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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환난 전인가 환난 중인가 십사만 사천의 비밀 교차 검증 총정리 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이 메시지를 지지난주에 하려고 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메시지가 부어져서 2주 정도 늦춰졌습니다. 오늘 메시지는 이때까지 전해드렸던 메시지를 종합해서 검증하고 확실하게 더 이해하시는 시간으로 갖고자 합니다. 은혜가 더 크게 임할 줄 믿습니다. 제가 성도님들이 어떤 생각들을 갖고 계신지를 알고 싶어서 댓글들을 보고있습니다. 환난 중 휴거를 믿는 분들이 굉장히 많고 환난 후 휴거를 믿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환난 후 휴거나 환난 통과설을 믿는 분들이 한국 교회에 제일 많습니다. 또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맹점이 대체신학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수님을 핍박했던 민족이라고 왜 이스라엘을 돕느냐고 합니다. 이스라엘 도우면 이단이라고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성경 자체를 뒤집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위해서 대체신학에 대해서는 교회가 힘을 합해서 제거해야 됩니다. 대체신학은 우리가 영적인 이스라엘은 맞지만 그러나 육적인 이스라엘이 영적 이스라엘로 바뀌는 때가 옵니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때입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합니다.
대체신학의 맹점은 과거에 98%가 기독교인 독일에서 유대인들을 핍박했을뿐더러 유대인들을 학살했습니다. 그 만행이 일어났던 이유가 대체신학입니다. 한국교회도 대체신학을 믿는 것은 과거에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학살했던 데 동조하는 것이고 굉장히 유의해야 합니다. 성경적이지도 않거니와 육적인 이스라엘을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로 바꿔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제가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난 후 휴거에 대해서는 제가 굉장히 반박을 많이 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만 보시면 환난 후 휴거는 전혀 비성경적입니다. 환난 중 휴거는 성경적입니다. 환난 중 휴거를 믿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오늘 교차 검증을 해 드릴 것입니다. 휴거는 환난 전에 먼저 있고 환난 중에 또 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점검을 해 드릴 것입니다. 십사만 사천인에 대해서도 요한계시록만 보면 십사만 사천은 환난 중에 올라가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도 좀 더 면밀하게 교차 검증을 해드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절부터 7절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장의 전체 주제를 요약한다면 바로 에베소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보면 정말 잘 믿고 교육을 잘하는 교회인데 딱 한 가지를 책망하고 계십니다. 이 한 가지 때문에 휴거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휴거는 군사를 모집하는 거라고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습니다. 십사만 사천은 그 군대의 인도자를 뽑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휴거가 되고 안되냐는 것입니다. 휴거가 되고 말고의 기준이 여기 나와 있습니다. 잘 믿는데 휴거가 안 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처음 행위입니다. 처음 행위가 뭘까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을 말씀하시고 사랑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 사랑일까요? 사랑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랑이 실천되진 않습니다. 저도 옛날에 짝사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짝사랑을 하고 한마디 말을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심한 몸살까지 앓았었습니다. 몸무게도 많이 빠지고 거의 죽다가 살아났는데 나중에 제 귀에 들린 가요가 있었습니다(어서 말을해) 처음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처음 사랑은 행위가 따라가야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실천할 때 진짜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음속으로만 갖고 있는 건 사랑이 아닙니다.
여기서도 너의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씀하시는데 무엇인지 말을 안 하고 지나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이 무엇인가, 처음 사랑의 행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수많은 목사님들이 말씀들을 하십니다. 이게 무엇인가 수없이 저도 연구를 하게 됐고 그 결론은 십자가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사랑입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을 생명 다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다한 사랑이 마음에 받아들여지고 믿어졌으면 끝일까요? 아닙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처음 행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내가 받아들이고 간직한 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낮아지고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자가 휴거자입니다. 그래서 나를 기뻐하는 것을 택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이 조건 때문에 휴거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주님의 군사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주님의 군사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입니다. 그것으로 결정됩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하신 그 말씀으로 주의 군사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입니다. 사탄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사랑입니다. 사탄이 가지지 못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는 미워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에게 다른 많은 능력이 있으되 그에게 갖지 못한 유일한 능력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가진 자가 주님의 군사가 되어 내려올 때 미움을 가진 자들은 다 멸망당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무기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 이대로 결정됩니다. 사랑의 처음 행위를 가지지 못하게 되면 촛대를 옮기리라, 교회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지 못하고 사랑을 가지지 못했던 자들이 남겨지고 교회가 사라집니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에 육육육 표를 받지 않고 목숨을 걸고 순교를 당해야 구원받는 자들이 걸어야 될 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요한계시록 전체에 관한 요약입니다.
그러면 환난 전인가 환난 중인가 점검을 해볼까요? 요한계시록 12장입니다. 답은 명확해졌습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의 수많은 자들이 올라옵니다. 흰옷을 입고 올라오는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온유하고 겸손해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계7: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환난 전인지 환난 중인지 이것을 가지고 환난 중 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환난에서 나왔다고 했지 않냐, 환난에 들어갔다 나온 거 아니냐 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렇게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절부터 6절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기서 보면 해를 입은 한 여자가 나옵니다. 지난번에 이사야 말씀으로 이 여자는 교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는데 그냥 아이가 나옵니까? 애써 부르짖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기도 어렵거니와 그 사랑이 마음속에 있으되 마음에 간직만 하기가 쉽고 이 사랑을 실천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해산하는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에 많은 질곡이 있을 거라는 뜻입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다 하니까 사람들이 환난에 안 들어가려고 믿는 거라고 하십니다. 아닙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 많은 성도들에게는 비록 이 세상은 조용하고 좋은 것 같아도 성도들은 각각 개인의 인생에 자기의 삶 속에 수많은 고난들이 있습니다. 어려움들이 있고 마음에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 있고 수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난 후에 예수만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물질도 필요 없고 남편도 자녀도 다 필요 없고 예수가 가장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가장 중요해지고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해지고 나는 쓸모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망하기도 하고 가정에 많은 풍파가 있기도 하고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겸손케 만들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휴거 백성이 됩니다.
환난 전 휴거를 믿는다고 그냥 데리고 올라가시는 게 아니고 개인에게 각각 고난들이 있습니다. 육적 고난이었든 심적 고난이었든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들이 다시 단장되는 것입니다. 환난 중 휴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보면 용이 아이를 해산하면 삼키려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환난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휴거가 있으면 안되고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이이기 때문에 휴거가 있으면 이들이 용을 이기고 그의 군사들을 잡을 자라는 것을 용이 압니다. 그러므로 자기 적을 없애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수없는 일이 있을 거라고 미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삼키려고 할 때 삼켜집니까? 올라갑니다. 개인의 많은 고난이 있을 것을 말한 것을 가지고 환난 아니냐고 주장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뒷장 때문에 이게 환난 중이 아니라 환난 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교회가 이제 진짜 환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까는 아이를 환난에 넣으려고 했습니까? 아이를 삼키려고 했습니다. 아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애써 구로하여 낳는 아이입니다. 그러므로 이 존재는 따로 있고 여자 곧 교회가 광야로 도망갑니다. 진짜 교회가 환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양육이 됩니다. 하나님은 일부러 이렇게 날짜를 정확하게 일천이백육십 일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이게 우리가 말하는 전삼년 반입니다. 전삼년 반, 후삼년 반, 칠년 대환난은 용어가 틀린 것입니다. 이것은 한 이레의 언약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 이레의 절반입니다. 전삼년 반은 한 이레의 언약의 절반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천이백육십 일을 계산해 보면 사십이 개월입니다. 삼년 반입니다. 왜 이렇게 날짜로 말씀하셨을까요? 이것은 교회가 환난에 들어가는 시기가 언제인가를 알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시기가 언제인가 볼까요? 요한계시록 11장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부터 3절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여기 보면 두 증인에 대해서 나오는데 두 증인이 권세를 받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두 증인이 권세를 받아야 됩니다. 이것은 두 증인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위정자가 될 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목사들이 아닌 정치인과 종교 지도자를 이야기합니다. 권세 받는 시기가 따로 있습니다. 그 부분도 말씀드릴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십일의 환난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이때부터 굵은 베옷을 입을 때가 바로 한 이레의 언약을 맺었을 때부터입니다. 한 이레의 언약을 맺을 때부터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회개를 하지 않으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이들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두 증인이 회개하는 기간과 여자가 광야로 쫓겨난 기간이 날짜가 일치합니다. 똑같은 삼 년 육 개월인데 두 기간이 같은 기간이라고 말씀하시기 위해서 일천이백육십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이레의 언약 후반부 삼년 반은 사십이 개월로 따로 말씀하십니다.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기간이 사십이 개월이라고 따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분간해서 교회가 광야로 쫓겨서 환난에 들어가 있는 시기는 두 증인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있는 시기와 일치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가지를 가지고 교차 검증하면 이해가 됩니다. 이 기간이 환난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0절에서 12절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두 선지자가 죽었는데 온 세상은 기뻐합니다. 두 선지자를 통하여 온 세상에 재앙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일곱 나팔 재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곱 나팔 재앙은 두 증인을 통하여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일어서니.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엘리야가 부활 승천하듯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사건을 통하여 무엇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까? 휴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때 일어나는 휴거가 바로 환난 중 휴거입니다. 왜 삼 일 반 만에 일어났을까요? 삼 일 반은 이스라엘이 환난을 겪는 후삼년 반의 기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환난을 겪고 난 후에 그들을 살리고 그들 또한 나에게 있을 것이라고 미리 예언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삼일 만에 살아나셨을까요? 이천년 동안 이 세상에 고난과 환난이 있으되 예수님이 오시는 기간은 삼천 년이 되기 시작하는 새벽에 오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사건조차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기간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백성들에게 내가 언제 너희를 살릴 것이라고 알리고 싶어 하십니다. 이런 것들도 그냥 날짜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시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 하나를 알게 되면 진짜 은혜 됩니다. 다시 12장으로 가겠습니다. 두 증인이 부활 승천하여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간과 광야로 쫓겨났던 교회가 다시 휴거가 있는 기간과 일치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3절부터 17절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용이 땅에 쫓겨났습니다. 휴거가 있기 직전에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려서 사라져 버립니다. 사탄이 하늘로 올라가는 하늘길이 사라져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용이 땅으로 쫓겨났다는 뜻입니다. 용이 하늘에 없어야 예수님이 하늘에 오시고 우리는 공중으로 끌어올리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먼저 선행되는 것이고 용이 땅에 쫓겨난 것입니다. 쫓겨나자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세상은 환난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휴거가 있고 난 후에 환난이 있어야 됩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양육을 받아야 됩니다. 왜 교회가 다시 양육을 받아야 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마음속에 있고 단장품들은 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돈이 좋고 세상이 좋고 내가 즐거워하는 것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환난전 휴거를 믿고 오셨는데 골프가 너무 좋으면 단장품들입니다. 친구가 좋고 노는 게 좋고 세상이 너무 아름답고 좋고 노는 친구들 자꾸 전화가 오는 것들은 다 단장품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언제 떨어집니까? 모두 사라지고 환난에 들어가면 일단 뭐부터 떨어지는 줄 아십니까? 돈부터 떨어집니다. 돈부터 떨어지고 직장도 위험하고 온 세상이 인플레이션이 들어가게 됩니다. 수많은 재앙들이 오면 가자지구처럼 되는 것입니다. 먹을 게 있습니까? 그 상태에서 바라는 게 있을까요? 없습니다. 전에는 주님을 위해서 선교하고 전도도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내 삶을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기도하다가 다 떨어지면 뭐라고 기도할까요? (하나님 돈 주세요. 먹고는 살게 해줘야 될 거 아니에요) 내가 단장품을 제거하지 않으면 주님이 단장품을 제거하십니다. 이게 환난에 들어가게 된 이유입니다. 단장품을 제거해버리고 다 떼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환난이 필요한 것입니다. 환난이 없었더니 단장품이 안 떼진 것입니다. 환난이 있었는데 떼고 싶지 않으니까 세상이 좋으면 환난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 없애버립니다. 고난에 넣었는데 그 고난의 기간이 한 때 두 때 반때 입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는 다음 주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환난에 들어갔더니 단장품 다 떨어지고 세상 소망 다 사라지고 주님의 사랑만 남습니다. (예수님 내가 주님만 사랑하겠습니다. 그래도 구원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낮은 자 되고 겸손한 자 되어 이웃을 생각하는 자가 되신 분들은 휴거가 됩니다. 그래서 밑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아까 용이 날아다녔는데 쫓겨났고 날개가 떨어진 뱀이 된 것입니다. 뱀이 입으로 강물을 토해서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합니다.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큰 전쟁입니다. 이것을 세계 3차 대전이라고 합니다. 이런 큰 전쟁이 있으되 하나님이 피난처 국가가 이기게 하시고 피난처에 있는 주님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갑자기 여자가 사라졌습니다. 남은 자손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교회가 사라진 시기와 두 증인이 올라간 시기가 같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말씀이 구약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에 세 곳 있고 바깥쪽에도 베냐민 지파, 갓지파, 므낫세 반지파도 각각 무엇이 있습니까? 도피성이 있습니다. 그 도피성에 피한 자들이 언제 나올 수 있느냐면 대제사장이 죽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두 증인이 사망을 해야 해방되는 똑같은 얘기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을 때 이들이 해방되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까 에베소 교회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잘 믿는데 첫 사랑을 회복하지 못한 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분들은 마지막에 순교하여 그 믿음을 증거합니다. 마지막 남겨진 자들에 대해서 사탄이 그들과 싸우려고 합니다. 이것이 후삼년 반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환난 중 휴거가 맞다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근거들이 있습니다. 아까 보니까 환난 중에도 휴거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에서 4절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환난에 들어갔는데 인 맞은 자가 있습니다. 4절 저희에게 이르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놀랍게도 인 맞은 자들이 있는 국가는 황충의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 맞은 자가 이 땅에 있으니까 헷갈리는 것입니다. 인 맞은 자가 12장에서는 올라갔습니다. 올라갔는데 그것이 환난 중이라고 주장합니다. 용이 하늘에서 전쟁을 하고 싸우고 있습니다(계12:7) 그래서 아직은 시기가 안 맞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직후에 바로 올라갑니다. 이 시기가 안 맞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만 보면 환난 전인지 중인지 헷갈립니다. 각각 맞는 구절만 가지고 싸우게 됩니다. 환난 전이지 않냐, 환난 중이지 않냐 싸우게 되는데 이것은 성경 전체로 하나님이 알게 하십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서는 놀랍게도 아가서입니다.
아가 2장 17절
17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요한계시록 7장에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라고 애매한데 여기서는 애매하지 않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언제 올라오라고 하십니까? 날이 기울 때입니다. 날이 기울 때가 언제입니까? 마지막 때입니다. 날이 기운 것을 알고 환난이 있는 거 알고 올라갑니다. 아이를 해산할 때 용이 삼키려고 합니다. 환난이 있는 거 알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끝나면 좋은데 뒤에 뭐가 있습니까? 그림자가 갈 때에는 환난에 들어간 것입니다. 둘 다 말한 것입니다. 돌아와서 베데르 산은 분리의 산입니다. 하늘 곧 공중입니다.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 노루는 뿔이 없습니다. 어린 사슴은 다른 사람의 것입니다. 성도는 어린 사슴이고 예수님 것입니다. 노루도 자기 영광 드러내면 안돼고 예수님께로 인도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루와 어린 사슴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루와 어린 사슴을 말씀하신 것은 환난 전을 중심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가서에 환난 전만 나올까요? 아닙니다.
아가 2장 7절
7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예루살렘 여자들은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노루와 들사슴으로 부탁한다. 노루는 우리가 이해했습니다. 뒤에 들사슴이 뭘까요? 들은 광야입니다. 아까 여자가 광야로 쫓겨납니다. 광야로 쫓겨났을 때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를 하나님이 들사슴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환난에 들어가면 하나가 되고 가족이 된 것입니다. 어린 사슴들을 단장시켜서 다시 예수께 돌아올 수 있게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환난에 들어간 지도자와 그들은 가족이 되어 단장이 되어 다시 올라올 것입니다. 17절에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림자가 갈 때에는 환난 중이라는 뜻입니다. 아가서를 봤더니 환난 중도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검증해 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헷갈릴까 봐 곳곳에 숨겨놓으셨습니다.
룻기 2장 14절
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왜 14절만 읽었냐면 제가 메시지만 전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룻과 나오미가 언제 옵니까? 환난 당해서 다 잃어버렸을 때 돌아옵니다. 그들이 돌아오는데 먹고 살기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곤란한 지경에 룻이 힘을 내어서 이삭을 주으러 갔습니다. 이삭을 주울 때 여러분의 인생에 많은 고난이 있을 때 그때서야 하나님이 인도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낮아지게 하신 것입니다. 낮아진 자들이 일을 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어떻게 복을 주십니까? 룻에게 이르되 떡을 먹으라 합니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떡은 말씀인데 어떤 말씀입니까? 초는 십자가 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직전에 해융에 적신 초가 된 포도주를 마십니다. 고난의 예수입니다. 나를 위하여 세상의 온갖 고난을 받으신 예수입니다. 고난 받으신 그 예수를 우리가 먹는 것입니다. 예수를 깨달은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였더니 예수의 말씀을 간직하는 첫사랑의 행위를 가진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늘 기억하는 특별한 자가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줍니까?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어떤 곡식입니까? 볶은 곡식입니다. 이 세상을 살 때 어렵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하나님이 볶은 곡식을 주는 것입니다. 고생하고 눈물의 떡을 먹습니다. 인생에 수많은 일들을 겪으니까 예수를 잘 믿으려고 했더니 고생이 옵니다. 말씀에 정확히 적혀 있습니다. 오순절 제사를 드릴 때 두 떡덩이를 만들 때 그 안에 누룩을 넣고 불에 굽습니다. 우리가 죄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의 십자가 은혜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깨달은 자들입니다. 불에 구운 것이 똑같습니다. 불에 구운 자들이 휴거 대상자들입니다.
룻기 2장 15절에서 19절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19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환난과 고난을 당한 룻에게 하나님이 가만 놔두실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 앞에 낮아졌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다른 것들이 없어도 됩니다. 세상 소망은 다 사라졌지만 주님의 사랑은 마음속에 끝이 없이 깨달아집니다. 이런 자들을 주님께서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이제 룻이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 됩니까? 이삭을 주워야 됩니다. 예수님 곧 오신다고 가만히 있지 않고 이삭을 주워야 합니다. 마지막 때 예수님 오신다고 하면 세상 다 놓아버리고 이제 예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내 모든 삶은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주님만 찾고 일을 다 놔버리면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저주이기도 하지만 축복이기도 합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면 일을 안 할까요? 천년왕국에 들어가도 일합니다. 자기 밭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삭 줍고 있지만 천년왕국은 자기 밭에 곡식을 뿌리면 잘 됩니다. 그것이 천년왕국의 복입니다. 천왕국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천국에 가서 일합니다. 일하는 것은 복입니다. 지금은 이삭 줍기 때문에 힘들고 허리 숙여야 되고 남한테 굽신거리기도 해야 되고 이삭 주우면서 내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반드시 일하고 일할 때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이 일부러 떨어뜨려주는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다른 학원은 안되는데 우리 학원은 누가 오고 이상하게 내 직장은 좋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가는 곳에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임합니다. 그것을 선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돌봐주실 거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은혜를 받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주신 것이지, 고난 주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시 내가 너희를 회복하게 할 것이다. 약속하고 계십니다.
룻기 2장 21절부터 23절
21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22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룻에게 나오미가 지도를 합니다. 여기서는 나오미를 성령님이라 보셔야 됩니다.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고 합니다. 이 소년들은 보아스의 종들입니다. 너는 예수님에게만 집중케 하는 자에게 함께 있으라. 그 교회에 함께하라는 뜻입니다.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무엇입니까? 주를 사랑하며 기다리는 성도들과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교회에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밭은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보다도 오직 예수께 집중시키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교회에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23절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이 말씀에 보리 추수와 밀 추수입니다. 보리 추수는 쉬운 추수입니다. 보리는 흔들기만 하면 껍질이 벗겨집니다. 여러분이 환난 당하고 고난 당한 것은 쉬운 환난을 이야기합니다. 쉬운 환난을 통하여 추수가 되는 자들을 이야기합니다. 룻이 밀 추수까지 있습니다. 밀 추수는 어렵습니다. 짓밟아야 되고 맷돌도 있고 도리깨도 있고 소도 있고 많습니다. 밀은 껍질이 잘 안 벗겨집니다. 그래서 환난이 필요하고 밀 추수는 환난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환난을 통하여 추수될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환난 전 휴거와 환난 중 휴거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시모 나오미는 자손이 끊어진 이스라엘입니다. 아까는 말하는 자는 성령이라고 말씀드렸지만 현재 후손이 끊어진 자는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니라. 여러분께 교회가 현재 이스라엘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그들을 하님께 돌아오게 하는 교회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도웁시다. 우리가 이삭을 줍는 것 같이 그들에게도 이삭을 나눠줍시다. 그것이 환난 중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주님 품에 올라갈 것입니다. 성경은 곳곳에 하나님이 이렇게 숨겨 놓으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무엇이 해결이 안 됐습니까? 십사만 사천인이 다 환난 전에 올라갔습니까? 남겨진 자가 있습니까? 십사만 사천도 남겨진 자가 있어서 요한계시록 9장에 봤더니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십사만 사천인이 환난 중에 올라가는 거 아닙니다. 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헷갈릴까 봐 정확하게 검증시키고 있습니다. 아가서와 룻기도 검증시키셨듯이 구약에 다시 또 나옵니다. 사무엘상 입니다. 십사만 사천에 관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22장 1절에서 2절
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 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2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울이 다윗을 핍박하려 해서 다윗이 도망가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도망가는데 누가 같이 도망갑니까? 환난 당한 모든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고난 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야 다 내려놓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환난이 없었으면 얼마나 노는 걸 좋아하는데 왜 예수께 옵니까? 환난 당하게 하신 것은 마음속에 단장품을 떼게 하기 위함입니다. 환난 당한 것은 복입니다. 두 번째는 빚진 자입니다. 열심히 사업했는데 빚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많고 어려워진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려 하는데 이상하게 어려워집니다. 왜요? 그래야 다 떨어집니다. 내가 뭘 하겠습니다는 떨어지고 밥만 먹여주세요 해야 겨우 단장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보다 더 복받은 자가 뒤에 있습니다. 누굴까요? 마음이 원통한 자입니다. 환난을 안 당했는데도 예수가 좋고 세상이 싫은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고난도 안 당했고 망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이 너무나 좋은 복받은 자들입니다. 마음이 원통한 자는 예수께 마음을 드린 자입니다. 함께 하는 이런 분들이 사백 명입니다. 환난이 더 있다는 걸 알고 피한 자들입니다.
사무엘상 23장 11절부터 13절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겠나이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데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오리라
12 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도와줬는데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옵니다. 그런데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팔려고 합니다. 도와준 사람한테 뒤통수 맞습니다. 그게 우리 인생입니다. 다윗과 부하들이 환난에 들어간 것입니다. 환난에 들어가서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하나님이 피하게 하십니다. 피한 자들이 육백 명입니다. 사울이 이들을 못 죽이고 돌아갑니다. 환난 중에 피하게 하십니다. 아까 사백 명이었다가 환난에 들어가서 피한 자들이 합했더니 육백 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백 명은 어디서 왔는지 안 적혀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는 동안에 이백 명이 늘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교차 검증하게 하십니다.
사무엘상 30장 1절 2절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제삼일에 시글락에 이를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로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2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을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의 모든 사람들이 다 끌려갑니다. 무엇입니까? 환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을 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환난에 들어갔던 자들을 구출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30장 8절부터 10절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9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인을 머물렀고 다윗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자가 이백 명이고 도합 육백 명인데 이백 명은 피곤해서 못 건너갑니다. 사백 명은 쫓아갑니다. 아까 똑같은 상황입니다. 사백 명은 쫓아가고 이백 명은 머물렀습니다. 이 상태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30장 21절부터 25절
21 다윗이 이왕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인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온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 중에 악한 자와 비류들이 다 가로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 사람의 처자만 주어서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23 다윗이 가로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이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24 이 일에 누가 너희를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찌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25 그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환난에서 다윗과 사백 명이 쫓아가 다 되찾습니다. 개인의 인생에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단장이 되고 하나님이 다시 여러분을 다 되찾으십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안에서 올라온 수많은 무리들입니다. 그들과 함께한 하나님의 종들이 사백 명, 그들을 돌아오게 한 자들이 사백 명입니다. 나머지 이백 명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백 명은 무엇 때문에 남겨졌습니까? 브솔 시내에 머무른 자에게 다윗이 뭐라고 말하냐면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다시 찾아야 될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보호하고 있던 자들은 환난에 들어갔으되 아직 단장이 되지 않은 자들을 단장시켜서 도로 하나님께 찾게 하는 자들입니다. 환난 중 휴거에 들어갈 자들이 인 맞은 자가 삼 분의 일, 이백 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에 들어가게 해서라도 반드시 그들의 마음에 첫 사랑을 간직하는 자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의 말씀을 봤더니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곧 환난 전과 환난 중을 같이 말씀하고 있고 아가서도 환난 전과 환난 중을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날이 어두워질 때, 그림자가 갈 때에 그리고 룻기에 가면 더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리 추수와 밀 추수로 보리 추수에 추수된 자들이 있고 밀 추수에 추수되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이백 명이 남겨질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루가 사백 명이고 들사슴이 이백 명이라고 사무엘상에서는 더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에 다윗이 왕이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난 직후에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기 직전에 이런 사건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좀 더 명확하게 해볼까요? 다시 아가서입니다. 아가서가 예언의 끝판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아가서 3장 말씀입니다.
아가 3장 1절부터 8절
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3 성중에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4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5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6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7 이는 솔로몬의 연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인이 옹위하였는데
8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밤중에 환난 중입니다. 환난이 있을 때 사랑하는 자 예수를 찾습니다. 여러분 각각 개인의 인생에 환난이 있어도 이제 예수를 찾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날 사랑하시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 필요 없고 예수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찾으려고 하는데 성중에 행순한 자들이 예수를 만나게 합니까? 다른 거 이야기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진짜 예수를 못 만나고 그들을 떠나자마자 이것은 세상의 소망을 주는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바로 아버지 보좌입니다. 아버지 보좌에 돌아갈 때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봤더니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첫사랑의 행위를 가진자는 놓지 말고 가진 자가 올라갈 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5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무엇입니까? 노루는 환난 전이고 들사슴은 환난 중으로 말씀하시며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사랑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6절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무엇입니까? 이렇게 단장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더니 수많은 은혜가 들어옵니다. 연기 기둥, 몰약과 유향,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은 단장품을 다 떼고 난 다음에 새롭게 예수님과 사랑에 깊이 빠진 이야기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사랑에 깊이 빠진 자들이 어떻게 됩니까? 거친 들에서 오는 자입니다. 거친 들은 곧 환난에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여기도 그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올라오는데 솔로몬의 연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지상재림하십니까? 이스라엘과 혼인하시려고 이사야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결혼하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옹위하는 자가 육십 명, 아까 육백 명이었고 지금은 육십 명입니다. 왜 이렇게 자꾸 말씀하실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예슈아 곧 여호수아가 몇 명의 군사를 데리고 가나안 땅을 공격합니까? 육십 만입니다. 바로 그 육십 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군대가 몇 만이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육십 만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숫자가 육십 만은 아닙니다. 이루 헤아릴수 없는 많은 자들입니다. 육십 만을 가지고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과 혼인하려고 이 땅과 혼인하려고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이 땅의 예루살렘과 혼인하려고 내려오십니다. 하늘로부터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때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옵니다. 예루살렘 성이 내려올 때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것 같더라. 새 예루살렘 성이 예수님과 결혼하려고 내려오는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땅에 먼저 내려오십니다. 이 땅에 예루살렘을 예수님이 혼인하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찾느니라. 무엇입니까? 환난에 있는 이 땅을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십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이 땅에 내려오십니다. 육십 만의 호위를 받으며 곧 십사만 사천 인과 그 군대들과 함께 내려오십니다. 적그리스도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서 오십니다.
십사만 사천 인은 환난 전에 삼분의 이가 먼저 올라갑니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 인은 환난 전에 올라가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나머지 물건을 지키는 자들이 이백 명이 있습니다. 삼분의 일은 두 증인과 함께 환난 중에 올라옵니다. 성경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환난 중을 믿는 분들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환난 중으로만 들어오는 목사님들이 계시고 그것만 믿어지는 성도님이 계십니다. 죄송하지만 조금 있다가 오십니다. 그게 믿어지니까 어떡합니까? 그분들이 환난에 들어가서 백성들을 단장시킬 분인지, 거기서 단장이 돼야 될 분인지 제가 모릅니다. 하지만 환난 중만 믿어지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갈것입니다. 환난 중을 믿는 분들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분들도 단장돼서 올라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한 형제이고 다윗이 말한 것 같이 똑같이 복받습니다. 하나님은 다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 속에 조금씩 고난이 다 있습니다. 이 고난이 클까요? 환난에 들어가서 받는 고난이 클까요? 지금 돌이켜야 됩니다. 고집이 세면 밀 추수 당합니다. 우리는 보리 추수 당합시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어떻게 하든 단장시키려 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작은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만 늘 기억하겠습니다.
그 십자가 사랑 때문에 낮아지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사랑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님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 인도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