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은 뒤 49일 이내에 널리 선한 일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재를 지낼 때 일곱 번을 지내기 때문에 칠칠재라고 말합니다.
49재를 지내는 동안 망자를 위해 주옥같은 법문과 염불을 들려드림으로써 돌아가신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지혜가 열리고 좋은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49재의 의의!
첫째 의미는 죽은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가르쳐 주고 모든 존재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은 사람에게 인생의 실상이 무엇인지, 죽음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 49재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죽은 사람이 못다한 복 짓 는 일을 대신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크게 보시를 해 드립니다. 49일 동안 그 사람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불우한 사람들에게 보시도 하고, 책도 간행해 주고, 집도 지어 주고, 절도 지어 주고, 법당도 잘 만들어 주는 등등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 중생이 임종하는 날 생명을 죽이거나 악연을 짓지 말고 귀신에게 제사지내거나 도깨비들에게 구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귀신이라고 하는 것은 영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잡된 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임종 무렵에 귀신에게 제사지내거나 생명을 죽이는 일은 망인에게 어떤 이익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의 인연만 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묘비를 잘 만드는 것은 자기 자랑을 하려는 것이지 결코 돌아가신 분을 위하는 행위가 되지 못합니다. 망자 자신이 지은 업만으로도 벌써 악도에 떨어지는데 자식이 또다른 업을 지어 망자가 그 과보까지 받느라고 시간은 더욱 늦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유족들이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고 복을 지어드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1/7만 망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유족에게 돌아온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그 교훈은 자신의 업은 자신이 소멸하고 자신의 복과 지혜는 자신이 닦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收),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설사 그러하더라도 유족은 망자를 위해서 지혜의 말씀을 들려드리고 복을 지어드려야 한다는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경문에서는 49일 안에 순간순간마다 모든 골육과 권속이 복을 지어서 구원해 주기만을 바라다가 칠칠일이 지난 뒤에는 업에 따라 갈 길을 가게 된다고 합니다. 골육과 권속들이 자기 대신 복을 지어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기를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망자가 어둠의 저승길을 가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할 때에는 호텔을 예약하거나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지만 죽음의 길은 예약할 수 없습니다. 설사 예약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예약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무엇이든지 의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지장경≫의 <이익존망품(利益尊亡品)>의 마지막 대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죄인이 오무간 죄를 지어서 대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천백 세가 지나도 해탈할 날이 없고 영원히 여러 가지 고통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재를 지낼 때의 주의사항으로 죄업중생은 명을 마친 뒤에 골육이나 권속이 그를 위해서 재를 올려서 복을 닦아 업도를 도와야 하는데 재식을 마치기 전이나 재를 올린 다음에도 쌀뜨물과 나물, 잎사귀 등을 땅에 버리지 말고, 음식을 부처님과 스님에게 먼저 올리기 전에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순서를 어겨서 먼저 먹거나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면 이 명을 마친 사람이 마침내 구원의 힘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재를 지낼 때 순서가 뒤바뀌면 다른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릴 것이고 급기야는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복을 지으러 왔다가 오히려 복을 감하는 것이 되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돌아가신 분에게 오히려 짐만 더 지워드리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엄숙한 어떤 의식을 올릴 때에는 우리의 몸가짐, 마음가짐 등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존귀한 일이 생사(生死)에 대한 문제입니다. 죽음보다 더 엄숙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를 지내는 사람도 마음을 닦아서 지내야 되고 유족들도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재를 지낸 복이 살아나게 됩니다. 재를 지내면 돌아가신 분에게 이익이 되니 마땅히 돌아가신 부모와 친척을 위하여 재를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공양을 올리되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면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이로움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설하실 때 도리천궁에 있던 염부제의 모든 귀신들이 한량없는 보리심을 발하였으므로 대변 장자도 환희하는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고 예배를 올린 뒤에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재를 지내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진지하고 엄숙하고 정숙하고 성의를 다해야 합니다. 재법문을 하는 스님들 중에 간혹 웃음을 자아내게 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반드시 그것은 삼가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열광하는 말투도 맞지 않습니다. 법력이 없으면 성의를 다하여 간절하게라도 해야 하는 것이 법사된 도리입니다. 재를 지내는데 주의사항은 무엇보다 재를 주관하는 스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사람이 죽은 뒤 49일 이내에 널리 선한 일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재를 지낼 때 일곱 번을 지내기 때문에 칠칠재라고 말합니다.
49재를 지내는 동안 망자를 위해 주옥같은 법문과 염불을 들려드림으로써 돌아가신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지혜가 열리고 좋은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49재의 의의!
첫째 의미는 죽은 사람의 마음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가르쳐 주고 모든 존재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죽은 사람에게 인생의 실상이 무엇인지, 죽음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 49재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죽은 사람이 못다한 복 짓 는 일을 대신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크게 보시를 해 드립니다. 49일 동안 그 사람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 불우한 사람들에게 보시도 하고, 책도 간행해 주고, 집도 지어 주고, 절도 지어 주고, 법당도 잘 만들어 주는 등등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 중생이 임종하는 날 생명을 죽이거나 악연을 짓지 말고 귀신에게 제사지내거나 도깨비들에게 구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귀신이라고 하는 것은 영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잡된 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임종 무렵에 귀신에게 제사지내거나 생명을 죽이는 일은 망인에게 어떤 이익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의 인연만 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묘비를 잘 만드는 것은 자기 자랑을 하려는 것이지 결코 돌아가신 분을 위하는 행위가 되지 못합니다. 망자 자신이 지은 업만으로도 벌써 악도에 떨어지는데 자식이 또다른 업을 지어 망자가 그 과보까지 받느라고 시간은 더욱 늦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유족들이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고 복을 지어드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1/7만 망자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유족에게 돌아온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그 교훈은 자신의 업은 자신이 소멸하고 자신의 복과 지혜는 자신이 닦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收),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원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설사 그러하더라도 유족은 망자를 위해서 지혜의 말씀을 들려드리고 복을 지어드려야 한다는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경문에서는 49일 안에 순간순간마다 모든 골육과 권속이 복을 지어서 구원해 주기만을 바라다가 칠칠일이 지난 뒤에는 업에 따라 갈 길을 가게 된다고 합니다. 골육과 권속들이 자기 대신 복을 지어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기를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망자가 어둠의 저승길을 가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할 때에는 호텔을 예약하거나 비행기를 예약할 수 있지만 죽음의 길은 예약할 수 없습니다. 설사 예약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예약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무엇이든지 의지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지장경≫의 <이익존망품(利益尊亡品)>의 마지막 대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죄인이 오무간 죄를 지어서 대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천백 세가 지나도 해탈할 날이 없고 영원히 여러 가지 고통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재를 지낼 때의 주의사항으로 죄업중생은 명을 마친 뒤에 골육이나 권속이 그를 위해서 재를 올려서 복을 닦아 업도를 도와야 하는데 재식을 마치기 전이나 재를 올린 다음에도 쌀뜨물과 나물, 잎사귀 등을 땅에 버리지 말고, 음식을 부처님과 스님에게 먼저 올리기 전에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순서를 어겨서 먼저 먹거나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면 이 명을 마친 사람이 마침내 구원의 힘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재를 지낼 때 순서가 뒤바뀌면 다른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릴 것이고 급기야는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가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복을 지으러 왔다가 오히려 복을 감하는 것이 되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돌아가신 분에게 오히려 짐만 더 지워드리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엄숙한 어떤 의식을 올릴 때에는 우리의 몸가짐, 마음가짐 등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 중에서 가장 엄숙하고 존귀한 일이 생사(生死)에 대한 문제입니다. 죽음보다 더 엄숙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재를 지내는 사람도 마음을 닦아서 지내야 되고 유족들도 온갖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재를 지낸 복이 살아나게 됩니다. 재를 지내면 돌아가신 분에게 이익이 되니 마땅히 돌아가신 부모와 친척을 위하여 재를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공양을 올리되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면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이로움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설하실 때 도리천궁에 있던 염부제의 모든 귀신들이 한량없는 보리심을 발하였으므로 대변 장자도 환희하는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고 예배를 올린 뒤에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재를 지내는 일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진지하고 엄숙하고 정숙하고 성의를 다해야 합니다. 재법문을 하는 스님들 중에 간혹 웃음을 자아내게 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반드시 그것은 삼가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열광하는 말투도 맞지 않습니다. 법력이 없으면 성의를 다하여 간절하게라도 해야 하는 것이 법사된 도리입니다. 재를 지내는데 주의사항은 무엇보다 재를 주관하는 스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