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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상품화
▶ 다음 두 글은 몸에 관한 글이다. 두 글을 참고로 우리 사회의 몸 상품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단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분석이 포함되게 하시오.
[가] 소비대상 중에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멋진 사물 - 모든 사물의 요약적 표현이며 자동차보다 훨씬 더 많이 함축하고 있는 사물이 있다. : 그것이 육체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청교주의 시대 이후에 육체 및 성(性)의 해방을 표방하면서 육체의 「재발견」이 행해졌으며, 오늘날에는 육체가 광고, 모드, 대중문화 등 모든 곳에 범람하고 있다. 육체를 둘러싼 위생관념 및 영양 그리고 의료의 숭배, 젊음, 우아함, 남자다움, 여자다움 등에 대한 강박관념, 미용 그리고 날씬해지기 위한 식이요법, 그리고 육체에 따라다니는 쾌락의 신화 - 이것들 모두는 오늘날 육체가 구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구원(救援)이라고도 하는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기능에서 육체는 문자 그대로 영혼을 대신하였다.
집요한 프로파간다가 찬미가(讚美歌)의 표현방식에 따라, 인간은 육체를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육체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수세기 동안 당신들은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고 설득시켜온 사람들(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진정으로 설득되지 않았다)이 이번에는 철두철미하게 여러분은 멋진 육체를 갖고 있다고 설득시키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육체의 존재는 온전한 자명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육체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는 하나의 문화적 사실이다. 인간과 육체의 관계를 결정하는 양식은 그 어떤 문화에서도 인간과 사물의 관계 및 사회적 관계를 결정하는 양식을 반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육체 그 자체와 육체를 이용한 사회적 활동 및 정신적 표상은 사유재산 일반과 똑같은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질서(가령 농민의 경우)에서는 자기육체에의 나르시시즘적 열중도, 구경거리로서의 취급도 없었으며, 노동과정 및 자연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주술적이고 도구적인 육체관이 있었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현재의 생산/소비의 구조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그렇지만 깊은 곳에서는 연결되어 있는) 표상과 결합된 이중(二重)의 취급을 이끌어내는 것, 즉 자본으로, 물신(物神)(또는 소비대상)으로 육체를 취급하는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도 육체는 부정되거나 배척되기는커녕 오히려 의도적으로 (경제적 의미에서) 투자되고 동시에(심리적인 의미에서) 물신숭배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 장보드리야르/이상률 옮김(1991),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나] 현대인의 몸에 대한 태도, 그 중에도 현대인의 ‘몸 가꾸기(몸관리)’의 방식에서 드러나는 삶의 태도와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해 보자. 사전에 의하면 ‘가꾸기’라는 말은 첫째로 ‘생물이 잘 자라나도록 키워주다’, 둘째로 ‘꾸미다’ 혹은 ‘치장하다’로 정의되어 있다. 이 정의는 몸 가꾸기에 있어서 몸의 자연적 성장의 촉진(혹은 순탄한 노쇠)이나 몸의 본래 형태의 유지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몸 가꾸기’는 치장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본래 타고난 몸을 일정한 방향으로 조정하여 일정한 패턴에 맞도록 변형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몸 가꾸기’는 건강의 증진, 각자의 고유미의 발견과 유지, 혹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 표현 등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치된다. 몸 가꾸기에는 공통적으로 추구되는 몸의 패턴이 있고 이 과정에는 용도에 따라 세분화된 화장품, 피부관리, 머리관리, 건강보조식품, 식이요법, 운동, 외과수술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된다. 그래서 이제 타고난 미남미녀는 체계적 몸 가꾸기 내지는 몸 관리의 결과로 등장한 미남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몸 가꾸기가 거대한 자본주의의 소비체계 안에서 교묘하게 유도됨으로써 인간존중이나 행복 등과 같은 이념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인 삶을 고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매체의 발달의 기술적 발전과 양적 확대의 결과로써 이상적인 몸의 패턴-몸 전체의 패턴뿐만 아니라 몸 각각의 부분들에 대한 패턴-이 효과적으로 주입되고, 몸을 주입된 패턴에 맞추는 데 필요한 온갖 상품과 기술, 그리고 프로그램이 개발된다. 몸은 몸 가꾸기에 관련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공략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공략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상품을 소비하는 주체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대신 기업의 상품을 소모시키면서 자신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한다. 예컨대 몸과 관련된 모든 소비-식품, 운동, 진료, 화장품-는 패턴화된 몸을 형성하고 몸을 최고 상품화하는 목적 하에서 이루어진다. 이제 사람은 상품화된 몸이기를 원한다.
자본주의라는 소비 질서 속에서 상품화된 몸은 자아실현의 도구라기보다는 이윤추구, 이윤극대화의 수단이다. 사람들은 몸 가꾸기를 위해 관련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몸에 투자하고 몸의 값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몸에 대한 이러한 투자는 자신의 능력을 개발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시 된다. 정해진 패턴과 유행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투자되지 못한 몸은 결여된 몸으로서 사회로부터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값을 책정 받을 수 없다.
몸 가꾸기나 몸 관리를 통한 몸 상품화는 ‘몸값’이라는 말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몸값이라는 말은 그 적용 영역을 확대해 가면서 일반화되고 있다. 이제 몸값은 유괴자가 요청하는 인질의 몸값이나 화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운동선수, 배우, 모델, 금융투자 상담가 등에게도 확산되어 이들이 벌어들일 수 있는 추정액에 따라 실질적 몸값이 매겨진다. 일단 값이 매겨진 몸은 자본가에게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값이 하락하거나 상실되기 때문에 이윤산출을 위해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체계적 관리는 외모, 체중, 지구력 등에 중점을 둔 몸 가꾸기이다. 몸값의 획득, 유지, 혹은 상승을 위한 몸의 체계적 관리 과정에서 몸은 질병을 얻거나 수명을 다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몸 가꾸기를 통한 몸의 상품화 과정은 몸에 대한 개체적이고 배타적인 소유의식과 몸에 대한 집착성을 불러일으키고 강화한다. 몸 자체가 개체적으로 값을 가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일정한 값의 유지와 값의 최대화의 대상이기 때문에 몸은 집착의 대상인 것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들여다보는 몸에 대한 집착은 미디어 영웅이나 이를 꿈꾸며 분투하는 사람들, 혹은 철없는 아이들만의 병이 아니다. 나 자신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창출된 패턴화된 몸의 이미지와 몸에 관련된 상품이라는 덫에 걸려 나의 정신이 조금이라도 구속받고 있다면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뒤줄임) -안옥선, 불교의 몸: 속박과 해탈의 장소로서의 몸, 전통과 현대 1999년 여름호
[다] 몸의 상품화든 정신의 상품화든, ‘상품화’ 문제에 대해 상당수의 지식인들은 대단히 이중적인 반응을 보인다. 앞서도 말했듯이 철학책을 출간하는 행위나 에로티시즘 소설을 출간하는 행위나, 무언가는 ‘상품화’하여 먹고 살아간다는 점에 있어서는 결국 마찬가지 행위이다. 고도(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가 된다면 모르겠으되, ‘상품화’를 피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상품화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을 교묘하게 호도하여 고귀한 행위로 격상시키려 한다거나, 어떤 ‘상품화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을 교묘하게 폄하하여 천박한 행위로 몰아붙이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를테면 학교 선생이 지식을 상품화하여 먹고 사는 것은 지식의 상품화가 아니라 ‘교육’이요, 육체 근로자가 몸을 상품화하여 먹고 사는 것은 상품화가 아니라 ‘귀한 노동’이라는 식이다. 또 이와 반대되는 현상도 일어나는데, 미스코리아 대회 같은 데서 아름다움을 경쟁하는 행위를 ‘몸의 저열한 상품화’로 보는 관점 같은 것이 그것이다. 에로티시즘 문학의 경우도 같다.
물론 ‘나쁜 상품화’와 ‘정당환 상품화’의 구별은 있을 수 있다. 여성(또는 남성)을 인신매매하여 매춘행위에 종사케 하는 것은 몸의 ‘나쁜 상품화’이다. 그리고 자신의 체력으로 노동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은 몸의 ‘정당한 상품화’이다. 또한 사이비 교리로 광신도를 모아 종교를 팔아먹는 행위는 정신의 ‘나쁜 상품화’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몸의 상품화’에 있어서만은 나쁜 상품화와 정당한 상품화의 구별이 애매한 것이 많다. 이를테면 어떤 여성(또는 남성)이 스스로의 자유의사와 당당한 직업정신에 따라 접대부로 일하면서 돈을 번다거나, 어떤 작가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성을 소재로 하여(다시 말해서 성을 문학 상품화하여) 책을 써서 수입을 얻는다거나 하는 행위 같은 것이 그렇다.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을 ‘나쁜 상품화’라 봐야 할지 ‘정당한 상품화’로 봐야 할지 판단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가운데 줄임-
현대의 소비대중문화는 물신주의(物神主義)로부터 출발한다. ‘물신주의’란 말은 ‘페티시즘(Fetishism)'을 번역한 것인데, ‘페티시(Fetish)'란 말은 원래 어떤 마술적 의미를 가진 숭배물이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테면 돌이나 금속으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 같은 것이 페티시즘이다. 다른 말로 주물숭배(呪物崇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페티시즘에 대해 언급하고,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페티시는 ‘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몸의 상품화’는 ‘몸의 물신화(物神化)’와 깊은 관계가 있다. 정신적 요소가 빠진 몸 자체만을 신격화시켜 그것을 숭배하는 행위가 ‘화폐숭배’와 연결되는 것이 바로 ‘몸의 상품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몸 숭배’의 이면에는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던 ‘정신적 가치’ 또는 ‘형이상학적 가치’에 대한 반발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형이상학은 종교 또는 이성우월주의 등으로 환치되어 인간의 본성을 오랫동안 억눌러왔다.
중세기적 가치관을 한마디로 뭉뚱그려 형이상학적 가치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런 가치관에 대한 반발로 르네상스가 이루어졌고, 르네상스의 연장선성에서 반(反)형이상학적 유물론이 싹텄다. 반형이상학적 유물론은 정신주의에 반대하는 ‘육체주의’를 탄생시켰고, 육체주의는 곧바로 육체적 쾌락 중심의 가치관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육체적 쾌락은 곧 ‘물질적 행복’이나 ‘안락’과 동의어이기도 하므로, 거기서 부르주아 중심의 근대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게 됐던 것이다.
부르주아적 가치관은 ‘돈’을 숭배하는 것이긴 하되 적어도 중세기적 종교독재나 형이상학적 독재보다는 한결 나은 행복을 보장해 주었다. 물론 초기에는 노동자들의 과도한 희생이 뒤따라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운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 노동자들 역시 돈이나 물질적 행복에 경도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게 되었다. 구소련이나 동구권 공산국가들의 붕괴는, 노동자들의 물질숭배나 돈 숭배를 지나치게 간과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몸 숭배’는 ‘정신숭배’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고, ‘몸’이 상품화된다는 화폐경제 체제하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중세기 말에는 교황청에서 ‘면죄부’를 만들어 돈을 받고 팔기까지 했는데, 이는 기독교 정신을 팔아먹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몸을 상품화시키는 것이 정신을 상품화시키는 것보다는 한결 본성에 솔직한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육체적 노동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요구하는 ‘노동운동’은, ‘몸의 상품화’를 긍정적 측면에서 보다 적극화시키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 마광수(1999), 인간, 해냄
< 유의사항 >
(1) 한 편의 완결된 글로 쓸 것
(1) 어문 규정과 원고지 사용법에 따를 것.
(3) 글의 길이는 1,3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100자 허용)로 할 것
1. 생각의 길잡이
▶ 1단계 : 논제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한다.
논제는 일반적이다. 몸의 상품화는 늘상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몸 의 상품화가 쟁점이 되는 밑바닥에는 두 가지 역설적인 흐름이 깔려 있다. 몸을 다른 상품처럼 대하는 것이 지나친 문제라는 의식과 그동안 몸을 정신에 대립되는 부정적인 것으로 홀대해 온 것에 대한 반발심이 그것이다. 따라서 흔한 논제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쟁점이 되는 맥락을 좀 더 치밀하고 분석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 것은 막연한 통념에 의한 생각보다는 실제 사례를 통해 몸의 상품화에 대한 제대로 된 맥락을 짚어보라는 의도이기도 하다.
▶ 2단계 : 논점에 따라 제시문을 분석한다.
몸의 상품화라는 것은 몸을 상품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첫 번째 제시문이 그런 맥락을 자본주의 관점에서 실상 그 자체를 그대로 짚어준 것이고 두 번째 글은 그런 문제의식을 좀 더 비판적으로 진술한 글이고 세 번째 글은 몸의 상품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비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 글의 논리적 흐름을 짚어보자.
(1) 몸(육체)은 영혼 대신에 구원의 대상이 될 만큼 중요해졌다.
(2) 몸의 가치는 문화적 사실에 따라 달라진다.
(3) 몸은 소비 대상으로 투자되고 물신숭배 되고 있다.
몸을 긍정적으로 보건 부정적으로 보건 몸이 정신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형성되기 전에는 육체와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보았는데 그런 태도에는 정신은 고귀한 것, 육체는 그렇지 못한 것이라는 배타적인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그런 이분법이 깨진 현대사회를 지적함과 동시에 몸이 오히려 구원과 소비의 대상이 될 만큼 정신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획득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이러한 몸의 자본주의 속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1) 몸 상품화의 대표적인 몸 가꾸기는 비인간적 삶을 고무시킨다.
(2)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상품화된 몸은 패턴화된 이미지를 통한 이윤극대 화의 수단이다.
(3) 몸에 대한 집착은 배타적인 소유의식과 몸에 대한 집착심을 불러일으키 고 강화한다.
(4) 몸의 상품화는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된다.
(다)글은 이러한 논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글은 아니지만 몸의 상품화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상품화 자체가 꼭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는 관점 아래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1) 몸의 상품화는 나쁜 상품화도 있지만 좋은 상품화도 있다.
(2) 좋은 상품화인지 나쁜 상품화인지 모호한 영역도 있다.
(3) 몸의 상품화는 물신주의, 곧 화폐 숭배와 연결된다.
(4) 몸의 상품화는 몸을 배타적으로 바라보았던 형이상학적 가치관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부르조아 가치관이다.
(5) 부르조아 가치관이 돈을 숭배해도 종교 독재나 형이상학적 독재보다 낫다.
결국 세 글은 모두 몸의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가 문화적, 시대적 산물임을 공유하고 있다. 앞의 두 글이 그런 시대 변화의 흐름을 얘기했다면 마교수는 그런 흐름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마교수의 견해에서 좋은 상품화인지 나쁜 상품화인지 모호한 영역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모호한 영역에 대해 우리 수험생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교수 논점은 상품화의 긍정, 부정을 모두 논하고 있어 중간적인 관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긍정적 관점이 강하다.
▶ 3단계 : 제시문 분석을 바탕으로 논거와 논지를 충분하게 보강한다.
논제 요구와 제시문의 흐름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은 접근이 가능하다.
문제설정 1 : 몸의 상품화에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인 여러 문제는 거의 모두 몸의 상품화와 관련이 되어 있다.
문제설정 2 : 몸의 상품화는 당연한 것이다. 좋은 상품화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결국 몸의 상품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상품화하느냐가 중요하다.
첫 번째 문제설정이라면 먼저 상품이라는 말의 맥락에 주목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품이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 극대화를 위해 만든 또는 만들어가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몸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부르디외가 지적했던 것처럼 몸을 자본화시킨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의 몸값 부풀리기이다. 그래서 노비문서(계약문서)나 매니저 폭력 등의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글에서 나와 있듯이 이러한 몸 상품화 문제는 단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민 모두가 기업이 몸의 상품화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시도하는 전략, 그로 인한 미디어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몸 콤플렉스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몸의 상품화의 최대 문제는 인간의 가치 척도를 물질적, 외형적 잣대로 바꿈으로써 비인간적 사회를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사람다움 또는 제대로 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그 사람의 행동거지나 생활양식, 정신적인 건강함 등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는 점점 더 삭막하고 배타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실제 그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 면접을 위해 성형수술 열풍이 부는 것은 그런 사회 문제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와 더불어 만들어가는 과정 중심 생각 말고 생물학적 조건으로서의 몸의 불평등을 조심스럽게 지적할 수도 있다. 몸의 상품화는 근본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이미 타고난 몸의 상태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의 기준은 상대적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일반적 기준이 존재한다고 볼 때 누구는 아름답게 태어나 쉽게 더 나은 지위를 획득하고 돈을 벌지만 누구는 타고난 신체조건 때문에 많은 불리함을 겪고 있다. 성형수술 같은 후천적 노력의 기회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노력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고 그 또한 많은 자본이 든다는 점에서 불평등 조건에 포함된다. 다음으로는 우리사회의 몸에 대한 과잉 풍속도를 지적하는 것이 좋겠다. 이미 다이어트 열풍으로 인한 비합리적인 소비행태와 이를 이용한 얄팍한 상술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두 번째 문제설정이라면 마교수 견해를 좀 더 보강하는 쪽이 좋겠다. 먼저 이성 중심의 생각 때문에 몸을 배타적으로 바라본 흐름을 비판해볼 수 있다. 정신만이 고결하고 몸은 그 반대인 것처럼 여겨온 역사적 흐름이 인간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켜 온 것이다. 그래서 몸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나 감정, 감성 세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룸으로써 많은 이성 중심의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니까 몸의 상품화는 비록 부정적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잘못된 인식 구조를 바꾼 결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몸의 상품화가 이성 중심의 왜곡된 사회화보다는 낫다는 식의 견해다. 인간이 이성을 앞세워 환경을 파괴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인간을 억압했는데 그에 비해 차라리 몸의 상품화가 훨씬 낫다.
또한 마교수의 견해대로 몸의 상품화에 대한 이중 의식을 비판할 수 있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으로 훈련하고 갖춘 기술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것이나 모델이 타고난 몸매로써 열심히 노력해 돈을 버는 것이나 결국 같은 것인데 한 쪽만을 상품화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의 상품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다양한 몸의 실태를 인정하고 긍정적인 상품화를 이룩하면 된다.
▶ 4단계 : 분석을 바탕으로 구성해보기
한 편의 논술문을 크게 보면 문제제기 단락(서론)과 마무리 단락(결론), 그 중간의 논증 단락(본론)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구성의 핵심은 중간단락인 본론이 된다. 첫 단락에서 자신의 논점이나 관점 또는 주장의 방향을 잡았으면 그것을 어떤 전략으로 논증할 것인가를 구상하고 핵심 논거나 분석의 키워드나 문장을 설정해 그것을 각각 한 단락으로 구성하면 된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틀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관점 위주]
1. 문제제기 : 몸의 상품화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보고 순기능을 위해 애쓰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은가.
2. 일 측면에서 본 긍정성
3. 몸의 상품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
4. 상대적인 가치관으로 본 긍정성
5. 긍정적인 상품화를 위한 노력들
6. 부정적으로 보는 관점 비판
7. 마무리
[부정적인 관점 위주]
1. 문제제기 : 몸의 상품화는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2. 몸 이윤 극대화의 모순
3. 우리 사회의 부정적 열풍
4. 인간 가치 기준으로 본 문제점
5. 획일적 미의 문제
6. 마무리
▶ 5단계 : 좀 더 보완하거나 유의해야 할 점
앞 해설에서 주로 긍정, 부정 양 극단적 관점 위주로 했지만 제 3의 관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교수 논점도 긍정적 관점 같지만 결국은 제3의 관점이다. 이러한 제3의 관점으로 글을 쓸 때는 그 기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긍정 부정을 왔다갔다 하다가 짬뽕하는 듯한 어설픈 글이 되기 쉽다. 논술은 결국 자신의 관점이나 주장을 설득하는 글이다. 논술의 논점은 결국 논증하는 쟁점인데 그 쟁점은 바로 자신만의 치열한 관점을 뜻하는 것이다.
2. 모범 예문
[긍정적인 관점 위주]
우리 사회의 몸에 대한 열풍은 대단하다. 다이어트에서 성형수술까지 몸에 관한 산업은 거대산업이 되었다. 몸의 상품화를 부정적으로만 보기에는 이미 상품화 자체가 우리 삶 그 자체가 되었다. 따라서 몸의 상품화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보고 순기능을 위해 애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은 본래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을 활용해 일을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공부도 하고 기술도 익히는 것이다. 곧 몸의 상품화는 일하는 인간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지만 사실은 일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 열풍도 몸값을 높이기 위한 노력 중의 하나일 뿐이다. 누구든 자신의 몸값을 위해 애쓰는 것이 당연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신의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것도 다이어트를 통해 더 나은 가치의 외모를 만드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마교수는 몸의 상품화가 나쁜 측면도 있고 좋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좋은 측면을 주로 주목했다. 설령 나쁜 상품화가 있다고 해서 몸의 상품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인간과 관련된 것들은 어차피 양면성을 띠게 마련이다. 칼이나 책이 나쁜 용도로 쓰일 수 있다고 해서 칼이나 책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부정적인 상품화를 막고 긍정적인 상품화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스코리아나 특산물 아가씨 뽑기 제도와 같이 특정 미의 기준을 획일화시키는 것들을 없애야 한다.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미를 다양한 방법으로 뽐낼 수 있는 안티미스코리아와 같은 축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여기서는 몸의 다양한 특성을 통한 뽐내기가 이루어진다. 곧 각자의 개성이 미가 되는 풍토나 분위기를 열심히 만들자는 것이다.
몸의 상품화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태도 자체가 이미 몸을 부정하는 이성 중심의 잘못된 생각이다. 생각은 고결하고 몸은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이 그런 생각을 낳았다.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정신이 없는 육체나, 육체가 없는 정신이나 모두 그 존재 가치가 없다. 이성 중심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온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쟁, 환경 파괴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비장애인이나 키 작은 사람에 대한 멸시 등도 그런 이분법이 낳은 부작용이다.
몸은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다. 타고난 몸을 가지고 상품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열심히 노력해 각자의 상품을 만든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소비의 주체이기도 하고 소비의 대상이기도 한 셈이다. 보드리야르는 그런 측면에서 몸의 진실을 본 것이며 마교수는 그런 진실의 현실 전략을 잘 제시한 것이다. 몸의 상품화를 좋은 쪽으로 이뤄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부정적인 관점 위주]
우리 사회의 몸에 대한 열풍은 대단하다. 다이어트에서 성형수술까지 몸에 관한 산업은 거대산업이 되었다. 몸의 상품화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속성을 대변할 만큼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몸의 상품화를 반대하는 것은 잘못된 자본주의와의 거대한 싸움이기도 하다.
따라서 먼저 상품이라는 말의 맥락에 주목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품이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 극대화를 위해 만든 또는 만들어가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몸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부르디외가 지적했던 것처럼 몸을 자본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미 다이어트 열풍으로 인한 비합리적인 소비 행태와 이를 이용한 얄팍한 상술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각자의 개성과 적성을 통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거대 시스템이 조작하는 각종 기준에 각 개인이 놀아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글에서 나와 있듯이 이러한 몸 상품화 문제는 단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국민 모두가 기업이 몸의 상품화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시도하는 전략, 그로 인한 미디어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몸 콤플렉스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몸의 상품화의 최대 문제는 인간의 가치 척도를 물질적, 외형적 잣대로 바꿈으로써 비인간적 사회를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사람다움 또는 제대로 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그 사람의 행동거지나 생활양식, 정신적인 건강함 등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는 점점 더 삭막하고 배타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실제 그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 면접을 위해 성형수술 열풍이 부는 것은 그런 사회 문제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영자 사건이 몸 상품화의 잘못된 부작용의 좋은 예다. 이영자는 뚱뚱하다는 자신의 개성을 통해 좋은 상품화를 이뤄냈지만 결국 이영자를 움직이는 자본의 흐름에 의해 그런 좋은 쪽의 상품화는 획일화된 미로 바꿔 버렸고 그로 인해 거대 자본의 싸움판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설령 몸을 자본화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문제는 거대 자본이 주도해 나간다는 데 있다.
마교수는 좋은 상품화도 있다고 항변하지만 몸의 경우는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인간의 몸이 이성이 아니라서 상품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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