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누구인가?
'나는 자본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러비스트(Lovist), 사랑주의자이다"
평양과학기술대 김진경 총장(78)의 말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미국시권자로서, 지금은 한국, 북한, 중국, 미국을 비자 없이 넘나들 수 있다. 북한 당국의 요청, 그의 주도로 평양 과기대는 2010년 10월 25일 문을 열었다. "지금 북한을 도와야만 통일 후에 큰 재난을 피할 수 있다. 정부가 도울 수 없다면 시민사회라도 나서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남은 여생을 헌신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포부는 북한의 하버드·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의 수준까지 올려서 '아시아의 평화를 구축하는 중앙센터'로 만드는 데 있다고 한다. 평양과기대는 정보통신, 산업경영, 농업생명 세 개 학과로 학생들을 모집하여 개교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대, 평양이과대학 등 북한 명문대에서 편입한 100명을 포함하여 160명의 남학생을 모집, 교육을 시작하였다.
강의는 영어로 진행하며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등 전원 외국인 교수진으로 구성했다. 학생들의 수준은 그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 넘었다. 가르치는 내용은 ICT(정보통신기술)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관련된 회계, 금융, 외환, 세금, 국제투자 등도 있다.
김진경 총장은 경남 의령 태생으로 마산 창신중 3학년에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지원했다. "만일 내가 살아남는다면 적군인 중국과 북한을 위해서 평생 살겠노라"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숭실대 졸업후 영국 클립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베린대에서 종교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주하여 의류사업 등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번 돈에다가 후원금을 보태어 1992년 중국 최초의 중외합작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를 세웠다.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명예시민' 제 1호이다. 핵을 보유한 북한이 재래식 무기 에산을 절감하여 경제개발에 치중하기를 바라고 있다. 평양과기대 총장이 된 것은 북한이 국제 사회의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의 바램은 평양과기대가 국제사회가 들어오고 조선이 국제사회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김진경 총장은 1987년 김일성 주석의 초청으로 처음 방문한 후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쌀 등을 지원했다. 그러다가 1998년 9월에는 체제전복 음모죄라는 명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북한을 지원한 자금 출처가 남한 안기부와 미국 CIA라고 의심한 것이다. 사행 집행전에 "내가 죽으면 신체와 장기는 평양의과대학에 실험용으로 쓰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하라. 보복하게 되면 내 죽음은 헛되니 미국 정부는 절대로 보복하지 마라"는 유서를 작성하였다. 그의 유언에 북한 당국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고 죽을 고비에서 42일만에 풀려났다.
2001년 연변과기대와 같은 대학을 세워달라는 북한 당국의 요청을 받아 근 10년만에 평양과기대를 세웠다. 기독교계와 뜻을 함께 하는 해외동포, 외국인들의 도움으로 학교를 설립하였고 운영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설립 당초 북한 당국은 학교 부지만 제공하였다. 설립당초 못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축자재는 물론 빨간 벽돌도 대량생산을 할 수 없어 중국에서 벽돌 1250만 장을 기차로 수송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김구 선생의 다음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마음에 삼팔선이 눈 녹듯 사라지고 훈훈한 봄기운이 감돌아야 진정한 통일이다."
 김진경 총장(왼쪽)이 2010년 10월 25일 북한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입학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제공] 출처: 중앙일보 사이트 2010-11-01
2. 그에게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가?
무엇보다 학도병으로 참전한 전쟁터에서 적군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뜻을 세웠다는 그 자체로 존경스럽다. 초지일관 준비하고 실천함으로싸 그는 명실상부한 러비스터가 되었다.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청소년기애 삶과 죽음이 오가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적군의 나라를 위한 뜻을 세운 사례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절박한 상황, 절실한 심정으로 기도한 뜻을 변치 아니하고 '죽기로써' 실현하여 하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삶이다.
기도의 힘은 강하다. 뜻을 심고 키우게 한다. 그는 청소년기에 지천명(知天命)한 것이다. 우주도 숨을 쉰다. 허공법계는 살아 있다. 기도는 우주의 호흡과 박동에 맞추는 것이다.
죽음 앞에 의연한 모습이다. 김구 선생이 장개석 총통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유연한 계기로 주어진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였다. 장개석 총통과 군대 사열을 할 때에 폭탄이 투척되자 장 총통 등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혼지백산할 적에 오직 김구 선생만은 아무 일이 없었던 듯 의연하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장개석 총통은 "아!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를 느끼고 난 후부터는 호의적으로 대하고 독립운동 지원에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김진경 총장이 사형선고 받은 후도 의연하게 지내며 장기기증의 뜻까지 기꺼이 유언을 남기는 모습에 감동을 준 것이다. 사생관이 서야 몸으로부터 마음,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진실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다. 느낌(感)이 와야 움직인다(動)! 진정성, 공감성, 일관성, 확신성! 이 네 가지를 갖출 때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삶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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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하하! 김진경 총장님이 이렇게 훌륭한 분인지 몰랐습니다. 그분의 사상에 공감합니다.
통일 후 그래도 북한 주민에게 할 말은 있어야 합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과기대 규모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약 10년 전에 평양에 빵공장을 설립한 것입니다.
하루 빵 4만개로 시작하여 지금은 그들의 요청에 의해 국수공장으로 바뀌었지요!
그 어린애들의 코찔찔 흘리며 쾡한 눈망울이 지금도 눈앞에아른거립니다.
그 빵과 국수먹고 애들이 조금은 그 모습에서 벗어나면 좋았을 것인데요!
38선에 봄은 언제 오나요? 개성공단을 비롯하여 春來不似春이외다. 하하하! 안타깝네요!
다시 보니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김진경' 총장님인데 '김진명' 총장님으로 오타를 범했습니다. 더 신중, 조심하겠습니다.
마당바위님 덕분으로 김진경총장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군요.
정말 본 받고 싶습니다.
항상 마음을 밝히며 살아야겠네요.
원심님...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초지일관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시어 삶은 살 만 한 것 같습니다.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네`~! 그렇습니다 ! 눈에띄;지 않으나..그런분들에 의해 삶은 살맛나는것~!! 감샤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