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노동자'를 찍은 이는 '타워크레인 노동자'다. 타워크레인에 나오는 이들도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다. 감독이 대화시간에 밝혔듯, 가끔 노조 사무실로 걸려오는 엉뚱한 전화들이나, 돈 많이 받는데(?!) 쟤들 왜저러냐 같은 오해를 털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보고 지나치는 타워크레인은 그저 괴물같은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겁내고, 힘들어하고, 잔업하고, 때로는 사고로 다치는 삶의 어려움을 털어 놓는다.
어디서든지 노동의 불안정화란 노동의 정치적 무력화를 뜻한다. 조직된 노동을 자본은 더 싸게, 더 자신들 편한대로, 취급하고 처리할 수 있다. 대부분의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현장마다 단기 계약직으로, 하청업체들을 통해서 계약을 맺는다. 4대 보험도, 주말휴무도 없이, 작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은 해고의 위협으로 돈을 버는 하청업체보다 약하다.
20여분 남짓한 짧은 보고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람들은 무얼 얻을까? 타워 크레인 노동자들은 다 아는 얘기들일 것이고, 나에게는 낯설지만 역시나 싶은 이야기였다. ‘얼굴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다큐는 마친다. 관점에 따라서 얼마나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는지, 그리고 달라지면 얼마나 실제 사회운동에 관여할 수 있는 건지, 나는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여전히 실제 사회운동과 그것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의 차이를 생각하면, 도대체 기록이 무엇을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애초에 영상은 무엇에 대한 것이지, 무엇 자체는 아니다. 사회운동이 사람들을 조직하고 행동을 계획할 때, 영상은 그것을 영상언어로 옮겨 넣는다. 그렇다면 영상 자체가 어떤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착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으로도, 실제적 문제를 영상은 담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사람들은 ‘응답’할 수도 있고, 어떤 행동의 계기와 질문들을 만들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기억은 전승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를 기억할 수 있는 눈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대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