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단하게 해석하면 짧은 말로 정곡을 찌른다는 얘기일 텐데, 그 적나라함에 기가 죽는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아주 작은 쇠붙이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니! 등골이 서늘하다. 같은 뜻은 아니지만 예전에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며 오싹했던 적이 있다. 피로 맺은 형제보다 두터운 우정을 나누던 친구가 갑자기 옆구리에 칼을 들이대는 상황의 사자성어인 '무간지옥'. 물론 이 말도 가까운 사이를 경계하라는 뜻이겠지만.
요즘 날카롭고 무질서한 말들이 우리 주변에 넘친다.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타고 급격하게 확산하고 있다. 세상살이가 바쁘다 보니, 아니 너무 편리하고 즉각적인 반응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디지털 인프라가 사회적 분위기를 그쪽으로 몰아 가고 있다.
단순하고 명쾌한 말이 나쁠 리는 없다. 그러나 생각 없는 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불친절하고 배려하지 않는 '짧은 말'들이 상처를 남긴다. 물론 대다수 침묵하는 사람들보다야 백 번 낫겠지만, 때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쯤 해서 편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중에서 연애편지라면 더 실감이 나지 않을까. 아주 오래전의 추억을 돌이키는 일이 되겠지만, 편지 한 통을 쓰려고 밤을 지새운 기억이 제법 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새벽별이 뜨는 시간에야 겨우 한 통의 편지를 완성한다. 거기에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기까지 또다시 여러 날의 망설임이 필요하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순간에도 아직 봉인하지 못한 편지를 열고 읽고 또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P.S(추신)를 적는 간절함이라니!
이런 과정을 거쳐 글을 익힌 사람들은 글을 문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글'이 곧 '마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글은 정신의 지문"이라고 했다. 글 속에 나의 혼이 담겨 있다는 소중함과 절실함은 좋은 글을 쓰게 한다. 글은 내 마음을 오롯이 전달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겠지만,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느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은 글쓰는 사람으로서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에 해당한다.
앞서 말했듯이 짧은 글은 망치로 머리를 때리듯 상대방을 정신 번쩍 들게 할 수 있으나, 상대를 공감하고 감동하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 간에 주고 받는 실시간 대화 등과 같이 글 쓰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글을 쓰는 데 있어서 "제대로 된 한 문장을 완성하고, 세 문장 이상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한 문장의 기본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기본 구조를 갖추는 것이고, 세 문장 이상을 쓰라는 권고는 '기승전결'로 한 단락을 잘 마무리짓는 것을 의미한다. '기'와 '승'은 하나로 묶어도 큰 문제가 없을 터이니, 세 문장이면 최소한의 의사소통 구조가 완성되는 셈이다. 곁들여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나에게는 한때 특이한 글쓰기 습관이 있었다. 여행지에서 집으로 나 자신을 수신인으로 하는 엽서를 간혹 보낸 적이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와 내가 보낸 엽서를 다시 받아 보는 느낌은 색다르다. 엽서 안의 풍경과 느낌을 기록한 짧은 글은 그때 그곳에 있던 나를 아주 생생하게 복기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바쁘게 휘갈겨 쓴 엽서의 문장들을 제대로 고쳐 다시 쓰는 일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을 주었다. 때로는 그 짧은 글이 확장되어 그럴싸한 여행기 한 편으로 완성될 때의 희열과 성취감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글은 삶의 반영이다. 일상에서 캐낸 보석 같은 글들은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타인의 삶이나 우리가 속한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가꾸고 옷매무새를 갈무리하듯,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성찰하고 소통하는 행위는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고유한 재능이며 소중한 자산이다.
글은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 내 인품과 타인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모국어를 잃은 민족은 역사적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한 토막의 글은, 내가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존재와 삶의 수준을 결정한다. 제대로 된 글로 나를 빛내고, 따뜻하고 성숙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