든 이 앞에서 아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바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 봅시다.”
“바오로야, 너는 우리하고 같이 있고 싶으냐, 아니면 아까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으냐?”
“신부님, 아까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오로는 당신의 뜻대로 할 겁니다.”
“바오로가 우리와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곳에 가 있다면 억지로 붙들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곧 눈을 감고 다시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에 돌아오기보다는 거기 있기를 원했다.
왕과 목동
어느날 어떤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들판에서 한 목동을 만났다.
"너는 이 양을 쳐서 얼마나 이익을 보느냐?" 하고 왕이 물었다.
"폐하, 저는 폐하와 꼭 같은 이익을 봅니다." 목동의 대답에 왕은 이상스런 얼굴로 다시 물었다.
"나와 꼭 같은 이익을 본다고? 그건 또 어찌해서?" 그러자 목동이 대답했다.
"폐하, 저는 양을 쳐서 천국이나 또는 지옥을 얻습니다. 폐하께서 나라를 다스리지마는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얻으실 수는 없습니다."
왕은 끄덕이고 깊은 생각에 잠기어 목동과 헤어졌다.
이 목동의 말은 진리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운명은 천국이나 지옥,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내세(來世)는 있나 없나
내세가 있나 없나 하는 문제는 개벽이래 인류에게 걸린 수수께끼이다. 가톨릭 교회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고 사랑하여 후세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어야 한다. 죽음과 동시에 영혼은 하느님 앞에 나아가, 혹은 천국(天國), 혹은 지옥(地獄), 혹은 죄를 깨끗이 씻기 위하여 연옥(煉獄)으로 보내진다.
세상 마칠 때에 육신은 하느님의 전능으로 부활하여 다시 영혼에 결합되어서, 천국의 영원한 행복이나 지옥의 영원한 고벌로 판정되는 것이다."
사후(死後)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가
어떤이는 사람이 죽으면 뒤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자는 오만한 사람이 아니면 품행이 나쁜 사람이다. 그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기운을 내려고 목이 터져라 소리질러 스스로를 속이는 겁쟁이와 같은 자이다.
유명한 사상가 라 브뤼에르는 말했다. "절제하고 청정하며, 정직하고 자비로웠던 사람이 내세가 없다고 선언한다면 그 주장은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진귀한 사람은 개벽 이래 아직 볼 수 없었다. 또 세상 마칠 때까지도 볼 수 없으리라고 단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말
"예수 그리스도를 뵙기 위해서는 천만 번 죽어야 한다."든가, 또는 "얼마 동안 지옥에서 고통 받아야 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긴다."라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하였다.
이 감동적인 부르짖음으로 성인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성인이 사심판 때 육체를 벗어난 영혼이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보았더라면, 그때야말로 성인의 마음은 사랑에 녹아 버려, 그 비상한 갈망은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으리라.
추방자
연옥 영혼은 고아(孤兒)이다.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없다. 그들은 천국에서 추방된 자이다.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 형제, 벗을 만나기를 몹시 원하고 있다.
성녀 데레사는 말한다. "하느님을 뵈올 수 없는 괴로움은 상상 이상이다. 연옥 영혼은 하느님 곁에 살고 싶지만, 그 의로우심으로 말미암아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 갈망에 괴롭힘을 받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이 일을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수사
착한 두 수사가 있었다. 한 사람은 급환에 걸려서 눈을 감기 몇 시간 전에 발현을 보았다.
수호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확실히 구령은 한다. 그러나 너를 위해 미사 한 대가 바쳐지기까지 연옥에 있어야 한다."라고 알려 주었다.
병자는 곧 벗을 불러 위의 사정을 알려 주고, 죽거든 즉시 미사를 드려 달라고 청했다. 벗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기로 약속했다.
이튿날 병자는 죽었다. 그 벗은 한 때를 지체하지 않고 곧 제의를 입고 제단에 올라가서 열심으로 미사를 드렸다. 미사를 마치고 제의실에 돌아와 제의를 벗는데,
죽은 벗이 빛에 싸여 나타나서, 그러나 불만스러운 소리로 말했다.
"형제여, 자네의 우정은 어떻게 되었나? 연옥불 속에 1년이 넘도록 나를 내버려 두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고 나를 구해 줄 한대의 미사마저 오늘까지 미루다니!"
벗은 놀라서 말했다. "자네야말로 나를 놀라게 하는군. 자네가 눈을 감자마자 나는 곧 약속을 이행하고 방금 제단에서 돌아온 길일세.
자네 영혼이 육신을 떠난 지 아직 한시간도 못 되지 않는가."
어떤 수사는 죽은 후에 나타나서 연옥의 사흘은 10년보다 길게 여겨진다고 하였다.
또 어떤 수사는 밤 12시부터 날새기까지 연옥에 있었는데 150년간 고통 받은 것으로 믿고 있었다.
연옥 고통을 경시(經視)하던 어떤 이는, 환상이겠으나, 하여간 갑작스레 연옥에 던져져서 15분 후에 부르짖었다.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 수년 전부터 여기서 고생하고 있습니다."라고.
....
성 안토니노의 말에 의하면, 오랫동안 앓고 있던 회개한 한 죄인이 하느님께 죽기를 청하였다.
그랬더니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했다.
"네가 지금 죽어서 3일 연옥에 있든지, 또는 2년간 이 병을 참아 받고 바로 천국에 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
병자는 주저하지 않고 연옥을 원했다. 얼마 후에 천사가 거기 가 보니 병자가 말했다. "사흘만 있으면 될 이곳에 나는 벌써 몇 년이나 있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말했다.
"아니, 그대는 여기 온 지 아직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어리석은 청을 했습니다.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다시 인간 세계에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거기서 가장 괴로운 병을 몇 해라도 즐거이 참아 받겠습니다."
그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병자는 연옥의 비상한 고통을 기억하고 그저 인내했을 뿐만 아니라, 크나큰 기쁨으로 병을 참아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이 비록 비유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연옥에서의 시간의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흥미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연옥에 가기만 하면 아무리 오래 걸려도 괜찮다. 언젠가는 천당에 갈 수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신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를 읽어 보고도 아직도 그런 이치에 맞지 않는 미련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했다.
"연옥에서 일순간 받는 고통은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의 고통보다 더 무섭다."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이유
구제자의 권리
우리는 죽은 이를 천국에 보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즉 기도를 하고 하느님께 그들의 구원을 청하면
그들은 천국에 들여지는 것이다.
"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 (요한 16: 23)
트리덴틴 공의회는 선언하였다. "연옥은 존재한다. 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생존자의 기도와 특히 미사 성제로서 도움을 받는다."라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권리는 위대한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소방수(消防手)이다.
이승불에는 도저히 비길 것이 못 되는 연옥불을 어떤 영혼을 위하여 아주 꺼주거나 혹은 누그러뜨릴 수 있는 소방수이다.
국왕이 대사(大赦)를 베풀어 죄인을 사해 줌은 감탄할 권력이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연옥의 감옥으로부터 몇 사람이건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고
천국에 들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이에 대한 사랑
예수께서는 사흘 전부터 끼니조차 잊고 가르치심을 듣기 위하여 뒤따라온 사람들을 보시고
"측은히 여기시어" 빵을 많아지게 하시어 5천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부르게 하셨다.
연옥에서는 수천, 수만 명이 고생하고 있다. 또 그 괴로움은 세상 마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구해 주기 위해 분발한다면 크나큰 사랑의 사업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혀 잊혀지고 아무도 기도해 주지 않는 영혼을 위하여, 또 가장 가까운 시일내에 천국에 들어 갈 영혼을 위하여, 그 밖에 모든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연옥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
포로의 쇠사슬
한 군인이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손발을 무거운 쇠사슬로 묶인 채 감옥에 갇혔다.
오랜 세월 동안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내는 죽은 줄 알고, 그의 영혼을 위하여 미사를 청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하게도 포로의 손발에서 저절로 쇠사슬이 풀렸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그 이상한 사건을 이야기했다. 날짜를 따져보니, 그것은 마침 그 사람을 위해 미사가 봉헌된 날이었다.
생미사
일반 신학자들의 설에 의하면, 선종하기 위해서는 미사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성녀 메히틸드에게 말씀하셨다.
"살아 있을 때 열심히 미사 참례를 한 자는 임종 때에 마귀의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성인들과 천사들의 보호를 받는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묵시를 받아 1921년 5월 31일 '선종회'의 회장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미사의 은덕은 사후보다도 생존 중에 더 많다. 그것은 사후보다도 더 직접적이요 더 확실하다. 미사는 우리에게 신앙을 굳게 하는 은혜를 주는데, 그것은 또 현세에서 하느님의 의노를 푸는 가장 적당한 방법이다.
그것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연옥 보속의 많은 부분을 감한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죽은 이를 위해 미사 청하기를 게을리 하지마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은 뒤에보다 살아 생전에 미사를 드리는 편이 훨씬 더 은혜가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지옥에 떨어져 버렸다면, 그 뒤에 미사를 드린들 아무 소용이 없다.
구령에 대해서는 남에게 부탁하기보다 먼저 제 자신이 걱정해야 한다. 선종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동안에 미사를 청해야 한다.
대주교의 망토
이탈리아 카푸아 시의 대주교 체사르 코스타는 어느 날 예식 중에 자기 조카 쥴리 오만시네리 신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망토를 사라고 돈을 주었다.
대주교가 죽은 후 이 사제가 망토를 입고 수도원 문을 나가려고 하는데 주교가 불에 싸여 가까이 와서는 잠시 그 망토를 좀 빌려 달라고 했다.
이상히 여기면서 망토를 내어 주자 주교는 이를 몸에 둘렀는데, 그건 마치 불을 막는 것처럼 보였다.
사제는 이를 보고 자선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외출해야 한다고, 주교로부터 망토를 돌려 받고 이때까지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기를 약속하고서 수도원 문을 나갔다.
화살 기도
은사 문제를 끝마치기 전에 회살 기도에 대하여 한마디 하기로 하자. 이것은 사람이 한숨을 쉬듯 짧은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하고, 마치 아궁이 속에 5분이나 10분마다 석탄을 잔뜩 넣는 것처럼 한다.
신앙을 가지고 다음 화살 기도를 하면 연옥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갖가지 은사를 얻을 수 있다.
"예수" 한번에 300일 은사. "예수, 마리아" 200일. "예수, 마리아, 요셉" 7년.
"십자 성호" 50일. "성수로 십자 성호" 100일. "내 주, 내 하느님" 7년.
"주 예수여, 나 만유 위에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50일. "마음이 양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여, 내 마음을 당신 마음과 같게 하소서." 100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달아드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100일(하루에 한번만).
"선종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300일. "임종 때에 우민(憂悶)하신 예수 성심이여, 임종하신 자를 가련히 여기소서." 300일.
"자비로우신 예수여." 100일. "루드르의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300일. "주여, 망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300일.
"신덕송, 망덕송, 애덕송" 7년. "삼종기도" 10년.
"성 베르나르도의 성모께 바라는 기도(생각하소서...)" 3년.
자기 묵주알 위에 3백 일 은사의 기도, 예컨대 "선종의 모후여..." 기도를 외면 2, 3분 동안에
1만 8천 일의 은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원의만 있으면 후세를 위하여 대단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
어떤 수도자는 무덤 앞을 지날 때마다 거기 묻혀 있는 망자의 영혼을 위하여 "주여 망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라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신앙 없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한다면 짤막한 기도가 무슨 도움이 되랴는 생각도 들지마는 죽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수도자는 깜박 잊어버리고 이 기도를 하지 않고 묘지 앞을 지나갔다. 그랬더니,
대여섯 명의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불만스런 모습으로 시편(128 : 8)을 읊었다.
" '주의 강복이 너희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하노라' 하고 지나가는 길손조차 말하지 않는도다."
이것을 들은 수도자는 부끄러워하며 곧 "주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하노라"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대단히 위로를 받은 듯한 모습으로 그들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
위의 이야기로도 은사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은사에 무관심한 신자는 마치 여문 이삭을 발로 짓밟는 어리석은 농부와 같은 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현세 재물은 탐내어도 영적 재산은 버리고 돌아다보지 않는다.
하지만 후세까지 가지고 살 수 있는 재산은 선업뿐이다.
다음의 병자처럼 한다면 영원한 재산가가 될 수 있다.
백만 장자
어떤 병자가 자기를 친절히 간호해 준 수녀에게 감사하고 싶었으나, 재산이 없어서 기도를 해 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성모송을 백만 번 외었다.
어느날 그는 수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녀님, 수녀님은 부자가 될 생각은 없으시죠? 그렇지만 수녀님은 부자이시랍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농담이시겠지요."
"아니,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수녀님께 사례를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어서,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당신에게 갚아 주십사고 청했습니다. 그래서 성모송을 백만 번 외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것을 끝냈답니다. 수녀님,
수녀님은 백만장자이십니다."
두 명의 재산가
이 이야기로 이 책을 끝맺기로 하겠다.
이 책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다만 이것만을 상기하고 실행하여도 대단히 유익하리라고 믿는다.
두 사람의 영국인이 멕시코에 건너가 재산을 장만하였다. 그러나 점점 나라가 어지러워지기 때문에 그 중 한 사람은 재산을 정리하여 본국으로 돌아와 안락하게 살았다.
또 한 사람은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나 우물쭈물 하는 동안 어느 날 밤 별안간 폭동이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겨우 피신하였다.
이 이야기에는 대단히 유익한 교훈이 담겨 있다. 즉 전자는 살아 있을 동안에 선업을 행하여 사후 백배의 갚음을 받는 착한 신자의 상징이다.
또 후자는 자기 재산의 노예가 되어 선업을 안했으므로, 사후에 알몸이 되어 암흑 속에 던져지는 자의 상징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후자는 많은 사람이 밟아 가는 길이다.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알고 있다. 우리는 덧없는 현세를 위해서가 아니고 영원한 후세를 위하여 일해야 한다.
우리는 영원한 재산가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 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 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마태오 6: 19-21).
연옥 실화
지은이 막스 퓌상 옮긴이 한국 순교 복자 수녀원 펴낸이 김수환 펴낸곳 가톨릭출판사
[출처] 연옥 실화 - 막스 퓌상|작성자 Fausti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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