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의 별장 청남대 가는 길
모처럼 해님께서 반짝거리신다. 이토록 존칭어로 드높여 주는 이유는 계속되는 장마철의 눅눅함이 때로는 불쾌했기 때문이다. 7월을 맞이하고도 분주함이 채 가시지 않음과 일주일 분의 수업 분량을 매일매일 하루에 세 과목씩 뚝딱 해치워야 하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나날들을 뒤로하고 충북 청주를 향하여 핸들을 돌린다.
서산에서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 청원IC를 통과하고도 척산 삼거리와 문의에 다다르는데 넉넉히 30분 정도가 소요되었으니 청남대까지는 통틀어 3시간이 소요되는 셈이었다.
청남대는 남쪽에 있는 '청와대'라는 뜻으로 1983년부터 20여 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식별장으로 이용된 곳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됨에 따라 하루에도 800~1,000여명의 방문객들이 다녀간다 하니 그동안의 궁금증이 얼마나 크고도 멀었는지 실감이 나고도 남음이 있다.
이곳에 가려면 우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문의면에 있는 충북 관광안내소(문의파출소 앞)에서 예약접수증과 신분증을 확인한 후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출입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아직도 <개방>이라는 단어가 좀 우스워질 것이다. 하지만 명색의 대통령 별장으로 아직도 이용되고 있을 뿐더러 청남대의 보호를 위해서는 약간의 통제로 인한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리라.
청남대는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4시까지 20분 간격으로 관람을 할 수 있다. 또한, 안내원이 방문객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친절하게 브리핑을 해 주니 별다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곳 대통령의 별장인 청남대가 만들어진 것은 1980년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1983년 6월 착공, 6개월만인 12월에 완공된 작품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여름휴가와 설 휴가를 비롯하여 매년 4~5회 정도, 많게는 7~8회씩 이용하여 20여 년간 총 80여 회를 이곳에서 보냈다 한다. 아늑하고 조용한 휴양시설 속에서 결단을 위한 숙고(청남대구상-금융실명제)를 했던 곳. 특히 역대 대통령 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청남대구상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아름드리 심겨 있는 역사의 산물인 소나무와 온갖 무수히 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곳 청남대. 주변 경관이 수려해서 저절로 국정에 대한 구상이 흘러나올 듯하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퍼덕이며 나르는 까투리 떼들이 정답게 느껴진다. 솔솔 불어오는 숲속의 향기는 몸으로 느껴지는 자연과의 대화였다.
하지만 대통령 별장을 둘러보면서 왠지 가슴 답답하고 멍청해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갖는 호기심과 기대감이 기우이길 바라야 했던가. 할아버지들의 투박한 퉁퉁거림 속에 한숨이 흘러나왔고, 아직도 쓸데없는 사치와 공간 속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갔다. 진정한 민생을 위한 구상이라면 차라리 이름 모를 동네 어귀 주막집에서 시름을 달래보면 어떨까.
약 1시간 30분 정도 되는 청남대를 걷노라니 보트가 있는 낚시터도 보이고, 작지만 정교하게 꾸며진 미니골프장과 그늘 집도 보이고, 한참을 더 오르고 올라 맨 마지막 코스인 <초가정>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 정자에 대통령 내외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길래 그와 똑같은 자리에 살그머니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좋긴 좋더구먼!
나는 차라리 이곳이 대통령별장이라는 느낌은 저 멀리 대청호수에 던져버리고 마치 자연휴양림에 온 것 같은 기분에 젖어 한 사나흘 평화로이 묵었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좋은 곳에 오면 그저 나의 마음을 풀어놓기 위한 욕심이 가득하니 걱정이다. 그곳이 대통령의 별장만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떼를 부리고 싶었을 거다. 잘 다듬어진 조경들과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주변 환경이 부럽다.
그 넓은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서 좋겠다. 훌륭한 시설과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인테리어들은 부럽지 않다. 누구보다도 건강한 판단과 굳은 의지가 요구되는 대통령이 결코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말 없는 역사의 목격자인 꽃과 나무 그리고 물은 그 마음을 헤아리겠지. 나는 그곳을 견학하면서도 내내 대통령은 생각나지 않고 다만, 어느 계절에 방문하면 좀 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을까 라든지 이곳을 일반인들도 자유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오려나 등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하튼 난생처음이자 나에게는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것만 같은 그곳. 언감생심 꿈도 꿔 보지 못 했던 대통령별장을 방문했었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그러고 보니 먼 길의 여정 탓에 점심을 걸렀더니 시장기가 맴돈다. 척산 삼거리를 빠져나오니 눈앞에 커다란 간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여자에게 특히 좋다는 송어, 그로 인해 남자에게까지 영양가가 전해진다니.
수질 1급수에서만 산다는 그 '송어'횟집 글씨를 따라 유혹에 빠진다. 이층집으로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 걸 보니 꽤 유명한 집인 것 같았다. 집주인이 송어를 직접 기르고 있어서 다른 집보다는 훨씬 싸고도 양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주황빛 도는 송어를 먹고도 푸짐하게 내 오는 매운탕을 다 먹으면 그야말로 배가 터질 만큼 부르다.
이제 서서히 또 하루는 느낌 속에 머물러 사라지고 그리운 것들만 가슴에 하나 가득 채워오는 나의 그림자는 서산에 지는 해를 따라 흔적 없이 기울어진다.
고마운 사람들아, 다정한 벗들아, 사랑스러운 자연아. 무엇을 얻고자 함이 아닌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위해 다 함께 뜨거운 외침의 건배를 나누자. 나는 소용돌이치는 가슴으로 기다림을 배운다. 2003년 7월 5일 날씨 맑음 행복을 충분히 느끼고 그가 청남대를 방문하게 해 주신 임께 감사를 드리며 먼 훗날 청남대가 그야말로 사랑받을 수 있는 명소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두 눈을 꼭 감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며 안내해 주신 박하용 님께 감사드린다.
작성일: 2003/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