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브잣나무
ⓒ강우근
<위 그림은 강우근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무단으로 그림을 사용하면 저작권법에 위배됩니다>
아파트 단지에 큰 키가 훌쩍훌쩍 미끈하게 쭉쭉 자란 소나무. 하늘을 향해 뻗은 모습이 무척이나 고고해 보인다. 아니 도도해 보이기까지. 눈이라도 오는 날에는 홀로 청청한 선비의 품격이! 소나무인가? 맞기는 맞다. 소나무 가운데 바늘잎이 다섯 개 뭉쳐난 것이 잣나무이다. 스트로브잣나무는 잣나무보다 바늘잎이 더 가늘어, 북한에서는 ‘가는잎소나무’라고 부른다. 스트로브잣나무 옆에는 흔히 섬잣나무나 눈잣나무도 자라는데, 잎 길이가 스트로브잣나무 절반밖에 되지 않아서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소나무나 곰솔은 잎이 두 장씩 뭉쳐나고, 리기다소나무나 백송은 석장씩 뭉쳐난다. 바늘잎 수로 소나무와 잣나무를 가려내면 쉽다.
스트로브잣나무는 이름에서 어렴풋 알았듯이 미국 북동부 지방과 캐나다가 원산지이다.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가 1920년경이라고 하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20년 넘게 자란 스트로브잣나무 보는 게 쉽지 않으니 조경용으로 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나 보다. 스트로브잣나무는 잣나무처럼 어릴 때는 그늘을 좋아하지만, 커가면서 해를 좋아하면서 높이 30미터, 지름 1미터에 이른 웅장한 나무로 자란다.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해서 도시의 숲을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자란 어린 스트로브잣나무가 아파트 재개발 따위로 뽑혀 나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멋진 스트로브잣나무 숲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라가 대통령 때문에 날마다 어수선하다. 국민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스트로브잣나무 같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흡사 스트로브잣나무 숲이 전국을 흐르고 있는 듯하다. 어른들은 아마 누구나 자라는 아이들에게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가치를 이렇게 전할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라!’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거짓말쟁이라니! 고사리 손으로 촛불을 들고 선 아이, 삼삼오오 교복을 입고 촛불을 들고 선 아이들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어른들이 이렇게 만든 세상이 아닌가! 돈과 권력만 있으면 만사형통, 그래서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사회! 돈과 권력을 쥐고는 약자를 짓밟고 착취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회! 이런 거짓됨들이 아주 쉽게 먹히는 나라! 우리는 이제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이야기할 것인가?
이번에야말로 역사에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역사는 그래 왔다. 부정을 저지른 자들이 버젓이 자신들이 가진 돈과 권력을 유지해왔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이다. 하지만 이제 스트로브잣나무처럼 우뚝우뚝 선 촛불 하나하나가 바꾸어 낼 것이다. 거대한 숲이 되어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라는 가치를 지켜낼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말이다.
글 나은희(‘사계절 생태놀이’ ‘열두 달 자연놀이’ 저자)
그림 강우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