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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독님…왜 요즘 글 안올리세요?”
주일 밤, 전남 나주에서 집회를 마쳤을 때, 어느 집사님이 다가와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의 탈진해 있던 나는 그 말에 그저 웃음이 일었습니다.
“글을…계속 올릴까요?”
그렇게 묻자 집사님은 너무 기다리고 있다며 반갑게 웃고 떠났습니다.
나주에서도 제 글을 기다리는 분이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아는 목사님의 강청에 의해서 나주에 갔는데 전남 고흥의 바닷가에서 사역하는 J목사님의
암투병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아들과 가정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데려다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키우신 귀한 사역자가
여러가지 암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소식이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저는 전화로 강력하게 기도해 드리고 꼭 한번 가겠다고 했는데 마침 오전 11시 예배를 마치고
저녁 집회까지 시간이 비어서 급히 고흥으로 떠났습니다.
사실 나주에서 고흥까지는 거의 세시간이 걸리는 길이어서 집회 전까지 오려면 부담이 컸습니다.
같이 기도하기 위해서 대전에서 내려온 킹덤빌더 형님과 국도를 엄청난 속도로 달려서
2시간 만에 고흥의 바닷가를 만났습니다.
오늘 길에 아주 미묘한 영적공격들을 감지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등불을 섬기는' 헌신을 사단은 그냥 두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공의가 나타나는 것을 항상 방해하고 치밀하게 교묘하게 공격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악의 영들과의 영적 전쟁이다”(엡6:10-)라고 했습니다.
이 ‘씨름’은 당시 올림픽에서 하던 ‘레슬링’을 의미하는데, 상대방을 집요하게 사로잡고 압박함으로
넘어뜨리는 그레코 로만형 경기입니다.
흑암의 ‘압박전술’은 교묘하고 치밀하며 어떤 것은 섬뜻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당연히 이 공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두려워 하거나 눌려서 살면 안됩니다.
오직 전신갑주를 입고 이겨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믿음의 방패가 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차용해다가 쓴 것은 로마의 '투레오스'라는 중무장 방패입니다.
이것은 방패로 성의 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곱겹의 소가죽으로 만든 것인데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어린 양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은 원수의 공격과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强力)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4
후에 깊이 나누겠지만 어린 양의 보혈이 성령의 권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슬기로운 여인들은 이 능력과 지혜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것이 깨어 있는 것이요, 믿음에 서 있는 것입니다.
나로도 옆에 있는 그 바닷가는 여전히 아름답고 지중해처럼 푸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틈도 없이 곧바로 성도들을 모으고 목사님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그 동안도 기도하셨지만…오늘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만을 바라보며 강력하게 간구합시다.
강청하는 과부의 간구처럼 모든 흑암의 참소와 공격을 무너 뜨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나타나도록…”
그렇게 나누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혼신으로 함께 기도하고 곧 바로 다시 나주로 왔습니다.
이미 그 기도로 목이 다 쉬어 버렸습니다.
마치 옛날 부흥회같은 분위기에서 강단에 서자 어디서 인지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순수한 영혼들과 말씀을 나누고 뜨겁게 기도를 마쳤는데 너무나 탈진했습니다.
평소같으면 책을 구입하는 분들에게 싸인이라도 할텐데 몸이 움직여 지지 않아 한 구석에 서있었습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이 반가운 얼굴로 오더니 “왜 글을 안 올리세요..너무 기다리고 있는데..” 하는 겁니다.
사실, 그분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재림에 대한 비유와 말씀들을 연구하면서 나 자신이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것들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들이 깊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아주 예민하고
중요한 것이므로…조금은 절제하고 더욱 연구하여 확신이 서면 나누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피곤해서인지 그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진리의 성령님께서 새로운 국면으로 저를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올해 초 이스라엘과 뉴욕을 다녀 오면서 그 인도하심을 더욱 느낍니다.
성령님은 “내 것을 가지고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요16:`14)하신 주님 말씀처럼 예수님의
본질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그분은 “진리의 영’(요14:16)이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길을 이끄십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3
저는 그동안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 주님의 깊고 다양한 능력과 사랑, 십자가와 보혈의 깊이를 누렸습니다.
이 지면으로 다 나눌 수 없는 하늘의 보화들을 만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성령님은 그전에 깊이 주목하지 않던 “랍비 예수님”을 보게 하십니다.
어떤 분들에게 생소할 것 같은 이 개념은 복음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예수님을 구원과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로 믿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을 세밀히 살피면 그 시작이 항상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은 패역한 시대, 하늘의 지식과 진리가 상실된 시절에 진정한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을 “선생님”(랍비)으로 부르고 많은 이들도 랍비로 칭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요1:38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요한복음 4:31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마가복음 14:45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태복음 23:8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일 뿐 아니라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스승이십니다.
저는 요즘 마리아처럼 그 좋으신 선생님 무릎에 앉아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구하며 진리를 탐구할 때에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경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41,42
저는 이 ‘좋은 편’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은 “주의 발치에 앉아서 그의 말씀을 듣는 것”(눅10:39)입니다.
그동안 저 또한 마르다처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마치 휴식처럼 이스라엘의 선생님이신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분의 발치에 앉은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하던지요!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들을, 안목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진리들을 발견하고 깨달았습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한 월요 기도회에서 그런 깨달음의 작은부분들을 나누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것들은 나누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새삼,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 이토록 놀랍고 위대하고 좋구나!”하고 혼자 즐거워했습니다.
더욱 깊이 연구하고 좀 더 확실하게 정리한 것들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보니
쉽게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주에서 한 집사님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그냥 “쓸게요”라고 말을 하고 만 것입니다.
작은 일화지만 그것을 빌미로라도 다시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욱 깊은 것은 후에 정리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몸을 추스리고 워밍업을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2.
‘속전’에 대한 글을 쓰다가 멈추었는데, 그전에 ‘열처녀의 비유’에 대한 글을 좀더 쓰고 속전을 마무리 하지요.
열처녀의 비유에서 따로 ‘기름’을 예비한 ‘슬기로운 여인’들만 신랑이신 예수님과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 갔음을 압니다.
이미 '등불'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나누었지만 그 ‘슬기로운 여인들’은 누구인가가 궁금했습니다.
분명 주님의 이 땅에 오심은 ‘율법의 완성’이고 그 말씀 역시 그러합니다.
마지막 때에 대한 주님의 말씀들을 깊이 살피면 그것은 거의 구약의 언약과 예언들을 성취하시는 것들입니다.
구약에서 가져 오신 그 의미들을 깊이 알아야 그 하신 말씀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24:30,31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의 가장 극명한 징조요 상황입니다.
주님이 이시는 그 때에 큰 나팔소리와 천사들을 보내어 그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구약의 예언과 언약을 알아야 그 정확한 의미들을 해석하게 됩니다.
후에 깊이 다룰 것이기에 간략히 나누자면 이것은 출애굽기 19장의 시내산에서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강림이 나타나는 것과 연결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중요한 모형입니다.
그 때도 불과 연기와 큰소리로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패턴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주님의 그 말씀은 이스라엘의 '나팔절'과 연관 됩니다.
'로쉬 하산나'라 불리우는 나팔절은 “새롭게 된다” 는 의미를 가진 신년행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중요한 절기와 행사, 하나님의 때와 뜻을 알리는 나팔을 자주 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나팔을 불어 그 '택하신 백성들'을 '사방'에서 모은다고 하신 것은 마지막 때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일어 납니다.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다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우리가 이 회복을 위하여 이토록 간구하는 그 방향, 그 길은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만
온전한 것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나팔소리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심지어 농사도 그 소리가 들리며 절기를 알리는 것이므로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의 때에 나팔을 불어 전 세계에 흩어진 택한 당신의 백성들을 모은다고 하심은 마치
나팔절에 제사장이 산위에 올라가서 온종일 나팔을 불어 예루살렘 성전(성막)으로 그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렘4:5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사27:13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의 이 예언들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말쓴 바로 다음에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를 이제 알 것입니다.
마태복음24장은 먼저 이스라엘의 환난(렘30장, 야곱의 환난)과 그들을 불러 모으시는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예를 들면 바울은 초대교회의 예배와 관련해 아주 생소한 것들을 말하는 듯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3:16
초대교회의 모임은 우선 예수님의 진리가 깊고 풍성하게 거하여 ‘모든 지혜’로 가르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매우 중요시 여겼습니다.
‘슬기로운 여인’은 성경이 말하는 ‘지혜로운 여인’이며 ‘현숙한 여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집회에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가 항상 있었습니다.
‘신령한 노래’는 무엇일까요?
바울만 이 말을 집중해서 사용합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갑작스러운 산물이 아니고 구약의 전통 가운데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다윗이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
대하25:1
다윗에게는 군대장관 만이 아니라 찬양을 하는 ‘악사’(樂士)들이 있었기에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그들은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여러 악기들과 함께 ‘신령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것의 원어적 의미는 ‘예언의 노래’입니다.
시편의 상당수는 이 예언의 노래들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깊은 영적인 예언, 퉁찰력, 기름부음 실제, 무엇보다 예수님의 길들이 들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스라엘에서 거의 사장 되어진 이 ‘신령한 노래’를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회복하여
‘영의 노래’로 항상 불렀는데, 바울은 그 말을 이렇게 구약의 전통으로부터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과 율법의 본질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부족한 우리는 그 영적인 전통의 중요함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도 ‘신령한 노래’의 의미를 누리지 못합니다.
저는 로마서9장-11장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바울의 변증을 연구하다가 매우 놀랐습니다.
그는 진정 자신이 증거하듯이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중 바리새인”(빌3:5)입니다.
언젠가 이 부분도 나누겠지만 구약의 언약과 그 의미를 너무나 깊이 다루고 있는 바울의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저 눈에 들어 오는 구절들을 현대적인 입장에서 해석하고 적용하기만 하면 그 진정성을 놓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슬기로운 여인들’도 갑작스러운 비유가 아니고 구약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그 개념을 잡아야 슬기롭고 지혜로운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게 됩니다.
3.
무릇 너희 중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다 만들지니
곧 성막과 천막과 그 덮개와 그 갈고리와 그 널판과 그 띠와 그 기둥과 그 받침과
증거궤와 그 채와 속죄소와 그 가리는 휘장과 상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과
불 켜는 등잔대와 그 기구와 그 등잔과 등유와 분향단과 그 채와 관유와 분향할 향품과
성막 문의 휘장과 번제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뜰의 포장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뜰 문의 휘장과 장막 말뚝과 뜰의 말뚝과 그 줄과
성소에서 섬기기 위하여 정교하게 만든 옷 곧 제사 직분을 행할 때에 입는
제사장 아론의 거룩한 옷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니라
출35:10-19
놀랍게도 이미 출애굽기에 '슬기로운 여인'의 본질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요즘 토라(구약)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 그분의 신부들의 갈 길과 마지막 때…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그 의의 실제가 다 나와 있음에 놀랍니다.
예수님은 그 본질을 삶과 말씀으로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슬기로운여인’은 명확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지혜로운 자”(출35:10)입니다.
히브리어로 ‘하캄레브’라고 쓰여진 이 ‘지혜로운’은 ‘슬기로운’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슬기로운 여인은 곧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거하실 성소(聖所)와 그 안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예복을
만드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마6:33)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에
이 삶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만을 구하며 ‘예수 죽인 것’, 십자가를 짊어지는 성도들입니다.
바울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달리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한”(고전2:2)자들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35장에서는 그 여인들이 자원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를 지을 물품들을 가져 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하늘의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 집을
건축하는 자들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잠14:1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잠14:7
잠언만큼 이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수없이 극명하게 거론하는 성경도 없을 것입니다.
잠언의 '현숙한 여인'이 곧 '슬기로운 여인'입니다.
그들은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 그 길(의,義)을 아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과 시간표를 아는 자들이며 그 길 위에 서는 자들입니다.
구약에서 이 ‘지혜’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지혜와 총명과 지식의 영이 부어진 분'(사11:1-3)이십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고전1:24)로 인식됩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마찬가지로 그런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께 속하여 지혜와 총명, 계시의 영을
가진 자들이며 성령의 권능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이신 그리스도와 온전히 합한 자들입니다.
그거싱 기름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님을 요즘 절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가 되는 것(롬8:17)입니다.
그냥 자기 열정, 의, 자아의 추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지혜와 총명을 받아서
하나님이 명하시고 지시하신 대로 인도되고 행하는 자들(갈5:16-25)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삶이셨음을 생각합니다.
성경을 조금만 구체적으로 살펴도 이것은 명확히 손에 잡히는 개념입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할지니라
출36:1
바로 이런 자들을 주님께서 ‘슬기로운 여인’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개념을 정확히 붙들고 ‘열처녀의 비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이어야 천국의 혼인잔치에 들어 갑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언약, 지시, 명하심을 따라)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마7:21)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귀신을 내쫓고, 선지자 노릇을 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불법'이란 '하나님의 언약, 뜻'이 아닌 자아로 부터 나오는 추구와 욕망입니다.
'법'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진정한 진리의, 언약의 길위에 서야만 합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인데 이것은 ‘열 처녀의 비유’에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마25:12
마지막 때에 기름을 예비하지 못해서 등불을 밝히지 못한 미련한 자들, 어리석은 자들이
뒤늦게 와서 혼인잔치의 문을 열어 달라고 두드렸지만 주님은 냉정하게 그들을 모른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저 감정적, 흘러 떠내려가는 집단적 안위, 확신으로는 들어 가지 못합니다.
오직 진리를 따라서 기름과 등불을 예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공의와 엄위((嚴威)를 가진 분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총명, 지식만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성령)’(사11:2)이 임하신 분입니다.
‘경외함’이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언약을 복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사랑하시고 ‘천국의 거처’(혼인잔치)에 들어 오게 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14:23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천국의 누림)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15:10
이것이 경외함의 진정성입니다.
그냥 마르다처럼 이리저리 분주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언약, 그 뜻을 알고 순종해야만 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생애를 이스라엘에서 가서 촬영하며 탐구하는 동안 그 치밀한 순종에 너무 놀랐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와 언약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제자인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그도할 것이요
요14:12
이 말씀에는 주님이 사신것처럼 우리도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과 진리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행하는 자들(슬기로운 여인)에게 오셔서
‘거처’(천국)을 함께 하십니다.
이 말씀만으로도 슬기로운 여인의 혼인잔치가 설명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랍게 이어지는지를 보십시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7:24,25
‘지혜로운 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 집(하나님 나라, 성전, 예수님의 교회)을 반석 위에 세웁니다.
이 반석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집은 ‘바람과 창수’(환난과 심판)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넉넉히 환난을 이겨내는 영혼이요 공동체입니다.
산상수훈은 마지막 때를 이기는 슬기로운 자들의 지침서입니다.
랍비 예수님에게서 그 하늘의 본질을 배우고 기름부음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환난과 심판에서 망한 것은 이 하늘의 지식을 가지지 못했고 그 언약에
순종하지 못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백성은 지식이 없어서 포로가 될 것이요,
귀족은 굶주리고 평민은 갈증으로 목이 탈 것이다
사5:13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4:6
그들의 이야기는 “말세를 당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된 말씀, 거울”(고전10:11)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을 깊이 연구하고 우리는 그릇된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지식과 지혜, 총명을 기름부음 받지 못하면 망하고 죽습니다.
저는 날마다 진리의 성령님께 하늘의 지혜와 총명, 그 언약의 길들을 구하고 구합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집을 세우기를 갈망합니다.
그럴수록 여전히 제가 얼마나 부족하고 어리석은가를 더욱 절감합니다.
4.
이제 이 슬기로운 여인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면 우리의 방향과 순종의 차원을
손에 잡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출35:25-29
이 안에 슬기로운 여인에 대한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등불과 기름을 예비하는 것으리 비밀이 이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슬기로운 여인’이 이미 출애굽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명확히 아시고 그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진정 신랑 예수님의 신부들입니다.
그 슬기로운 여인들이 들어 가는 ‘천국의 혼인잔치’는 그저 열정과 헌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진정 슬기로운 여인들은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하나님이 명하시고 지시하신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가져와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해야 합니다.
이 성소, ‘하나님의 집’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슬기로운 여인들’이 그 성소를 위해서 가져온 헌물(獻物)들을 살피며 놀랐습니다.
그 여인들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다”라고 합니다.
그 여인들이 가져온 ‘청색, 자색, 홍색의 가는 베 실’은 ‘세마포를 짜는 실’입니다.
그 색깔마다 다 영적 의미가 있고 어린 양 예수님의 본성을 계시합니다.
간략히 나누면 '청색'은 '하늘'의 거룩함과 영광을 나타내고 자색은 '자주옷'의 '귀인', '왕'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없애고 구속하는 어린 양이 흘리실 홍색은 보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실은 히브리어로 ‘쉐시’라 하는데 아마((亞麻)에서 뽑은 날실과 씨실로 세마포를 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 양 예수님, 십자가의 구속을 상징합니다.
이 세마포가 바로 ‘등불’(람파드, 횃불)임을 이미 나누었습니다.
신부들이 드는 그 등불은 횃불이며 세마포천으로 둘둘 감아서 만든 것입니다.
저는 계시록을 잠시 연구한 적이 있는데 매우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지막 때에 용으로 상징된 마귀가 하늘의 전쟁에서 미카엘의 군대들에게 패하여 땅으로 내어 쫓깁니다.
그 세력들은 광야로 피한 이 땅의 '여자'에게 본노하여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남은 자손'(Remnant)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슬기로운 여인', '신부'와도 연결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계12:17)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슬기로운 여인, 신부의 자격입니다.
그런데 이 남은 자손'의 본래적 의미는 "두루마리를 말아놓은 것의 남은 조각"을 의미합니다.
그 남은 조각은 '세마포로 된 두루마리 천 조각의 첫번째 부분과 동일한 것"입니다.
첫번째 세마포는 어린 양 예수님입니다.
그 남은 자손은, 마지막 조각으로 역시 어린 양 예수님과 합하여진 자들입니다.
결국 마지막 때에는 이 '남은 자들'이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심각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출애굽기는 그 남은 자들, 슬기로운 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계시가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상소를 만들기 위해서 가져온 실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이 실을 가져와서 성막을 위해서 짜는 것을 살피면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고 진정 혼인잔치에 들어 가는
‘기름을 예비하는 것’의 본질도 깨닫게 됩니다.
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출26:1
슬기로운 여인들이 가져 온 ‘베 실’의 용도는 ‘열 폭의 휘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영혼을 흔들었습니다.
이 휘장은 하나님의 깊은 임재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제사장들이 1년에 한번 역시 슬기로운 여인들이 가져온 세마포 실로 짠 ‘예복’을 입고 이 휘장을 열고
지성소로 들어 갑니다.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모든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출28:3
이것 역시 중요한 상징입니다.
주님의 또 다른 혼인잔치 비유(마22) '예복을 입자 않은 자'를 네어 쫓는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
분명 예수님은 출애굽기의 이 진리를 정확히 연결하고 계십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휘장을 열어야합니다.
그 문은 어린양, 예수님이십니다(요10:7-9).
슬기로운 여인들은 오직 그 DNA와 세포까지 이 어린 양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과 생명을 가진 자들이며 어디를 가든지 어린 양을 따르 그 지시를
받는 순전한 이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14:4,5
이들이 바로 휘장에 그 꼰 베실로 수놓은 '그룹들'이 새겨진 휘장을 만드는 자들입니다.
그 휘장에 새겨진 그룹들은 계시록에서 생물들, 장로들 같은 자들입니다.
요한은 이 어린 양께 속하 자들이 그 그룹들과 함께 새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계14:3).
.....................
더 나누고 싶으나 약속이 있어 일단 여기서 멈추고 돌아와 다시 쓰겠습니다.
너무 급하게 써서 나누고 싶은 것들을 세밀히 다루지 못했는데 후에 좀더 정리하지요.
샬롬…..
출처: 제3시 http://www.3-rd.net
첫댓글 감사합니다. 오 주님!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할지니라" 출36:1 지혜로운 자 되게 하옵소서.
감사 감사~! 너무 구체적으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은혜로운 말씀 참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