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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들이 두려워할 분(2)
-제자들의 신앙고백의 동인인 성령-
누가복음 12장 8-12절 /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식사 할 것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집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초대를 받은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그러한 일을 하신 것은 그 일을 통해 그들의 속마음에 품은 악의적인 죄를 끄집어 내시며, 이러한 그들이 예수께 어떠한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지를 드러내시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속마음에 감추어진 악함을 들추어내시자, 그때부터 바리새인들은 앙심을 품고 서기관들과 함께 예수님을 사로잡아 죽이려는 구실을 찾고자 악의적인 마음으로 여러 가지 물음을 던지며 기회를 노렸습니다(눅 11:37-54). 이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눅 12:1-3).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본문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공예배용으로 사용하는 개역개정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그리고/또한’(and),‘그러나’(but)를 뜻하는 접속사가 있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대화의 내용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한 것에서 제자들에게로 새롭게 전환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는 4-7절, 8-12절 두 단락으로 나뉘어 전개됩니다. 본문은 그 중에서 두 번째 단락입니다. 예수님은 첫 단락인 4-7절에서 예수님은 이제까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누룩, 곧 외식이 장차 종말론적 관점에서 그들에게 닥칠 화를 말씀하셨는데, 지금부터 말씀하시는 제자들에게 해 주시고 있는 이야기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마지막 때를 당하여 겪게 될 복된 일을 말씀해 주시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의 길을 꿋꿋하게 갈 것을 권면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단락인 8-12절에 이르러서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시인함이 성령을 따름에 있는 것에서 되어지고 있는 것임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내용과 이것을 통해 알게 해 주시는 의미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내 친구’라고 부르면서 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친근감을 나타냅니다. 예수께서는 12명을 자신을 따르도록 불러 제자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 대해 갖고 계신 사랑으로 대해 주시며 그들을 부르신 목적에 관심을 갖고 이를 알아 가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께서 제자들을‘내 친구’라고 지칭하신 것은 그들을 잘 알고 곁에 두고 있는 친밀한 관계성에 계신 까닭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 다섯 마리 비유는 이런 사실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시작하여“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어성경은“내가 분명히 일러둔다”라고 하면서“만일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너의 친구라고 증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너희를 높일 것이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현대어성경은 의역하여서 번역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예수께서 앞서에서“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말씀하신데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예수께서“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하시며 친구인 제자들에게 4-7절을 이야기 해 주신데 따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의 친구인 예수님을 이제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것이 될 것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나를 시인하면”에서의‘시인하다’사용된 단어의 원문에 의한 문자적인 의미는‘같은 것을 말하다’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시인하다’는 의미 외에‘증거하다’,‘고백하다’,‘드러내어 말하다’,‘자백하다’란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한 단어를 본문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용하신 것이 갖는 의미는 문맥이 갖는 의미에서 볼 때‘~앞에서’란 뜻의 전치사와 함께 사용되어‘사람 앞에서’와‘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1) 말해지고 있는 공적 증거의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므로‘공적으로 증거(증언)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말입니다. 예수께서“너희가 나를 시인하면”,“나도 너희를 시인할 것이요”의‘시인하다’는“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증거(증언)하는 것”은“내가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너희를 증거(증언)하는 것이 될 것이다”는 것인데, 이는“너희가 예수를 부인하는 사람들 앞에서 너희가 알고 있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위하여 산 너희를 증거(증언)하는 것으로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것에서 예수께서는“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그러니까 예수께서 주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은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 아들이신 신적 권위에 의해서 행하시는 것으로 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겪으실 일인 십자가 수난과 부활, 승천 및 재림과 관련하여 증언하며 주 예수를 믿을 것을 전하는 것으로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 증언에 있도록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권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 이르러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신 사도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십니다(행 1:8).
이는 말이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와는 전혀 대조되는 일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예수님을 부인하는 행동은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주님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거절하는 것인데, 그들은 그리스도(메시야)를 세상에 보내시는 참된 뜻을 선지자의 예언을 기록하신 구약성경을 통해서 알면서도 마음에 예수님을 거부하여 반대하고 사람들 앞에서 거짓으로 예수님을 말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반대하도록 충동시킵니다. 이러한 행동은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성령을 모독하는’죄악된 일입니다. 내적인 성령의 거부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예수님을 부인하는 행동은 결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성령모독죄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땅에서는 예수님을 시인함에 있게 함으로 하늘에서는 그들이 섬긴 주님으로부터 천사들이 증인으로 있는 가운데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의 증거자로 산 사람임을 시인 받게 하여 그들에게서 영원히 성령모독죄를 제거하십니다. 그래서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저주를 영원히 거두어 없게 하고 사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영원히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 하나님의 은혜에 두실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에게 일어날 상황 앞에서도 그들이 어떤 말을 해 나갈 것인지를 염려하지 않게 하실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이는 말이죠.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로 잡혀 끌려가 회당들이나 정사 잡은 자, 곧 관리(관원)들이나 권력자들 앞에 설 때에 그들에게 해야 할 말을 당당히 하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 말을 하는 것에 있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회당과 위정자와 권세 있는 자들2) 앞에 서도록 박해 당함에 있게 하시는 섭리를 행하시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여기서‘마땅히 할 말’은 제자들이‘반드시 말해야 할 것들’로‘성령께서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며(8, 9절), 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에 있게 하실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참조. 행 1:22).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실행이 훗날 베드로, 스데반, 바울이 회당과 위정자와 권세 있는 자 앞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행 4:8; 7:2; 26:1-32).
이 일이 사도의 직무를 맡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에게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 그리고 사도의 권위에 속한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에게만 있는 일인지요. 아닙니다. 이들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온 땅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에 의해 세상 끝 날까지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있게 되는 일입니다. 그에 따라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1)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함으로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들을 시인함에 있으실 것이요 (2)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려가는 박해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염려하지 않도록 마땅히 할 말을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으로 담대히 해야 할 말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함에 있으며,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박해 당하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에 있는 것은 그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용기 있고 그럴만한 힘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데 자신에게는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권능으로 그를 사로잡으시고 그가 할 말과 그가 해야 할 일, 그의 삶을 주권적으로 주관해 가시는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사람은 말이죠. 모든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그럴 경우는 말이죠. 세상 사람이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다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성령의 내주와 그에 따른 성령의 권능의 지배가 없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있는 경우는 교회(예배당) 다니며 이 안에서 갖는 종교적 활동을 하는 것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 것으로 알고 있는 종교인으로서의 예수 믿는 신자에게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예수 믿는 신자인 종교인(종교적) 그리스도인은 소위 비그리스도인인 신자입니다. 이럴 경우 그에게서는 진리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이 없는 까닭에 진리를 부정함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나타내는 속성 그대로에 있게 됨에 따라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통해 믿음에 있게 하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예수를 말합니다. 그러한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성령의 내주와 그에 따른 성령의 권능의 지배가 없다고 보십시오. 그건 하나님의 영이 없는 까닭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 그대로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요일 4:3)라고 하였으며, 또한“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 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말이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성령의 임하심에 의한 성령의 내주가 없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 있는 것은 그에게 임하신 성령의 내주하심에 의해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이심을 시인하는 고백의 믿음에 있는 때문입니다. 그런 그는 자신이 시인하는 믿음에 있는 주님에게 자신의 생명이 맡겨져 있음을 바라보며 그 기대와 의존에 있습니다. 이는 박해 당하는 상황에서도 계속됩니다. 박해 속에서도 주와 함께 하는 인내에 있는 믿음에 있게 하시는 권능을 행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이는 말이죠. 박해가 없는 상황에서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성도를 향한 믿음의 시련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가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게 하는 것에서 있기 때문입니다. 때론 육이 하나님의 영을 거슬러 사는 것 때문에 믿음이 없다거나 믿음이 적다고들 말합니다만,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여기는 믿음이 그를 주께 붙어 있게 하고 있는 것이며 그 믿음을 성령께서는 소멸치 않게 권능으로 보존하십니다. 구약과 신약의 역사는 성령에 의해 생명력을 갖고 있는 성도의 믿음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성도의 동인(動因)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바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5:1) 라고 하였으며, 또한“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 라고 말한 것에 있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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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란 문구는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10장 32절에서는“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라고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기록상의 오류, 오기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각 저자의 관점이 갖는 이해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마태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자신들의 주님이심을 알고 사람 앞에서 그 시인(증거)에 있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 또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그들을 알고 계시며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 주신 자임을 말하여 그들의 대변자가 되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인 반면에, 누가는 예수님을 배척하며 대적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 악한 무리들과 대조하여 천상의 천사들을 증인으로 세우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증언하는 법정적 증언의 의미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2)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에서의 회당은 유대인들의 종교 행사와 교육을 행하는 장소인 동시에 율법이나 규례를 범한 자들을 재판하는 법정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곳이므로 유대인들의 박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며,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는 한 지역(지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을 비롯한 권력자들인데 이방인들, 특히 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표현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박해와 로마를 포함한 모든 이방인들의 박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주를 증거하는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받을 박해의 험난한 길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