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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는 질투하는 신이시다(구약 신명기 6:15)
까미노의 알베르게에서 제대로(정상적으로) 잔 적이 단 한 밤이라도 있는가.
고통을 느낄 겨를 없도록 걷기 일념인 낮과 달리 밤에는 낮의 몫까지 합해서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 복용 중인 진통제도 내성(耐性)으로 인해 먹으나마나 한 상태다.
온 종일 걷고도, 심야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이보다 더한 고통은 잠을 못 이룰 뿐 아
니라 모든 뻬레그리노스의 곤히 잠든 모습을 보는 것이다.
질투가 아니라 극에 달하는 선망이다.
그 것보다 더 큰 고통은 뒤척거리기 조차도 못하는 것이다.
곤히 잠든 이웃들에게 지장이 되기 때문이며, 침실 밖으로 나가서 몸의 고통을 이겨내려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서성거려야 한다.
주방 또는 휴게실 등이 있는 숙박소에서는 감당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마저 없는 곳에서는 더욱 난감하며
비가 내릴 때는 그 고통이 극한적이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이 고통이 없기를 감히 바라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경감할 방법이 과연 없는가.
사계(斯界)의 권위지라는 유명의사들도 포기한 몸으로는 두발 세발 가릴 것 없이 걷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이 축복도 야곱이 얍복강변에서 한 것(구약 창세기 32:25~29) 처럼 목숨을 건 결투(?)로 받은 것이거늘 더
바란다면 과욕일 것이다.
어찌나 끔찍하고 참담한지 이 고통은 나 하나로 끝나기를 염원한다.
전체 알베르게에서 나처럼 고통스런 사람은 나 외에 단 1명도 아직 보지 못했는데 부디 끝까지 그러기를.
극심한 고통으로 서글퍼질 때마다 이같은 논리로 극복하고 있는데, 까미노 뽀르뚜게스에서 약간 비켜있는
파띠마의 밤도 그래야 했다.
정신적 피로는 물론 몸도 극에 달해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깊고도 긴 잠에 빠지기 바랐지만 혹시나는
역시나로 잠 못이루는 밤이었다.
이 곳에서 내게 다행인 것은 싱글 베드(single bed) 3개가 있는 3인용 방을 독점했다는 것.
도착순으로 방을 채워가는 것이 알베르게의 보편적 운영 방식인데 나는 아무와도 동숙하지 않았으니까.
내 사정을 알 리 없음에도 늙은이에 대한 배려였는가.
잠 못이루는 것은 여타의 경우들과 동일하다 해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처신해도 되므로
한결 덜 고통스럽게 보낼 수 있는 밤이었으니까.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 관광지를 비롯해 탐방객이 몰리는 명소들도 일요일 밤의 숙박자는 최저치를 기록
하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다.
대개의 여행과 외박, 외출의 일정을 휴일을 끝으로 귀가하는 것으로 하기 때문이다.
알베르게도 같은 현상인데, 나 외에도 수명의 숙박자가 있는 듯 하므로 오스삐딸레라의 배려가 틀림 없다.
신 새벽에 늦잠이 들기 때문에 바삐 서둘게 되는 여느 새벽과 달리 자리에 누운채 밝은 아침을 맞았다.
2015년 6월 29일, 아무 일정도 없는 월요일의 아침을.
늦잠에서 깨기는 하였으나, 마치 긴 열병에서 헤어났을 때 처럼 망연한 채로 였는데 이 때의 망연은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 나온 때의 그것과 흡사했다.
1960년대 초, 당시에는 법정전염병인 장티푸스(腸typhus)의 재발로 별도 수용되었을 때였다.
서울시립중부병원(종로구옥인동 소재)이었는데 시체실과 문 하나로 분리되어 있음이 무엇을 의미했는가.
살아날 가망이 희박한 환자들이기 때문에 사후 처리가 쉽도록 배치한 것이다.
나는 1차 감염을 용케 극복했으나 회복기간 중에 관리 실수로 재발했기 때문에 백약이 무효하며 죽기만을
기다리는 수용소에 갇히게 된 것인데, 이 수용소를 탈출했다.
탈출에 성공하여 집 골방에서 깊은 참에 취했다가 깨어났을 때처럼.
또한 이즈음의 나는, 이탈하려는 궤도차 안에서 이탈을 막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까미노를 아슬
아슬하게 걷고 있는 형국이었다.
"내가 그 분의 시험을 받고 있는 건지 그 분을 시험하고 있는지 도무지 분간이 되기 않는다"
당시의 메모지가 그때의 내 심경이 그랬음을 밝히고 있다
성경은 야훼는 질투하는 신이시다(신명기6:15) 고 밝히고 있다.
야훼를 시험한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야훼를 시험하였던(구약 출애급기 17:7) 일을 상기시키며
하느님 야훼를 시험하지 말라(신명기 6:16)고 경고하고 있다
반항적이고 담판을 지으려는 듯 저돌적인 나.
내가 사용하는 시험이라는 단어는 넌짓이 의중을 떠본다는 뜻인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분이다.
하도 깊고 높고 넓은 도량과 사랑 자체인 분의 의중을 범부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예외 없이 매번 유익한 결말이면서도 불안과 초조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정녕 사람이기 때문일 터.
애초의 6개월 여정 계획에는 없는 파띠마를 강행하며 부닥뜨리는 사건들로 인한 의구심 말이다.
뻬레그리노스와 투어는 매치되지 않는다?
오전을 몽땅 침대에서 보낸 후 샤워를 할 때 만난(샤워장에서) 초로남이 말을 걸어왔다.
안씨앙(ancião/ velho:뽀르뚜갈어 노인)이 81세의 꼬레아누(Coreano/뽀르뚜갈語 한국인)냐고.
영어로 말라느라 애를 쓰고 있지만 뽀르뚜갈어가 자주 섞이는 것으로 보아 뽀르뚜게스임이 분명한 그.
오스삐딸레라로부터 많이, 상세히 들으며 나를 만나게 되기를 기도했는데 이뤄졌다고 호들갑이었다.
아직 뽀르뚜 길 하나도 끝내지 못한 자기에게는 불가능한 그란지 뜨리운푸(grande triunfo/great work/
大業)를 이룩하는 중인 내가 무척 부럽고 아드미라벨( admirável/존경스럽다)하단다.
(처음 듣는 뽀르뚜갈어 '그란지 뜨리운푸'는 그에게 물어서 '큰 업적'이라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대업이란 까미노 데 산띠아고(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향하는)의 7개 메인 루트, 총 4.000
여km와 아라곤길 + 마드리드길의 500여km 및 15%쯤의 답사를 합해 5.000여km의 보행을 의미한다.
바르셀로나(Barcelona/스페인 북동부 자치지방 까딸루냐/Cataluña의 州 및 州都)에서 지중해변을 따라
남행하는 1.000여km를 더하면 총 6.000여km를 2회, 8개월여만에 완주하는 것이다.
77살과 81살이라는 늙은 나이에 감행한 것이므로 모든 연령대의 뻬레그리노스가 선망했으며 특히 서양인
젊은 볼런티어들(volunteers)의 헌신이 없었다면 아마도 힘겨웠을 것이다.
알베르게에서, 늘 꼴찌 입실자인 내게 벙크의 편한 하층을 밍설임 없이 양보한 그들 덕분에 밤을 덜 괴롭게
보냄으로서 체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2층 침대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밤내 수직 사다리를 오르내린다면 하층의 뻬레그리노스에게도 불편이 이만
저만 아니거니와 낮 동안의 걷기가 정상적일 수 있겠는가.
그가 관심을 가진 것 중 하나는 내 요지부동의 귀국일(10월 26일)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됨으로서 귀국을 앞당기게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 날을 넘겨서는 안된다는 나에게
그 까닭을 물어왔으니까.
그의 집요한 물음에 아내와 약속했기 때문일 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내 응답은 무척 싱거웠을 것이다.
굳이 기억될 일이라면 우리에게는 '십이륙 사태' 라는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군부 쿠데타로 국가 권력을 잡은 자가 18년 반이라는 장기 독재를 하다가 최측근에게 살해된 날.
선행(善行)이라 할 수는 없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최악을 물리친 차악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사건
인데 기원 전 1c의 브루투스( Marcus Junius Brutus/BC 85 ~ BC 42)가 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말이.
오스삐딸레라로부터 들은 내용들을 확인하려는 건지 더 세세하게 물어온 그.
이 사건이 발생한 날(10월 26일) 이전에 모든 일정을 완료하고 바로 귀국 길(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이유에
감동먹었단다.
그는 결혼기념식(1주년/紙婚式, 5주년/木婚, 10주년/錫婚, 25주년/銀婚, 50주년/金婚)의 풍속이 여전히
서양인의 전유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가.
지금은 온 세계가 단일 문화권으로 전이된 지구촌 시대.
효시는 그랬다 해도 이미 세계화된 의식이다.
우리에게도 회혼식(回婚式)이라는 의식이 있기는 하나 보다 더 역동적인 서양 풍속에 유야무야한 상태다.
나는 1967년 10월 27일 결혼식을 가짐으로서 부부가 된 이래 많은 해의 이 날을 무심히 보냈다.
소위 사업에 몰두하느라 겨를이 없었고, 산 타기 좋은 계절이라 이 시기의 대부분을 고산준령에서 보냈다.
70대 후반, 늙은이가 되어서는 산이 보도로 바뀌었을 뿐 타깃(target)의 범위는 더욱 광범해졌으며 기간은
까미노에서 처럼 더욱 길어져 갔다.
그래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하듯 아내에게 다짐하고 떠나왔다.
결혼 50주년(金婚日)인 2017년 10월 27일을 2년 앞둔 2015년(올해) 10월 27일부터 부부가 함께 하기로.
{예상 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지중해 남단의 관광일정을 덤으로 짜고 실행에 옮겼으나 호사다마?
남쪽 안달루씨아(Andalucoa) 자치지방의 지중해변 알메리아(Almeria)에서 브레이크(brake)가 걸렸다.
백팩을 도둑맞은 것.
온갖 생활 도구가 포함된 내 이동주택(mobile home)에 다름아니기 때문에 더는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내 몸 밖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귀가 닳도록 들었건만 백팩에서 20여m나 떨어졌으니 가져가라고 버린 꼴이 되었다.
백주에, 두 장정이, 비호처럼 오토바이에 싣고 달리는 것을 멀뚱히 바라봐야 했다.
뻬레그리노와 투어(tour)가 매치(match)되지 않기 때문에 취소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교회와 성당
새 기분을 내기 위해서 어제 샤워할 때 세탁도 한 옷으로 갈아입고 간밤에 먹다 남은 또르띠야 2개를 먹는
등 외출 채비를 했다.
어제 히치 - 하이킹한 차에서 내려 최초로 마주한 건물, 파띠마의 바실리까(Basílica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de Fátima)를 찾아가기 위해 숙소를 나왔다.
공교롭게도 내가 최초로 파띠마에 도착하여 최초로 마주하게 된 건물이 파띠마의 최고, 최대 교회(바실리
까/2015년 6월 현쟈)였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바실리까(Basílica)와 까떼드랄(Catedral)은 가톨릭 교회에서 주교좌 교회를 말한다.
그럼에도,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것은 건물의 양식과 구조에 따르기 때문이라는데 우리 말로는 다같이 대
성당(大聖堂)이다.
나는 교회 건축에 백지지만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바실리까는 아치형 천정이 있는 장방형(長方) 또는 다각형 모양의 건물로 세 부분으로 나뉜다.
중앙의 신랑(身廊), 기둥으로 구분되어 제단으로 통하게.
양쪽에 두 개의 좁은 측면이 있고 뒤쪽으로 짧은 후진(後陣)이 있다는 것.
까떼드랄은 일반적으로 기독교 복음의 중요한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십자형 형태로 건축된다.
사복음서를 나타내는 십자가 또는 기본 방위(cardinal points/동서남북) 형태로.
교회(敎會)의 시원은 고대 희랍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ekklēsía/라틴어로는 ecclesia)다.
가톨릭교와 개신교 공히 영어는 처치(Church), 스페인어는 이글레시아(Iglesia), 뽀르뚜갈어는 이그레자
(Igreja)다
기타 자국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각기 자기 나라말로 번역한다.
이와 달리 중국과 일본, 한국 등 극동의 한자어권(漢字語圈) 국가들의 가톨릭교는 교회와 다른 호칭(성당)
을 사용하며 주교좌 교회도 건물의 구조와 양식에 관계 없이 대성당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개탄과 시정을 요구하는 가톨릭교회 한 신부의 글을 소개한다.
<'교회'(Ekklesia, Church)는 성서적, 신학적 용어다.
'성당' 이라는 용어는 ‘거룩한 건물, 장소’ 의 명칭으로서 협소하고 국한되어 있다.
즉 ‘성당’은 건물 중심의 용어다.
그러나, ‘교회’ 는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성전, 부르심 받은 공동체라는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이렇게 좋은 '교회' 의 의미와 신학적 용어를 포기하고 갈라져 나간 개신교의 고유 용어로 넘겨 주어서도
인정해서도 안된다.
'교회' 의 기원과 의미는 성서로부터 나왔으며 사도들이 즐겨 사용한 ‘크리스찬 공동체’다.
'교회' 라는 용어 안에는 구원적, 신학적 의미를 풍부히 담고 있으며 가톨릭교회를 지칭하는 독점적이고
고유한 단어다.
사도시대로부터 이어져 2000년간 지속되어 온 가톨릭교회의 고유명칭인 ‘교회’가 한국민들에게는 개신교
를 지칭하는 고유용어로 뿌리내리는 현실을 방치해서는 곁코 안된다.
이를 하루 빨리 시정, 개선해야 할 절박성을 호소하고자 한다.
사도들이 물려준 신앙은 ‘교회 = 가톨릭교회’다.
이는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보물을 간직하고 우리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구원의
기관이다.
건물과 장소인 성당은 형식상의 하나의 도구이고 수단일 뿐이다.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우리 신앙의 기반이고 목표이고 방법이다.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성당은 아무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즉 교회는 우리 신앙의 완전한 근거다.
따라서 우리가 ‘성당 = 천주교회’ 라는 용어에 집착하는 것은 본질을 잃고 비본질적 수단에 매여있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가톨릭 신앙의 중심 단어인 ‘교회’를 일상의 안에서 ‘교회 = 개신교’로 지칭하고 있는 것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부정을 저지르는 모순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신앙적 모순은 고스란히 우리의 후손들 세대에게 이어질 것이고. 그들은 ‘교회’ 라는 용어를 천주
교회와는 무관한 개념으로 의식화 될 위험성(Risk)을 안고 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신앙의 선배들이 잘못된 용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후손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게됨을 분명히
자각하고 ‘교회’라는 용어를 회복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언어 문화를 대수롭잖게 생각한다면 앞으로 개신교는 ‘교회’ 로 고착화 되어 그들의
고유 용어로 전유물이 될 것이고, 천주교회는 ‘교회’가 아닌 ‘성당’ 으로 고착되어 풍부한 성서적 의미의
교회상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교회’ 를 지켜내지 못한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사도들 앞에서 어떤 낯을 들어야 할지 부끄러
울 뿐이다.
훗날, 천주교회가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교회와 천주교회는 무관한
미래도 예측해 보지 않을 수 없다.>(Canada Saint John교구 주교좌 보좌신부 신성국/續까미노이야기 30回글 참조)
황당한 홍보 1
직선거리로는 지호지간이지만, 알베르게를 찾아갈 때 그랬듯이 많이 돌아서 가야 하는 바실리까.
도중에 있는 관광사무소( Posto de Turismo de Fátima)부터 들렸는데 잠겨있는 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대부분의 광광안내사무소가 일요일의 근무 대신 월요일을 휴무일로 하는데 여기도 그런가.
부착되어 있는 근무시간 안내문을 살펴보았다.
월요일 ~ 금요일은 09시 ~ 13시, 14시 ~ 17시.
토요일 ~ 일요일, 기타 공유일은 09시 ~ 13시, 14시 ~ 18시.
연중 무휴로 주말과 공휴일에는 되레 1시간 더 근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뿔사, 당도했을 때는 13시 30분 경이었으므로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14시 정각에 리 오픈(re-open)된 관광안내사무소에서 친절한 여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내게 성소(聖所/Santuário) 순례는 의미 없다.
지구의 극동에서 서단, 대서양안(岸)의 까미노를 거듭 찾아간 것은 마음 놓고 걷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길에서 길을 찾는 자가 바로 뻬레그리노스(peregrinos/pilgrims/求道者) 아닌가.
다만, 파띠마의 중추가 되며 기독교 신앙의 대교회인 바실리까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며 탕방할 요량이었고
여직원의 도움은 이에 따른 탐방 대상과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첫 단추의 구멍이 먹통이기 때문이라 할까.
이 계획은 시작부터 뒤틀렸다.
어제는 아무 일 없는 듯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는데 대수리중이라는 바실리까.
아마도 휴일의 탐방객들을 고려하여 보수 개시일을 월요일로 한 것이리라.
내가 이 바실리까의 화려하고도 장중하다는 내부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마라"는 금언을 어긴 대가다.
어제 석양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다음날로 미뤘으니까.
공사 기간도 밝히지 않은 수리 공고에 무시당한 기분이기 때문이었는가.
관광안내소 여직원이 적어준 탐방 순서 메모지를 마구 구겨서 휴지통에 버렸다.
애써 적어준 그 여직원에게는 매우 미안하지만 탐방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실망하거나 기분 나뻐지는 일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후 찾아간 곳은 시계방향으로 돌아 마지막 방문 예정지인 경당(經堂/Chapel of the Apparitions).
바실리까의 왼쪽(Cova de Iria)에 있는 예배당이다.
1세기에서 2년 모자라는(2015년 기준) 98년전(1917년 이전)에는 오렝(Ourem/Santarem縣의 지자체)의
작은 프레게지아(Freguesia)에 불과했던 파띠마(Fatima).
아이레 사막(Serra de Aire) 깊은 곳에 자리한 71.29㎢의 면적에 인구 2.300여명의 소교구마을이었으나
성모의 환시로 성소(Santuário)가 되었고 온 세계에 알려짐으로서 일약 유명 순례지가 된 마을의 예배당.
인구도 5배가 넘는, 11.600명(2015년 기준) 이상으러 비약한 프레게지아(freguesia)다.
1917년 5월 13일 ~ 10월 13일 사이, 매월 13일에 성모 마리아가 세 목동 앞에 나타났다는 곳에 세웠다는
단층 4각형 집인데, 특이하게도 지붕이 있을 뿐이다.
좌측면과 뒷면이 투명한 유리 벽이며 정면과 우측면은 아예 벽이 없는, 탁 트인 건물이다.
4면의 의자들이 각기 중앙의 제단을 향하여 배열되어 있는 것은 미사용임을 의미하지만, 미사시간 외에는
나처럼 행인의 휴식용 벤치로도 사용되고 있다.
중간 방문 예정지들을 생략하고 마지막 방문지의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황당한 홍보 2
무료한 시간이라 조금 전에 바실리까 광장에서 줏은 인쇄물을 읽어보다가 일어섰다.
바람에 날려다니는 종이를 휴지통에 버리려고 줏었지만 파띠마에 관한 내용이라 버리지 않은 것인데.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오래지 않아Wikipedia의 Fatima에 관한 글임이 확인되었다)홍보용 전단지(copy)
의 내용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나를 거북하게 했기 때문이다.
"The Chapel is part of the Santuary of Our Lady of Fatima and is visited at least by 6 million
pilgrims every year."
"매년 최소 600만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한다"고?
위키피디아의 다른 곳에는 연간 6백만 ~ 800만 순례자들(6 ~ 8 million pilgrims yearly.)이라고 했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6.400명 ~ 21.900명 이상이 방문한다는 말이다.
까미노의 여러 루트를 통해서 까미노의 성지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당도하는 뻬레그리노스의 수가
평년보다 월등히 많은 성년(聖年/Holy Year/7월25일이 일요일인 해/2010년)에도 연간 272.703명이었다.
내갸 처음 걸은 2011년에는 179.919명이었고 작년(2014년)에는 237.886명이었다.
이 정도의 방문자에도 넓은 오브라도이로 광장(Obradoiro Plaza)을 비롯해 산띠아고의 다운타운이 북적
거렸는데 한눈에 들어오는 이 작은 마을이 매일 2만명 안팎의 방문자에 배겨날 수 있을까.
산따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방문하는 뻬레그리노스보다 30배가 넘으며, 이 수치는 연간 평균값이기 때문에
많을 때는 하루에 3민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도보자는 무시해도 될 만큼 희소하고 대소 차량펀 방문이 절대적이다.
2만명 전원이 대형 관광버스를 이용하고, 대당 30명이 승차한다면 매일 667대의 버스를 수용해야 한다.
절반이 승차인 4명의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대형버스 334대와 승용차 2.500대의 주차 공간이 있어야 한다.
대형버스의 경우, 이용(탐방) 단체에 따라 차량의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며 승용차도 1인~3인 승차가 허다
하므로 상당수의 증가가 필연일 것이다.
이 수치 역시 연간 평균값이기 때문에 하루에 몰려드는 차량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을 수 있다.
연간 방문자가 600만~800만명이 확실하다면 숙박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대부분이 당일치기 하고 10%만 숙바한다 해도 최소 2.000명 이상의 잘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가능한가.
호텔을 빼면 공허할 만큼 호텔이 많기는 해도 고층과 대규모가 없기 때문에 태부족이며 대피소(albergue)
수준의 숙박소도 절대적으로 미약한데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
2011년에 들은 전년(2010년 聖年)의 진풍경이 생각났다.
까미노를 걷는 27만여명(272.703중 순수 도보자)의 뻬레그리노스 중 일부를 감당하지 못한 알베르게들이
지역의 학교와 유휴건물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게 했다는데 파띠마에는 그럴만한 유휴건물이라도 있는가.
참으로 황당한 홍보다.
성모 마리아의 위상(Hierarchy)이 사도 야고보의 절대 우위에 있기 때문에 야고보의 길보다 더 많이 주목
하고 방문자가 월등히 많아야 한다는 강박감의 산물일까.
절대 우위라 해도 10개가 넘는 세기와 겨우1개 세기의 엄청난 세월차가 있으므로 약간만 과장해도 되련만.
읽는 사람의 느낌이나 기분은 깡그리 무시한 일방적 선동이며 터무니 없는 과장 같아서 자리를 뜬 것이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