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애완수필】
◆ 제3화
생명 키우기 3 - “토끼를 찾습니다”
―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토끼 이야기’
윤승원 수필문학인, 두 아들의 아버지, 지환이 할아버지
【글 순서】 ◆ 제1화 생명 키우기 1 ― 손자와 나누는 귀여운 ‘햄스터 이야기’ ◆ 제2화 생명 키우기 2 ― 두 아들과 함께 키운 예쁜 ‘병아리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 ◆ 제3화 생명 키우기 3 ― 두 아들과 함께 키운 귀여운 ‘토끼 이야기’ ◆ 제4화 생명 키우기 4 ― 어떤 고양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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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화
생명 키우기 3 - “토끼를 찾습니다”
―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토끼 이야기’
윤승원 수필문학인, 두 아들의 아버지, 지환이 할아버지
“얘들아, 토끼가 없어졌다!”
아침 일찍 밖에 나간 아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이 뛰어나갔다.
사과 상자로 토끼장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이 토끼 새끼 한 마리 사다가 애지중지 기르고 있었는데 간밤에 토끼가 없어진 것이다.
토끼를 찾기 위해 온 식구가 나섰다.
아이들은 골목에 나가 알아듣지 못하는 짐승인 줄 알면서도 “토끼야! 토끼야!” 부르기도 하였다.
그래도 나타나지 않자 지친 아이들은 아침밥도 먹지 않았다. 그동안 토끼에 대한 아이들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큰 아이는 토끼풀을 뜯으러 산에 갔다가 벌에 쏘여 고생했고, 작은 아이는 넘어져 무릎을 깨 온 것이 한 번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니?” 인사도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프지 않았니?” 하면서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 두 아들의 ‘토끼 사랑’(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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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토끼장을 바라보며 아이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아빠, 토끼가 정말 어디 갔을까요?”
어떤 묘안을 기대하며 아이들은 내게 토끼의 행방을 거듭 물었다. 그러나 내게도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둑놈이 가져갔는지 모르니 이젠 그만 잊자.”라고 아이들을 달랬다.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갤 가로저었다.
무슨 단서로 ‘도둑의 소행’으로 단정해 버리려 하는가? 아이들의 기대감을 한 마디로 묵살해 버린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도둑이 가져가지 않았다면 토끼가 주변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이다.
설령 토끼가 길가로 뛰쳐나갔다 하더라도 그건 무주물(無主物:임자 없는 물건)은 아니지 않은가.
생각다 못해 대문 앞에 이런 글을 써 붙였다.
『토끼를 찾습니다. 달아난 토끼를 보관하고 계신 분은 돌려주세요. 아이들이 식구를 잃는 것처럼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 대문 앞에 붙여 놓은 알림 글 - “토끼를 찾습니다”(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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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토끼가 없어져 서운했지만, 이 같은 글을 써 붙이니까 아이들이 좋아했다. 아빠의 관심에 더 큰 위안을 받는지도 몰랐다.
많은 행인이 글귀를 읽고 웃으면서 지나갔다. 뭇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지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성공이었다.
토끼가 꼭 돌아와 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아이들도 밝은 표정으로 학교에 갔다. 그러나 퇴근 후 여전히 토끼장이 비어 있음을 보고 적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표정이 어두웠다. 작은 아이가 투덜거렸다.
“아빠, 아빠가 써 붙인 글을 보고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아세요? 웃기지 말래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말이에요. 벌써 토끼탕을 해 먹었을 거래요! 에그~”
아이의 말에 나도 은근히 부아가 났지만, 아이들을 달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몸 아픈 사람이 토끼 간을 약(藥)해 먹었을지도 모르니 잊어버리자”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큰아이가 용수철처럼 뛰어나갔다. 이어서 흥분한 듯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어떤 아저씨가 우리 토끼를 보관하고 있대요!”
나가보니 정말 어떤 낯선 남자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대문 앞에 붙여 놓은 글을 보고 찾아왔어요. 어젯밤 제가 퇴근하는데 웬 토끼가 길가에 나와 있길래 누구네 것인지 몰라서 제가 안아 왔어요.”
아이들과 함께 그가 보관하고 있다는 가게까지 갔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토끼는 예쁜 상자 속에 들어 있었고, 어느 낯선 아줌마가 넣어준 아카시아 잎을 먹고 있었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기르려고 있는데 주인이 나타나서 정말 잘 됐군요.”
작은 생명이지만 주인을 찾아주려고 했다는 그의 마음씨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잠시나마 불신의 고정관념으로 ‘도둑놈’ 운운했던 내가 아이들 앞에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토끼를 안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 집에 무사히 돌아온 귀엽고 사랑스러운 토끼와 함께(그림=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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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장을 보다 견고하게 지어야겠다고 하자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니 이름표를 달아주는 게 어때요?”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도 한마디 거들었다.
“없어질 것만 생각하지 말고 이웃을 믿음으로 보는 눈부터 가지세요!” ♣ (199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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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화 생명 키우기 4 - 『어떤 고양이의 죽음』 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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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사모 카페에서 정구복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