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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 있는 임술생 박00입니다.
제가 현지사에 정식으로 다닌 것은 약 1년 정도 됩니다.
예전에는 가까운 사찰에 다니긴 했지만 딱히 공부라고 할 만한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씩 108배를 하고 가끔 가까운 사찰에 가서 스님을 뵙고 인사하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진주교육대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재학생의 70%가 여학생이어서 학교다니며 여학생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여러 여학생을 만나며 여러 번 순간순간 호감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항간에서 이야기하는 이성을 사귀는 정도까지 간 적도 있었지만 대개 결정적 순간(?)에 물밀 듯 밀려오는 무상감에 깨끗하게 정리해버린 사례가 몇 번 있었습니다. ‘여학생 만나봤자 거기서 거기 아닌가?’, ‘이 사람 만난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즐거울 수 있을까? 괜히 사람에 대한 집착심만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분명 만난 사람 중에 착한 사람도 많았지만 그 여학생들의 탐욕, 애착심, 이기심을 목격하고 또 느끼게 되면서 ‘아! 이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스스로도 많이 부족하면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재단한 것은 아닌가 해서 부끄러운 마음도 듭니다.
그러다가 아는 형의 소개로 현지사 부산 법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올 때는 영산당시 가섭존자, 아난존자의 후신이 지금 몸 받아와서 불과를 이루었다는 말도 들었으나 '아,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산 법회 날에 조금 일찍 도착 했던 터라 법당에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저는 절에 가면 조금이나마 보시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보시하려 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다니던 절의 스님은 학생이니 절에 올 때마다 천 원 정도 보시하라고 해서 그때까지는 ‘아! 천 원 정도 보시해야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현지사에 와서 보시하려니 왠지 만원은 보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여긴 다른 절과는 격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그리고 법당에 앉아 있는데 행원 스님이 옆에 오셔서 오여래 부처님과 탱화에 계신 여러 부처님 그리고 좌우보처 불보살님에 대해서 한 분 한 분 소개해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참 많은 부처님들이 계시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오가시며 2~3번 반복해서 친절하게 소개해주셨고 젊은 스님이 이야기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처음 법회에 와서 자재 만현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법회가 끝나고 공양하던 중 큰스님이 친히 나오셔서 신도분들의 인사를 받던 도중 저도 눈 앞에서 친견했지만 그냥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법회에 나가고 나서 약 6개월 정도는 학업 문제도 있어서 진주에 있었는데 현지사에는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인터넷으로 옛 법문을 계속 들었습니다. 법문을 매일 1~2시간 이상 들었습니다. 듣고 또 들었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하고 놀라기도 했고 또 ‘법문이 재밌고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법문을 듣고 좋아서 꾸준히 들었습니다. 법문 들으며 '아! 금강경 공부를 하고 칭명염불도 해봐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보지도 못했고 그저 법문 파일을 MP3플레이어에 넣어서 듣기만 했습니다. 또 도서관에서 금강경에 관해 해석된 책을 빌려 보며 조금씩 칭명염불을 시작했고 겨울 방학이 되자 그때서야 부산 법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로 현지사에 가게 된 시점은 처음 법회에 나간 뒤 약 6개월 후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다녔습니다. 이때 점심 공양하던 중 길상화 보살님을 만나서 매주 일요일 공부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장 가입했습니다. 이때가 공부모임 초기였습니다.
제가 아직 젊은데다 염불공부를 많이 못 했지만 현지사에 다닌 뒤부터 물건을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지갑을 가끔 잊어버려서 큰돈을 분실하기도 하고(평소보다 많은 돈을 소지했을 때) 물건을 두고 다니는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현지사 다니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약 1년을 돌이켜 보면 거의 물건을 분실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물론이고 소소한 물건 빼고는 크게 분실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참 신기하다고 가끔 생각합니다.
이에 관련된 체험담 하나 있어서 소개합니다.
저를 현지사에 소개해준 형과 저는 대학도서관에서 공부를 같이 했습니다. 어느 날 부산에 있는 동의대학교 도서관에서 매일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2008년 9월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집이 부산이어서 집에서 오가며 공부했었고 형은 이날 밤샘 공부한다고 하여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몸이 피곤하여 공과대학에 들어와서 소파에 잠시 누웠다고 합니다. 이때 지갑을 잃어버렸나 봅니다. 소파에 누워 좀 쉬다가 다시 도서관에 올라와서 지갑을 찾았는데 없었다고 합니다. 그 소파로 다시 돌아와 보았지만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승용차에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침에 동의대 도서관에 가고 나서 함께 지갑을 찾으러 승용차에 가서 찾아보니 또 없었습니다. 지갑에 돈을 많이 뽑아놓은 상태여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어디서 잃어버린 지도 모르겠고 지갑의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다 어제 밤에 잠시 누웠던 소파에 한 번 더 가보자해서 저와 형이 같이 그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에도 없으면 못 찾는다는 심정으로 갔습니다.
공과대학 1층에 막 들어설 때 여자 2분이 서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습니다. 복도 끝에 있는 소파에 가서 여기 저기 찾아보니 지갑은 역시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지나쳐온 여자 분이 혹시 지갑을 찾느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맞다고 하니 여자 분들은 소파 맞은편에 있는 연구실에 있는데 아침에 지갑을 주워서 연구실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도착한 것은 11시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여자 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주인이 찾으러 올 것 같아서 지갑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갑에는 많은 액수가 있었고 형과 저는 소파에 없으면 지갑을 포기하자는 심정으로 간 것이었는데 희안하게도 그 분들이 지갑을 돌려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땐 정말 놀랬고 저절로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들은 대학원생으로 보였고 한가한 분들이 아니었을텐데, ‘주인이 지갑을 찾으러 올 것 같아서 나와 있었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니 신기하지 않았겠습니까?
하필 그 날에는 평소보다 지갑에 약 14만원 가량의 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분증, 운전면허증, 각종 현금카드 등이 있어서 지갑을 못 찾으면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그 분들에게 고마워서 식사라도 하시라고 2만원 드리고 왔습니다.
이 외에도 현지사에 다니면서 예전보다 가정이 더 화목해졌고 스스로 욕심이 점점 줄어든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신기하다고 가끔 느끼곤 합니다. 예전보다 감정의 기복이 덜하고 망상, 번뇌가 많이 줄어들었고 정신도 예전보다 맑아졌음을 느낍니다.
또 성적인 욕구가 확 줄었습니다. 성욕은 본능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지 가끔은 스스로 어떻게 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되어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현지사에 자주 와서 큰스님 법문을 자주 듣고 2008년 석가모니부처님 업장소멸 기도에 입재하고 시간 될 때마다 수시로 부산 분원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4학년 1학기 동안 학교 수업이 없으면 기도 기간 내내 와서 기도했습니다. 보통 4학년이면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하기에 대부분의 4학년이 수험생으로 1년을 아주 바쁘게 공부합니다.(고3 수험생과 비슷합니다.) 이런 시점에 절에 자주 오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지만 업장 소멸이 먼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도에 동참하며 참회하고 업장 소멸을 발원하기를 꾸준히 했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약사여래불 업병 치유 기도에도 입재했습니다. 이때는 학업 때문에 자주 나오지 못했습니다. 또 큰스님 대법회는 무조건 가야겠다 싶어서 법회일이 중간, 기말 시험 날과 겹치지 않으면 다 참석했습니다.
기도에 입재하고 기도에 동참하고...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며 보낸 이러한 기간을 거친 연유인지 예전과는 달리 이성을 보게 되어도 무상하게 보이고 예전보다 확실히 끄달림이 줄어들었습니다. 또 부정관, 구상관, 백골관으로 보고 정견으로 보려고 하니 이성을 봐도 그저 그렇게 보이고 점점 마음에 번뇌가 줄어들어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건 정말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자를 볼 때 전혀 끄달림이 없는 것은 아니나 스스로 마음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보기에는 정말 신기합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변한 스스로가 신기하고 또 신기합니다. 아직 근이 다 빠지지 않았음을 느끼지만 마음이 정말 편합니다.
이 모든 일이 석가모니부처님과 여러 불보살님, 붓다 회상을 펴신 광명 만덕 태사부님, 자재 만현 큰스님의 큰 자비라고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 법문 중에서 하신 말씀 중 ‘절대 붓다 회상을 떠나지 마시오. 천추의 한이 될 겁니다.’하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큰스님 말씀 100%, 1000% 확신합니다.
오탁악세에 남섬부주에 오셔서 불과 이루신 두 분 큰스님! 붓다 회상을 펴시어 많은 중생을 한 명이라도 더 구제하려고 하시려는 대원을 세우시고 주야로 바쁘게 보살행 하시는 모습에 스스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아직 다겁생의 탐진치, 악, 습기를 버리지 못해 너무나 미련하고 게으른 모습에 부끄럽습니다. 스스로 바라보기에 너무나 미혹하고 어리석은지라 ‘부처님! 이 어리석고 무지한 중생 부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하고 발원합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정말 자주 느낍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번뇌, 망상이 밀려듭니다. 하지만 매일 부처님께 참회, 귀의, 발원하며 큰스님 말씀 가슴에 새기며 살리라 다짐합니다.
앞으로 큰스님 말씀 잘 받들어 계율 잘 지키며 부처님 앞에 선근 많이 심고 청정하게 살며 열심히 칭명염불하고 살겠습니다. 삼계왕 남섬부주 교주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부처님, 광명 만덕 태사부님, 자재 만현 큰스님... 여러 불보살님, 성중님 감사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
2008년 작성된 글입니다.
첫댓글 전생에 선근공덕이 있으신 분이네요~
현지사에 오시라고 포교를 해보면 느낌이 옵니다~
정말 현지사에 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구나~~를
저도 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이끌어 주심에 감사 감사~~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