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 文耕 양귀순
옛 어른들은 많은 식솔을 어떻게 건사하고 살았을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문득 생각에 빠진다. 형제, 자매 중에도 젊은 시절의 부모님에게 관심을 더 받은 사람이 있고, 덜 받은 사람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유독 다른 형제에 비해 사춘기 때 더 상처를 더 받는 일도 있다.
몇 달 전부터 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산다. 로망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배우 이순재와 정영숙 님이 주연이다. 결혼 45년 차 부부 이야기다. 결혼 45년 차면 딱 우리 언니와 형부의 이야기다. 나이는 언니와 형부가 약간 더 많다. 영화에 나오는 노부부는 유독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이 노인 역할을 하여 너무 젊다 싶었다. 언니와 형부도 화면으로 보면 훨씬 나이 들어 보일지도 모른다. 요즈음은 노년의 배우가 연기해 더 드라마에 빠진다.
젊은 시절 청년 이순재의 로망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마누라랑 토끼 같은 자식들 배 안 굶기고 호강은 못 시켜줘도 든든하게 지켜줄 겁니다.
그에 대한 정영숙의 대답은
”제 소원은요…. 토끼 같은 자식들 배 안 굶기고 든든한 남편하고 오래오래 같이 사는 거요“
소박한 로망이지만 이 로망은 어린 딸의 죽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린 딸의 죽음으로 가슴에 한을 품고 살면서 아들을 키웠다.
영화 줄거리보다는 나는 로망에 대해 초점을 두고 싶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만약 네가 전생에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다면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 그것을 보면 알 것이요, 만약 네가 죽은 다음의 내세가 궁금하다면 네가 금생에 업을 짓는 대로 받을 것이다.’
미래의 로망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저당 잡히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또 현재의 즐거움만을 위해 미래를 팽개치고 싶지도 않다. 내 딴에는 저울질을 잘하며 살겠다고 한 지 오래다. 오늘을 잘 살아야 미래의 과거가 즐거울 것이고, 오늘과 오늘이 모여 미래의 삶이 된다. 생명은 유한한 것이고, 그 누구도 끝을 알 수는 없다. 그러기에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모아서) 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삶을 위하여 적정한 선을 지키려 한다.
자린고비처럼 돈만 모으려 하기보다는 자녀들의 욕구를 적정하게 충족시켜주며 살아야 한다. 자린고비처럼 돈만 모으면 자녀가 꽤 성장한 후에도 영화 속의 아들처럼 원망한다.
몇 주 전 둘째 올케언니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 올케언니는 올해 일흔하나이다. 둘째 오빠는 처가를 등한시 하는 편이었다. 둘째 오빠 생각은 거기도 아들이 있으니 자신이 처가 일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다. 우리 전체 가족 일은 끔찍하게 생각했다. 오빠의 꼼꼼하고 빈틈없는 성격으로 처자식 고생은 시키지 않았다.
둘째 올케언니 생일은 추석 다음 날이었다. 엄마는 항상 며느리 생일을 챙겨 주었다.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 하는 며느리의 생일 전날인 추석날 이것저것 싸주는 짐에 용돈을 챙겨 주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돈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자식들이 매달 주는 용돈을 다 쓰지 않고 자녀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올케언니 친정엄마 칠순 때 “꼭 앙고라 스웨터를 사다 드리라”라며 돈을 손에 꼭 쥐여주었다고 했다. 나이 들면 옷도 무거운지 엄마는 가벼운 앙고라 스웨터를 좋아하셨다. 입어서 좋았는지 사돈 칠순 때 선물을 하셨다. 그때는 친정에 무관심한 신랑보다는 시어머니가 정말 고마웠다고 한다. 10월이면 올케언니도 시어머니가 된다. 시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며느리 맞으면 꼭 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아마 엄마도 나처럼 ‘나중에’로 미루지 않았던 것 같다. 큰 선물을 하지 않아도 조금씩 자식들에게도 베풀어 주었기에 오래도록 시어머니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적으면 적은 대로 정성을 보여주었기에 오래도록 그 관계가 유지되지 않았을까.
가족 간 사랑도 “give and take”다. 부자지간도, 모자지간도 그 순간, 그러니까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주고받는 기쁨이 모이면 가족관계는 더욱 끈끈해진다.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고, 현재의 삶이 과거가 된다.
‘나중에’ 로 미루지 않으련다. ‘나중에’ 라는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 있다.(202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