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움. 받은 자의 구할 것
마가복음 1: 21~28
21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예수께서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그 때에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24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25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셨다. 26 그러자 악한 귀신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서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27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 28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판단과 인정
스승과 제자가 길을 가는 중 웬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제자에게 그 종이를 주어오게 했습니다. 제자가 종이에서 향내가 나는 것을 보니 향을 쌌던 종이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또 한참을 가다 보니 길 한가운데 새끼줄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자에게 그 새끼줄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제자가 새끼줄을 주워 오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썩은 생선을 묶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 이렇듯 귀한 것을 담았던 그릇은 귀한 그릇이 되고 헐한 것을 담은 그릇은 헐한 그릇이 되어 무엇에 쓰이느냐로 그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 내면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언행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물건과 다르게 드러나는 것을 조절하다 보니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에 관한 판단의 근거는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학교의 누구에게 배웠는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참고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이러한 판단을 근거로 상대의 능력, 역량, 성과에 대한 자발적 인정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권위가 세워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판단하고 인정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게다가 권위를 진정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 행색, 출신지, 환경, 가족 등을 고려할 때 예수님은 아주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선입견을 품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입견을 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음에도 어떻게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이들과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치심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2)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27a)
일상적인 판단의 기준으로는 인정할 수 없고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당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동안 들었던 율법 학자의 가르침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가르침이었고 대단히 충격적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놀랐다’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놀라움과 경이에 가득 차서 ‘정신이 멍하다.’, ‘넋을 잃을 만큼 감동을 받다’라는 의미입니다. 한동안 놀라움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청중에게 그렇게 새롭게 들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을 사로잡은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입을 다물라
놀랍고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상황, 그러한 회당 분위기를 깨뜨리는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 때에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23,24)
귀신 들린 사람이었으나 너무나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목적과 예수님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의 고백은 너무나 정확히 맞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하셨다. (25)
예수님은 엄하게 꾸짖을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의 소리치는 말에 집중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보셨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의 앞선 말씀엔 네 사람의 제자,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광경이 나옵니다. 그 부르심에 대하여 제자들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막1:17)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막1:20)
제자들이 자기 삶의 바탕인 생업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의 예수님께서 이뤄가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소망에 근거한 믿음과 순종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에게는 제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믿음과 순종에 근거한 자기 내려놓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답을 이야기했지만 입을 다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 아닐까요?
또한 귀신에게 명하여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귀신은 그 사람의 몸에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습니다. 분명 놀라운 축사, 치유의 광경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사람들, 자기 생각과 경험에 사로잡혀 있는 모두에게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립니다. “황홀경과 네 생각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고 들은 대로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진정한 믿음과 순종의 길로 나서라!”
또한 귀신이 몸에서 떠나간 것은 지식과 생각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실천과 행함의 길로 발을 내디뎠다는 것으로 읽습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나의 고백을 들으시고, 네 입을 다물라고 하시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을 갖습니다.
사랑의 덕
고린도 교회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유대교에서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은 율법에 대한 지식에 입각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반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성도들은 육신으로 행한 것이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도살 과정이나 제사 의식 등은 그 무엇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의 지식에 입각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상징인 것으로 주장했습니다. 교회의 문제가 된 음식의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명쾌하게 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고린도 교회에 설명합니다.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압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고전8:1~13)
지식이 아닌 사랑의 관점으로 음식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식은 사람에게서 난 것이지만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하나님에게서 난 사랑은 덕을 세우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협력하여 믿음의 실천으로 아름다운 덕을 세우는 빈들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우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대표적인 선지자 모세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도 기대하고 고대하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떠나보내기 전 고별 설교를 하는 중 이렇게 말합니다.
주 너희의 하나님은 너희의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18:15)
이스라엘을 위해 선지자를 세워서 일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에, 만유 중에 계심을 믿는 사람을 세우시고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줄 믿습니다.
맞습니다. 빈들공동체를 세우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성심 기도를 선물로 주시고 기도를 새롭게 새워주셨습니다. 믿음과 삶의 괴리가 아니라 일치된 삶의 영성을 위해 관상 중의 활동을 지어가십니다. 교회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울 밖의 교회인 고난의 현장에 연대함으로 하방의 영성을 실천하도록 이끄십니다. 이렇듯 빈들공동체교회를 수많은 교회 중에서 지명하여 새로운 교회로 불러내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은혜중에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권위와 확장
18 나는 그들의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세워,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는,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다 일러줄 것이다.(신18:18)
하나님께 세우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에게는 그에 필요한 은혜의 말씀을 입에 담아 주십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그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음식 문제는 자기 지식이 우상이 되는 것이 문제였고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 안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권위는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아들임에서,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빈들공동체교회를,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입에 넣어주시는 말씀으로, 주시는 힘으로만 세움, 받은 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치유함으로 설명됩니다. 말씀 전하심은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서 입에 넣어주시는 말씀을 듣고 품게 하심입니다. 가르치심은 들은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심입니다. 치유는 우리 안과 밖의 왜곡된 것을 해결하고 굴곡진 것을 펴고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도록 지금, 이곳에 빈들공동체를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줄 믿습니다.
세움, 받은 자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옵니다. 빈들공동체가 가는 그 걸음이 확장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믿음의 권위가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본문 마지막 구절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28)는 말씀처럼 빈들공동체의 새로운 교회 사역이 확장되어 가기를 소원합니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