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난 반세기가 넘는 동안 나는 누구를 위하여 꽃을 들고 서 본 일이 없습니다. 상대가 애인이건 지금의 집사람이건 상관없이 그 분들을 위하여 꽃을 들고 있어 본 적이 없다는 깨달음을 오늘 얻었습니다. 사람마다 성격 나름이니 그 것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익한 일이겠지요.
나는 오늘 누구를 위하여 한 시간 동안 꽃을 들고 있었을까요? 새로 생긴 애인이거나 우리 샤갈 아지매들을 위해서라면 좀 좋았겠습니까. 이쯤 제가 운을 떼었을 때 지금이 2월이란 걸 감안해서 비슷하게 알아맞추신 분이 있다면, 당신이야말로 천재입니다. 다방면으로 머리가 비상하게 회전하시는 우리 차 한 잔 님 정도는 돼야 눈치챌 사안입니다. 도대체 무슨 답이 나올 것이기에 길게 빼느냐구요? 예, 기다리는 것도 수련입니다.
2월은 배움의 길에 있는 자녀들에겐 졸업의 달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하나의 '매듭'이지요. 매듭이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기막히게 지루한 것인지 생각해 본 일이 있으십니까? 아뭏든 자녀의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큰 매듭 위에 서신 샤갈가족님들께 마음으로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 오늘 저는 친구로 지내는 목사님의 딸 고교 졸업식에 다녀 왔습니다. 사모님이 꽃집에서 꽃을 사려고 차에서 내린 걸 알고, '나도 하나' 하는 기특한(?) 생각에, 51년 만에 '꽃을 든 남자'가 돼 봤던 것이지요.
물론 결혼기념일이라든가, 생일이라든가 이런 때 아내에게 꽃을 한번도 선물한 경험이 없는 무식한 남자는 아니오니 이점 참작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꽃을 선물하기는 해봤지만 상대를 기다리면서 꽃을 들고 있어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지요. 얼굴이 달아오르고 기분도 알쏭달쏭하고 그런 것 있지요? 아뭏든 졸업식이 끝나는 한 시간 동안 들고 있다가 주인공에게 건네는 마음 꽤 괜찮데요. 세상에 뇌물(?)이 될 염려가 없는 유일한 선물이 꽃다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처럼 잘난 사람이 못되는 보통사람에겐 평생 가봐야 꽃다발의 기회도 별로 없을 겁니다만, 고생했다는 잘했다는 의미로 받는 것이 꽃다발이라면 저도 제 인생의 매듭을 결산할 때는 참으로 아름다운 꽃다발 하나를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 꽃다발이 누구에게서 건네지는 것인가는 묻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 꽃다발을 내게서 받은 목사님의 딸도 내가 꽃다발을 갖고 졸업식에 갈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꽃을 든 남자의 경험이 꽤 괜찮았음을 알려 드리니 많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특히 차한잔님,하하.) 꽃을 들고 있었을 때의 넉넉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지 제 능력이 모자라 사실에 가깝고 예쁘게 쓸 수 없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샤갈의 그림에서 '꽃을 든
남자'의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릇이 모자라 쉽지 않겠지만요, 한라산은 오르려고 하는 사람에겐 때론 실패도 경험하게 하지만,오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겐 실패도 아무 것도 의미가 없으니까요.
(어제는 중학교 동창회가 있어서 1차에서 거나한 다음, 2차로 단란주점엘
갔는데 상호가 "사랑을 위하여"였습니다. 처음부터 화면에 떠 있는 표제곡이 아 글쎄 "꽃을 든 남자" 아니겠습니까!! 어쩐지 제목 작명 때부터
느낌이 꼭 대중가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망설였는데... 국제음치이다 보니 아는 노래는 물론 가요에 대해선 진짜 문외한이거든요. 꽃을 든 남자가 영 쪼다같고 빛이 바래는 것 같아서,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