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규정(현상이 아니라 규정이라고 생각합니다.)의 핵심은 'ㄹ'이 'ㄷ'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4주간의 국어여행을 다시 인용합니다.
‘ㄷ'으로 적을 근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예를 더 보이면 아래와 같다.
①‘ㄷ'으로 적을 근거가 있는 것- 걷잡다(걷-거두다), 곧장(곧-곧게), 낟가리(낟-낟알 곡식), 사흗날(사흗-사흘), 반짇고리(반짇-바느질), 잗다랗다(잗-잘다)
②‘ㄷ'으로 적을 근거가 없는 것- 갓, 놋그릇, 덧셈, 돗자리, 멋, 붓, 빗장, 사뭇, 자칫, 칫솔, 탓, 풋고추, 햇곡식
숤가락
‘ㄷ'으로 적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들고 있는 것들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앞의 세 개는 '걷-', '곧', '낟' 등 원래 'ㄷ'말음을 갖는 것들이고, 뒤의 세 개가 바로 'ㄹ→ㄷ'의 예인 셈입니다. 사전의 중세형에도 나와 있듯이 '숟가락, 사흗날' 등은 '숤가락, 사흜날'입니다. ㄹ말음이던 명사가 합성어가 될 때 사이시옷이 끼어든 것입니다.
'ㄹ→ㄷ'?
과연 '술'이 '숟'으로 바뀐 것일까요? 그럼 이때 'ㅅ'은 어떤 기능을 한 것일까요? 우선 한국어의 음운변동에서 'ㄹ'이 'ㄷ'으로 바뀌는 예는 없음을 밝힙니다. 반대로 'ㄷ'이 'ㄹ'로 바뀌는 예는 많습니다. 'ㄷ'불규칙용언들을 우선 들 수 있고, 중세 때 '이'나 'j' 뒤에서 선어말어미 '-더-'나 어말어미 '-다-'가 '-러-', '라'로 바뀌고 일부 방언에서 일부 단어 내부에서 '디'가 '리'로 바뀌는 현상도 있습니다.
(1)ㄱ.묻다-물어, 걷다-걸어, 눋다-눌어
ㄴ.소니러라(손+이+더+다)
ㄷ.어디냐>어리냐 (서남 일부방언)
반대로 'ㄹ→ㄷ'의 변화는 한국어에서 드물거나 없습니다. 외국어에서도 'ㄷ→ㄹ'의 변화는 많이 목격됩니다. 그럼 왜 'ㄹ→ㄷ'으로 변한다고 '규정'한 것일까요?
'ㄷ'으로 적을 근거는 없다?
'ㄷ'으로 적을 근거가 없는 '젓가락, 뼛조각'의 표준발음이 [저까락, 젇까락], [뼈쪼각, 뼏쪼각]이듯이 [젇-]과 [뼏-]이 실제로 가능한 발음입니다. 숟가락은 표준발음으로 [숟까락]만 인정하지만 분명히 [수까락]으로도 발음됩니다. 즉, 발음에 관한 한 두 종류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숤가락>숟가락
다달이, 아드님, 바느질, 마소 등 'ㄹ'은 'ㄴ,ㄷ,ㅅ,ㅈ' 앞에서 탈락합니다. 숤가락도 먼저 'ㄹ'이 탈락했음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ㄹ'이 탈락하고 나면 '숫가락'만 남습니다. 그렇다면 'ㄹ'말음이 없는 '젓가락'과 '뼛조각' 등과 똑같은 환경이 됩니다. 'ㅅ'이 'ㄷ'으로 바뀐 뒤에 'ㄹ'이 탈락했다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2)ㄱ.숤가락>숫가락(ㄹ탈락)>숟가락(평폐쇄음화)
ㄴ.숤가락>술ㄷ가락(평폐쇄음화)>숟가락(ㄹ탈락)
표기와 규정과 발음
맞춤법규정 29항에는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몇 가지 해석을 낳습니다. 첫째, 이 진술을 'ㄹ' 소리가 'ㄷ' 소리로 나는 것이 아니라 'ㄹ' 소리가 나던 자리에 'ㄷ' 소리가 나는 것으로 바꾸면 좀 더 정확해집니다. 둘째, 끝소리가 모음으로 끝나는 말이 다른 말과 어울려 'ㄷ'소리가 나더라도 'ㄷ'으로 적지 않는다는 규정상의 배타성을 드러낸 말입니다. 부싯돌, 찻집 등이 그렇습니다. 표준발음에 [부싣똘/찯집]가 허용되지만 이들은 'ㄷ'으로 적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도 'ㄷ'으로 적을 근거
결국 숟가락 류만 /ㄷ/으로 소리나는 건 아니어서 소리에 관한 한 'ㄷ'으로 적을 근거는 없습니다. 그래도 규정을 만든 이의 편에서 이해해 보면, 원래 'ㄹ'말음을 가지고 있던 체언의 표식으로 'ㄷ'을 사용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우리는 숟가락, 사흗날, 반짇고리 등의 표기를 미루어 앞 어근이 '술, 사흘, 반질'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ㄹ→ㄷ'이어서 '숟가락'인 것이 아니라 부싯돌, 찻집 등 모음으로 끝나는 체언 뒤에 'ㅅ'을 적는 것들과 달리 'ㄹ' 말음을 가졌던 것들을 구별해 두려는 규정상의 '의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이 규정을 만든 학자들은 정말로 'ㄹ'이 'ㄷ'으로 바뀌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맞춤법 규정에 예시된 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댓글 아...가슴이 답답하네...이휴...
답답한 가슴에 한 표 얹집니다.
한 표 추가...도식화 해서 잘 봐야겠습니다..여하튼 감사합니다..
결론 부분 첨가(아니면 이 규정을 만든 학자들은 정말로 'ㄹ'이 'ㄷ'으로 바뀌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