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소재 월정사에는 고려 중기 때 만든 8각9층석탑과 석조인물좌상이 적광전(寂光殿) 앞에 있다. 석탑 앞 석조인물상은 한국미술사에서 공양보살상 (석조보살좌상)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에 필자가 이 조형물은 불교경전 (팔리어 삼장의 마하박가)에 나오는 범천과 붓다 이야기에 근거하여 조형한 것으로 공양보살상이 아닌 범천(梵天)상임을 밝혀내었으며, 앞에 있는 8각9층탑이 붓다를 상징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석탑-석조인물상이라는 한쌍의 조형물은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설법을 통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해달라는 세번에 걸친 범천의 애절한 간청과 이에 대한 붓다의 응답(처음에는 설법하기를 거부했으나, 결국 범천의 간청에 못이겨 설법하기로 하셨다.) 이라는 불교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 석조 인물상은 '석조보살좌상'이 아니라 '석조범천권청설법상(石造梵天勸請說法像), 혹은 석조범천권청전법륜상(石造梵天勸請轉法輪像)으로 불러야 한다. (관련 포스팅: 4사자석탑과 석조인물상의 조형원리에 대해서)

(사진 1) 월정사 8각9층석탑과 범천상. 불교의 디시스를 나타낸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주장에 입각하여, 석조인물좌상(범천상)의 조형미에 대해 한가지 논하고자 한다. 한국미술사 책을 보면, 공양보살상으로 알려진 이 석조인물좌상의 조형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머리에는 높다란 관(冠)을 쓰고 있으며 갸름하면서도 풍만하고 복스러운 얼굴에는 반쯤 뜬 눈, 다소곳한 표정, 입언저리 만면에 미소가 어려 있다. 머리칼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어깨를 덮고 있고, 목에는 아주 뚜렷한 3줄의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목걸이는 매우 섬세하고 곱게 조각하여 가슴에까지 늘어지게 장식하였다. 보살이 입고 있는 옷은 얇고 가벼워 몸에 밀착되어 있고 옷주름은 모두 희미하다. 오른쪽 팔꿈치는 동자상을 받침으로 고이고 있으며 동자상의 머리에 팔꿈치를 올려 놓아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 2) 월정사 범천상. 깨달음을 얻은 붓다에게 중생을 위한 설법을 간청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석조인물좌상의 외형을 묘사한 표현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없으나, "동자상의 머리에 팔꿈치를 올려놓아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란 표현은 크게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주장하고 있는 이 조각상의 조형원리에 비춰 본다면, 석조인물(=범천)은 절대로 팔걸이 의자에 팔을 걸치듯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두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간청하는 자세라야 한다. 그렇다면 오른손 팔꿈치를 받치고 있는 동자상이 새겨진 돌기둥은 무엇인가? 그것의 용도는 아래 사진에 있는 똑같은 형태의 다른 석조인물상(범천상)에서 유추할 수 있다.

(사진 3) (왼쪽) 신복사터 범천상, (가운데) 월정사 범천상, (오른쪽) 금강산 금장암터 범천상
신복사터와 금장암터 석조인물상에는 오른손 팔꿈치 아래에 돌기둥이 안보이는 대신, 오른팔과 왼팔이 몸에 바싹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팔과 몸 사이에 빈 공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입체미는 덜하지만 돌로 만든 팔의 입장에선 공학적으로 대단히 안정적이다.
반면에 월정사 석조인물상의 오른팔과 왼팔은 몸에서 크게 떨어져 있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조각했지만 석상의 재질이 화강석(돌)인 까닭에 충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왼팔은 곧추세운 왼쪽 무릎에 올려 놓음으로써 안정성을 확보했지만, 오른팔은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오른 다리에 거치할 수가 없어 매우 불안정하게 된다. 운 나쁘면 외부 충격에 의해 오른팔이 부러질 공산이 매우 높다. 동자상이 새겨진 돌기둥은 바로 석조인물상의 오른팔을 보호하기 위한 단순 거치대에 불과하여 특별히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동자상의 머리에 팔꿈치를 올려놓아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라는 식의 표현은 석상의 조형원리로 보거나, 공학적으로 보거나, 조형학적으로 봤을 때 적절치 않다고 본다.
석조인물상이 입체적으로 될수록 팔이나 다리가 부러질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석상을 만들 때 팔이나 다리 이곳 저곳에 크고 작은 지지대를 설치하여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폭군 암살자(Tyrannicides), (가운데) 아폴로 (Apollo), (오른쪽) 승리의 머리띠를 묶는 챔피온(Diadoumenos)
필자는 앞선 글("4사자석탑과 석조인물상의 조형원리에 대해서")에서, 석조인물좌상-석탑이라는 한쌍의 조형물은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설법을 통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해달라는 세번에 걸친 범천의 애절한 간청과 이에 대한 붓다의 응답이라는 불교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표현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따라서, 석조인물좌상(=범천)은 독립된 조형물이 아니며, 석탑(붓다)과 함께 있을 때만이 온존한 의미구조를 갖는다.
필자의 앞선 글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이형석탑으로 하대신라-고려전기에 많이 세워졌던 4사자석탑의 인물상(비로자나불)-석등의 인물상이라는 한쌍의 인물상 조형양식 역시 위에 언급한 붓다와 범천 스토리에 바탕을 두고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충북 제천에 있는 사자빈신사터 4사자석탑이나 강원 금강산 금장암터 4사자석탑 속의 붓다는 명백히 지권인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에서 붓다의 법신(法身)을 나타낸 것이라 하며, 비로자나불은 연화장 세계에 살며, 그 몸은 법계(法界)에 두루차서 큰 광명을 내비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이다. 다시 말해 비로자나불은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말씀의 화신이라 생각된다. 기독교 신약성경의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었다. (중략)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었으며,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다주었다. 그 빛이 어둠을 비추고 있는데 어둠은 결코 그것을 끄지 못한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데 나는 이 표현이 불교에선 비로자나불을 설명해주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범천-붓다로 이루어진 한쌍의 조형물에서 붓다는 석가모니도, 아미타불도 아닌, 법신(말씀, 깨달음의 화신)을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라야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월정사 석조인물좌상(=범천)-석탑 양식에서, 석탑으로 표현된 붓다가 어떤 붓다냐? 하고 묻는다면 바로 비로자나불일 것으로 생각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월정사의 8각9층석탑 뒤에 있는 금당의 이름이 적광전(寂光殿)이다.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전을 일컫는다. 월정사의 가람배치는 범천상-석탑(비로자나불)-적광전(비로자나불)이 일직선 상에 놓이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때 불타버려 1969년 새로 지은 적광전 안에는 비로자나불이 아닌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필자는 불타기 전 적광전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 사진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꼭 확인해 보고 싶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