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면(富利面) 양곡리(陽谷里)
부리면의 중심지를 이루는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으나 비교적 낮은 야산지대에 속하며 북쪽으로도 야산지대가 펼쳐지고 들이 많은 지역에 양곡리는 자리한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현내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부터 여러 냇물을 합치면서 북쪽으로 흘러와서는 평촌리를 거쳐 금강으로 들어가는 현내천이 흐르면서 조성하는 들이 양곡리의 중추적 들을 조성하는 근원이 되는 것 같다. 금산읍을 기점으로 무주로 통하는 국도가 지나가고 북쪽으로는 선원리와 창평리를 가로지르며 금산읍으로 통하는 또하나의 도로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길게는 수통리 수통골 금강변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어서 부리면에서는 교통의 중심지이며 또한 행정의 중심지가 양곡리다.
인류의 정착은 백제 전후로 본다. 백제 때는 부시이현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이성현에 속했었다. 고려 때는 초기에 부리현에 속했다가 제19대 명종 5년(1175)부터는 감무(監務)가 다스리는 지역에 속했으며 제25대 충렬왕 31년(1305)부터는 금산군에 속했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명문들이 정착하여 부락을 형성하면서 들이 급진적으로 개간된 지역이며, 이어 야산지대에 인삼밭이 점차로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금산군 부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경당리, 두곡리, 미양리의 일부와 부서면의 불이리 일부와 부북면의 수파리 일부를 병합하여 미양과 두곡의 이름을 따서 양곡리라 하고 전라북도 금산군 부리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양곡리가 되었다. 리의 면적은 5.967㎢이며 해평길씨(海平吉氏), 남원양씨(南原梁氏), 가 많이 거주한다. 1924년 3월 18일에 설립된 부리초등학교와 1968년 11월 20일에 설립된 부리중학교가 있다.
감무(監務) : 고려시대 현령(縣令)을 둘 수 없는 작은 현(縣)의 감독관. 1106년(예종1)에 유주(儒州:오늘의 황해도 신천(信川)), 안악(安岳), 장연(長淵) 등 41현에 감무를 두었다. 이 관직은 조선 시대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오다가 나중에 현감(縣監)으로 개칭 되었다.
자연부락(自然部落)
<말골, 미량리, 유문, 정당두>
말골
정당두 서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골 또는 두곡리라고 부른다. 마을 뒷산의 모양이 곡식을 되는 말(斗)처럼 생겼으므로 말골 또는 두곡리(斗谷里), 두곡이라고 부른다.
미량리
말골 길과 들 건너에 있는 마을을 미량리 또는 미양리(美陽里)라고 부른다. 동북쪽으로는 예미리로 넘어가는 갈마고개가 있으며, 마을 뒤로는 마라지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동남쪽에는 사리봉이라고 부르는 산이 있으며, 동북쪽에는 양곡제라고 부르는 못도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마을 앞 버드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었으므로 밀양(密楊)이라고 불러 오다가 변하여 미양리(美楊里), 미량리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정당두
말골에서 길 건너 서북쪽에 있는 마을을 정당두라고 부른다. 도한 경당리(京堂里)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옛날에 한양에서 내려온 한 선비가 후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곳에 서당을 짓고 글을 가르쳤으므로 서당골 또는 글을 읽는 신성한 곳이라 하여 경당골이라고 부르다가 변하여 정당두라고 부르고 경당리라고도 부른다. 밀양박씨(密陽朴氏), 해평길씨(海平吉氏)가 많이 세거한다.
유문
미량리 서쪽에 있는 마을을 유문(柳門)이라고 부른다. 마을 앞 냇가에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므로 유문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