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품격/ 남해 해성고 홍혜미
나는 아주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내가 바라본 어른은 타인에게 어떤 허락이나 승인 없이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멋있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지금 나는 어릴 적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됐다. 내가 경험한 어른은 타인과 분리돼 오로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할 수 없고 자유를 만끽하는 대상은 더욱 아니었다. 물론 내가 꿈꾸었던 어른의 요건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어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른 역시 타인과 분리 돼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때문이며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라는 덕목이 혼재하기 때문이다. 혼자지만 홀로가 아니라는 심충적 관계에 둘러싸여 있어 ‘자신만’의 판단에 집중할 수 없다.
어른은 ‘자신만’이라는 권리와 ‘사회적’ 관계라는 의무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부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개인적 혹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어른의 몫이다 어른들은 ‘권리와 의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 위해 ‘자유로움’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들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유를 행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어른은 신체적인 성장과 함께 자연적으로 얻는 특권이라고 생각한 나의 어린 마음이 잘못된 판단의 시작점이었다.
어느새 나는 나의 판단과 행동에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어른이 돼버렸고 사회학적으로 중장년층에 이르렀다. 지금의 어른은 나이보다 젊고 건강하며, 지적 수준이 높고 경제적 능력을 갖춘 영 올드(yongold)라는 새로운 계층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 활동과 자기 계발에 적극적인 그들이 보여줄 어른의 모습은 생물학적 나이가 우선인 ‘어르신’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주장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이들과 공간 다른 생각으로 당혹스러운 순간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과 함께 가야 할 ‘어른이 갖춰야 할 덕목’ 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나이 듦에 대한 탄식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 나이에 맞는 행동과 사고를 하는지 되묻게 되는 순간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다름을 인정하고 조용히 실천하는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자족적 물음에 어렴풋이 흑백 사진처럼 어른 김장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어른의 품격’을 행하고 있는 그런 어른을 만나 그를 따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