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문수사리여, 비유컨대 어떤 가난한 여인이 집도 없고 구원할
이도 없는데, 병까지 걸리고 기갈에 못 견디어 거지로 다니다가,
어느 객점에서 아기를 해산했으나 객점 주인에게 쫓겨나서,
아기를 안고 다른 데로 떠나가다가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옷이
젖고 떨리는 고통이 막심한 가운데, 모기·등에·벌 따위에게 뜯기었습니다.
항하를 지나게 되자 아기를 안고 건너는데 그 물 흐름이 세찼으나
아기를 놓지 않아 모자가 함께 물에 빠져 죽어 이 여인이 아기를
사랑한 공덕으로 죽어서 범천에 태어남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만일 어떤 선남자가 바른 법을 보호하려거든 여래가
행법과 같다고도 같지 않다고도 말하지 말고, 다만 스스로 책망하기를 '
내가 어리석어 지혜의 눈이 없으니 여래의 바른 법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를 가리켜 함이 있다 함이 없다고도 말하지 말지니,
만일 바른 소견을 가진 어떤 이면 여래는 결정코 함이 없는 법이라
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에게 선한 법을 내게 하며,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이오니 저 가난한 여인이 항하를 건너다가
아기를 사랑하여 생명을 버림과 같은 까닭입니다.
선남자여, 법을 보호하는 보살도 그와 같아서 생명을 버릴지언정,
여래가 함이 있는 법[有爲法]과 같다고 말하지 말고, 함이 없는
법과 같다고 말할 것이니, 여래가 함이 없는 법과 같다고 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마치 저 여인이 범천에 태어남과
같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말하건대 법을 두호한 까닭입니다. 어떻게 법을
두호하였는가. 여래가 함이 없는 법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이런 사람은 해탈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해탈을 저절로
이룰 것이니, 저 여인이 범천에 나기를 구하지 않았지만 범천에
나게 된 것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다가 도중에 피곤하여 남의
집에 들어 잠이 들었을 적에, 그 집에 불이 일어나므로 깜짝 놀라
깨어보니 뛰어 나갈 기운도 없고 죽을 것이 틀림없으나 부끄러운
생각을 머금고 옷으로 알몸을 둘렀더니, 목숨을 마치고는 도리천에
태어나고, 그 뒤부터 여든 번이나 대범천왕이 되었으며, 백천 대가
되도록 인간에 태어나서 전륜왕이 되었고, 이 사람이 다시는
나쁜 갈래에 나지 아니하고 항상 안락한 곳에 난 것과 같습니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인연으로 부끄러움이 있는 선남자는 부처님이
행법과 같다고 보지 말아야 합니다. 문수사리여, 외도들의 나쁜
소견으로는 여래가 함이 있는 법과 같다고 하려니와, 계행을 가지는
비구로는 부처님께 대하여 함이 있다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 말하면 이것은 허망한 말이니,
이런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기를 제집에 들어가듯 할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진실로 함이 없는 법이오니 다시는 여래가 함이
있는 법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나고 죽는 속에서 무지한 생각을 버리고 바른
지혜를 구하여 여래가 함이 없는 법인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여래를 관찰하면 32상을 구족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이다."
그 때 문수사리법왕자는 순타의 말에 감탄하여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장수할 인연을 짓고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이며 변하지 않는 법이며 함이 없는 법임을
자세하게 알았으며, 이제 또 이와 같이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리웠으니, 마치 불에 타서 죽을 사람이 부끄러운 생각으로 옷으로
몸을 덮어 가리우고,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나서 범천왕이 되고
또 전륜왕이 되며,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쾌락을 받듯이,
그대도 여래의 함이 있는 모양을 덮어 가리운 인연으로 오는
세상에서 32상과 80종호를 얻을 것이고, 보살·2승으로는 따를 수
없는 18불공법(不共法)을 구족할 것이며, 한량없는 수명으로 생사에
들어가지 않고, 항상 안락을 받다가 오래잖아 응공·정변지를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