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널리 알려지기 이전인 1995년 인터넷 카페를 방문한 적 있다. 모뎀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비디오텍스(videotex) 기반의 하이텔, 천리안이 원시적 소셜 미디어로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IT업계의 직장인들에게도 하이퍼텍스트로 서핑 하는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만큼 홍익대학교 앞에 ‘NETSCAFE’ 인터넷 카페가 개점했다는 뉴스는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카페 사장과 연락이 됐고, 모시던 상사와 함께 홍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났던 K대표의 말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인터넷은 기득권층이 독점해온 정보에 일반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며, 자신은 사명감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고교 동창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를 나는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인터넷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변화될 미래를 내다본 나비였고, 나는 “뭔 말이지?”하는 애벌레였다.
트랜스포메이션(변환)은 이질적인 도메인을 건너는 일이다. 그래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기술로 넘어가는 혁신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이하 DX)’이라 한다. IDC는 DX를 ‘신기술을 사용하여 프로세스, 고객경험과 가치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 즉 아날로그식 기술이나 모델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적 혁신을 통해 뼈 속까지 디지털기업(digital native enterprise, 디지털태생기업)을 만드는 일이라 설명한다.
DX은 넓은 의미로 디지털 기술과 기업목표의 전략연계 방법이다. 전략연계는 목표와 수단을 통제하는 활동으로, 가치의 효과적 지향(orientation)과 자원의 효율적 정렬(coordination)을 의미한다. 혁신은 운영혁신과 파괴혁신이 있다.
운영혁신은 지속적 개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파괴혁신에 비로서 트랜스포메이션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파괴는 과거를 부수고 새것을 만든다는 뜻이며, 한편으로 조직문화의 통편집을 의미한다, 부수지 않으면 새것을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파괴가 없는 트랜스포메이션은 없다.
이렇게 말하니 트랜스포메이션의 개념이 새로워 보이지만 과거의 전략 이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례로 1993년 하바드비즈니스리뷰(HBR, Jan-Feb)에서 트레이시(Michael Treacy)와 위어세마(Fred Wiersema)는 기업전략의 3가지 보편적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것은 운영탁월성(operational excellence), 고객친밀감(customer intimacy), 제품리더십(product leadership)이다. IDC가 DX의 정의에서 언급한 ‘프로세스’혁신은 ‘운영탁월성’에 관련되고, ‘고객경험’혁신은 ‘고객친밀감’에 연관되며, ‘제품가치’혁신은 ‘제품리더십’과 맥락이 비슷하다.
우리는 상상력이 투영된 영화에서 미래를 본다.
DX가 만들 미래세계의 모습은 어떨까? 어떤 SF 영화에서 가상세계에서 쇼핑한 디지털 물건을 현실세계로 넘어오면서 실제 물체로 변환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인간의 복제는 물론이고 기억과 감정까지도 디지털로 변환하고 전송하는 영화 줄거리도 보았다. 인간 정체성을 헷갈리게 만드는 섬뜩한 상상이 넷플릭스 ‘미드’ 프로그램에 넘쳐난다.
그러나 DX는 엔지니어링 분야에서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웍스테이션에서 설계한 3차원 솔리드 디지털 데이터를 액체 고분자화합물 표면에 레이저를 주사하여 층층이 굳히는 입체석판장비(Stereo Lithography Apparatus) 는 1980년 중반부터 국내 대기업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상세계에서 만든 물건이 바로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3차원 프린터의 초기버전이다. 이러한 기술은 비싼 금형으로 플라스틱 사출물을 뽑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제품특성을 반나절 만에 확인하게 해주었다. 운영탁월성과 제품리더십을 가능하게 하는 초기 DX 기술이다.
이처럼 엔지니어링 분야에는 이미 30년 전부터 DX가 실현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원시적인 디지털 기술에 대비하여 총체적이고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DX를 ‘Deep Digitizat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니엘 롤스와 토마스 브라운(Danial Rowles & Tomas Brown)은 DX의 목적이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도록 기업의 디지털역량(digital capability, 약자 DC)을 향상시키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어느정도 빨라야 급격한 변화일까? 쉽게 이해할 비유가 그들의 저서 ‘디지털문화세우기(Building digital culture)’라는 책에 나온다.
당신이 완전히 밀폐된 스타디움의 맨 윗자리에 묶여 있고, 그곳에 수돗물을 넣는다고 가정하자. 정오 12시 정각 수도꼭지에서 물 한방을 떨어진 이후에 매 1분마다 2배로 수돗물이 증가된다면, 과연 당신은 언제 죽게 될까? 12:45 경에도 단지 7%만 물이 찬다. 그러나 4분후인 12:49분에 모든 스타디움이 물에 잠긴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급격한 환경변화가 이와 같다는 주장이다. 대홍수와 같은 파괴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안전한 방주를 만든 ‘노아’처럼, 기업들이 DX기술과 DC향상에 에너지를 써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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