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NA MARGEM DO RIO PIEDRA EU SENTEI E CHOREI)
Paulo Coelho (문학동네: 2003년)
더 큰 원을 그리는 方法
나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 남자인 나로서는 여자가 신비롭다.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엄청 끌린다. 어떻게 하든 여자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항상 실패한다. 여자와 가까움을 느낄 때 생명이 용솟음침을 느낀다. 이러한 병을 ‘선천성 여자 밝힘증’이라고 불러본다. 여자도 혹시 ‘선천성 남자 밝힘증’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리는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사랑’이라는 힘이다. 중력이나 전자기력처럼 인간의 의지로 이를 통제할 수가 없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 왔고,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영원히 있는 힘이다. 이 신비로운 힘에 대해 파울로 코엘료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연금술사≫와 ≪11분≫을 읽고 난 뒤에,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선택했다. 앞의 두 권에서 혼돈을 많이 맛보았기 때문일까?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으면서는 충격이 적었다. 타성에 젖기 시작했는가? 아니면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에서는 사랑에 관해서만 집중적으로 조명했기에 방해하는 요소가 적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꿈을 찾아 헤매고 다닌다. 꿈을 꾸고 꿈을 찾아 헤매는 동안에는 행복하다. 행복은 목적지를 찾았을 때 느끼는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목적지를 찾는 과정에서 느끼는 따스한 감정인 것 같다. 행복을 느끼게끔 하는 꿈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나도 모르겠으나, 그곳에서는 ‘사랑’이라는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사랑의 힘이 작용하는 ‘사랑의 장(場, FIELD)’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장(場)에 들어가면 먼저 자아(自我)가 위협을 느낀다. 그곳은 자아의 권력이 붕괴되는 세계이다.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영혼에서 울리는 파장을 들을 수 없다면 그 세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 세계는 결코 조금씩 조금씩 들어갈 수는 없다. 차원이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갑자기 내동댕이쳐 진다.
남자에게는 원심력이라는 동물적 힘이 작용한다. 여자에게는 구심력이라는 식물적 힘이 작용한다. 만약 구심력이 없다면, 원심력은 방향도 없고 규칙도 없이 떠도는 소행성이 궁극적으로는 우주 미아가 되게 하는 작용만 한다. 만약 원심력이 없다면, 구심력은 한 방향만으로 축소되어 궁극적으로는 빛을 잃어버린 중금속 덩어리의 별을 형성하게 하는 작용만 한다. 따라서 사랑은 식물적 구심력과 동물적 원심력이 균형을 이룰 때에만 존재한다. 한 쪽의 힘이 너무 강하여 균형을 깨뜨리면 더 이상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균형을 잡아서 사랑이 발생하고 나면 영원히 지속될까? 구심력과 원심력의 양은 자꾸 변해간다.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사랑이 지속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구심력과 원심력이 그리는 원의 크기가 점점 더 커져야 한다. 원의 크기가 계속 커져서 임계점을 넘어서면 ‘사랑의 장’은 곧 ‘신(神)의 장’이 변한다. 물이 100도에서 끓으면 수증기가 되듯이.
“그리고 그 사랑이 저를, 그리고 제가 사랑을 바친 그 사람을 자라게 하소서.” <167>
필라는 자신의 길을 포기하려는 그 남자를 떠난다. 그것은 ‘우리’의 길이 아니기에……
“몇몇 사람들이 진화하면 인류 전체가 진화한다는 것이오.” <205>
사랑의 장에서 보다 큰 원을 그리는 과정이 진화의 과정이다. 사랑의 장에 든 사람이 많아지면 식물의 장과 동물의 장에서 급격히 사랑의 장으로 옮겨갈 것이다. 사랑의 장에서 신의 장까지는 멀고 멀지만……
“우리는 그 분의 꿈의 일부이며, 그분께서는 그 꿈이 행복한 것이기를 바라십니다.” <193>
삶은 행복해야 한다. 사랑의 파동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 진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 음미해 볼만한 구절 =============================
Ø 위험을 감수할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불행합니다. 그는 실망하거나 환멸 따위를 알게 될 일은 없겠지요. 꿈을 좇아 길을 떠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고통 받지는 않을 겁니다. <29>
Ø 우리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과 열정을 가지고 생을 다시 바라보지 않는다면, 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54>
Ø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66>
Ø 좌절도 있지요. 누구도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한 싸움에서 뭔가를 잃는 편이, 자신이 뭘 위해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좌절하는 것보단 훨씬 낫겠지요. <93>
Ø 우주는 늘 꿈꾸는 자를 위해 음모를 꾸미는 법이다. <97>
Ø 하지만 사랑은 늘 새롭다. 생에 한 번을 겪든 두 번을 겪든 혹은 열 번을 겪든 사랑은 늘 우리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한다. 사랑은 우리를 지옥에 떨어뜨릴 수도 있고, 천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 사랑은 늘 어딘가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그저 그걸 받아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121>
Ø 매 순간 진실한 마음으로 따르는 신앙의 길을 통해 인간은 신과 하나가 되고, 기적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 비록 수천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신은 한 분이셔. 그분께 기도 드리기 위해 이름을 고를 뿐이지. <135>
Ø 그와 함께 했던 지난 사흘은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한 해를 완전히 채우고도 남았다. <145>
Ø 오랫동안 나는 슬픔과 고통 그리고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진정한 사랑이 그 모든 것 위에 있으며,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죽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68>
Ø 사랑하는 것이 이별을 뜻한다 해도, 외로움이나 슬픔을 의미한다 해도, 사랑은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깝지 않을 그런 것이었다. <168>
Ø 사랑은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을 뿐이었다. <171>
Ø 네 꿈을 따라라. 네 삶을 변화시키고 신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걸어라. 기적을 행하라. 치유하고 예언하라. 네 수호 천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전사가 되라. 그리고 선한 싸움에 대한 대가로 행복해지라. 위험을 겁내지 마라. <211>
Ø 우리가 신앙을 통해서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신은 훨씬 더 단순해져. 그리고 신이 단순해질수록 그의 현존은 더욱 강해지지. <230>
Ø 그는 단 하루도 똑 같은 날은 없으며 매일 아침은 그날만의 특별한 기적, 그날만의 마법의 순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낡은 우주가 멸망하고 새로운 별들이 나타나던 그 순간처럼. <248~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