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말은 영세를 받고 2년쯤 됐을 때 성경특강을 들었는데 그때 마산교구장님이신 안명옥 주교님으로부터 처음 들은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개신교에서는 특정 몇몇 교부들 외에는 교부들이나 성인은 잘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몰랐습니다. 저는 이 말도 그렇지만 이에 앞서 다른 내용이 더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성경을 파십시오'라는 말씀입니다. 잘 듣지 않았던 말씀이라 혹시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서울주보에도 이 내용이 나왔더군요. 그래서 이 말씀도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에로니모 성인은 요즘 말로 말하면 언어능력이 정말 특출한 성인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언어능력이 좋은 성인이라 많이 관심을 가졌던 성인이기도 했습니다. 왜 성경을 파라고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해서 몇 편의 글을 올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내용으로 해서 왜 우리는 성경을 자주 접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제가 이번에 경시대회 시험을 준비하면서 고민하고 묵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한번 공유해보겠습니다.
예전에 보면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전에 저는 송봉모 신부님의 글을 통해서도 요즘은 다시 유튜브로 신부님의 영상을 보긴 했지만 신부님 외에도 다른 책을 통해서 성경은 신자라면 당연히 가까이 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 이유를 보면 대개 다 천편일률적이고 또 원론적인 이야기가 대다수입니다.
저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벗어나 이번에 제가 체험한 걸 바탕으로 해서 실제 조금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체험담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에서 가톨릭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성경은 전부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성경도 버전별로 다섯 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미국에서 아는 신부님을 통해 받은 것은 가톨릭 버전이긴 하지만 전례용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한국어로 된 성경은 종류별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할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는 쓰임새가 다 다릅니다.
요즘은 시력이 많이 떨어져서 손바닥만한 신약성경은 잘 보지 않지만 아무튼 활용하는 방법이 다 다양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성경을 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입니다. 특수한 경우에만 스마트폰을 활용을 하고 보통의 경우는 가급적이면 책으로 성경을 보는 걸 추천합니다. 얼마 전에 창원에 교보문고를 가니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약 10년 전만 해도 사전 코너에 다양한 사전이 있었는데 이젠 국어사전 그것도 몇 권 정도만 있고 그외 사전 코너가 없어졌습니다. 아마도 종이사전은 사장될 분위기입니다. 이미 영국 옥스포드 사에서도 이런 걸 예측했습니다. 저도 애들을 지도할 때 저한테 배우는 애들은 무조건 필수적으로 영영사전을 소지해야 합니다. 차선책으로 아이패드에 영영사전 앱을 탑재해야 합니다.
제가 다년간 경험한 바에 의하면 확실히 종이사전을 가지고 공부한 애와 앱을 통해 공부한 애를 극단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종이 사전으로 공부한 애가 월등히 영어성적이 더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많이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예가 성경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좀 더 부연을 하자면 요즘 매일미사도 앱이 있어서 앱으로 보곤 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매일미사를 보지 않으려고 전례력을 사서 성경으로만 독서와 복음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게 좋긴 한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례 흐름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고 또 화답송 같은 것 이런 것 때문에 다시 매일미사를 보다가 지금은 신자용 독서와 복음 전례서 다섯 권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매일미사를 구입하긴 합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내용 그대로인데 매일미사로 볼 때랑 전례집으로 볼 때랑 내용은 같지만 그 말씀이 와 닿은 느낌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모르겠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아날로그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게 좀 더 선호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무조건 대원칙 첫째가 가능하면 성경책을 통해 지상에 있는 텍스트를 눈으로 봐야 좋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성경 중에 한 권은 형광펜과 줄 아무튼 학생들 참고서처럼 메모와 줄이 가득한 성경이 있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학문적인 용도로 성경을 탐구할 때 사용하는 성경입니다.
중요한 말이나 키워드 같은 것 또는 비교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색깔로 통해서 저 나름대로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 표기를 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이 성경을 통해서 성경을 볼 때랑 아무 표기도 없는 성경을 볼 때랑은 느낌이 다릅니다. 이것도 번갈아 가면서 봅니다. 그 이유는 아무런 표기도 없는 걸 보면서 메모나 포스트잇을 통해 표기한 내용을 보지도 않고도 머리 속에서 그 내용을 복원하려고 애를 쓰면서 다시 기억을 상기시키려고 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 봤을 때랑은 확실히 느낌이 다릅니다. 그런 노력을 하면 말씀의 행간까지도 육비에 새겨넣는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주석성경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다양하게 주를 참고하는 성경도 있습니다.
길 진리 생명인 성경 말입니다. 특히 영어성경 같은 경우도 주가 달린 게 많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관주라고 합니다. 요즘은 관주성경을 보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도요. 저는 대학교 1학년부터 개신교에서도 아주 좋은 고급 관주성경을 구입해 봤습니다. 지금 딱 하나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창세기에 화와 이브 이걸 그당시 관주에 보면 '생명'이라고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인 내용만 언급했습니다. 귀찮지만 왜 이런 성경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련 성경 구절을 보게 되면 처음에는 콩시루에 물이 빠지듯이 쭉쭉 빠지는 것 같지만 이게 세월이 가다보면 나중에 뭔가 그림이 그려지고 퍼즐이 맞추어진다는 그런 느낌이 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을 보는 시야가 좀 더 넓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카메라로 비유하면 렌즈가 더 많은 것입니다.
서로 상보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하면 비효율적입니다. 성경을 어느 정도 통독이 최소 3회독 됐을 때 하면 확실한 차이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관련 구절을 찾아보고 하는 수고가 따르고 시간이 조금은 걸리겠지만 나중에는 어느 시점에서는 성경을 읽고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서 많이 단축을 시킬 수 있다는 것과 또한 그림이 그려진다고 해야 할까요?
분명 그렇습니다. 가령 적절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바오로 서간은 각 서간의 집필목적과 신학적인 배경을 조금 이해를 한 후에 로마서 8장을 암기하면 좋지만 암기를 하지 못해도 여러 번 읽어서 그 내용이 완전히 숙지가 된 상태에서 바오로 서간을 보게 되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바오로 사도의 영성과 또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천주교 교리의 뼈대가 그림이 그려질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그럼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물론 꼭 두 권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긴 합니다. 일일이 그냥 참조해서 보면 됩니다. 그렇게 해도 되지만 비교 구문에서는 서로 성경을 직접 눈으로 대조해서 보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두 권을 활용해서 보면 더더욱 좋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아주 원론적인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장구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본론적으로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신앙생활을 했을 때랑 성경은 뒷전이고 그냥 우리가 흔히 늘상 하는 미사 때 독서와 복음을 성당에서만 듣고 성체신심에 사로잡혀 성체를 영하는 그런 수준에서 미사를 드릴 때랑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 체험담을 다음 편에서 한번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한 가지만 단순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성경을 읽어도 죄를 짓습니다. 읽지 않아도 죄를 짓습니다. 그럼 똑같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차이가 납니다. 성경을 읽으면 죄를 짓긴 지어도 덜 지어야 한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정말 죄를 짓고 싶은 유혹의 손길도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하느님의 진노가 무서워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성경을 많이 보면 볼수록 성경 속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고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생기기 때문에 그래서 죄를 덜 짓게 되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그냥 성경을 단순히 읽는 수준에 그쳐서는 그렇게 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분명 보는 방법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어쩌면 흔히 말하는 성경을 읽는 '노하우'라고 말히긴 좀 애매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도 노하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