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외 4편
아내가 쪽파를 한 아름 안고 온다
와! 저 파릇한 꽃다발!
아내가 배추 포기 한 아름 안고 온다
와! 저 파릇한 꽃다발!
나는 아내가 안고 오는 모든 것을 꽃다발이라고 생각했다
꽃 한 다발 가격이 오만 원쯤인가?
하룻밤 모텔 숙박비와 비슷하군
고흐가 즐겨 그린 해바라기 꽃다발 그림이
한 폭에 천억 원이라는데
아내가 팟단, 배추 포기를 안고 올 때
천억 원 꽃다발이 걸어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미로
함께 살아야 할 이유는 수백만 가지
밥 차리고
곁을 챙기고
존경해야 할 이유도 수백만 송이
헤어져야 할 이유도 수백만 가지
밥 차리기 싫고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고
잘코사니 미워해야 할 이유도 수백만 송이
몸은 마음보다도 먼저 마음을 연다
부부는 신기한 몸의 미로를 가지고 있는 존재다
꽃 같다
변치 말자 약속했건만
변덕과 변칙과 변명의 회로
시시각각 좌표가 변하는 삶을 어쩌란 말이냐
부부는, 어느 순간 몸의 미로를 살피고 있다
살내음부터 맡고 있다
꽃과 나비 같다
우유식빵
아내는 우유식빵을 잘 먹는다
꽃등심보다 더 좋다고 한다
치즈도 없고, 햄도 없고, 야채도 없고, 크림도 없는
밍숭맹숭한 우유식빵!
효소를 만나
부풀어오르는
말랑말랑
불룩불룩
따끈따끈
찢어서 뜯어먹는 맛
이빨이 튼튼하지 않아도 오물거릴 수 있는 맛
뜨거운 오븐에서 구워지면
슬픔도 아픔도 고소하게 부풀어오르는 맛
반달처럼 부은 젖을 수유하는 맛
한우 꽃등심 대신
4,500원이면 살 수 있는 식빵 한 덩어리
아내는 왜 이런 반죽에 끌리는 것일까
슬픔의 반죽 덩어리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반죽 덩어리를!
단추는 왜 골탕을 먹이지?
교회 가는 길에
아내가 블라우스를 만지작거리더니
“앗! 단추를 거꾸로 달았어.”
며칠 전에는 내 바지 단추를 거꾸로 달았단다
“도대체 단추에 왜 앞뒤가 있는 거야?”
계속 투덜댄다
“아! 자괴감이 들어. 나는 바느질 잘하는 여자인데.”
아내의 옆얼굴을 보니 정말 골탕먹은 표정이다
“단추 이 녀석은 왜 앞뒤가 있는 거야? 동전도 아닌 녀석이.”
공감하는 말로 내가 맞장구를 치며
단춧구멍 하나를 풀어주니까
아내는 낄낄대며 실소한다
우리는 서로 잘 맞는 단추런가?
첫 단추를 잘 끼웠던가?
바보가 되기
부부지간에 사이좋게 지내는 2가지 비법
첫째, 바보 되기
둘째, 친절하기
밥을 함께 잘 먹는 밥보처럼 살면 좋다
화를 낼 때도 멍청하게 웃어주는 바보가 좋다
친절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 주는 것이다
상냥한 미소와 말투로 어려운 일을 먼저 하는 모습이다
친절하기보다는 바보 되기가 조금 어렵다
봄날, 함께 청계산에 갔을 때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어서
“여보, 진달래처럼 꽃피 흘리고 싶어.”
코뼈가 으스러지도록 때려달라고 부탁하던 아내
헉! 아내가 미쳤나?
나는 꽃잎을 뭉개어 아내의 얼굴에 처발랐다
꽃물 들고 꽃피 흘리고 꽃지랄 떨면서
우리는 천치 바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