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5 - 서영남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이 심어 주신 곱고 예쁜 마음이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곱고 예쁜 마음들에 행복했습니다.
6월 12일(목)은 쉬는 날입니다. 나물집에서 콩나물과 두부 그리고 청포목과 단무지를 선물해주셨습니다. 단무지는 고추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다시 무치면 참 맛이있습니다. 오후에는 송현1,2동 동사무소 동장님께서 무우를 열 다섯 상자나 나눠주셨습니다. 맛있게 깍두기도 담고 또 무생채도 만들면 우리 손님들이 맛있게 드십니다. 멀리 부산에서 로사자매님이 직접 키운 쌈채소를 한 상자 보내주셨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행복해졌습니다. 내일은 청송 나들이를 가는 날이어서 푹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뇌수술을 하셨다는 가슴 덜컥 내려앉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 결과가 좋다고 합니다. 내일 청송 형제들 만난 다음에 대구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6월 13일(금)에는 새벽 4시에 모니카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의 안드레아 수사님과 대성씨가 4시 30분 전에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4시 24분에 청송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가랫재 휴게소에서 이준 아오스딩 형제님과 만나서 함께 교도소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중앙고속국도의 치악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새벽이 상큼합니다. 화물차연대의 파업으로 미안스럽게도 일찍 가랫재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아오스딩 형제님을 기다리면서 쉬었습니다.
촛불집회을 방해하려는 이상한 요란한 군복을 입은 노인들이 휴게소에서 쉬면서 떠들고 있습니다. 초로의 할아버지들입니다. 군복에는 월남전 맹호 어쩌구 하는 글이 새겨있습니다. 아마 총동원령이 내렸나봅니다. 겨우 버스 한 대의 인원입니다.
가랫재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민들레국수집의 손님들에게도 가랫재 휴게소 수준의 뷔페식 상차림을 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진보에서 제과점 빵과 참외 그리고 얼음과자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날에 청송교도소 형제들이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자신들에게 주는 영치금을 넣지말고 그 돈으로 제과점 빵을 사서 가져오시면 안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오스딩 형제님이 형제들에게 선물할 빵은 당신이 마련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청송 3교도소와 청송 교도소 두 군데의 자매상담 형제들에게 나눠드릴 빵을 샀습니다. 덤으로 케이크도 샀고요. 빵도 덤으로 많이 얻었습니다.
계절 과일인 참외를 샀습니다. 대성씨가 참외 값을 치렀습니다. 참 곱고 예쁜 마음을 보았습니다.
평상시에는 대성씨가 종이상자나 빈병이 생기면 모았다가 할머니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전부터는 할머니들께 나눠주지 않고 지하 창고에 모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리어카에 두세 번을 가득 종이상자를 실어서 고물상에 가서 팔았습니다. 6만 5천원이나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그렇게 종이를 모은 이유를 오늘 알았습니다. 청송 형제들에게 맛있는 것을 마련해주고 싶어서 종이상자를 모았던 것입니다. 대성씨의 예쁘고 고운 마음입니다.
어름과자도 마련해서 오전에는 청송3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열 다섯 명의 형제들이 모임에 나왔습니다. 오늘은 경향잡지 6월호에 나와있는 이일훈 선생의 글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금새 시간이 흘러 마침 기도를 하고 나와서 민원실에서 형제들에게 영치금을 조금씩 넣어드리고 다시 진보로 나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음식을 마련해서 청송교도소로 갔습니다. 형제들과 '고은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상민이와 욱진이는 징역을 십년이나 받았습니다. 겨우 스물 여섯 살입니다. 언제 철이 들까 걱정과 안타까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오늘 형제들이 예쁘고 고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욱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쉰이 넘은 아저씨가 얼마 전에 징역 7년을 받고 들어왔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냥 '나쁜 00' 욕을 했답니다. 그러나다 자기는 저 아저씨보다 훨씬 많은 징역을 받고 살고 있으면서 한번도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미안해서 사과하고 요즘은 친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바로 그 마음이 고은 마음입니다.
형제들의 고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의 가슴에 숨어있는 하느님스런 마음들을 꽃피워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멋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민원실에 가서 형제들에게 영치금을 넣어드리고 아오스딩 형제님께 대성씨와 안드레아 수사님을 서울로 모셔다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저와 모니카는 대구로 어머니를 뵈러 내려갔습니다.
대구 파티마 병원에 갔습니다. 어머님이 여든 아홉이신데 수술도 아주 잘되었다고 합니다. 하룻밤도 함께 지내지 못하고 아홉시 조금 지나서 큰형님을 만나뵙고 인천으로 올라왔습니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미안스럽지만 아주 편안하게 또 빨리 인천에 돌아왔습니다. 새벽 한 시 반입니다.
6월 14일(토)에는 민들레국수집의 아침 준비를 해 놓고 이층에 올라가서 푹 쉬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하루 여행이 힘들어하지 않았는데... 깍두기와 무생채를 만드는 일로 하루 종일 바빴습니다. 고마운 분이 보내주신 쇠머리도 손질해서 끓일 준비를 하고 손님들도 참 많이도 오셨고요. 고마운 분들의 손길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고운 마음 가득 담아 쌀을 보내주신 분, 책을 보내주신 수녀님, 또 고은 분께서는 택시에 실어서 한아름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쌀과 식혜, 밤, 대추, 시루떡, 수박, 참외, 천안 멜론, 포도, 토마토, 바나나, 사탕 등등.
또 속는 셈치고 동윤씨를 다시 식구로 받아들였는데 오늘 행복한 일이 있었습니다. 십만 원이 든 봉투를 제게 줍니다. 무슨 돈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옛날에 저에게 손해끼치고 빌려간 돈들 중 일부라도 갚으려고 그런다고 합니다. 너무 너무 예쁘고 고은 마음이어서 빚을 전부 탕감했습니다. 이젠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동아를 고아원에서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인력시장에 나가서 하루 노동을 하려면 적어도 새벽 세 시 반이나 늦어도 네 시에는 나가야 합니다. 온종일 막노동을 하고 집에 오면 밥 먹고 곧바로 잠을 자야지 술이라도 한 잔하면 일 나가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번 돈을 빚을 갚겠다고 하니 얼마나 예쁜 마음인지요.
병이들어서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서 두문불출했던 성욱씨가 드디어 새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민들레 식구들과 함께 짜장면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 민들레 식구들이 멋집니다. 태영씨는 간짜장 곱배기, 대성씨는 짜장면 보통, 저는 간짜장 곱배기, 주헌씨는 짬뽕 보통, 안드레아 수사님과 성욱씨는 오무라이스, 동윤씨는 참이슬과 덤으로 물만두 두 접시. 개성이 뚜렷하게!
6월 15일(일) 새벽에 곰곰 생각해보니 오늘은 예수살이 여성 제자교우육에 가서 강의를 해야하는 날입니다. 서둘러 씻고 머리도 감고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차림판 살펴보고 준비해 놓고 서울로 갔습니다. 세상은 참 좁습니다. 예수살이 여성 제자 교육에 오신 자매님 중에 제가 아는 분이 두 분이나 있습니다. 세상에,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인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기성씨의 전화가 왔습니다. 운전면허를 따느라 쓰신 돈과 방세 등등 밀린 것이 많은데 조금 또 돈을 보냈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탕감하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예쁜지 기분이 좋습니다.
원식씨가 요즘은 데이트를 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멋진 일이 일어나다니요.
주안 수녀님께서 맛있는 김치와 성금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가난한 손님들을 정말 위한다면 절대 크게 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크게하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