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어두운 새벽. 눈을 뜨니 신부님이 짐을 싸고 계신다. 나도 느릿느릿 일어나 짐을 챙겼다. 알베르게에서 겸하고 있는 식당에서 다같이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모두들 멀리까지 걸을 계획이고 나만 10km 거리에 있는 까사노바Casanova에 묵기로 했다.
다함께 우리말로 수다 떨며 가는 길, 친구들이 내가 우리말 할 때랑 외국말 할 때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고 나를 놀린다. "올라! 부엔까미노!" 이렇게 인사할 땐 얌전하고 조신한 것이 가식의 극치라는 거다. 우리말이랑 외국말은 성대를 다르게 쓰기 때문에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암만 말해줘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까사노바Casanova에 도착하니 이제 아홉 시 반. 엄청 빨리 왔다. 아직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바람둥이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까사노바가 스페인 말로 '새 집'이란 걸 알고 다들 재미있어했다. 아무래도 바람둥이한테는 새 집이 많이 필요할테니까 말이다. (Casa가 집, nova는 새로운.) 길가에 융단처럼 깔린 소똥을 밟아가며 갈리시아의 향기에 취해 다음 마을 레보레이로Leboreiro에 닿으니 갑자기 똥이 마렵다. 레보레이로는 너무 작은 마을이라 바Bar도 하나 없고 알베르게 문 열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나 남았다.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쩔쩔매던 내게 친구들이 길에서 조금 들어간 숲을 가리킨다. 나는 사회적 명예와 품위를 고려하며 한참을 망설였지만 하는 수 없어 숲으로 갔다. "이쪽으로 오지마!" 몇 번이고 뒤돌아 다짐을 받아가며 숲속 깊이깊이 들어가 내 대장과 단둘이 이 문제를 담판지었다. 시원한 결론을 내리고, 사후 처리까지 완벽하게 한 다음 한결 밝고 가벼워진 얼굴로 친구들 곁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조금 전에 본 일을 한국에 가서 발설했다간, 다들 밤길을 조심해야 할 거에요."
그러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돌아가는대로 유서부터 써야겠어요. 내가 평균 수명보다 빨리 죽게 되면 유력한 용의자가 있노라고."
호젓하고 아름다운 숲속에 똥 한 덩어리를 남기고 나는 서둘러 이 마을을 뜨기로 했다. 우아한 내 인생에 노상방변이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볼 때마다 "저 길에 똥 안쌌어요!"하고 변명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 시라도 빨리 저 숲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는 거의 시속 3km 이상으로 걷고 있었다. 친구들은 이 속도면 오늘 같이 멜리데Melide에 가서 뽈뽀(문어)를 먹을 수 있다고 부추겼다. 그래, 친구들이랑 뽈뽀를 먹고 헤어지면 덜 섭섭할거야, 나도 힘을 내보기로 했다. 오늘도 내가 뒤로 처질 때면 병철씨가 내 배낭을 대신 메주었다. 혼자서 음여완보하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들이랑 같이 가는 것도 참 좋았다. 친구들은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걷고 내가 힘들어 하면 땡볕이건 길 한가운데건 가리지 않고 함께 쉬어주었다. 그늘도 아닌 땡볕에 한둘도 아닌 넷이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앉아있는 것을 보고 지나던 사람들도 의아해했다.
성당 앞,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새집?
멜리데는 문어 요리가 아주 유명하다고 해서 우리는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뽈뽀집부터 찾았다. 푹 삶은 문어에 고춧가루 약간이랑 소금, 올리브 오일로 양념한 뽈뽀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여기에 초고추장만 있었으면,하고 간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고대하던 뽈뽀를 먹어서 행복했다. 친구들 없이 나 혼자 먹으러 왔다면 적어도 이 맛은 아니었겠지. 그런데 뽈뽀에 와인 한 잔씩 거나해진 사람들,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이 상태로 꽤나 걸어야 할텐데 내가 되레 조바심난다. 식당에서 나와 알베르게로 꺽여 들어가는 골목 앞에서 이 사람들, 어쩐지 떠나기 싫은 기색이더니 오늘 여기 묵겠단다. 야호! 나는 만세를 불렀다.
아아, 초고추장이 있었으면!
이곳 알베르게 샤워실에는 문도 커튼도 없다. 물론 남녀공용 샤워실이다. 온종일 걸어 땀에 절은 채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찌한다? 씻지 말까? 에라 모르겠다. 볼테면 봐라! 나는 거의 빛의 속도로 샤워를 끝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내 샤워부스 앞을 지나다니는 아저씨들도 여럿 계셨지만 말이다.
구석자리 침대 네 개를 차지한 우리는 딩굴딩굴 누워서 쉬고 약 바르고 서로 사진기를 바꾸어 사진 구경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신부님은 도무지 엄숙하거나 어른인 척하는 구석이 없으셔서 좋았다. 중년의 위기를 겪고계신다는 신부님은 이십대의 얼굴에 고혈압과 당뇨, 노인성 난청과 흰머리까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함께 갖고 계셨다. 거기다 농담은 어찌나 썰렁하신지, 어디 좋은 유머화술 학원이라도 소개해드리고 싶다. (이 대목에서 빗발치는 반론이 예상되나 뭐, 내 맘이다!)
저녁먹으러 나서는 길에 현관에서 만난 프랑스 할아버지가 아까 길에서 내 피리 소릴 들었다며 한곡 더 연주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뭘 부탁하면 빼는 일이 없어졌다. '잘' 해야된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다. 알베르게 현관에 앉아 오늘 고생한 순례자들을 위해 오카리나를 불었다. 내가 반주하고 효정씨와 병철씨가 '아리랑'을 부르니 할아버지는 눈물을 찍어내며 참 슬픈 노래라고 하셨다. 우리들 작은 수고가 때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이 된다는 게 고맙게 느껴진다.
숙소에서 한국 청년 두 사람을 만났다. 그중 한 사람은 오래 전에 신부님이 아시던 청년이었다. 역시 세상이 좁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쌍문동에서 온 청년은 나랑 똑같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내가 산 반값에 샀다고 얄밉게 자랑했다. 청년이 슬리퍼 신은 발을 앞으로 쭉 내미는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 발을 꾹 밟아주었다. 아, 나는 요즘 본능에 너무 충실하다! 하지만 하필이면 내가 그냥 살짝, 지그시, 살며시 밟았던 그 발에는 물집이 아주 크게 잡혀있었고 쌍문동 청년은 비명을 지르며 '뭐 이런 게 다 있어!'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초면에 발부터 밟힌 쌍문동 청년은 이후로 나를 심하게 경계하며 혹시라도 내 주위에 오게 되면 각별히 조심했다.
점심 때 먹은 뽈뽀를 저녁에 또 먹고, 밤이 이윽해지도록 놀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요즘은 밤 11시나 되어야 어두워진다. 은하수는 언제쯤 볼 수 있는걸까. 은하수커녕 별이라도 한 번 볼 수 있으려나. 오랜만에 코골이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펼쳐졌다. 오늘의 솔리스트는 바로 옆 침대 신부님이다. 잠이 안와 일어나 앉았다. 주홍색 가로등 불빛이 창을 넘어와 자는 사람들 얼굴을 비춘다. 자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착하다. 한창 신나게 연주 중이신 신부님 얼굴도 참 착하다. 신부님이 코고는 소리는 꼭 무슨 노랫소리 같았다.
첫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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