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가 숨 쉰다 17
겸손히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칡부엉이
서부DMZ는 기수역(汽水域)으로 매우 다양한 생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강·임진강하구는 DMZ의 시작점이자 동북아시아 철새들의 중간기착지로서 대륙과
대륙을 잇는 중요한 생태통로이기도 하다. 서부DMZ 대부분 지역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접근이 매우 어려워 다양한 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태정보를 수집하는 데
큰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인접지역인 공릉천은 다행히도 이런 접경지생물권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직장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 퇴근 후 꼭 들리고는 하는데 이곳을 돌아보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될 큰 즐거움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지인은 “마치 자신의 영지를
돌보듯 다니네요.”라고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놀림이 왠지 싫지 않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나는 땅 한 평조차 없는 처지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생명들과 대화하듯 다니다 보면
모든 것을 소유한 부자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진짜 부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새를 관찰하면서 일반 상식과 좀 다른 경우를 볼 때 혼돈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맹금류는 사냥하기 좋은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칡부엉이는 기존 상식과는 달랐다.
모든 맹금류는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칡부엉이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무는 맹금류이다. 이맘때쯤 공릉천 버드나무
군락지에서 겨울을 나는 칡부엉이의 모습이 발견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가지에
앉아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맹금류는 모두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친다?
칡부엉이는 올빼미목 올빼미과 조류이다. 올빼미과 조류는 전 세계에 160종이 알려져 있으며,
이 중 우리나라에서는 11종의 올빼미과 조류가 기록되어 있다. 미조(迷鳥)인 흰올빼미와
긴점박이올빼미, 그리고 금눈쇠올빼미 등 3종을 제외하고 칡부엉이를 포함하는 7종은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4호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다. 칡부엉이는 천연기념물 제324-5호다.
몸길이 약 38cm의 중형 부엉이인 칡부엉이는 귀 모양 깃털이 있는 것이 올빼미와 구별되는
특징이고, 귀깃이 긴 것은 쇠부엉이(short-eared owl)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영어이름이
‘long-eared owl’이다.
몸의 윗면에는 세로무늬가 많고 누런 갈색과 짙은 갈색으로 얼룩져 있다.
아랫면은 색이 연하고 짙은 갈색 세로무늬가 있다. 이런 위장술은 너무 완벽해서 언뜻 보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의 나무줄기와 매우 흡사하다. 눈은 오렌지 빛을 띤 노란색이다.
한국에서는 10~11월의 이동시기에 전국 숲에서 무리지어 겨울을 나는 흔한 겨울새이다.
유라시아대륙에 분포하고, 중국 남부, 이란, 인도 북부 등지의 구북구한대와 온대에
분포하며 겨울을 난다.
부엉이, 장수·도둑방지 상징 … 울음소리로 길흉 점치기도
본래 부엉이는 고양이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여, 고양이가 상징하는 장수의 이미지를
담아 고희(古稀)를 축하하는 의미로 부엉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또한 밤에 잘 보이는 부엉이의 특성을 활용하여 부엉이를 부적으로 만들어 밤에 침입하는
도둑을 쫓는다는 믿음도 갖게 한다. 울산의 황방산 장티마을에서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로
길흉을 점치는데, 부엉이가 아침에 울면 길하고, 밤중에 울면 불길하다고 여긴다.
야행성인 부엉이가 새벽에 운다는 것은 어둠이 물러감을 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편 ‘부엉이마냥 하나 둘밖에 모른다’, ‘올빼미 셈이다’라는 속담에서 보듯,
밤에만 활동하는 부엉이를 우둔함과 느림, 소심함의 상징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민화나 만화영화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부엉이는 야행성으로 밤에 주로 활동을 한다.
사냥을 나가기 전에 온몸을 단장하고 스트레칭을 30분 이상 한 다음, 주변이 어두워지고
잘 보이지 않는 시점이 돼서야 사냥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이 칡부엉이는 사전
동작을 하지 않고 있다가 소리 없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인다.
칡부엉이는 용맹한 맹금류이지만 높은 곳에서 굽어보듯 자신의 존재를 거만하게
자랑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을 감추고 눈을 감고 앉아 겸손히 때를 기다릴 줄 안다.
다 지배할 것 같은 허풍을 떨지 않으며 자신의 영역을 인정하는 순명의 존재로,
그런 칡부엉이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갖는 욕망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김승호 / DMZ생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