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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리남중12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화구
춘포 봉개산 기행 "망자(亡者)에게는 안식을, 산자(生者)에게는 Healing을" 지난 목요일에는 집안에 제사가 있어 익산에 내려갔다가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춘포 들녘에 위치한 봉개산에 들렸다. 나는 춘포 출신은 아니나 익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익산 17경비대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한 익산 출신이다. 봉개산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때 전주로 열차통학하면서 차장 밖으로 늘 봐왔던 춘포 들녘에 있는 산이었고, 근자에는 봉개산 아래가 고향인 남성고 출신 친구를 통해서 봉개산이 공동묘지라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이 생겼으며, 최근에는 봉개산 아래에서 재활용센터(고물상)를 운영하는 남중학교 동창을 만나 봉개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지난 겨울에는 전주에 문상을 다녀오는 길에 봉개산에 잠깐 들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춘포 들녘에 위치한 야산이 묘지가 많은 산이라고 하니 봉개산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봉개산을 한 번 소개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며 가능하면 언제 날을 잡아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방문하여 여유롭게 답사를 하면서 주변 동네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봉래산에 얽힌 옛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지만 내가 유명한 작가도 아닌데 카메라 둘러메고 낯선 이가 초면에 마을 방문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면 요즘 같은 세상에 간첩으로야 오인은 안 하겠지만 부동산투기꾼으로 몰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성고 출신 친구에게 협조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친구는 남의 동네 공동묘지에 무슨 관심이 많으냐며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지난 주 익산에 내려가는 길에 카메라를 들고 가서 목요일 오후에 들려볼까 했으나 일정이 맞질 않아 금요일 상경하는 길에 방문하였으며 봄비가 내려 사진으로 담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에 살면서 내영혼의 안식을 찾기 위해 가끔은 공동묘지가 많은 망우리를 찾는다. 망우리에는 “사색의 길”이라는 코스가 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이승에 왔다가 먼저 가신 영혼들의 유택(묘지)을 탐방하면서 인생에 대하여 사색하는 시간을 갖으며 내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어 Healing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사진을 잘 찍는 사진작가도 아니다. 평범한 은행원으로 37년간 근무하고 지난주 퇴직한 사람으로 최근 10여 년 동안 산행을 하면서 디카에 우리의 산야를 담아 글을 곁들어 산행기를 쓰거나, 아니면 야생화를 사진으로 담아 글을 쓰거나 동창회나 친구들 모임이 있으면 카메라에 담아 글로 써서 인연이 닿는 카페 여기저기에 지금까지 약 5백 여 회 이상을 올린 바 있다. 지난주 다녀오면서 카메라 앵글에 담은 그림 몇 장을 올려본다. 【아래 그림】봉개산 소개 1 봉개산은 ‘춘포산(春浦山)’이라 불리기도 하며, 익산시 춘포면 인수리에 있는 산이다(고도:49m). 춘포의 우리말 이름은 ‘봄개’. 봄개는 봄나루라는 뜻으로 음이 변해 ‘봉개’가 됐다. 봉개산(춘포산)은 춘포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중심지이다. ‘춘포산(봉개산)’은 춘포의 넓은 평야지대 들녘에 있으며, 불가에 비교한다면 세상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과 같은 곳이다. 즉 봉개산은 춘포면 11개 마을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춘포면을 관장하는 요충지와 같은 곳이다. 【아래 그림】봉개산 소개 2 춘포 들녘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야산이 있다. ‘봉개산’, 또는 공동묘지가 있어 ‘장례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개산(춘포산)은 춘포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중심지이고 익산천이 흐르는 곳으로 옛날 배가 들어와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아래 그림】익산천 인근에서 바라본 ‘봉개산’ 전망, 보는 바와 같이 들녘에 위치한 낮은 야산이다. 【아래 그림】봉개산 답사는 화평리 마을회관을 들머리로 삼았다. 【아래 그림】화평리 마을회관 개인적으로 마을회관 경로당에 들어가 동네 어르신 분들을 만나 뵙고 봉래산에 얽힌 옛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지만 낯선 이가 초면에 마을을 방문하여 이것저것 물어보기가 뭐해서 그냥 올라갔다. 【아래 그림】답사를 시작하며, 마을에서 올라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어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할 것 같다. 【아래 그림】동네에 핀 매화꽃이 먼저 나를 반기며 【아래 그림】동네에 핀 매화꽃이 봄을 알리는 것 같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절개를 지닌 꽃이다. 【아래 그림】저승길로 안내하는 길가라 그런지 대나무숲길로 이어진다. 이 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 그런지 습한 기운을 드러내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저승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공간이다. 【아래 그림】낮은 대나무숲길 언덕을 올라서니 저승이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이리도 가깝단 말인가? 【아래 그림】묘지 옆에는 채소를 기르는 마늘밭이 있다. 죽은 영혼들은 마늘을 싫어하는데 마늘밭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 미생물의 양분이 되어 땅을 살리고 나무와 식물을 기른다. 【아래 그림】공동묘지 사색의 길을 따라 걸으며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아래 그림】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닐까 싶다. 죽음이 있어야 삶이 있고,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느 분은 “삶과 죽음은 백지 한 장 차이”라 하지 않았는가! 【아래 그림】유교에서는 인간에게 두 종류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즉 혼백(魂魄)이다. 인간이 죽은 다음, 혼(魂)은 인간의 몸을 빠져나와 위패 안에서 살다가 곧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다. 백(魄)은 인간의 사후에도 몸 속에 사는 존재로, 묘지에 묻힌 시체와 함께 흙이 된다고 여겼다. 【아래 그림】이곳부터는 묘지가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니 개인 소유지인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 묻힌 많은 분들이 봉개산 인근 동네에 사셨던 분들이 아닐까 싶다. 【아래 그림】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자라나 그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고향 언덕에 묻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래 그림】 봄비 내리는 날 검정 옷을 입고 공동묘지에서 사진을 찍으니 내가 봐도 내 모습이 무서워 보인다. 【아래 그림】 묘지 옆에 있는 바위덩어리도 공동묘지라 그런지 돌무덤으로 보인다. 봉개산 공동묘지는 비록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삶과 죽음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다.
【아래 그림】 봉개산 정상에 세워놓은 삼각점인데 해발고도가 49m라고 쓰여 있다. 【아래 그림】잠시 오르다 보니 봉개산 정상이다. 검정 옷을 입어서 그런지 분위가가 저승사자의 모습이다. 【아래 그림】날이 비가 오고 흐려서 정상에서의 조망이 좋질 않다. 그러나 봉개산 정상에 조성된 사각형 모양의 시멘트 구축물을 바라보니 이곳이 불가에서 얘기하는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의 한 가운데로 걸림 없이 사방을 훤히 볼 수 있는 선견천(善見天)이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묘지들이 조성이 잘되어서 그런지 저승도 이만하면 이승 못지않나 싶다. 【아래 그림】이곳이 Christian 분들에게는 하늘에 있는 신의 도시인 거룩한 산 '시온산(ZION)'아 아닐까 싶다. 【아래 그림】내려오면서 바라본 정상 인근으로 조성된 묘지들, 이런 곳이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산다는 ‘선경(仙境)’의 세상이 아닐까 싶다. 【아래 그림】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는다. 범부는 물론 왕후장상과 성현도 죽음만은 어쩌지 못하였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이 아닌가!
【아래 그림】저승에서도 이렇게 아름답게 잘 조성된 묘지에 누워계신 분들에게는 이곳이 바로 천국(Heaven)이 아닐까 싶다.
【아래 그림】비석에 그어진 십자가를 보면 이곳이 바로 천국(Heaven)이 맞다. 【아래 그림】 저렇게 조상님을 잘 모시면 후손들에게 발복이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봉개산은 공동묘지가 있어 그런지 ‘장례산 (葬禮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래 그림】풍수에서도 명당은 효자(孝子)와 인자(仁者)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며, 물각유주(物各有主)라 해서 명당은 애써서 얻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임자가 있다는 법이다.
【아래 그림】이곳은 남향으로 멀리 앞으로는 만경강이 흐르고 있지 않은가! 【아래 그림】바로 아랫마을은 망자 분들이 태어나 탯줄을 묻은 고향땅 ‘Paradise’이고 죽어서는 잘 조성된 고향땅 언덕에 묻히니 이곳은 ‘Heaven’이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비록 땅속에 묻혀 계셔도 고향땅을 지척에서 굽어볼 수 있으니 얼마나 평안하시겠는가! 【아래 그림】이렇게 잔디가 잘 조성된 공간을 누가 공동묘지라 한단 말인가! 【아래 그림】이렇게 잔디가 잘 조성된 공간은 어린 학생들이 소풍을 와도 좋을 것 같은 공간이다.
【아래 그림】비석에 그어진 십자가를 보면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시온산(ZION)'아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그래서 봉개산은 망자(亡者)에게는 안식처요 산자(生者)에게는 Healing을 주는 공원 같은 공간이며, 또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아래 그림】노송을 바라보니 성삼문이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을 표현한 시구절이 생각난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되었다가 /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정하리라." 【아래 그림】이곳이 불자들에게는 부처님이 계시는 ‘불국토(佛國土)'가 아닌가 싶다. 【아래 그림】이곳 봉개산은 죽은 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 아니다. 으스스하고 외진 곳, 담력 테스트를 하는 공동묘지도 아니다. 삶과 죽음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으로 죽은 자의 마을에서 죽은 자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현재를 반성하며 근심걱정을 잊기에 좋을 듯한 곳이다. 【아래 그림】이곳이 亡者의 땅에 유택(幽宅)들이 모여 있는 아늑하고 포근한 저세상인 것이다. 또한 이곳은 살아서는 큰 차이가 있었을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으며 봉개산은 죽음이란 피해갈 수 없는 유일한 사실을 대변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아래 그림】화평리로 올라가서 하산은 신평리로 내려온다. 동네 마을도 봄비가 내려 날씨가 흐리다. 세속의 세상은 우리가 세상의 온갖 시름을 다 갖고 얽기고 설키며 톱니바퀴 부속처럼 인생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살이가 있는 사바세계다. 【아래 그림】산 입구에는 과일나무며 채소를 가꾸는 밭들이 조성되어 있다. 【아래 그림】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내려간다. 언뜻 보기에 자연의 모습은 그대로 같지만 나무에 물이 오르고 산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래 그림】저 아래에서 ‘대신자원’이라는 재활용센터(고물상)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들려야겠다.
【아래 그림】주변 풍광이 이 봄비만 그치면 나무에 물이 오르고 완연한 봄일 것 같은 분위기다. 지난 겨울은 많이 추웠던 것 같다. 그러나 겨울이 아무리 매섭고 추울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긴 겨울의 두꺼운 하얀 옷을 벗고 산뜻한 새봄의 옷으로 갈아입는 계절이 온다. 화평리를 들머리로 들어선 저승길도 이제는 49재의 기간을 마치고 신평리를 날머리로 하산하면서 다시 이승인 고향땅으로 환생한다. 49재(四十九齋)는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숭배사상과 불교의 윤회사상이 절충된 것이다. 불교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齋)를 올려 죽은 이가 그 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이 49일간을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에 죽은 이가 생전의 업(業)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의 인연, 즉 생(生)이 결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친구 사무실에 들려 차 한 잔 얻어 마시고 인증샷도 한 장 남긴다. 노경환 친구는 나와 이리초등학교와 이리남중학교 동창이다. 이 친구도 몇 년 전 부모님을 이곳 봉개산으로 모셨단다. 【아래 그림】봉개산 아래 들판에서도 활짝 핀 매화꽃이 봄을 알린다. 해마다 3월 이쯤이면 따뜻한 날씨와 촉촉한 봄비로 식물들은 싹이 트고 꽃봉오리가 맺게 되면서 봄이 온다. 【아래 그림】봉개산 아래 마을 신평리에는 까치들도 엉성하긴 해도 둥근 공 모양의 까치둥지를 짓고 살면서 이 동네 분들의 이승과 저승길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아래 그림】봉개산 아래 마을에는 돌아가신 영혼들을 천국으로 안내해주는 예배당도 있다.
【아래 그림】봉개산 인근에는 돌아가신 영혼들을 극락세계인 불국토로 안내해주는 ‘불국정사’라는 사찰도 있다.
【마치면서】 나는 봉개산을 답사하면서 처음과 끝,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등은 따로 분리된 게 아니라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곳 봉개산은 산자(生者)와 망자(亡者)가 더불어 함께하는 곳인 것이다. 봄비 내리는 날 찾아온 봉개산도 다가올 새봄을 기다리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봄비를 통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망자의 땅에서 사색의 시간을 마친다. 끝으로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 시 한 수 올려놓는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 단순한 산자(生者)들의 이별을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이곳이 망자의 땅인 점을 감안하면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이별이 아닌 죽은 이와 살아있는 사람 사이의 이별을 노래하는 만가(輓歌)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다. 님의 침묵 (沈黙) / 萬海 - 韓龍雲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끝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화구 올림 P.S., : 저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봉개산을 자세하게 답사하면서 동네 분들의 많은 이야기를 묻고 고증을 거친 후에 이글을 올려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춘포 출신도 아닌 사람이 봉개산을 소개하다 보니 잘못된 부분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혹시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 의견을 주시면 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