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상률 지음
- 출판사
- 사계절 | 1996-08-01 출간
- 카테고리
- 아동
- 책소개
- 해방 이후 여러분야에서 활동한 현대의 인물들 가운데 민족과 사회...
힘없는 약자의 편에 서서 일생을 살다간 인물들 중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분들 중 한분이 바로 조영래변호사이다.
1947년 대구에서 3남 4녀중 맏아들로 태어나 1990년 43세의 나이에 폐암3기 진단을 받고 돌아가실 때까지 늘
그 분이 꿈꾸신 것은 단 하나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하지만 그분이 돌아가시고
2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세상은 힘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요,,약자가 억울함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 할 만한 곳이
마땅히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분이 남기신 발자취가 있기에 그나마 많은 발전이 있었음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서울대를 수석합격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부귀영화를 꿈꿀 수도 있었지만 시대는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하에서 옳은 소리를 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했지만 그러한 두려움도 그의 정의에
대한 열정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박정희정권하에서 "서울대생 내란 음모사건"으로 억울하게 고문을 받고
감옥살이를 해야했고,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사건으로 도망자의 삶을 살게된다.
하지만 그는 도피생활중에 "전태일평전"을 쓰기도 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끝이 없을 줄 알았던 도피생활도 유신체제의 종말과 함께 사라지고 다시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무사히
변호사가 된 그는 변호사사무실을 연다. 그후 그는 수많은 사건들을 변호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건이 돈없고
빽없는 서민과 약자들을 위한 변호였다, 그중에서도 1984년 '망원동 수재 사건'은 기관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처음으로 받아내는 쾌거를 이룬 '새로운 시민운동의 장'을 연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으며, 뿐만 아니라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지 서슴치 않고 달려갔으며, 1986년에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의 진상을 밝혀냄으로써 5공화국의 부도덕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나약한 여성을 철저하게 짓밟은 공권력의 추악함을
온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또한 1987년에는 '상봉동 진폐증 환자사건'의 무료변론을 자청하여 소송에서 승리를 하며
새로운 환경운동에 대한 인식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는 그의 몸을 갉아먹었고
그가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폐암3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43살이라는 나이게 우리곁을 떠나간
조영래 변호사의 짧은 삶은 우리모두에게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의 삶을, 그리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를 깨닫게 해준다. 또한 그분의 삶은 우리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염원을 간직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조영래변호사의 생애
1947년 3월 26일 대구에서 아버지 조민제와 어머니 이남필 사이에서 3남 4녀 가눈데 맏아들로 태어남
1953년 대구 국민학교에 입학
1957년 5학년때 서울 수송국민학교로 전학
1959년 경기중학교에 입학
1962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 웅변반과 농촌 연구반등에서 활동. 한일회담 반대시위 주도
196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합격
196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
1970년 사법시험 준비중 전태일 분신사건이 일어나 전태일 정신계승사업에 힘을 쏟음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 연수원에 입소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1973년 1년 6개월의 감옥살이를 마침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수배. 6년간 도피생활, 전태일평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집필
1976년 맏아들 일평이가 태어남
1980년 유신체제가 무너지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감, 이옥경과 뒤늦은 결혼식 올림
1981년 둘째 아들 무현이가 태어남
1983년 변호사 사무실을 오픈
1984년 '망원동 수재사건'소송 담당, 새로운 시민운동의 장을 열다
1985년 '대우 어패럴 사건'등 각종 노동사건 변론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진상 밝혀냄, 신문에 논설기고
1987년 '상봉동 진폐증 환자 사건'무료 변론. 이사건으로 환경운동 대중화
1990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인권문제 연구소의 초청으로 미국을 다녀옴. 폐암3기로 43살에 세상을 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