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세무사의 추천으로 각현(覺賢) 스님(60)을 만났다.
각현 스님은 노인요양원, 치매노인치료센터, 노인복지회관 등
다수의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의 대표다.
대형 복지법인의 대표지만,
법인으로부터 개인사무실이나 월급을 받지 않는 등 투명한 노력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채상병 세무사는 연꽃마을에 대한 감사 작업을 하면서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작은 돈의 위력을 잊고 있다"
<"대기업이 수십억씩 내놓은 것을 다 합쳐도 1인당 기부금액이 연간 2,700원에
그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요즘 정치자금,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매번 억억 하니까 일반인들이 천원,
2천원의 힘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
각현 스님은 먼저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고액의 금전이 관련된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작은 돈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진실을 잊게 됐다는 것.
스님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는 것"이라며 "작은 기부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각현 스님이 본격적으로 노인복지 사업에 뛰어든 것은 법주사 부주지로
청동미륵대불 건설을 무사히 끝낸 1990년이었다.
속리산 법주사 청동미륵대불은 5년에 걸친 난공사 끝에 90년 4월에 완성됐다.
수년 동안 어깨를 누르던 큰 임무를 끝내고 나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앞날의
계획에 대한 생각도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며칠 고민 끝에 절을 떠나 노인복지사업에 투신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국 불교 구성원 중 50대 이상 노인이 절반이 넘습니다.
이렇게 노인이 많은데,
불교계가 운영하는 노인 복지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부끄러웠습니다.
21세기에는 노령화로 노인복지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는 점도 노인복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고비마다 도움의 손길
<90년 9월, 서울 마포에 12평짜리 사무실을 차리고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복지사업을 시작했다.
연꽃마을의 첫 사업은 불우 노인들을 위한 무료 요양시설 설립이었다.
설립 자금은 철저하게 개인 후원으로 만들어 나갔다.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개인 후원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 각현 스님은
"당시 많은 불자들이 사회복지에 기부하는 것에 인색한 편이었다"며
"이런 분위기를 극복해 보고자 일부러 불자들의 후원으로만 사업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
후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사업 진행은 부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군이 나타나 분위기가 반전됐다.
청동미륵대불을 건설하는 5년 동안 법주사를 출입하던 각 신문사 기자들과
방송국 기자들이 연꽃마을의 취지를 이해하고,
앞 다퉈 보도하면서 순식간에 연꽃마을은 불교계 화제가 됐다.
후원이 늘면서 90년 12월 용인에서 기공식을 할 수 있었다.
"91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는데,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길이 다 떠내려 갔어요.
후원금도 거의 사용해 공사가 중단됐죠.
아주 어려운 시점이었는데,
육군 3군사령부의 1개 소대가 수해 현장에 나타나더니 한달 동안
다리를 2개 놔주고,
길도 닦아줬습니다."
요양원은 공사 3년 만인 93년 11월 완공됐다.
2만5천 명의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준 7억원이 밑천이 됐다.
이후 연꽃마을은 성장을 거듭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의원급 노인무료병원을 13개나 개원했고,
평택에도 노인요양원을 세웠다.
일산에서는 노인종합복지관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안성에는 감로당이라는 무료 중증치매노인치료센터를 세웠다.
감로당 주위에는 유료 치매노인센터와 효문화센터 등을 건설이 한창이다.
"시설 확충보다 효문화 전파 절실"
요즘 각현 스님은 효문화센터 건립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노인 문제를 계속 다루다 보니,
노인 문제는 시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효를 어렵게 생각해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게 바로
효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효를 강요하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효도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
모두 기성세대의 잘못입니다.
효는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주고 받는 것입니다.
노인을 위한 건물을 수천개 짓는 것보다 효문화를 바로 세우는 게 시급합니다."
스님은
"연꽃마을이 작은 물방울이 바다를 만드는 것을 실증하는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며
"소액 기부자들이 늘어나고 복지사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기부금을 투명하게
운영하면 전국 곳곳에 연꽃마을 같은 바다가 많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