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탐방기를 올립니다.
여정의 순서에 따라 여러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캄보디아 선교 정탐을 다녀와서 1
캄보디아 시엠립으로
당회원 4명과 전장로님 내외분 이렇게 6명은 예배 후 점심 먹기가 바쁘게 성도들의 배웅을 받으며 터미널로 달려갔다. 겨우 버스에 올라 인천공항으로 가니 4시가 조금 안 됐다. 수속 밟은 후 이른 저녁 먹고 비행기에 오르니 잠시 지체하다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작은 비행기라 가끔 요동이 심하다. 아줌마 전도왕을 다 읽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캄보디아 시엠립이다. 시차가 2시간이라 현지에 내리니 3시간 만에 캄보디아까지 날아온 것 같다.
전대식 목사님 내외가 나와 반긴다. 캄보디아 간 지 1년밖에 안 되어 그런지 아직은 캄보디아 사람 같지 않다.
설레며 기대했던 앙코르와트
호텔에서 일박을 하고 창문을 여니 시엠립 시내 반쪽이 눈에 들어온다. 높은 건물이 없이 숲속에 있는 조용한 도시 같다. 바로 앞집 마당에는 흰 소 3마리와 닭, 개 등이 한가롭다.
아침을 먹고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입장하자마다 뱀의 형상을 한 건축물들과 넓은 해자 건너편으로 웅장한 유적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다. 12세기에 세워진 건물들이라 하는데 800여년 넘게 흐른 오랜 세월로 모두 검게 퇴색되어 있다. 그러나 우선 규모의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공항에서부터 하룻밤을 자고 나기까지 짧은 시간에 보아왔던 캄보디아 사람들로부터 이런 건물이 만들어졌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보아온 캄보디아 사람들은 가무잡잡하고 작은 체구를 가져서일까, 사람을 보고 건물을 보니 이런 유적을 만들 만큼 위대한 조상을 가진 사람들로 보이지 않는다.
어설픈 가이드의 해설과 나름대로의 상상을 덧붙여 가며 성내를 돌아다니는데 권력과 종교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 엄청난 유적이 그냥 대충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가 모두 조각품이고 예술품이다. 솔로몬의 궁전도 이처럼 화려하고 웅장했을까? 그러나 유적의 화려함이나 웅장함도 세월 앞에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현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부와 권력이 한때는 대단한 위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그런 것을 만들어낸 권력이란 것이 세월 앞에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또한 깨닫게 된다. 나중에 구경했던 킬링필드의 현장에서 본 폴포트의 권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3층으로 된 사원을 구경하는데 1층은 지옥, 2층은 현세, 3층은 천국을 뜻한다고 한다. 3층은 신을 위한 곳이기도 하다는데 지금은 사람을 위한 구경거리로 전락해 있다. 인간 내부에 내재되어 있는 신관, 내세관은 어느 민족 어느 종교에서나 공통된 것 같기도 하다. 긴 회랑으로 된 벽에는 벽화가 가득하다. 선한 신과 악한 신과의 싸움, 윤회에 바탕을 둔 인과응보의 내세관, 범신론적인 우주관 등 이들 종교의 특징과 삶을 잘 표현해 내고 있는 듯한데 문화적 차이로 인해 한번 보고 깊이 있는 이해를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시 차를 타고 이번엔 바이욘 사원으로 향했다. 퇴락해 가는 사원에 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사원의 건물들도 웅장하지만 이를 감싸고 짓누르고 있는 스뻥나무가 더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는 바위위에 가냘프게 뿌리를 내리고 안간힘을 쓰는 소나무는 차라리 애처롭다. 오래된 건물이나 지붕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은 여름 한철 잠시 생명력을 자랑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이곳 사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우람한 건축물들을 압도하는 나무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건축물이 무너질까봐 나무를 잘라내야 하는데 나무가 죽으면 오히려 건축물이 붕괴될까봐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나무에 성장억제제를 투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이 사원은 붕괴된 곳이 많음으로 오히려 더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만약 TV나 사진 등으로 사전에 앙코르와트에 대한 것을 전혀 모르고 갔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 어쩌면 사전에 어설프게 아는 정보가 진짜 실물을 대했을 때 실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사원에 들어서기 전에 설렘과 사원을 다 보고 났을 때의 감격을 굳이 비교한다면 설렘이 더 컸던 것이 아닐까.
미로 같은 사원내부를 돌아다니다 김용수 장로님을 잃어버리고 밖으로 나오는데 상이군인 7-8명이 나무그늘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동정을 구한다. 괜히 찔림을 받아 지폐하나 건네주니 아리랑을 연주해 준다. 관광객의 국적에 따라 맞춤식으로 여러 곡을 준비했을 것이다. 삶에서 터득한 지혜와 경험이리라.
한민족의 음식을 찾아 평양관에서
점심 때가 되어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관을 찾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초록 한복을 곱게 입은 두 처녀가 맞아 준다. 눈길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를 만큼 예뻐 보이는 것은 캄보디아 사람들과 너무 대비되어서일까 아니면 가까이 할 수 없는 혈육을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일까? 그 넓은 식당에 손님이라곤 우리 10명뿐이다. 그래도 음식을 시킨 후 먹기 시작하자 휘파람 등의 노래와 장구춤을 보여준다. 연평도 포격 이후 손님이 끊어졌다는데 경색된 남북관계를 이곳에서도 보는 듯하다. 냉면과 단고기 수육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냉면 맛이 춘천의 평양냉면보다는 한참 못하지만 단고기 수육은 맛있다. 어렵게 사는 북한 동포를 생각해 남기지도 못하고 다 먹느라 배가 몹시 불렀다. 그들과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사진은 전혀 찍지 못하게 해 몰래 공연하는 것 한 장만 찍고 나왔다. 무엇을 그렇게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은 것일까? 폐쇄되고 경직된 그들이 풀려야 남북간의 화해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다 같은 톤레삽 호수에서
점심을 먹은 후 톤레삽 호수로 향했다. 배타는 곳에 도착하니 사탕수수 대궁에서 즙을 내어 팔고 있다. 한 컵 사 마셔보니 아주 달콤한 주스다. 호숫물이 장마 뒤의 흙탕물처럼 누렇다. 강처럼 생간 좁은 호수를 따라 배가 달려가는데 호수 연안으로는 수상 가옥들이 잇달아 있다. 대구에서 세워준 수상 교회도 있다. 고기 잡는 사람들도 군데 군데 보인다.
한편 웬 작고 길쭉한 배 한척이 따라 붙더니 물건을 사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린아이가 커다란 뱀을 목에 걸로 사진을 찍으라 한다.
그리고 1달러를 외친다. 배를 운전하는 형이나 아버지 같은 사람은 한쪽 팔이 없다. 굳이 외면하고 앞을 보는데 드디어 넓은 호수의 입구에 도달했다.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차라리 넓은 바다다. 이 호숫물은 건기에는 메콩강으로 흘러 가다다 우기에는 역류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배를 타고 프놈펜 쪽으로 갈 수도 있단다. 호수 위에 가옥들은 물론 기념품 가게를 겸한 휴게소도 있고 그 위엔 전망대도 있다. 커다란 양푼위에 올라앉아 노를 젓는 아이, 역시 뱀을 목에 걸고 사진을 찍으며 돈을 달라는 아이가 여기도 있다.
어길 가나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일일이 다 응대하기 어려워 이들을 대할 때마다 갈등을 겪는다. 한 푼 건네는 것이 이들은 더욱 자립할 수 없는 거지로 만드는 일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변명도 해 보면서.
다시 시내로 돌아오니 어두워지려 한다. 저녁을 먹은 후 발맛사지하는 곳으로 같다. 혼신의 힘을 다해 발맛사지를 하는 애들이 애처롭다는 생각만 하며 맛사지를 받다 보니 얼마나 아프게 누르는지 왼쪽 어깨 아랫부분이 약간 까져 쓰라리기까지 하다. 내일은 장장 11시간을 승합차를 타고 달려야 한다기에 성경 몇장 읽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