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술년 시산제 - 작은 정성 큰 정성으로 받으시고, <산사랑> 과 회원들을 지켜주시기를 축원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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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5일 아침, <산사랑> 회원들은 의정부 북부역에 다시 모였습니다.
처음 와 보는 낯선 곳이지만, <산사랑>의 이름 아래 불곡산에서 열리는 시산제(始山祭)에 참석하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온 것입니다.
반갑게 악수를 하며 새해 첫 인사도 나누고 덕담(德談)도 건네며 올해도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만들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시산제라서 그런지 가족이 함께 온 회원들이 많아 보기가 참 좋았습니다.
전덕찬님의 잘 생긴 아들 동욱이도 다시 만나 종산제 때 말한 것처럼 사진 찍을 때는 활짝 웃으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
* 회비도 잘 내고, 설명도 잘 들어야 즐거운 산행이 됩니다. ^^^
유양리행 55번 버스는 누구의 말대로 <산사랑>에서 전세낸 버스라서 승객은 우리들뿐,
차 안은 화목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불곡산 입구에서 하차,
조금 걷자 오른쪽으로 “임꺽정 생가와 양주별산대놀이마당 1키로”라고 쓰여진 팻말이 보였습니다.
놀이마당은 시산제가 열리는 곳이니까 우리들은 야구공처럼 밑변이 1키로인 포물선을 그리며 여기서 날아가서
정상을 거쳐 저쪽 놀이마당으로 내려간다는 그림을 그려보니까 재미 있습니다.
발걸음도 가볍게 30여분 걸어 신라 때 도선대사가 지었다는 백화암에 도착했습니다.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 밑에 있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물통도 채우고 멋진 남자,
김병호 산행리더(*산행서브는 유철호님)로부터 산행 일정과 유의사항을 들은 후 정상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산길은 들어서자마자 돌이 많고 경사가 심하고 폭이 좁아 오르기가 힘들었지만,
1,20분 오르자 벌써 저 높은 위로 하늘과 닿아 있는 갈림길의 능선이 보여 안심하고(?) 계속 올랐습니다.
앞에서 뒤에서 직장이야기, 시집장가이야기 등 정다운 말소리가 들립니다.
숨이 찰 만한데도 산행 중에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은 그만큼 낮은 산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십자 갈림길, 안부에 올라섰습니다.
왼쪽은 정상 가는 길, 오른쪽은 별산대놀이마당 가는 길, 정상까지는 20여분 정도 가면 됩니다.
470미터의 불곡산은 낮은 산이지만,
산적(山賊) 임꺽정의 산채답게 관군(官軍)의 공격에 대비한듯^^^ 정상 밑 두 곳을 7,80도의 가파른 암릉으로 가로막아
특히 어린이들과 가냘픈(?!^^^) 여자들은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하는 유격훈련장 같은 난코스입니다.
로프는 매듭이 져 있어 손이 미끄러질 염려는 없지만,
직벽에 가까워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 오를 수 있습니다.
로프 잡는 법이며, 힘 쓰는 법이며, 발 딛는 자세며,
저마다 산행에 일가견이 있는 회원들이라, 다양한 주문과 훈수와 응원이 쏟아집니다.
오르는 사람은 심각한 표정이지만, 소나무 아래 구경꾼들은 신이 나서 싱글벙글 환한 웃음이 대조적입니다.
* 직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둡지만, 오른 사람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470미터 정상에 올랐습니다.
북쪽으로 또 하나의 암봉인 420봉이 ‘용감한 아우’처럼 낮게 서 있고,
10시 방향으로 저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이 보이고 ,
2시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건너편 산 아래쪽에 누워 있는 무덤들이 눈에 거슬려 짐짓 시선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불곡산은 넓은 평야 한 가운데 우뚝 서 있어 양주의 진산(鎭山)이라는 칭호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산에 올라 산줄기 혹은 물줄기/ 바라보면 잘 보인다/
빈 손바닥에 앉은 슬픔 같은 것들/ 바람소리 솔바람 소리 같은 것들*
이성부의 서시(序詩) '산경표공부' 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산에 가건, 정상에 설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 싯구입니다.
나이 든 사람은 강 가에 집을 짓고 살면 우울해져 안 된다고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느라면 ,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이며,
그 시간의 끝이 얼마 안 가 자기에게 다가오리라는 확실한 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산은 나무며 풀이며 새며 짐승이며 어머니의 품처럼 생명력을 지녔기에
'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와 같은 사람이라도, 슬퍼도 진정 슬프지 않고 외로워도 진정 외롭지 않습니다.
불곡산 정상을 증명하고, <산사랑>의 발자취를 남기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두 팔로 하트를 그리고, 한 손을
번쩍 처들기도 하고,
어깨동무도 하고 모두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자축하며 다음 산행을 약속하는 듯 싶었습니다.
* 어느 산이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은 뜨거운 사랑에서 나옵니다. ^^^
시산제를 치르기 위해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한겨울이지만 햇볕은 따뜻해 언 땅이 녹아서 진탕길이 많은데,
그래도 떡깔나무 소나무 낙엽들을 밟고 가면 발에 닿는 촉감이 푹신해서 좋습니다.
이 산에 많다는 진달래는 벌써 봄기운을 품었는지 병아리 부리같은 노란색을 잎 끝에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갈림길이 나오자 이완기님이 “산사랑은 이쪽으로 내려 가세요!!” 친절한 안내를 하고 있는데,
누가 “산사랑이라고
하면 잘 몰라. 영등포 꽃마차산악회라고 해야지.” 라고 우스개소리를 해서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또 한 분은 “이왕이면 가리봉동 황제산악회라고 해야지.” 라고 한 술 더 떠서 또 한번 회원들을 웃겼습니다.
산행은 물론 카바레 출입도 잦은 분들 같아 많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
- 유세차 단기 사천삼백삼십구년, 병술년 1월 열닷샛날,
오늘, 저희 산사랑 산악회원 일동은 이곳 불곡산 정상에 올라,
좌로는 청룡이요, 우로는 백호요, 남으로는 주작과, 북으로는 현무를 각각 거느리고
이 땅의 모든 산하를 굽어보시며 그 속의 모든 생육들을 지켜주시는 산신령님께 고하나이다.*
시산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사랑> 플래카드 정면에 걸고, 왼쪽에는 산행을 상징하는 로프를 올려 놓고 예법에 맞춰 제상 양 쪽에 촛불 밝히고 ,
돼지머리와 북어포는 어동육서(魚東肉西) 동두서미(東頭西尾)에 맞춰 놓고,
조율시이(棗栗柿梨)니까 대추, 밤, 감, 배의 순서에다 사과도 곁들여 5과(果)로 진설하고,
시루떡 쩌서 곡주와 함께 상 옆에 벌여놓고 ,
마지막으로 향불을 피웠습니다.
식순에 따라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4절 다 부르고, 선열께 묵념을 드린 후,
정희식 회장의 축문은 <산사랑> 회원
모두의 마음을 담아 경건하고 엄숙하게 봉독되었습니다.
- 무거운 배낭을 둘러멘 우리의 어깨가 굳건하도록 힘을 주시고,
험한 산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우리의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고,
허리에 찬 수통속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늘 채워 주시고,
험로에 이르러 몸뚱이를 의지할 저 로프가 낡아 헤어지지 않게 하시고,
독도를 잘못하여 엉뚱한 골짜기를 헤메이지 않게 하시고,
조난당하여 추위와 굶주림으로 무서운 밤을 지새지 않게 하소서.
시산제는 산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신령한 산기운과,
나약한 인간들이 느끼는 숙연함과 두려움을 고백하고,
안전산행을 빌며 산과의 동화를 약속하는 신성한 의식이라서 ,
<산사랑>을 대표하는 회장의 축문 읽기는 엄숙했고, 절은 정성과 진정이 넘쳤습니다.
원로회원부터 나이 순으로 재배(再拜)가 이루어졌습니다.
곡주 한 잔 담아 향불에서 향을 실어 올린 후 공손하게 절을 하며 안전 산행과 저마다의 소원을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돼지 머리의 입에 물리던 고삿돈은 두 귀로 옮겨지더니 급기야 콧구멍까지 진출하여,
절 하는 사람은 엄숙하지만 구경하는 사람은 웃기도 하고 농담도 던져,
시산제는 어느덧 즐거운 축제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시집 가게 해 달라고 돼지코를 만지다가 악 비명을 지르는 처녀 회원을 보고 배꼽을 잡는 장면은 축제의 하이라이트 같았습니다.
성락건이 쓴 시(詩) [ 산에 가는 것은 ] 산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밥 먹는 것과 같아야 하고 잠자는 것과 닮아야 한다./
번개치는 날도 천둥 우는 날도 산 타는 일이/ 처갓집 가듯 당당해야 한다.
소낙비 억수로 맞고 어질어질 취해 산 내려옴도 / 술 먹는 날인양 자주 있어야 한다./
발가벗고 발길 닿는 대로 능선 쏘다니는 일도/ 여름 찬물 마시듯 부담 없어야 한다./
노는 날 날 빛 고루 환한 날 택해 요란한 산/ 여럿이 감은 빛 좋은 개살구 된다./
산 가는 일은 별식 같아선 안 된다./ 바람 불어도 산 가야 하고 가슴 뛰어도 산 올라야 된다./
기쁨 돋을 시나 슬픔 잠길 때만 가는 산은 절름발이 산행이다./
산 가는 것은 잠자는 것과 같아야 하고 / 밥 먹는 일과 닮아야 한다.
산에 미친 산꾼의 주장을 담은 것 같지만 산을 오래 탄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심정이기에,
낯선 사람들이 산악회를 만들고 “밥 먹듯이” 산을 찾는 것입니다.
산은 산이라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습니다.
산을 찾는 것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시산제 뒤풀이는 산 밑 자갈 깔린 주차장 위에 자리를 펴 놓고 조별로 치뤄졌습니다.
라면과 만두와 김치 밖에 없는 조도 있었지만^^^ 시루떡도 있고, 막걸리도 많아 든든했는데,
오동규조장은 하얀 기름 흐르는 잘 구워진 차돌백이도 몇 점, 초고추장 담긴 종이컵에 과메기도 몇 점 동냥해 와서
'불쌍한' 조원들을 먹이는 조장의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습니다.
다른 조로 라면을 구하러 왔다가 아예 그 조 식구처럼 자리 잡는 회원도 보였고,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회장의 홍시같은 얼굴은,
모든 조를 찾아다니느라 인삿술을 마신 증거라서 보기 좋았습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뒤풀이가 끝난 후에도 돌아갈 집이 없는 듯,
불곡산 아래 주차장에 서서 하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한 가족같은 사람들이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
* <산사랑> 가족들의 힘찬 발걸음이 명산을 밟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