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행정안전부 누리집의 기념일 안내, 즉 대통령령 31264호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로의욕을 더욱 높이는 행사’를 가지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3년 5월 1일 노동절 행사가 처음 열렸다. 그런데 1957년 대통령 이승만이 “May Day는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되도록 하라”고 명령함으로써 날짜가 3월 10일로 바뀌었다. 모든 지구인들의 애칭 “May Day”를 우리만 'March Day'로 변질시킨 것이다.
게다가 1963년 박정희 정권은 ‘근로자의 날’이라는 새 이름도 붙였다. 그 이후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노동절은 본명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근로자의 날’에 머물러 있다. (단적인 사례로 '성급한 일반화'를 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없지 않겠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월 10일이던 날짜는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5월 1일로 되돌렸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1963년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명한 박정희 정권이 같은 1963년에 ‘노동청’을 발족시켰다는 점이다. 이 조치는 1973년 박정희가 우금치에 동학 최초 조형물 〈동학혁명군위령탑〉을 세운 일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희는 “님들이 가신 지 80년, 5‧16혁명 이래의 신생 조국이 새삼 동학혁명의 순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빛나는 시월유신 한 돌을 보내게 된 만큼 이 언덕에 잠든 그 님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 탑을 세운다”고 했다. ‘근로자의 날’ 개명과 ‘노동청’ 발족, 동학혁명과 10월유신, 부조화의 극치이다.
1919년 5월 1일 아일랜드 출생 배우 댄 오헐리히가 태어났다. 댄 오헐리히가 출연한 영화에 〈슬픔은 그대 가슴에〉가 있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흑인여성 애니는 혼혈아 딸 사라를 키우는 일에 모든 삶의 기대를 건다. 그러나 피부가 하얀 사라는 어머니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가출해 버린다. 애니는 딸을 그리워하며 숨을 거둔다.
댄 오헐리히 주연 〈로보캅 2〉는 대기업의 횡포와 민영화로 인한 혼란을 소재로 사람이 기계 부품처럼 쓰이는 비인간화 사회를 비판한다. 피부색을 숨기고, 직업을 감추고, 거대 세력의 조종에 따라 주체성을 잃은 채 살아가는 삶에도 '만물의 영장' 고유의 고귀한 가치가 깃들어 있을까? 그래도 로보캅은 결말에 이르러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얼굴도 드러내는데, 사람인 우리는 과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