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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사공부방(일본 불교사 독서회)
 
 
 
카페 게시글
▒기행문▒ 스크랩 비실한 수행자와 건강한 반수생의 여름 시코쿠 순례기 #3 - 느긋하게 헨로고로가시에 들어서다.
박영빈 추천 0 조회 91 14.03.01 15: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이 밝았다. 일찌감치 어젯밤 생포해둔 말벌을 풀어주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침은 미숫가루로 대충 떼우고 하귤은 봉투에 넣어서 챙긴다. 길을 나서기 전에 일기장 한쪽을 북 찢어 편지를 쓴다.

 

오시코쿠 게스트 하우스 2호점.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지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갑니다.

어제 저녁. 맛있는 밥과 친절함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약

한국에 오시거들랑 꼭 연락주세요^^

- 한국에서온 아루키 헨로, 박지산(朴智山)"

 

지산은 내 법명이다. 이 앞으로 보통 자기소개를 할때는 법명으로 소개를 했다. 본명은 일본사람들은 발음하기 어려운 발음이라서....

 

편지를 식당 식탁위에 올려놓고 길을 나선다. 날이 흐려서 걷기에는 좋은 날씨다. 오시코쿠 게스트 하우스 2호점은 헨로미치 위에 있기 때문에 게스트 하우스 바로 앞길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가면 된다. 밭들과 논들 사이로 난 찻길을 따라 10번 키리하타지로 향한다. 길옆으로 난 넓은 밭들 중에 내 눈을 사로잡는게 있었으니!

 

 

바로 담배밭이었다.

일본내에서 담배 재배가 가능한 기후를 가진 몇 안되는 땅이 바로 이곳 시코쿠라고 한다. 그리고 담배는 예로부터 시코쿠의 특산품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담배를 재배하는 사람은 관청에 일일히 신고를 해야하고(한 줄기에 담배잎이 몇개 열렸는지 일일이 세서 신고해야 한단다 -_-;;), 또 기르기 까다롭다보니 요즘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넓은 담배밭이 여기저기 보인다.

 

1Km 가까이 걸었을까. 10번 기리하타지와 11번 후지이데라로 나뉘는 길이 보인다.  기리하타지로 향하는 오르막을 오르려니 갑자기 비가 조금씩 떨어진다. 어이쿠쿠.. 소지품중 가장 고가품인 카메라가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 봉투로 싸서 묶고는 오르기 시작한다.

아침을 부실히 먹어서일까. 그렇게 힘든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힘에 부친다. 아마 어제 쓰러진 탓도 좀 있으리라. 그렇게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기리하타지의 산문이 보인다. 어제 게스트 하우스 아저씨 말로는 오르막을 쭉 올라가면 기리하타지라고 했으니 산문을 지나면 곧 절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키리하타지 산문.

 

산문은 페이크였다.... 산문을 지나자 곧 333계단이라는 무시무시한 돌계단들이 나타났다. 키리하타지까지는 이 돌계단들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부터 돌계단 세례라니... 에효~ 

 

당당하게 쓰여있는 "여기서 부터 333단"

 

333계단을 오른다. 계단이 옛날에 만들어진 계단이라 높낮이도 제각각이고, 아침이슬과 이끼에 미끄러워 걸음에 주의한다. 절을 오르니 본당과 대사당, 납경소가 아담하게 모여있다.

 

10번 키리하타지 경내 모습.

 

본당 옆으로 대탑이 당당하게 서있다.

올라 가보고는 싶었지만 333계단을 오르고 난 직후라 또 계단을 오르긴 싫어서 그냥 아래서 사진만 찍었다.

 

키리하타지 본당

 

본당에 모셔진 천수(?) 관음상. 마에다테 본존이다.

 

키리하타지 대사당.

 

이곳 키리하타지의 절 이름을 해석하면 "번(幡)을 잘라낸 절" 이라는 뜻이다.

번(幡)은 불교의례에서 절을 장식하는 깃발을 말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베틀로 짠 직물을 뜻하는 단어인 ""와 번(幡)의 발음이 모두 '하타'여서 그냥 '번'이라는 단어를 쓴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절의 창건설화는 번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 코보우 대사가 키리하타지 부근에서 7일간 수행을 하고 길을 나서다가 다 헤어진 승복을 수선하기 위해 근처 민가에서 약간의 천을 시주해 주십사 하고 이 절터에 있던 민가를 들렀다고 한다. 그때 베틀로 천을 짜던 소녀가 아낌없이 베틀에서 천을 잘라내서 대사님께 시주를 하자 이에 감동한 대사님이 소녀의 소원을 물었다. 그러자 소녀가 말했다.

 

"바라건데 돌아가신 제 부모님을 위하여 천수관음상을 새겨주십시요. 그리고 저 또한 출가하여 부처님을 도와 일체 중생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코보우대사는 신통으로 하룻밤 만에 뚝딱하고 천수관음을 조각하고 소녀를 득도(得度)시키고 관정(灌頂)을 내렸다. 1 그러자 소녀는 그 자리에서 부처의 경지를 이루어(즉신성불;卽身成佛) 몸에서 일곱빛깔의 광채를 발하는 천수관음의 모습으로 변하였다. 

이에 코보우 대사는 당시 천황이었던 사가천황에게 주청하여 소녀의 집터에 절을 세우고, 자신이 조각한 천수관음상은 남쪽으로, 소녀가 즉신성불한 모습의 천수관음상을 북쪽으로 모시고 절이 있는 산의 이름을, 소녀가 득도를 한 산이라 하여 득도산(得度山;토쿠도잔), 절의 별호를 관정원(灌頂院;칸죠우인)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사당의 옆으로 가보면 손에 아직 베틀북에서 풀지 않은 천과 가위를 들고 있는 관음상이 조용히 서있다.

 

지금이라도 천을 잘라 주실 것 같은 관세음보살님.

 

참배를 마치고 납경을 받으러 간다. 가방에서 납경장을 꺼내는데... 어라. 도균이의 오스가타를 넣는 봉투가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납경장을 꺼낸 일이 없으니....

아무래도 9번 절에서 잃어 버린듯 하다. 낭패다. 여기서 다시 9번으로 돌아가려면 대략 4km를 걸어가야 한다. 잠깐 상의 끝에 어차피 1번 절로 돌아와야 하니 돌아오는 루트를 88번에서 10번으로 오는 루트로 잡고 그때 다시 절들을 들러서 얻기로 한다.

 

납경소에 들어서니 사람이 없다.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몇 번이고 벨을 누르고 좀 기다리니 할머니 한 분이 급히 나오신다. 절의 번호가 쓰여진 도장, 본존의 종자자2가 쓰여진 도장, 절 이름이 쓰여진 도장을 쾅쾅쾅 찍으시곤 붓을 휙~ 날려서 멋지게 글을 써주신다. 납경장을 다시 받아들고 333계단을 다시 내려가 11번 후지이데라로 향한다.

 

멀리 보이는 키리하타지의 대탑. 이 탑은 징~하게도 12번 쇼산지 가는 산길에서도 보인다.

 

길을 따라 한 참을 가다보니 중간에 헨로 휴게소가 보인다. 어깨도 쉴 겸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짐을 내리고 대충 둘러본다. 벽면 여기저기 후다가 붙어있다. 한국인의 후다는.... 안 보인다. 

가운데 놓여진 테이블의 방명록을 뒤적여 봐도 한국인의 흔적은 없다. 쩝.... 일단은 어깨를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해준다. 역시... 어깨가 비명을 지른다. 어제 짐의 일부를 덜어냈는데도 무거운건 무거운가 보다.

휴게소 옆은 잘은 모르겠지만 농기구 창고? 수리센터? 인듯 하다. 트랙터나 경운기가 놓여있다. 그 곳에서 할머니 한 분이 걸어나오신다.

 

"오헨로상~ 수고하는구만~ 느긋하게 쉬었다가야~"

"예, 그럴게요^^"

"아이고~ 상이 더럽구만. 쪼매만 기다리게, 빨리 닦아줄터이니"

"어휴~ 괜찮아요. 잠깐만 쉬다 갈건데"

 

괜찮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어디선가 걸레를 가지고 오셔선 상을 닦아 주신다. 나도 뭔가 죄송스러워서 방명록이나 널부러진 오래된 후다들을 정리한다. 할머니는 걸레를 너시고는 어디론가 가시는가 했더니 바나나와 시원핸 캔커피를 가지고 오신다.

 

"이거 마시고 힘내서 걸으시게~ 나는 이제 들에 나가봐야 되서. 더 챙겨주고 싶어도 챙겨 줄 만한게 없구만~,

느긋하게 쉬다가셔~"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셋타이를 하신 할머니는 천천히 밭쪽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벽에 붙은 후다들을 보다 보니 살짝 재미가 오른다. 새 후다를 하나 꺼내서 한글로 정성들여 후다를 하나 쓴다. 후후후... 내가 이러고 놀려고 한국에서 딱풀을 가져왔지!! 풀을 발라서 문설주에 딱 하고 붙여놓는다. 뒤에 오는 한국인 순례자들이 보면 좋아하려나?

 

그러고 있자니 도균이가 물어본다.

 

"야, 그 종이쪽 대체 뭐냐?"

"응? 후다잖여. 납찰이라고도 하고."

"후다는 비단을 만든거 아님?"

"이 생퀴.... 너 내 블로그에 올려둔 순례개요 안읽었지!! 내가 읽어보라 그랬구만!!"

"넘어가~ 넘어가~"

"그러니까... 흰색은 처음 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쓰는 건데...

한 100번 이상 순례하면 비단으로 된걸 쓰는거고. 보통은 자기 이름을 써서 찰소에 봉납하고,

이렇게 잠시 신세지는 곳에 붙이기도 하는거지, 순례자들 사이에선 명함같이 쓰기도 하고.

뭐,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신세진 사람들의 이름을 써서 절에 봉납하기도 한다드만."

"다른 사람 이름도 괜찮은거야?"

"ㅇㅇ, 그러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의미지"

"그래?, 그럼 나 몇 장만 줘 봐라. 내 친구들 이름 좀 써서 절에 넣게" 

"ㅇㅋ. 몇 장 주랴?"

 

친구들 이름을 쓰고 있는 도균이.

 

다른 모자가 있었기에 삿갓은 배낭에 묶어 두었다.

하지만 여벌 모자는 12번 가는 길에 잃어버리고 가방옆에 꽂힌 태극기도 뒤에 결국 잃어버렸다.

 

요시노가와(吉野川)로 향하는 길. 민가 옆으로 야트막한 방죽이 하나 나온다. 아마 강이 범람하면 막기 위함이겠지 생각하고 올랐더니 탁트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방죽 위에서 바라본 풍경. "이 곳은 정말 사진을 안찍으면 아까운 곳이다!" 라고 하며 사진을 찍었다.

다닥다닥 붙은 민가들 사이를 걷다가 본 시원한 풍경이다.

 

"오헨로상 언제나 건강히!" 라고 쓰여진 격려 팻말. 부근의 초등학생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요시노가와를 건너는 다리 앞에서.

좌우로 보이는 풀밭은 사실 모두 강변의 풀들이 사람 키를 넘게 자란 것이다. 은근히 강폭이 넓었던 요시노 가와

 

요시노가와를 건너는 다리 위에서 잠깐 쉰다. 허벅지 안쪽이 쓸려서 벌겋게 달아 올라있다. 지나가는 차도 없겠다, 인적 드물겠다. 가방에서 바셀린을 꺼내 바른다. 다리를 건너자 논이 넓게 펼쳐진 섬으로 들어간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사실 이 섬은 쇼와시댄(1926~89)가 다이쇼시댄(1912~26)가 인공적을 만들어진 섬이라고 한다. 즉 강을 건너면서도 느꼈지만 원래 이 요시노가와는 엄~청 나게 큰 강인 것이다.

 

이 섬. 탁 트여서 좋기는 한데, 헨로 표시가 불명확하다. 정확하게는 헨로표식들을 세운게 오래되다보니 비바람에 씻겨서 모두 퇴색되었다. 심지어 스티커들 조차 색이 빠져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놓치고 만다. 이래저래 신경을 쓰게하는 길이다.  그나마 중간중간 '시코쿠의 길' 비석이 있어서 안심이다. 

(분명 시코쿠의 길과 헨로미치는 별개의 길인데 겹치는 길이 많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시코쿠의 길 비석이 헨로미치 안내 비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와시마 다리를 건너 섬을 빠져나오니 맞은편 강둑위에 헨로 휴게소가 하나 서있다. 세면대에 조금 높기는 하지만 평상이 있어 노숙이 가능한 곳이다. 헨로지도에도 잘 수 있는 휴게소로 표기가 되어있다. 잠시 쉬면서 또 후다를 하나 써서 붙인다. 완전히 재미 들렸다 ㅋㅋㅋ.

 

한 3km정도 걸었을까. 잠시 짐을 내리고 쉬기로 한다. 정말이지 날이 흐려서 다행인 날이다. 아니었으면 어제처럼 쓰러졌을지도 모를일이다.

 

신발을 벗고 열을 식히는 중...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길이 나뉜다. 자동차 순례를 하는 이들을 위한 넓은 찻길. 도보 순례자들이 걷는 언덕길. 지도를 봐도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이왕이면~ 하면서 언덕길을 오른다.

민가들 사이로 난 순례길을 지나 짧은 숲길을 내려가니 후지이데라의 주차장과 만난다. 

 

후지이데라 산문 앞에서. 

봉투에 든 노란 것이 오시코쿠 게스트 하우스에서 셋타이 받은 하귤

 

후지이데라 전경

 

코닌6년(815). 코보우 대사가 액난을 쫓고, 중생의 안녕을 위하여 약사여래를 조각하여 모시고. 영원토록 이 도량이 사라지지 않도록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수법을 17일간 행한후 경내에 5색의 등나무를 심어 표로 삼았다는 절의 유래에서 콘고우잔(金剛山;금강산), 후지이데라(藤井寺;등정사)라고 전한다. 모셔진 본존 약사여래상은 헤이안 시대의 불상으로 1148년의 연호가 기명되어 있어 조성된 시기를 알 수 있는, 시코쿠 찰소들 중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한다.(하지만 코보우 대사의 생몰연도는 744~835... 홍법대사가 만들었다는 불상은 어디 간거야!!)

후에 진언종의 가람으로 칠당가람(七堂伽藍)3이 늘어선 대사찰이었으나 14세기경에 본존을 제외한 모든 절이 병화에 타버리고 1674년 당시 아와번주가 귀의하고 있던 선종의 난잔선사가 와서 절을 재건, 이때 선종인 임제종의 사찰로 개종되었다.

 

후지이데라 본당.

 

본당 옆에 모셔진 빈즈루 존쟈(賓頭盧尊者;빈두로 존자).

우리나라 절집에서는 독성, 또는 나반존자로 모셔진다.

일본에서는 자신의 아픈 부위를 빈두로 존자의 상을 만지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후지이데라 본존.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테마에다. 국보를 떡~ 하니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놓을 이유도 없거니와,

딱 봐도 새로 조성된 불상 아닌가...;;

 

후지이데라 대사당.

 

단체 순례자 납경중....

 

납경소에 가자 단체 순례자들이 한가득 납경을 받고 있었다. 기다릴까 했는데 아주머니가 우리 납경을 먼저 해주시겠단다. 가끔 도보순례자들이 받는 특혜(?)려나... 확실히 선종의 사찰이라서 그런지 도장에도 선사(禪寺)라고 쓰여있다. 아주머니께 오늘 안으로 쇼산지까지 가는게 가능한지 물었더니 힘내서 걸으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단다. 어쩌지... 하는데 비가 살짝 떨어진다. 납경소앞 벤치에 앉아서 도균이와 상의를 한다.

 

"아주머니 말로는 힘내서 걸으면 아슬아슬하게 도착이라 그러시네"

"지금 몇 시냐?"

"12시 다 되가네."

"너 몸 상태 봤을 때, 오늘 쇼산지까지는 무리고. 노숙리스트 보니까 류스이안에 노숙가능한 곳이 있다 그러니까. 오늘은 거기까지 가자. 쇼산지는 내일 아침 일찍 찍고." 

"그럴까... 그게 좋겠네.. 거기라면 분명 내가 희야님 순례기에서 본 곳이니까... 느긋하게 가자고."

 

그리고 드디어 본당옆, 쇼산지로 향하는 공포의 헨로고로가시로 들어섰다.

헨로고로가시란. 순례자를 굴러 떨어뜨릴만큼 힘든 길이라는 길로, 헨로미치 중간중간 복병처럼 존재해 있다. 

 

11번 후지이데라 본당 옆으로난 12번 쇼산지 가는 길 입구.

 

길 입구 바로 옆에 작은 대사당이 하나 있다. 그저 도중안전을 기도할 뿐이다. 나무다이시헨조콘고우~_()_

길을 오르자 미니 시코쿠 88개소가 나온다. 일본 절에 가보면 유명한 순례길을 작게 미니어처로 만들어 순례를 대신하게 하는 길이 종종있다. 이곳 후지이데라는 본당뒤의 산길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가 내렸는지 길이 미끄럽다. 계속 오르막 길과 평탄한 길의 반복이다. 올라가는 길에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이 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쇼산지에서 내려오시는 길인가요?"

"아, 아니요. 전 그냥 트랙킹코스로 오는 길이에요^^;;" 

 

헨로가 아니라 그냥 등산길도 있는 모양이다. 정보 좀 얻을 수 있을까, 했는데... 그 사람과 헤어지고 다시 산길을 오른다. 이번엔 헨로 복장을 입은 나이 지긋하신 부부가 내려오신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서 류스이안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류스이안이라... 우리 걸음으로는 한 4~5시간 걸리네요."

"아, 그런가요. 거기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그러던데..."

"절 아래, 문이 달린 휴게소가 있어요. 거기서 아마 잘 수 있을거에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노부부와 헤어지고 다시 올라간다. 도저히 힘이 부쳐 & 배 고파서 못 올라가겠다. 돗자리를 펴고 미숫가루를 꺼내 밥으로 먹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받은 귤도 까먹는다.  배가 차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어차피 사람도 없겠다. 조금씩 떨어지는 비를 피해 나무 아래로 자리를 조금 옮겨서 살짝 자고 가기로 한다. 말 그대로 낮잠이다.

 

푹 자고 있어나서 깨어있던 도균이에게 물어보니 15분 정도 잤단다. 1시간은 잔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숙면했다. 자고 일어나니 힘이 조금 돌아왔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낮잠을 잔 나무 아래 걸려있던 순례 표식.

"최고의 행복을 묻는다면, 지금, 헨로길 위의 나로다"라는 짤막한 싯구가 쓰여있다.

 

"마지막까지 남은 쿠우카이의 길 워크(Walk)"  라고 쓰여진 안내판. 쿠우카이는 코보우대사의 이름이다.

많은 순례길들이 차도등으로 정리된 반면 아직까지 험난한 산길로 남은 이 길이야 말로 대사님이 걸었던 그 길 그대로이리라.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써야지~ 하면서 찍은 헨로미치&안내판 사진 ㅎㅎ

 

한참을 헉헉대며 걸어올라가니 시멘트로 잘 지은 휴게소가 하나 나온다. 헨로지도에 나오는 하시야마 휴게소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지도를 체크한다. 또 재미가 발동해서 후다를 하나 써서 붙이기로 한다ㅎㅎ. 

벽이 없으니 지붕을 쳐다본다. 깨끗하다. 후다가 하나도 안 붙어있다. 하기야 이런데 후다를 붙일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내 후다는 이 휴게소에 붙여지는 최초의 후다가 되었다ㅋㅋㅋ.

 

휴게소 조금 뒤에 쇼산지까지 남은 거리를 보여주는 비석이 서있다. 근데...지도가 말하는 거리와 비석의 거리가 틀리다?! 이 전부터 걸으면서 뭔가 지도와 실제 거리가 미묘하게 안맞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에라이 지도따위....아니, 비석이 틀린거려나??

 

하시야마 휴게소에서. 지쳐서 웃음도 제대로 안나오는 독균이의 표정을 보라..세상의 온갖 번뇌는 다 짊어진 듯한 썩소ㅋ

 

휴게소에서 열심히 걸어 올라가다보니 그나마 평탄한 길이 나오고, 한 구비를 꺾어도니 샘물이 나온다.

오오 이게 바로 감로수구나~ 샘물옆에 서있는 안내판에는 다음 류스이안까지는 더이상 식수를 구할 데가 없으니 여기서 물을 가져가라한다. 흠... 그래... 가방에서 유성펜을 꺼내서 한글로 또박또박... 까지는 아니지만 글을 몇자 쓴다.

 

"여기 이후로 류스이안까지는 물이 없으니 여기서 챙겨가세요."

 

흠.. 한국인 순례자들을 위한 내 멋대로 작은 배려다.

 

물도 마셨겠다 돗자리를 다시 펴고 잠시 쉬다 가기로 한다. 참, 자주도 쉰다ㅎㅎ.

샘물 조금 위로 작은 사당이 있고 코보우대사가 모셔져있다.

옛날 순례를 다니는 스님이나 수행자들은 순례중에 만나는 탑이나 불당을 보면 깨끗이 닦고, 청소하여 공양을 올렸다는 말이 기억나서 사당을 좀 정리해보기로 한다.

사당에 어질러진 후다들과 동전을 정리하고, 화병에 시든 나뭇가지를 새로 바꾸고, 초를 하나 켜고 기도를 한다.

 

"대사님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스이안과 내일 쇼산지까지도 잘 부탁드립니다.._()_"

 

그리고 역시 후다를 하나 써서 사당 안쪽 벽면에 턱~하고 붙인다. ㅎㅎㅎㅎ 이거 중독이다. 후다 붙이는게 묘하게 재미있다.ㅎㅎ   

 

죠도안 전경. 작은 불당 하나 달랑 서 있는 곳이었다.

 

다시 힘을 내서 걷는다. 오르막을 몇개 오르락 내리락 하니 쇼산지 구간 1/4쯤 되는 죠도안이 나타난다.

의자도 몇개 있어 짐을 풀고 쉰다. 이번에는 도균이가 지쳐서 잠이 온다 한다. 15분 뒤에 깨워 주기로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작은 창문으로 죠도안 안을 보니 못해도 3사람은 잘 수 있겠다. 

 

헨로미치 중간중간에 서있는 대사당이나 불당들을 보면 야박하게 문을 꽉 걸어 잠근 곳이 많다. 좀 열어두어서 순례자들이 자고 가거나 쉬게 해주면 좋을텐데... .

  

죠도안에서 홀로 빙그레 웃고 계시던 지장보살님.

누군가 자신의 삿갓을 씌워 놓고 갔다. 지팡이에 방울도 달아놨다. 함께 순례길을 가시려는 건가??ㅎㅎ

 

15분쯤 지나서 도균이를 깨운다. 다시 짐을 메고 산을 오른다. 참 징한 산길이다. 그나마 고마운건 중간중간 잘 닦인 평지길이 몇 곳인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었으면 주구장창 험난한 산행이었을 것이다.

조금 더 오르다보니 탁 트인 시야가 들어온다. 게다가 알맞게도 휴게소도 있다. 갑갑한 숲길에서 틔인 전경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부?~ 죽인다~"

"우왕~ 좀 쩌내염" 

(순례중에 난무하는 인터넷용어.... 실제로 이런말로 대화하면서 놀았다.ㅋ)

 

기리하타지에서 요시노가와까지 오늘 걸어온 길이 한 눈이 보였던 곳.

 

바람을 쐬면서 땀을 식히고 있으려니 멀리 건너편 산 중턱에 뭔가 절스러운 건물이 보인다. 뭔가 하고 카메라로 줌업을 최대로 당겨 찍었다. 사진목록에서 그 절 같은 건물을 본 순간 나는 얼어버렸다. 

 

사진을 찍은것을 환영하오, 순례자여. 나는 시코쿠 영장 10번 키리하타지요~

 

그곳은 10번 키리하타지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시방 오늘, 저~짝에서 여까정 걸어온겨?!'

도균이도 사진을 보곤 어이가 없다는 반응 + 오늘 우리가 저기서 여기까지 왔나 하는 반응을 보인다. 대충 지도와 대조해 가면서 즈에로 길을 되짚어 본다.

 

"그러니께, 우덜이 저~~~짝에서 요~~오~~렇게 해서 저 뒤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거지?"

"ㅇㅇ"

"후덜덜덜덜.... 우리 무섭구나 야..."

"그러게...."

"기념으로 후다나 한 장 써서 붙여야지~☆"
"어이, 자중해 땡중ㅋ."

 

땀도 다 식었겠다 다시 갑~갑~한 산길로 들어선다. 그렇게 또 오르막을 올랐다, 내렸다 하다가 또 배가 고파지니 돗자리를 깔고 미숫가루로 요기를 한다. 어두워지기전에 류스이안에 도착해야한다. 지친 발에 억지로 힘을 넣어 본다.

 

길이 돌연 편해지더니 류스이안까지 1.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갑자기 몸에 힘이 팍 돈다. 오오!! 가자!! 오늘 밤의 아늑한 잠자리로!! 물소리가 점점 들려온다. 분명 샘터에서 류스이안에 식수가 있다고 했으니 이 길의 끝에 류스이안이 있는 것이다.

 

돌연간 "헨로고로가시 3/6" 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길을 보니 류스이안으로 내려가는 내리막 계단길이다. 계단 아래로 암자의 지붕이 보인다.(깜빡하고 말을 안했는데 쇼산지 구간 전체가 험한 산길이긴 하나 특히 험한 길이 6곳이 있고 이 곳들이 헨로고로가시라고 불린다).

 

앞의 2곳은 표지판으로는 헨로고로가시인데 그렇게 힘든 길이 아니었기에 이곳도 그러겠지 하면서 얕보고 팍팍 내려가다가... 미끄러졌다. 이것 때문에 헨로고로가시 구나... 계곡 바로 옆에 있다보니 축축해서 미끄러지기 쉽고, 돌계단도 오래되어 높낮이가 제각각이다.

 

계단 중간에 오두막식의 불당이 하나 있고 방명록이 놓여있다. 슥~ ?어 본다. 가장 마지막에 쓰인게 5월에 쓰인거다. 나와 도균이 하나씩 방명록을 쓰고 내려간다.

 

암자 건물은 생각보다 크고 제대로 되어있었다. 이정도면 사람이 살만도 한데.... 법당옆 샘터에서 물을 한 바가지 마시고  길을 내려간다. 곧 희야님과 기억할만한 지나침님의 순례기에서 본 건물이 보인다.

(뒤에 안 사실인데 옛날엔 류스이안을 관리하는 노부부가 계셔서 1000엔 정도 받고. 류스이안에서 순례자들을 재워주셨다고 한다.)

 

바로 이 곳!! 오늘의 잠자리다.

 

다행히 해가 떠있을 때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좀 넘었다. 역시 여름이라 해가 긴 덕에 안전하게 들어왔다.

노숙스폿이랄까... 그냥 츠야도다. 분명 다른 분들의 말씀이나 희야씨가 남기 글을 봤을땐 다다미와 이불이 있는 곳이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나무 바닥 그대로에 방석만 몇 개 한켠에 놓여있다. 그래도 창문과 문에는 방충망이 제대로 되어 있어 벌레가 들어올 염려는 없겠다.

 

짐을 풀어놓고 내부를 살펴본다. 천정에 전등은 있는데 스위치가 안보인다. 전기 콘센트가 전등 옆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휴대폰 충전기를 꽂아보니 전기는 들어온다. 쇠로 된 봉이 서까래 아래로 가로질러 하나 매달려 있고, 옷걸이도 있다. 문 옆의 작은 책상에 방명록이 있다. 그리고 쌀과자 봉투가 하나 있다. 포장이 안뜯긴 새거다! 유통기한을 보니...이런 이틀이 지났다.

 

하.지.만.

 

배고픈 가난한 순례자들에게 그딴건 상관없다. 뜯어서 맛있게 먹는다. 생각지도 못한 저녁밥이다!!

게다가 쌀! 탄수화물이다! 거기에 과자니까 지방분도 들어있다! 당분도 있다!! 비타민이 없는게 아쉽지만 영양적으론 일단 문제없다!(지금 쓰면서 회상해보니 뭔가, 눈물나는 생존 투쟁기를 보는 것 같은데....우리, 참 거지같이 여행했구나....)

 

과자로 대충 요기를 하곤 이번엔 밖을 살펴본다. 일단 건물 옆에 커다란 가마솥에 식수가 철철 흘러넘치고 물을 펄 수 있는 바가지 2개, 세숫대야 하나, 플라스틱 양동이 1개가 있다. 마침 잘 됐다. 오늘 땀에 흠뻑 젖은 옷들을 세탁하기로 한다.

 

7시가 넘어가니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어두워지니 천정의 전등이 자동으로 켜진다. 자동 점멸식인가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세탁을 하기로 하고 옷을 훌렁훌렁 벗어서 양동이에 넣고 물을 받아 넣은후 종이세제를 집어 넣는다. 그리곤 발로 푹푹 밟아서 세탁을 한다. 뭔가 묘~한 땟물이 흘러나온다. 물을 새로 받고 발로 밟기를 몇번. 세탁을 마무리 하고 꽉꽉 짜서 한국서 가져온 빨래 집게로 대충 봉에 넌다. 여름이니까 내일 중으로 마르겠지.

 

산을 약간 내려와서인지, 바로 옆에 현도 245호가 있어서인지 통화권이 잡힌다.

지금껏 밀렸던 문자가 마구 온다. 한국에서 친구가 보낸 문자다. 근데 이노무 시키가 문자라고 보낸게 전부 자기 게임하는 이야기다... 이 자식은 이러라고 폰번호 가르켜준 줄 아냐!!! 격려 메시지 하나쯤은 보내 보라고!! 게다가 오늘 저녁밥 뭐 먹는다는 자랑질도 있다... 하... 한국 가면 이 녀석부터 패고 봐야겠다.

 

전등불에 일기를 대충 쓰고, 또 후다를 하나 써서 문설주에다가 딱 붙이고는 빈둥거리고 있으려니 스케치북과 연필이 있다. 오호.... 심심한데 그림이나 그릴까.. 후다와 지도책에 있는 코보우 대사를 보고 대충따라 그린다. 그리곤 그것도 벽에다가 붙였다 ㅎㅎㅎ. 뭔가, 12번 가는길에 흔적은 엄청 남기고 가는구나. 뒤에 오는 한국인 순례자들이 보면 이러겠지 "여기 한국인 있나요~?" ㅎㅎ.

 

역시 산속이라 그런지 밤이 되니 엄청 쌀쌀하다. 바람도 거세다. 밖에 바가지나 세숫대야가 날라가는걸 다시 주워와서 정리했다. 전등을 끌 방법이 없으니 좀 난감하다. 나는 불이 켜져있으면 잠을 못 자는 성격이라.....

에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침낭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한다.

 

류스이안의 물로 포카리스웨트를 만드는 중인 도균이

 

 츠야도 옆에 있던 가마솥과 물. 이 곳 류스이안의 물은 전설에 따르면 최초의 순례자 에몬 사부로가 이곳 근처에서 쓰러졌을때

코보우 대사사 홀연히 나타나 파준 샘물 류스이(柳水)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그래서 암자의 이름도 류스이안.

 

 

 

<오늘 이동한 거리> 

오시코쿠 게스트 하우스 2호점~ (1km) ~10번 키리하타지~ (12km) ~11번 후지이데라~ (3.2km) ~죠도안~ (3.4) ~류스이안  

= 19.6Km

 

 

<오늘의 지출>

납경료 -600Y

=600Y

각주 1

불가에서 일반 불자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의식 중 정수리의 머리칼을 스승이 잘라주어 출가를 인정하는 의식을 득도(得度)라고 한다. 또 관정(灌頂)이란 밀교에서 스승이 특정한 불, 보살과 인연을 맺어주어 그 본존의 삼밀(三密)- 몸(身), 말(口), 뜻(意) ; 이를 밀교용어로 삼밀이라고 한다.-을 성취하게 해주는 의식을 말한다.

각주 2

종자자(種子字). 밀교에서 각 본존들을 상징하는 글자를 말한다.

각주 3

칠당가람은 금당·강당·탑·식당·종루·경장·승방. 이 7개의 건물을 모두 한 담안에 가지고 있는 절을 말하는데, 사찰중에 가장 격식이 높고 가장 크게 지은 가람을 말한다.

  1. 불가에서 일반 불자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의식 중 정수리의 머리칼을 스승이 잘라주어 출가를 인정하는 의식을 득도(得度)라고 한다. 또 관정(灌頂)이란 밀교에서 스승이 특정한 불, 보살과 인연을 맺어주어 그 본존의 삼밀(三密)- 몸(身), 말(口), 뜻(意) ; 이를 밀교용어로 삼밀이라고 한다.-을 성취하게 해주는 의식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종자자(種子字). 밀교에서 각 본존들을 상징하는 글자를 말한다. [본문으로]
  3. 칠당가람은 금당·강당·탑·식당·종루·경장·승방. 이 7개의 건물을 모두 한 담안에 가지고 있는 절을 말하는데, 사찰중에 가장 격식이 높고 가장 크게 지은 가람을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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