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스포츠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설령 판정이 공정하지 않다 하더라도 판정은 심판 고유의 권한이고 누구도 번복하게 할 수 없었다. 심판의 판단 보다 더 좋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디오 기술이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검색을 하는데 시간을 많이 허비해야 했기 때문에 경기진행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때는 그랬다.
지금은 어떠한가? 영상 기술의 발달로 인해, 육안으로 구분하지 못했던 장면을 즉석에서 수백분, 수천분의 1초까지 단위로 재생할 수 있게 되었다. 객관성을 근거로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에 항의하는 관중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판정방법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개정·시행하는 종목별 수장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스포츠 정신, 상투적 구호가 아니다
이러한 변화의 공통점은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기준에 따라 명명백백한 결과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똑같은 행위인데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판정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스포츠 정신이고, 경기의 판정에 대한 추세이고 대세다.
환영할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가 추구하는 바이다.
"룰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정정당당한 스포츠"
애매모호한 상황을 즐기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스포츠의 장에서 의기양양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애써 정한 규정은 내팽개치고 제멋대로 결과를 조작하면서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하고는 세상이 다 그렇다며 얼버무리는 것을 스포츠라고 할 수 없다.
더 이상 온당치 않은 판정을 인간미라고 미화하는 얼토당토 않는 말장난에 스포츠가 현혹돼서도 안 된다.
기술적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몰라도,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진실을 호도하는 어떠한 행위도 스포츠에서는 정당화 될 수 없다.
탁구, 최고의 스포츠가 되라.
탁구는 가장 신사적인 스포츠다.
탁자 위에서 하는 가장 고상한 스포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