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외로운 섬 ‘남해’는 육지와 연결됐다. 68년 착공해 5년 1개월만에 ‘남해대교’가 완공된 것이다. 그 뒤로 30년. 경남 사천과 남해를 잇는 창선·삼천포 대교가 연결되면서 섬으로 가는 길이 뚫렸다.
남해를 육지와 잇는 남해대교는 70~80년대 우리나라의 대규모 토목사업 중 하나였다. 660미터에 이르는 길이와 60미터의 높이는 그 규모부터 압도적이었다. 이 후 80년대 들어서 완공된 진도대교, 돌산대교를 비롯해 대형 교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지난 2003년에는 사천시와 남해를 잇는 삼천포 대교가 들어섰다.
창선대교/ 아치교 형식의 교량/ 창선도와 늑도를 연결하는 교량이다. 340m의 붉은 아치형 교량이 장관을 연출한다.
70년대 하동군 노량리와 남해군 노량리 사이의 노량해협은 불과 1km가 되지 않는 짧은 뱃길이었다. 당시 배는 오전 6시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운행됐고 남해에 사는 2천여명 주민들에게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태풍이 와서 배가 끊기면 며칠이고 섬에 갇혔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조선조 중엽으로 가면 이곳은 유배(流配)지였다. 조선 숙종 때 김만중은 이곳에서 ‘구운몽’을 구상했고 중종 때 자암 김구가 ‘화전별곡’의 소재로 삼은 곳도 바로 이곳 남해다. 게다가 충무공 이순신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곳도 바로 이곳이니 남해가 지닌 역사적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동양 최대의 현수교, 미스코리아 수영복 사진 촬영지로…
1973년 6월 22일 남해대교가 완공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 다리를 직접 건너며 축하했다. 다리아래 물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고 모두 남해대교를 따라 건너느라 다리 개통식은 마치 마라톤 대회 출발점처럼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남해대교는 동양 최대의 현수교였다. 거대한 다리는 일본과 국내의 합작 설계로 이뤄졌고 현수교의 핵심부품인 와이어는 모두 해외에서 수입됐다.
남해대교/ 남동쪽에서 올려본 모습/ 왼쪽은 남해군이고 오른쪽은 하동군이다. 가운데 넓게 펼쳐진 바다가 노량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다일기자)
다리가 완공되자 섬은 유명세를 탔다. 관광객이 10배 이상 늘어났고 작은 논에 벼농사를 하고 가까운 연안에서 이면수를 잡아 겨우 생계를 잇던 주민들도 다리 덕택에 관광산업으로 뛰어들었다. 소득은 자연스레 올라갔고 외로운 섬 남해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83년에는 미스코리아의 수영복 사진을 남해대교에서 찍기도 했다. 당시 ‘진(眞)’에 오른 임미숙씨는 “남해대교에서 수영복을 입고 촬영하다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개통 36년, 당시엔 동양최대
올해로 남해대교는 개통 36년을 맞이했다. 강산이 세 번 넘게 변할 긴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동양최대라는 수식어는 이제 과거의 영예일 뿐이다. 이제는 그저 묵묵히 육지와 섬을 잇는 길의 역할을 하고 있다. 6월초 촬영을 위해 남해대교를 찾았을 때 공사모를 쓴 사람들이 다리에서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저런 보수를 위해 무언가를 조사하는 모양이다. 다리아래 충렬사는 노량해협을 지키고 있었고 그 앞에 놓인 거북선엔 유치원 아이들의 현장교육이 한창이다.
설천면 노량리에서 본 모습/ 거대한 주홍빛 기둥/ 작은 집들과 비교하면 높이 60미터 길이 660미터 교량의 크기가 실감난다. (이다일기자)
남해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던 탓에 남해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엔 검문소가 있다. 섬의 동북쪽엔 2003년 완공된 삼천포 대교가 들어서 있다. 3.4km에 걸쳐 다섯 개의 다리가 이어져 육지와 섬을 잇고 있다. 마치 남해대교의 역할을 나눠가진 동생다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3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발전 시켰다.
충무공 탄신일을 기해 지난 2003년 개통된 창선·삼천포 대교는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 됐다. 30년전 남해대교와 다른 점이다. 또한 규모도 남다르다. 3개의 섬을 5개의 의 교량으로 이었다. 각각 형식과 모양도 다르다. 하로식 아치교의 창선대교, PC박스 상자형교 형식의 늑도대교, 중로식 아치교 형식의 초양대교, 사장교 형식의 삼천포 대교 등 제각각의 모양들은 마치 다리 박물관을 보는 듯 하다.
수천개의 섬들이 늘어선 한려수도.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남해에 다리가 놓이며 보고 즐길 꺼리가 늘었다. 낮에는 웅장한 모습으로 밤에는 낭만스런 야경으로 눈을 즐겁게 하고 차를 타고 섬으로 들어갈 수 있게 길을 열어준다. 덕분에 섬은 외딴 공간에서 벗어났다.
봄에는 벚꽃길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남해대교를 지나고 여름이면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으로 북적인다. 한려수도를 관광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충렬사를 비롯한 역사 유적을 탐방하기도 좋다. 대전에서 무주를 거쳐 진주를 지나는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서 5시간가량 달려야 남해에 도착한다. 예전엔 고속도로도 없었거니와 천리길 유배지였던 것을 생각하면 5시간 달려도 아깝지 않다. 제각각 모양을 지닌 창선·삼천포대교, 남해대교, 충무공 이순신을 비롯해 남해 12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대교들 덕분에 갯바위 낚시하는 사람도 좋고 섬붕어 낚시 하기도 좋고..
여행하기도 좋고.. 무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