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 부터 온 집안과 식구들을 휘저어 놓고 다섯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섰다. 저만큼 큰 길에 내가 타고 갈 917번이 휙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약간 불안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한 20분 기다리면 또 오겠지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20분이 지나도록 여러 대의 버스가 지나갔지만 917번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은 어느새 여섯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ㅇ민이가 태워다 준다고 할 때 사양하지 말걸...'하고 막 후회가 되었다.
할 수 없이 과천까지 가서 다시 양재동 가는 버스로 갈아 탈 요량으로 사당동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안양 비산동에서 길이 막혀 버스는 굼벵이 걸음을 한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달래며 "에이 태워다 달라고 할껄 괜히 사양했네" 하는 후회를 또 한번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과천에 내렸는데 바로 뒤에 917번이 오는 게 아닌가 ㅋㅋ...
결국은 우리동네에서 조금 더 기다리다 타면 될 버스를 돌고 돌아 과천에 와서 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늦어서 출발시간이 지연된다면 미안한 마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그렇게 조바심을 친 것이었다.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거침없이 달렸다. 토요일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정체되는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야는 연한 색갈로 칠해진 한 폭의 수채화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북부친구들의 물량공세? 아니 애정공세가 시작되었다. 김밥을 시작으로 직접 쑤었다는 메밀, 청포묵과 떡 그리고 십년을 묵혔다는 칡주와 포도주...... 음식과 함께 먹은 것은 따뜻한 인간미와 진한 우정이었다
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나같이 게으르고 일을 겁내는 사람은 엄두조차 내보지 못할 일이라는 사실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버스는 경주에 도착하였다. 풍기.울산.부산 등지의 친구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준비해 놓은 샤브샤브 칼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등산을 하였다.
삼릉 소나무 숲을 지나서 오르는 경주 남산은 그런데로 무난한 편이었다. 날씨는 포근하였고 간간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등과 이마의 땀을 식혀 주었다.
등산로 옆에는 여러 기의 무덤이 산재해 있는데 오랜 세월 풍상에 찌들은 듯 봉분이 편편해 지기는 했지만 크기로 보아서 평민의 무덤은 아닌 듯 하였다.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남산은 명당자리가 많아서 조상의 무덤을 쓰면 후대에 발복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는데 자손이 복을 받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많이 미끄럽긴 했지만 전원 무사히 등산을 마쳤다.
이어서 울산의 두 친구가 마련한 만찬장이 있는 감포로 향하였다. 감포는 신라 문무왕릉인 대왕암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대왕의 혼이 깃들어 있어서인가 바람이 엄청 세고 방파제를 때리는 파도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넓은 창으로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2층 횟집에서 소주를 꽤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체질적으로나 혈통적으로는 술이 전혀 안받는 편은 아니지만 삼십대에 얼떨결에 받아마신 폭탄주로 속병이 나서 고생한 적이 있기에 2잔 이상은 마시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그런데 그만 친구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서 과음을 해버린 것이다.
각지의 친구들과 후일의 기약과 함께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도곡동 벨라지오 커피샵 앞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0시57분 감포에서 출발하면서 집에다 SOS를 쳐놓았기에 허둥대지 않고 무사히 귀가했어요.
[추신] 만찬 준비하신 두 친구님 감사해유. 마음의 '화수분'을 선물로 드립니다.
|
첫댓글 수자작가님 덕분에 화기애애한 금풍회의 하나된모습 더욱빛이 남니다....
산본댁글 오랜만에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