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의 군사적 임무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포동 미사일을 중간에서 요격하여 공중분해 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차하면 북한을 초토화하는 것이다.
미사일 방어체제에 대해서는 6.20일 정도에 자신감 있을 정도의 준비태세를 완료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격용 군사력, 사상 최대 규모의 정보-공군-해군 전투력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했다. 미사일 발사는 곧 군사적 적대행위이기 때문에 공격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미사일을 개발하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주권 사항이라 말하지만 부시는 “핵무기를 가진 믿을 수 없는 나라가 장거리 탄도탄을 발사하는 것은 세계인들을 불안-초조하게 하는 짓이며, 미국과 연합국에 대한 도발행위”이라고 응수한다.
“미사일 발사는 미국의 자작극”이라고도 했고, 1998년도와 같이 위성을 발사하는 것이라고 둘러대 보기도 했다. 그것이 통하지 않자 오늘은 “미사일은 언제든지 발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사실적인 협박을 했다.
북한은 마치 발사할 것처럼 미사일을 추켜 세워놓고, 미국에 대화를 요청했다. “미사일이나 위성 발사는 주권에 해당하지만 미국이 그렇게 불안하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1대1 대화를 하자”. 참으로 유치하고 낯뜨거운 게임인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턱도 없는 소리라며 화를 낸다. “대화를 미사일 협박으로 이끌어 낼 수는 없다. 미국은 협박에 굴복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고약한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겠다는 자세다.
침묵하던 중국도 아침에는 북한에 ‘경고’를 한다고 하더니 오후에는 ‘우려’한다고 톤을 한층 높였다. 이는 중국까지도 북한이 미사일을 진짜로 발사할지 모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은 미사일이 일본 땅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싸여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정부는, 북한의 기술이 아직은 부족해서 이번 미사일에는 핵무기가 장착돼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도를 했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뜻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지금 연합국 군사력이 한반도에 집결돼 있고, 미국과 일본의 최고 탐지 시스템이 대거 동원되어 전개대 있다. 북한 상공에 공격적인 항공정찰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건수를 기록해 가면서 미국에 신경질을 내며. 계속하면 격추시킬 것이라는 협박도 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대공포를 날리면 이는 미국이 바라는 바다. 무자비한 폭격인 것이다.
세계의 귀와 눈이 모두 미국 국방기관과 정보기관에 집중돼 있다. 일본 해역에는 미일 구축함들이 우글거린다.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시된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렉싱턴 연구소에서 탐실상을 보는 것은 사실 TV를 보는 것 같이 상황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전쟁이 나면 미국과 일본군이 전쟁을 치룰 작정이다. 노무현에게는 10개월간 전화 한 마디 걸어주지 않으면서, 고이즈미에게는 친구처럼 심심하면 전화를 걸 정도라 한다.
손충무 선생에 의하면 고이즈미가 이번 미국에 가는데 부시가 자기의 전용기를 일본에까지 보내준다 한다. 이런 예는 역사 이래 없었다 한다. 함께 전쟁을 치르자는 가장 강력한 전우애의 뜻으로 보인다.
2006.6.22
(오늘 정대협이 걸은 고소에 대해 수원검찰에 가서 여러 시간 조사를 받고 왔습니다. 오늘이 세 번째입니다. 그리고 손님들도 오셨구요. 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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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에 대한 상식, 확산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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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1권 434-476)
*정대협이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억울한 인생들을 두번 세번 죽이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만행입니다. 이를 널리 알리는 것도 동네 유지들의 임무입니다*
정신대의 모든 것
정신대(挺身隊)라는 용어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자진하여 몸을 바치기 위한 부대”라는 뜻이다. 정신대의 시발은 조선의 학생, 농부, 주부, 일반백성들이 일본의 전쟁수행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희생정신을 가지고 몸을 바쳐 돕자는 취지에서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들이었다. 원래 정신대라는 용어는 일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일본에 충성을 표시하려는 조선인들이 1941년 초부터 만들어낸 말이다. 당시 조선사회에 이런 모임은 매우 다양하게 결정되었고, 전국적으로 확산됐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지 직전인 1941년 11월에 근로자들이 대규모로 필요하게 됨에 따라 ‘국민근로보국협력령’이 발령되어 대대적인 노무동원이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남성은 16-40 미만, 여성은 16-25세 미만의 미혼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포고령이 발령됐지만 실제로는 남성들만 징발이 되었다. 당시 일본정부는 여성에 대해서는 동원을 피하고 가급적 지방 기업들에게 일을 하라는 정도의 권고만 했다.
1940-44년 사이, 미국의 여성근로자는 50%나 급증한 반면 일본이 고용한 여성은 불과 10% 증가했다.
1944년 1월, 일본총리 도오조는 항공기 제작 및 기타 중요 기간산업체들에서의 노동을 위해 여자근로정신대를 발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서부터 여성을 근로 현장에 본격적으로 투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게 되었고, 1944.8.22에는 일황의 칙령 제 519 호로 포고되었다. 12세 이상 39세 미만의 여성을 징발하는 것이었다. 봉사기간은 1년, 그리고 나중에 2년으로 연장되었다. 동원된 조선인 부녀자는 간호보조, 군수품생산, 기타 전시 잡역에 종사했다.
가장 유명한 정신대의 중의 하나는 ‘토요카와 여자근로정신대’이다. 아이치 현에 위치한 토요카와 해군병기공장에서 일한 여성근로정신대를 뜻하는 것이다. 이 정신대는 1944년 여름에 편성되었다.
당시 일본은 게이샤 바를 포함한 모든 유흥업소들을 폐쇄시켰기 때문에 거기에서 일하던 식모, 점원, 접대부는 물로 가정에 있던 미취업 소녀들까지도 대거 참여하거나 동원되었다. 이들 정신대들에 가장 큰 고통은 식량난과 폭격이었다.
정신대는 근로의 성격상 최소한 당시 국민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만 차출되었다. 서울, 인천, 광주, 부산에 있던 중학 및 실업학교 여학생들이 대거 정신대에 동원됐다. 정신대 차출은 학교 교사들이 했다. 형식은 지원제였지만 고사들에게는 할당량이 부과되었다. 이런 할당제는 지금의 한국의 행정현실과 똑같은 것이었다.
“정신대원들은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들에서 일했지만 일부는 일본, 만주, 중국, 싱가포르 등지의 공장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파견된 사람들은 회사 기숙사에서 지냈다. 기숙사 료모는 항상 아침에 배웅하면서 격려의 말을 해주었고, 료부는 차를 태워 공장으로 바래다 주었다. 하루에 8시간 일을 했고, 매주 하루를 쉬었다(해방전후사의재인식 447쪽). . 이들은 노임을 저축하여 전후에 학업을 계속했다(553쪽)”
“정대협의 대표 윤정옥은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성문제와는 관계없이 근로만 했던 정신대가 있었다, 대구 근처에 있던 방직공장, 큐수의 오무타와 나가사키에 있던 탄광에서, 나고야에 있던 미쓰비시 비행기공장 등에서 일을 했다. 우리가 종군위안부라는 뜻으로 정신대라고 할 때, 이들에게 상당한 폐를 끼친다”(해방전후사의재인식 450쪽)
“1999년 3월1일, 다섯명의 옛 정신대 여성들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 일부는 가명을 사용했고, 다른 일부는 얼굴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자신들이 위안부로 오해받는 일을 피하려 했다.”(해방전후사의 재인식 452쪽)
정대협은 즉시 단체 이름 바꿔야
정대협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약자이며 사업 내용은 ‘일본군 위안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회단체 이름을 보면 정신대를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하지만, 실제 사업내용을 보면 종군위안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정대협은 우리 사회에 정신대가 곧 일본군 위안부인 것으로 인식시켜 왔다. 그러나 정신대와 위안부는 너무 다르다. 따라서 정대협은 중요한 역사 및 사회적 이슈를 왜곡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정대협은 위대협(위안부문제대책협의회)으로 즉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전대협은 위안부를 정신대로 혼돈할 정도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너무 모른다.
결론적으로 “정신대=위안부”라는 등식은 이 사회로부터 즉시 사라져야 하며 이제부터라도 역사적 사실을 바로 확산해야 할 것이다. 정대협은 단체 이름을 하루라도 빨리 바꾸고, 이제까지 잘못 확산시켜온 역사적 사실을 적극 시정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정대협’이라는 이름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정신대 명칭 사용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야 할 것이다. 정신대 측이나, 일본군위안부 측이나 또는 역사를 바로잡을 권리가 있는 시민단체 또는 자연인이 나서게 될 것이다.
정대협의 죄과
이렇게 성격, 생성시기, 숫자가 천지차이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정대협은 매우 무책임하게도 “정신대=위안부”라는 등식을 온 사회에 확산함으로써 1)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고, 2) 분리해야 할 정신대와 위안부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적 신뢰를 상실케 했고, 3) 사과와 오렌지처럼 전혀 다른 문제를 한 군데로 섞음으로써 두 가지 문제 모두를 풀지 못하게 했고 4) 정신대에는 정신대대로, 위안부에게는 위안부대로 모두의 명예를 훼손했다.
정신대로 동원된 여인들은 기계에 팔다리가 잘리고 갖가지 부상과 질병에 신음해 왔다. 이들은 정정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디니며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했지만 정대협이 “정신대는 곧 위안부다”라는 왜곡된 역사관을 확산시키는 바람에 창피하여 손해배상 청구를 단념해 왔다는 것이 정신대 측 사람들의 하소연이다.
2006.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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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없는 삶이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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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물론 수많은 세계인들을 이렇듯 불안하게 하는가? 하늘에서 정해준 짧은 인생, 매일 매일 행복하게 살아도 부족한 이 마당에 저들 인간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인종이기에 오직 남을 괴롭히는 일 밖에 할 줄 모르는가?
북한이라는 존재를 아예 잊고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매일 같이 촉각을 세우고 깨알 같은 외신 기사를 추적하는 것도 이제는 질력이 난다.
사무실은 유리창 벽이라 덥고,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몸의 컨디션이 저조하여 틀 수가 없다. 북한 빨갱이 남한 빨갱이 모두가 총동원되어 지칠 줄 모르고 차기 정권 창출을 위해 세포분열을 한다. 기막힌 위장으로 우익들의 마음까지 빼앗아 가고, 우익들은 빨갱이들의 얇팍한 감언이설에 박수만 치고 있다. 몇 사람이 좁은 인터넷 공간에서 아우성을 쳐 봐야 대세는 기울었다는 생각만 든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무엇 하나 맺고 끊는 게 없이 북한에 질질 끌려만 다닌다.
비전 자체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육체와 정신이 급격히 쇠퇴함을 느낀다.
퇴근 할 때면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신발신기가 거북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일어나기가 싫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촌닭 졸듯이 잠이나 오고, 무엇 하나 신나는 게 없고 . . . 총체적 무기력 증에 접어들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모양이다.
북한만 멀리 하고 살 수 있다면, 남한의 빨갱이들도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다.
남한 빨갱이들을 정권으로부터 멀리 몰아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북한같이 더럽고 귀찮은 존재를 멀리 멀리 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군사력으로 위협해도 정부가 막아주고, 간첩도 정부가 잡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대포동 2호가 미국 땅에 떨어질 수 있다고 연일 뉴스매체들이 요란을 떨어도 미국인들은 태연하다.
“그것은 나의 영향력이 미칠 수 없는 곳의 일이다. 그런 일로 걱정하면 스트레스만 쌓인다 그런 걸 해결해주기 위해 정부가 있는 것 아니냐. 나는 걱정 안 한다. ”
우리도 이런 미국인처럼 살았으면 참 좋겠다.
멀리 멀리 북한을 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당 하나 만들어 줄 사람 없는가?
2006.6.23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