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응의 나무진료 시대]
깨끗한 공기 제공 등 다양한 혜택에 재산 가치도 높아
“아파트값 상승 효과까지…지금부터 나무에 투자하자”
경기 성남시 한 식물원의 나무(왼쪽)와 경기 하남시 한 공동주택 내의 나무들. 수종, 수형, 밀도 등이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다.
최근 입주하는 공동주택의 녹지공간은 과거와 다르다. 마치 식물원, 수목원이나 규모가 큰 가든카페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받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건물은 막 완공돼 깨끗하고, 깔끔하며 산뜻하다. 그런데 녹지공간에는 100년도 더 된 나무들이 버젓이 자라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린 느낌을 준다.
거기에 식재 기술의 발달로 1~2년만 지나도 생육이 왕성해져 나무마다 풍성한 가지를 뻗으며 자란다. 그 덕에 공동주택 정원은 짧은 기간 안에 풍성한 도시숲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도시숲을 이루는 공동주택의 녹지공간은 입주민만 즐기는 게 아니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깨끗한 공기 배출 기능, 공해물질 흡착 기능, 열섬 현상저하 기능,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녹지가 가지는 공익적 혜택을 똑같이 나눠주는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공동주택 단지의 녹지면적이 경기도 전체 실질 조성녹지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점차 그 면적이 확대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막대한 예산을 써야 조성이 가능한 공공녹지 공간을 공동주택이라는 사적 영역이 제공하는 셈이다. 최근 공동주택 내의 녹지공간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적 영역이 담당하는 공적 기능이 날로 확대돼간다는 증거다.
공동주택 내의 녹지공간은 공익적 가치만 갖는 게 아니다. 공동주택에 있는 나무의 실제적인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더라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한다. 재산으로서의 중요성도 날로 증대하고 있다. 공동주택 전체 공사비 중 3~5%가 조경관련 비용이다. 이중 20% 내외가 나무 구입과 관련된 비용이다. 공동주택 내에 식재된 나무의 경제적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다.
장송 등 특수목은 한 주에 수천만 원의 가치를 지닌다. 관리의 중요성도 더 커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가 높은 고가의 나무에 이상이 생기면 그만큼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다. 반면에 잘 키우면 처음 식재할 때보다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많은 입주민이 나무가 보기 좋고 몸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나무의 가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무 한 주가 고사했을 때 공동주택에 얼마의 손실이 되는지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공동주택의 가치를 결정짓는 데는 입주민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외부의 환경적 요인 중에서는 녹지공간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경향이 있다. 즉 △설계에 따라 식재돼 있는 나무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식재 후 얼마나 잘 사는가가 공동주택의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이용해 지역의 랜드마크를 만든 공동주택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공동주택 내 나무관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필수적인 관리사항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주택 내 나무관리는 중요관리 분야 중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관련 예산도 당연히 없거나 빈약할 수밖에 없다. 입주민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고, 경제적 가치도 높은 나무를 전문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산림보호법 개정에 따라 모든 나무의 진료체계가 갖춰지고 있다. 나무도 안전하고 전문적인 관리를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진료체계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나의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될수록 비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나무를 관리하기 위한 진료체계에 투자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경기도의 경우 공동주택 녹지 관리비는 1㎡당 827원으로 경기도 도시공원의 녹지관리비 1㎡당 2393원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값비싼 나무, 특별한 수종이 훨씬 많은 공동주택의 관리비용이 이처럼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바꿔야 할 의제 중 하나다.
당장 나무진료 예산이 늘어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인식 변화를 통해 나무도 정확한 진료를 받게 해줘야 한다. 나무관리 전문가의 말을 기억해두자.
“공동주택의 나무를 잘 관리하면 나무의 가격상승은 물론 이를 통해 공동주택의 가격상승을 동반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나무에 투자해야 한다! 나무에 쓰는 비용은 소모품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이다!”
김 철 응 l 월송나무병원 원장. 전국나무병원협회, 수목보호협회, 한국가로수협회 이사. 한국조경학회 상임이사. ‘나무병원도감’,
‘나무해충도감’, ‘나무의사 나무치료를 말하다’, ‘나무의사이야기’ 등의 책을 공동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