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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소파와 늑대거미
글: 김율희 subrosahee@hanmail.net
습지에서
“앗! 여기가 어디지?”
나는 견딜 수 없는 축축한 느낌에 놀라서 번쩍 눈을 떴다. 온 사방으로 키 큰 풀들이 가득 둘러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정신이 든 거니? 걱정했어. 너는 여기 온 지 며칠 됐는데, 계속 잠만 자더라고.”
나는 누가 말을 걸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 여기 있어. 바로 너 앞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더니 아주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늑대거미야. 그런데 너는 좀 특이하게 생겼네. 덩치가 너무 커. 난 여태껏 너같이 생긴 애는 본 적이 없는데. 넌 누구니?”
“내가 누구냐고? 난 은수의 친구 소파야. 그런데 우리 은수 어디 갔지?”
“은수는 모르겠고 넌 며칠 전 밤에 여기로 왔어. 아저씨 두 사람이 널 여기에 두고 가더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뭐? 여기가 어딘데?”
늑대거미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음… 여기는 내가 살고 있는 강변 습지야.”
나는 이 기분 나쁜 축축한 느낌이 바로 내가 습지에 와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 집 밖? 난 살면서 한 번도 밖에 나와본 적이 없는데… 우리 은수랑 은수 집에만 살았다고.”
늑대거미는 가엾다는 듯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지금 은수는 없고 넌 여기, 이곳에 있다는 거야.”
나는 인정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사실 앞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은수 가족이 나를 버린 거야?”
나는 큰 설움과 절망에 빠져서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쿠 깜짝이야. 내 귀청 떨어져. 소리 그만 질러! 걱정하지 마, 내가 너의 은수가 되어줄게.”
“뭐라고? 너같이 쬐끄만 거미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나는 기가 막혀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만 너랑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닌데… 여기 둘러봐. 갈대, 쥐꼬리망초, 물피, 매듭풀, 한련초…그 외에도 풀색꽃무지, 무당벌레… 음… 많은 친구들이 있어. 앞으로 우리랑 같이 살 친구들이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늑대거미가 말한 친구들이 나를 따뜻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행복하고 편안한 집을 떠나 축축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새로운 이 친구들과 함께한다면 덜 외로울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친절하게 다가와 준 늑대거미가고맙기만 했다.
밤이 되었다. 그토록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듯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슬퍼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은수가 보고 싶었다. 늘 내 품에서 잠들던 은수였는데, 지금쯤 은수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정말,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내가 왜 여기에 오게 됐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절망감이 몰려왔다. 밤이 무척 길었다.
2. 늑대거미의 임신
슬픔에 잠겨 심드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늑대거미가 나를 찾아왔다. 첫 만남 이후 한동안 찾아오지 않아서 궁금하던 참이었다.
“나 아기 가졌어.”
늑대거미의 말에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은수 엄마가 은수를 낳던 때가 떠올랐다. 꼬물꼬물하고 해맑던 아기, 은수… 은수는 자라며 나랑 친구가 되었다. 은수는 나랑 놀고 나랑 잠들고 나랑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진짜로 은수의 친구였다.
나는 늑대거미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배 쪽에 커다란 알주머니가 달려 있었는데 묵직한 것으로 보아 100개는 넘어 보였다.
“아! 축하해. 아기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 축복할 일이야.”
“네가 그걸 알아?”
“그럼! 내가 우리 은수를 키웠는데…. 나도 도와줄게.”
“고마워, 은수의 소파야. 나는 이제 좀 힘들어질 것 같아, 얘들을 잘 키워서 밖으로 내보내고 또 독립할 때까지 내가 잘 돌봐줘야 하거든.”
“그렇구나. 많이 힘들겠구나.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벌써 많은 도움을 받았어. 네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늑대거미는 알이 들어있는 실크 주머니가 땅에 끌리지 않게 조심조심 기어 다녔다. 알을 지키려는 늑대거미의 모습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곳에 사는 여러 친구들과 친해졌다. 키 큰 갈대들과 짧은 털이 송송한 쥐꼬리망초, 갈대랑 비슷하게 보여 자꾸 헷갈리는 물피랑 물꼬챙이골을 비롯하여 하얀 꽃이 예쁜 한련초 등. 늑대거미의 말처럼 그들은 모두 나에게 친구가 되었다. 풀색 꽃무지와 무당벌레는 내가 심심할까 봐 불쑥불쑥 찾아와서는 쫑알거리고는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던 이 습지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순간 나는, 또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 갈까 봐 잔뜩 긴장했다. 바싹 움츠리고 할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아주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습지 이곳저곳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응? 소파네. 소파가 왜 여기에?”
할아버지는 나를 여기저기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내 위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많이 낡기는 했지만, 아직도 편안한걸.’
할아버지는 내 위에 앉아서 노을이 지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쉬었다. 차츰 내 걱정도 사라졌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은수를 생각했다. 은수도 내 품에서 행복했는데….
3. 폭우
시간이 흘러 늑대거미는 알을 낳았다. 힘겹게 실크 주머니를 뚫고 나온 아기 거미들은 곧바로 어미의 배에 매달렸다. 아주 조그맣고 꼬물꼬물한 아기 거미들이었다. 늑대거미는 조심스럽게 새끼들을 보호했다. 단 한순간도 아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극정성이었다. 나는 이런 늑대거미가 너무 좋았다. 시간만 있으면 내 위에서 쉬도록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은수가 참 보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반짝아, 너는 정말 대단해.”
내 말에 늑대거미가 물었다.
“응? 반짝이? 내가 반짝이야?”
“응. 너는 모르지? 네 눈이 얼마나 예쁘게 반짝이는지….”
“반짝이…. 나도 좋아. 그럼 너는 뭐라고 부르지? 은수의 소파?”
“글쎄…. 나는 너희들이 나에게 와서 편안하게 쉬었으면 좋겠어. 비록 은수를 떠났지만, 이제는 너희들을 다 품어주고 싶어.”
“음 품어주는 소파라…. 그럼 품품이 어때? 앞으로 우릴 다 품어줘야 해….”
“하하…. 좋아 그럼 오늘부터 내 이름은 품품이다. 품품이, 좋아!”
반짝이랑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오고 나서, 가장 많이 오는 비였다.
“아! 큰일 났어, 우리 아기들이 다 떠내려갈 것 같아.”
나는 반짝이와 아기들이 걱정되었다.
“갈대야, 물피야, 물꼬챙이골아! 너희들 나 좀 도와줘. 너희들 키를 바짝 키우고 몸을 좀 눕혀서 반짝이를 덮어줘. 반짝이 아이들이 빗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갈대가 키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반짝이 아기들이 빗물에 떠내려가면 안 되지.”
물피와 물꼬챙이골도 몸을 깊이 숙여 반짝이와 아기들을 지켰다. 자그마한 풀색꽃무지와 무당벌레들까지 힘을 보탰다. 나는 그들마저 떠내려갈까 봐 무서웠다. 얼마나 비가 세차게 내리는지….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우리는 아무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꼬박 밤을 새우고 나서야, 아우성치며 내리던 비가 그쳤다. 해님이 찬란한 얼굴을 내밀자 나는 내 품 안에서 녹초가 된 친구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친구들이 도와준 덕분에 늑대거미와 그 아기들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 쥐들의 공격
“악!”
무언가가 나를 물어뜯었다. 너무 아팠다.
‘이게 뭐지?’
나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이 무섭게 반들거리는 것으로 보아, 쥐가 틀림없었다. 그것도 여러 마리인 것 같았다. 물이 스며들어 물렁물렁해진 나를, 쥐들이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내 위에서 자고 있던 늑대거미와 갈대가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왜 그래, 품품아.”
“쥐들이 나를 물어뜯고 있어.”
“아니, 뭐라고! 이런 나쁜 놈들을 봤나.”
늑대거미 반짝이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안 되겠다, 얘들아. 이번에도 너희들이 좀 도와줘.”
친구들은 쥐를 쫓아내기 위해 모두 내 곁으로 몰려들었다. 갈대, 물피, 물꼬챙이골뿐만 아니라 매듭풀, 한련초까지 쥐를 쫓으려고 힘을 보탰다. 풀색꽃무지와 무당벌레는 쥐가 볼까 봐 벌벌 떨긴 했지만 그래도 갈대 위에 숨어서 친구들에게 힘을 보탰다. 왁자지껄 오랜 시간, 친구들과 쥐들 간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그때였다. 쥐들에게 물린 상처가 너무 아프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리 애써도 떠오르지 않던 그 기억들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의 기억 말이다.
은수가 나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싫어, 싫어. 나 안 갈 거야. 싫어요.”
은수 아빠가 은수를 달래고 있었다.
“은수야, 미안해. 우리 떠나야 해.”
은수 엄마도 은수를 붙들고 같이 울었다.
안갯속이었던 기억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은수 아빠의 사업 실패로 온 가족이 그 집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은수가 나를 붙들고 가기 싫다고 한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은수 가족은 나와 모든 것을 놔두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은수가 떠난 후에 들어온 사람들이 나를 밖에다 버렸고, 나를 쓰레기장으로 싣고 가던 사람들이 이 습지에 나를 던져두고 가버린 것이었다.
내가 겪은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동안 기억을 하기 싫었던 것이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은수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한참 동안 꺼억꺼억 울었다. 그런데 내 울음소리에 놀랐는지 쥐들이 슬금슬금 도망가기 시작했다.
“은수야, 은수야…. 보고 싶어.”
늑대거미 반짝이와 여기저기 상처가 난 갈대와 물피가 나를 토닥토닥했다.
쥐들이 도망간 후, 내 몸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반짝이와 친구들도 많이 다쳤다.
“어떡해… 나 때문에. 얘들아, 미안하다.”
나는 용기를 낸 반짝이와 갈대, 물피와 물고챙이골, 매듭풀과 한련초, 풀색꽃무지와 무당벌레가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5. 노을이 지는 풍경
쥐들의 공격이 있은 후, 우리는 더 친해졌다. 친구들은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또 한 명의 친구가 생겼는데 바로 얼마 전에 이곳을 찾아온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매일 우리를 찾아와 우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쥐들에게 뜯긴 내 상처를 보고선 헝겊을 가지고 와서 내 상처들을 치료해 주었다. 나는 반짝이와 아기들이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반짝이와 친구들의 정성으로 크게 다친 곳 없이 쑥쑥 자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제 반짝이의 아기들이 다 자라서 독립을 앞두고 있었다. 그날은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우리는 모처럼의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쉭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뱀 한 마리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반짝이와 아이들이 위험했디. 나는 너무 놀라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반짝아! 위험해, 어서 도망쳐!”
그때였다. 할아버지가 긴 막대기를 휘둘러 뱀을 쫓았다. 진짜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뱀을 쫓아낸 후, 늑대거미의 아이들은 무사히 다 제갈길로 떠났다. 늑대거미는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엄마 반짝이를 잠깐 돌아보더니 어느새 다 떠나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엄마처럼 멋지고 용감하게 그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반짝이는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한동안 울적해했다. 나도 은수 생각에 많이 괴로웠다. 은수는 잘 있을까? 은수의 아빠, 엄마도 보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습지에 해가 지는 것을 같이 바라보았다. 이제 이곳 습지는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이다. 내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나는 내 친구들이 참 좋다. 갈대가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늑대거미 반짝이가 조용히 말했다.
“품품아, 고마워. 네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나도…. ”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빨간 노을이 더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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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희 약력>
등단: 《현대시학》 1986년 2회 추천 완료 (김춘수 선생님)
작품집: 『책도령은 왜 지옥에 갔을까?』 『책도령과 지옥의 노래하는 책』
『거울이 없는 나라』 『열두 살, 이루다』 『도깨비 우달의 쌀』 『나다를 찾아서』 『코코코 나라』 『생쥐 동그라미의 여행』
『굴뚝 속으로 들어간 하마』외 다수
수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한정동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어린이문화대상, 문체부장관 표창 외
사)국제PEN한국본부 편집장, 사)어린이문화진흥회 부이사장,
사)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 사)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
사)한국여성문학인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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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율희
주소-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위시티 4로 79 식사동 308동 401호 우)10325
전화번호-010-3279--4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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