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강점의 의지를 드러낸 일본의 무단통치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에 이르도록 아주 잔인하고도 잔혹했다.
당시 조선의 선각자들은 도저히 조선땅에서는 조선독립의 확고한 기지를 건설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07년에 결성된 비밀결사조직 신민회의 주요강령중에 하나가, 해외에 독립기지를 건설하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전개한다는 것이였다.
국내의병활동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을즈음 많은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고 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러시아땅을 밟았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의 의식속에는 러시아는 소련으로만 존재했다.
그곳은 너무도 먼 세계였다.
너무도 이질적인 접근불가능한 동토였다.
소련이란, 소비에트 연방의 약자다.
그것은 소비에드라는 통치기구 속에 15개국가가 연방을 구성한 나라였다.
그것은 이 지구육지에 육분의일을 뒤덮는 거대한 나라였다.
그런데 소비에트 고르바쵸프의 빼레스트로이까를 기점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연방체제에 속했던 나라들이 분리됐다.
그런데 러시아만 해도 89개의 단위로 이루어진 연방구성체다.
이 러시아 연방만 해도 중국보다 더크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인 것이다.
이 나라의 모든것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러시아의 땅을 밟는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왔다.
내가 처음 본 러시아
그것은 좀 우울한 잿빛이였다.
그러나 낯선 이방으로만 생각했던 러시아가 결코 우리민족의 역사로 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바로프스크
"이넓은 공터에서, 우리는 그 굉장히 우리눈에 낯익은 주춧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이거 완전히 궁궐의 나무기둥을 받쳤던 주춧돌이 아주 분명하죠.
이거는 도저히 이 러시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양식 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여기서 발견되느냐?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발해, 우리나라 역사에서 너무도 억울하게 사라져버린 우리 귀중한 역사의 일부분인 발해의 궁궐 텁니다.
이런 주춧돌이 여기 쭉 발견되는데, 여기에 어마어마한 궁궐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습니다."
*끄라스끼노 언덕에서 본 고구려성터
"통일신라의 성립으로 우리나라 역사가 고구려사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고구려의 역사는 발해를 통해서 어...이렇게 계속해서 확대되어 나가고 그...지속되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가 그 엄연한 우리민족사의 부분으로서 다뤄져야 할 그런 중요한 역사가 지금 우리의식 속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 데는, 여러가지 그 국내외에 어떠한...그... 음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항상 위기를 당할 때 마다 고구려를 생각하고 발해를 생각합니다.
독립운동사를 우리가 생각 할 적에도, 이 연해주 지역에 최초의 그...우리 한인들이 우리 독립을 할 수 있는 어떠한 토대 하부구조 그것을 이 연해주 지역에 구축했던 것은, 이 발해사와도 어...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고구려의 5개의 서울중의 하나였습니다." (끄라스끼노지역)
"그 여기에 발해의 궁궐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발해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했다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민족이 이 지역에 문화를 이식했고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또다시 우리민족이 이곳에 대규모로 이주하면서 농업기술을 가져와서 새로운 도작을 하게되고
*블라디 보스톡 극동대학교정 : 발해유적(연자방아), 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