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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44코스 역방향
서상게스트하우스-남해스포츠파크-장항해변-천황산 임도-상가리-임진성-오리마을-평산 작은미술관
20220111
검은호랑이의 해 임인년 들어 남파랑길 첫 탐방에 나섰다. 양재역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여 남해군 서면 서상항 주차장에 11시 30분이 못되어 도착하였다. 남파랑길 44코스를 평산항에서 정상 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하는데, 안내산악회측에서 숙소 이동의 편리를 위해서인 듯 서상항에서 역방향으로 진행시킨다. 아쉽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이 그대로 따를 수밖에.
바람이 몹시 거칠게 불었다. 서상 게스트하우스 앞 서상천에 놓인 남해스포츠파크 다리 옆에 남파랑길 45코스와 남해바래길 12-14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출발의 기념 셀카를 찍고서 남파랑길 44코스를 역방항으로 출발한다.
서면 서상리 서상천의 남해스포츠파크교를 건너 남해스포츠파크로 향한다. 서상천과 서상마을 그 뒤쪽으로 망운산의 KBS 하얀 송신탑이 봉긋하게 보인다. 남해 스포츠파크의 여러 스포츠 공간, 조각공원과 야구장을 지나 남해스포츠파크호텔 옆으로 직진하여 장항(獐項)해변으로 나갔다. 해변의 카페와 횟집들은 평일이라 손님이 아예 없이 텅 비어있다. 한려수도 여수 해안과 북쪽으로 광양제철소 공단의 하얀 건물들이 신세계처럼 펼쳐져 있다. 장항해변을 벗어나 지형이 노루목을 닮았다고 하여 장항(獐項)이라는 지명을 얻은 장항마을을 거쳐 봉전산 임도로 들어섰다. 바람은 더 거세게 불어대고 인적 없는 임도 옆 농가의 개들이 몰려나와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는 소리는 길손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준다.
봉전산 임도 옆 시금치밭에 다채로운 색깔을 한 허수아비가 길손의 눈길을 끈다. 허수아비를 보며 웃음지으며 뒤돌아서서 서면 서상리 일대와 망운산을 그리고 여수 해안과 멀리 광양제철소를 조망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봉전산 임도는 조산 임도로 이어지고 노루목 고개를 넘어 서면 서상리에서 남면 덕월리로 넘어간다. 천황산 임도를 돌아가는 길의 전망 좋은 정자에서 내려보는 아난티남해 골프장, 덕월리 구미해변, 평산리 평산항과 바다의 대마도·소마도·목도, 한려수도와 여수 해안을 조망하며 가슴이 활짝 열렸다. 바로 저 아래가 오늘의 목적지 평산항이다. 한두 번 뜀박질하면 평산항에 닿을 것 같지만, 남파랑길은 목적지를 눈 아래 두고 멀리 북동쪽을 돌아 서남쪽 평산항으로 이어진다.
천황산 임도에서 북쪽으로 빙 돌아가는 길에서 멀리 금산과 앵강만, 설흘산과 응봉산 능선, 망운산과 그 자락 너머의 남해읍, 남면 상가리 들녘과 귀비산·대부산·괴음산·송등산을 조망하며, 지난번에 걸었던 남파랑길의 추억에 잠긴다. 상주은모래해수욕장에서 본 상주중학교의 아름다운 건축·인문학 계시판의 쇠귀 신영복의 글·둘다섯의 밤배 노래비, 벽련마을로 가면서 바라보는 앵강만 설흘산과 노도, 앵강만 위 용문사 입구의 서포문학공원,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의 가천다랭이마을, 빛담촌과 항촌항, 유구마을에서 평산항으로 이어지는 해안 언덕에서 바라보던 망운산과 여수 해안, 이 풍경들이 꿈길인 듯 눈 앞에서 춤을 추며 가슴을 부풀린다.
천황산 임도에서 상가리로 내려와서 북구마을과 남구마을을 거쳐 기림산(기왕산) 임진성에 올라서 걸어온 천황산 임도와 상가리 들판과 덕월리 구미해변, 남면 죽전리와 당항리 일대 그리고 금산과 앵강만의 아름다움을 조망하였다. 그리고 바로 아래는 아난티남해 골프장과 오리마을, 그 건너편에 오늘의 목적지 평산항이 가까이서 손짓한다. 임진성을 내려와 덕월리 아난티남해 골프장 앞을 지나면 양지천, 남면 덕월리에서 양지천의 양지교를 건너 남면 평산리로 넘어간다. 동쪽을 바라보면 남해 금산이, 그리고 앞쪽에는 남해 해성중고등학교 교사가, 왼쪽 들판에는 태양광 발전시설과 기림산의 임진성이 조망된다. 아난티남해 골프장을 지나 왼쪽 오리마을 입구에 방조림이 조성되어 있다. 바다가 멀리 있는데 이곳이 방조림이라니? 의문은 곧 풀린다. 아난티남해 골프장이 조성된 곳은 매립지, 이곳이 매립되기 전까지는 바닷물이 오리마을 입구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오리마을 입구에 방조림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오리마을 돌담길을 거쳐 오리회관 앞 남해 해성중고등학교 입구의 '남면로'로 나왔다. 남면로를 건너 맞은편 오리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망기산 임도로 들어서면 '백이정 묘'라고 전해지고 있는 묘로 가는 갈림목에 이른다. 묘에 가보려는 욕심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욕심을 억눌러 그곳에 들르지 않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망기산 임도를 따라 오른다. 임도는 위쪽으로 길게 올라갔다가 원을 그리며 맞은편으로 돌아나와 평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이어진다.
평산마을로 내려가는 임도에서 오늘 걸어온 모든 곳을 총정리하는 풍경이 조망된다. 바람은 더 거칠게 불어 몸은 바람에 나부끼지만 이 풍경을 오래 즐겼다. 조산과 천황산 임도, 이곳을 조망했던 너덜지대 아래의 전망 좋은 정자, 장항해변에서 구미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선, 아난티남해 골프장, 한려수도 여수 해안과 북쪽 끝의 광양제철소, 그리고 바로 아래 평산항의 방파제에 붙은 관선도가 앙증스럽게 예쁘다. 바다의 대마도·소마도·목도는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앉아 있다. 마음이 펄펄 끓어올라 손이 시렵지만 사진기 셔터를 연거푸 눌러댔다.
평산2리마을로 들어서며 똑같은 풍경인데도 이 풍경을 보기 위해 걸음을 자꾸 멈추었다. 그 풍경 속을 날아온 길손의 모습이 그려진다. 얼마나 다급하게 걸었으며, 얼마나 숨가쁘게 벅찼을까? 평산2리회관을 거쳐 마을로 내려가는데 폐가들이 여럿 눈에 띈다. 가슴이 저려온다. 식구들의 따스한 삶을 일군 보금자리가 무너지고 쓰러지고 버려진 모습에 길손은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돈이 최고일까? 그렇다. 자본의 시대에 돈이 아니면 일상을 어떻게 견뎌낼까? 돈의 욕심을 줄일 수는 없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끝이 없는 법. 폐가를 떠나간 가족이 어느날 불현듯 버려진 폐가를 그리워하여 다시 찾아올 때쯤이면, 돈의 욕심을 어느 정도 극복하였을 것이다. 돈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 우리들이 꾸려온 빈한한 일상에 황금보다 더 소중한 삶의 가치가 꽃피고 있었음을 깨닫고 지난 시절의 희노애락애욕을 그리워하여 이곳을 다시 일굴 것이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면 폐가는 다른 주인에게 넘겨질 것이다.
평산1리회관 앞 남파랑길 44코스 시작점 표지를 확인하고 바래길작은미술관 옆 남파랑길 44코스와 남해뱌래길 11-13코스 안내도가 있는 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남파랑길 44코스 역방향 걷기를 마친다. 길게 이어온 길들이 가슴에 물결을 일으키며 요동친다. 요동치는 가슴을 안고서 작은미술관으로 들어갔다. '바래길 작은미술관'은, 폐쇄된 평산 보건진료소를 개조하여 2015년 10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전시 그림들은, 정종효의 한지 그림, 전인숙의 수채화 '남해' 연작, 김주연의 아크릴 칼라화 '남해 사계' 연작, 전서희의 유화 '추억', 김형숙의 한지에 먹 그림 '섬', 김태연의 유화 '남해-바라보다'와 수채화 '남해-창선대교' 등이다. 그림을 감상하고 나니 가슴의 요동이 정화되는 듯, 그러나 뜨거운 가슴은 식지 않았다.
그림 감상을 마치고 미술관 안내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평산마을의 영락을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해에 인구가 감소하고 폐가가 늘어나고 초등학교가 폐교되는 현실을 한탄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남해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고통이 젊은이들을 압박하여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감소하고 농어촌을 떠나 도시로 밀려드는 현상이 빚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해는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비교적 생활이 풍요롭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미지의 새로운 길을 가는 가슴설렘이 자꾸 줄어든다. 국토 순례를 목표로 답사하는 코리아둘레길은 모두가 미지의 새 길이다.. 이 미지의 길을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걸어가지 않고, 이 길을 걸었다는 것으로 자족할 때 길의 의미는 허공으로 날아가 흩어진다. 미지의 길을 걷기 위해 미리 그 길의 지도와 선답자의 안내글을 읽으며 학습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 길을 실제 걸을 때의 감각은 전혀 다르다. 아니, 차라리 학습하지 않는 것이 미지의 길을 가는 체험과 감각을 훨씬 새롭게 출렁이게 한다. 스스로 직접 걸으며 체험하고 감각할 때의 가슴설렘은 학습한 것과는 차원을 달리하며 가슴을 펄펄 끓게 한다. 이 설렘이 없다면, 길을 따라 목적지에 이르러 길을 걸었음에 만족하고 말듯이, 삶의 길 또한 그저 그렇게 살아가다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남파랑길 44코스를 얼마나 새롭게 걸었을까? 탐구와 상념은 제한 시간과 일행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순식간에 뒤쪽으로 밀려났다. 어떻게 걸었지? 바삐 걸었을 뿐이다. 무엇이 남았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모습을 보여준 망운산, 남해 서면 서상리와 남면 상가리·덕월리·평산리의 지리와 지형,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끈질긴 삶의 노력, 왜적(倭敵)의 침략을 극복하기 위한 역사의 흔적, 갯벌매립지에 조성된 골프장의 위용, 재해를 방어하기 위한 오리마을 입구의 방조림, 남해 바다와 상가리 들녘의 아름다운 풍경, 대마도·소마도·목도의 다정한 모습, 농어촌 마을의 영락을 보여주는 폐가 등이 지금도 가슴에서 소용돌이친다.
2층 건물 서상 게스트하우스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당시 서상항과 박람회장을 연결하던 여객선터미널을 리모델링해 2016년 11월부터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중앙 뒤쪽에 망운산 하얀 송신탑이 살짝 보인다.
중앙 뒤쪽에 망운산 KBS송신탑이 분명히 보인다.
남파랑길은 이곳 서면 서상리에서 오른쪽 장항해변으로 나간 뒤 장항마을을 거쳐 오른쪽 봉전산과 그 왼쪽 조산 임도를 걸어 왼쪽 맨 뒤의 천황산 임도를 따라 남면 상가리로 이어진다.
중앙에 보이는 조산 임도를 따라 진행하여 천황산 임도로 넘어간다.
별아라게스트하우스와 장항동횟집, 오른쪽 앞에 장항교회, 중앙 뒤쪽에 남해스포츠파크호텔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중앙의 조산 임도를 빙 돌아서 뒤쪽 천황산 임도로 이어진다.
오른쪽 뒤 2층 건물은 장항마을회관, 중앙 작은 전봇대 뒤에 망운산 송신탑이 보인다.
바다 건너 광양제철 공단, 오른쪽 뒤 끝에 망운산 송신탑이 보인다.
남파랑길은 왼쪽 조산 임도를 거쳐 천황산 임도로 이어진다.
44코스의 시작점은 평산항 평산1리마을회관 앞이다.
목적지인 평산항이 바로 아래에 있지만 남파랑길은 천황산임도-상가리-덕월리를 빙 에둘러 평산항까지 길게 이어진다.
전망 좋은 정자에서 홀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앵강만 해안선과 오른쪽 뒤에 솟은 설흘산이 보인다.
귀비산 왼쪽은 대부산 그 뒤 오른쪽은 괴음산, 오른쪽은 송등산 그리고 괴음산 오른쪽으로 살짝 솟은 산봉은 호구산인 듯. 중앙 아래에 우리교회가 보인다. 남파랑길은 우리교회 앞을 거쳐 상가리 북구마을-남구마을-임진성으로 이어진다.
건너편 중앙의 산봉은 귀비산, 그 왼쪽은 대부산, 중앙 움푹 파인 곳에 살짝 솟은 산봉은 호구산인 듯
왼쪽 뒤에 설흘산과 응봉산이 보인다.
신라 신문왕 때에 덕(德)이 성(盛)하고 마을이 울창(鬱蒼)하다는 뜻으로 상가·덕월을 합하여 덕울촌(德鬱村)이라 불러오다가, 조선 태종 때 면내에서 지주층(地主層)이 많고 마을 형태와 방위가 오향(午向)이며, 개(浦) 위의 촌마을(浦上村園)이므로 상가화포리(上加火浦里)라 하였다. 진(陳) 터, 화침(火針) 터 등 火(불) 자가 붙는 지명(地名)은 군사(軍事)와 관계지워진 것이며 방위의 요충지(要衝地)였었음이 반증된다. 조선 인조 때에는 임진왜란 시 임진산성에서 병화(兵火)로써 왜군을 무찔러 크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상가화리(上加火里)로 불렀다고 하며, 속칭으로는 상동(上洞) 또는 웃더울개라 하였다. 조선 고종 때 행정구역 개편 시 상가(上加)리로 마을 이름이 확정되었으며, 1943년 남구와 북구로 분동되었다.
조선 정조, 순조 연간에 발간된 진주진관지(晉州鎭官誌)나 남해읍지에 따르면 상가와 덕월을 합하여 가화포리(加火浦里)라 했는데, 상가는 윗마을이라 상가화포리(上加火浦里), 덕월은 아랫마을이라 하가화포리(下加火浦里)라 했는데, 행정구역 개편 시 머리 두 자만 따서 상가리(上加里)라 하였다고 한다.
상가의 반쪽인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인진산성에서 전승을 올렸던 충절의 전통이 숨쉬고 있습니다. 남해사랑, 나라사랑의 마음을 오늘에 이어갑시다.
임진성은 민보성(民堡城)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군, 관, 민이 힘을 합쳐 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해도의 평산포 북쪽에 뻗은 낮은 구릉에 돌을 이용하여 둘레 286m의 작은 규모로 쌓은 산성으로, 동쪽과 서쪽에 문을 내었는데, 현재는 동문터만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우물터가 있으며, 성벽의 바깥으로는 주변에 물길을 돌린(해자) 흔적이 있고, 옛날에는 성루, 훈병사, 감시사, 망대, 서당들도 있었다고 전해온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어 관리를 파견하여 지켰던 곳이었으나, 16세기중엽 이후부터는 지방 주민들이 유사시에 피난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현존하는 성벽의 남쪽 동문터와 서문터 사이의 173m는 최근 보수 공사를 거친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구미동해변과 바다에 뜬 목도, 그리고 건너편은 여수 해안
남면 죽전리 들녘과 당항리 일대
왼쪽 조산 임도를 넘어와 천황산 임도를 따라 상가리로 내려갔다. 천황산 임도의 전망정자가 있는 너덜지대가 보인다.
아난티남해 골프장은 갯벌매립지에 조성되었다.
오리마을은 지금부터 370여 년 전인 1674년(현종 15년) 무렵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유래가 있을 뿐 확실한 사적이 없으며, 현재는 70여 호가 남아 있다. 면 소재지와 평산까지 10리 거리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오리(五里)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마을 건너편의 임진성과 윗마을 뒤쪽의 일명 절골과의 거리가 꼭 오리(五里)와 같기도 하다. 양씨(梁氏)가 많이 사는 윗마을(신기촌)과 아랫마을(본촌)로 나뉜 이곳은 주민들은 대부분 벼농사와 마늘농사를 짓고 있다. 해성중·고등학교가 있고, 커다란 돌로 만든 마을 표지석이 있어 찾기 쉬운 마을이다.
남면 평산리 망기산의 우지막골에 ‘백정승의 묘’라고 전해 내려오는 백이정의 묘로 가는 갈림목에서 남파랑길은 오른쪽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고려 후기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은 안향이지만,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그 체계를 파악하여 확립한 사람은 이재(彛齋) 백이정(1247∼1323) 선생이라 평가한다고 한다.
조산, 천황산, 임진성(오른쪽), 남해 해성중고등학교, 오리마을 방조림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립지에 조성된 아난티남해골프장이 바다에 닿아 있고, 중앙 뒤쪽에 남면 서상리의 조산, 오른쪽 뒤 천황산 자락에 구미마을, 바다에 목섬이 떠있다.
망기산 임도를 둥글게 빙 돌아서 이곳으로 왔다. 뒤돌아서서 망기산 임도를 따라 평산마을로 넘어간다.
매립지에 조성된 아난티남해 골프장 사이로 양지천이 흐르고, 조산과 천황산, 구미마을, 임진성(오른쪽), 망운산(왼쪽 맨 끝), 걸어온 길이 분명히 각인된다.
망운산, 조산, 천황산 그리고 왼쪽 여수 해안과 멀리 광양제철소가 보인다. 바다의 대마도, 소마도, 목도가 가족처럼 정겹다.
평산마을의 문화공간인 '바래길 작은미술관'은, 폐쇄된 평산 보건진료소를 개조하여 2015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무료관람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안내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평산마을의 영락을 아쉬워하며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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