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는 신라 제48대 경문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궁예가 태어나던날 궁궐지붕 에는 긴 흰무지개가 하늘높이 드리워졌 다.5자가 거듭된 단오날(5월 5일) 에 후 궁에 의해 태어났는데 태어날당시 긴 흰 무지개가 궁궐지붕에 드리윘고 태어나면 서부터 이(치아)가 나 있었다. 모함을 계획한 왕비는 일관을 시켜 이는 변괴라하여 장차 나라에 이롭지 않은 일 이 생길까 두려우니 마땅이 기르지 않으 심이 좋을줄로 아뢸것을 권하게 된다. 왕은 고민끝에 아기를 즉시 내다 버리도 록 명하였다. 버려지는 과정에서 아기는 정자에서 떨 어지게 되었는데 어느 한 시녀가 아기를 받아내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게되어 애꾸눈이 되었다. 한밤중에 시녀는 아기를 안고 멀리 산골 짝으로 달아났다.17년이 지나 청년이 된 궁예는 유모인 어머니로부터 왕자였던 지 난 과거 사실들을 모두 알게된다. 지난 과 거를 들은 궁예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 고 어머니 곁을 떠나 학문을 익히고 무술 을 연마하기위해 세달사(경기도 개풍군 에 있는 지금의 홍교사)라는 절에 들어 간 다.허공스님은 궁예를 보자마자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법명을 착할선 (善)마루종(宗)자를 써 선종이라고 불려 지게 된다. 학문과 무술을 게을리하지 않고 열심히 닦았으며,세상을 떠난 어머 니에 대한 깊은 설움에 빠진 궁예는 자신 의 진로를 위해 세달사를 떠나게된다. 서기891년 양길의 부하로 들어가 자국 (신라)에서 버림받은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동쪽으로 진출해 여러 현과 성(城) 을 정복했다. 894년 양길과 결별하고 장 군으로 독자적 세력을 이뤘다. 이후 평안 도와 한산주의 30여성(城)을 공략하고 왕건을 시켜 양주,견주를 복속케 하는등 한강유역 전체를 지배하고 901년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후고구려라 칭했다. 자기 자신을 미륵불이라고 자칭하고 백성 을 다스렸다. 그러나 사치와 방탕한 생활 과 가혹한 수탈을 자행하는등 민심을 잃 어 918년 왕위에서 쫒겨나 명성산 궁예 왕굴에서 숨어지내다가 왕건에 붙잡혀 죽었다고 전해진다. 동굴에서 매일 울면 서 지내서 울음산(명鳴성聲산山)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후고구려 말기에는 국호를 태봉국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