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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국밥집 옆 마당 가마솥 아궁이에 불이 없다. 갈 때마다 장작을 때던 할아버지가 안 보인다. 식당 안도 어딘가 휑하다. 주인 할머니가 쓸쓸히 웃는다. "우리 신랑 하늘나라로 갔어." 예닐곱 해 이 집 다니면서 할아버지 몸이 불편한 건 알았어도 그새 떠나실 줄은 몰랐다. 점심 치르고 손님 뜸한 시간 노부부가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모습이 생각난다. 위로하고 싶은데 입에서는 고작 "그러셨군요"라는 말만 나온다. 집안 어른 부음이라도 들은 듯 덩달아 쓸쓸하다. 가게도 주인도 손님도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싶다.
여행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끼니 때울 때가 많지만 내키는 일은 아니다. 휴게소 음식이 많이 좋아졌다곤 해도 손맛과는 거리가 멀다. 부글거리는 속을 집 밥처럼 가라앉혀 주는 음식이 아쉽기 마련이다. 그럴 때 고속도로에서 잠깐 내려 들르는 식당들이 있다. 횡성 둔내면 성우관이 그런 곳이다. 영동고속도로 둔내IC에서 3㎞쯤 떨어진 둔내시장 입구에 있다. 일흔 살 고운 할머니가 장꾼에게 새벽 국밥 팔아온 지 35년 됐다.
이 집에 가면 6000원짜리 된장찌개를 먹는다. 10년 묵힌 된장이 새카맣다. 세월만큼 맛 깊고 구수하다. 차림표에 적힌 '쇠고기 된장찌개' 대신 멸치로 끓여달라고 미리 부탁하고 간다. 보글보글 냄비째 오르는 찌개가 '내 인생의 된장찌개' 중 다섯 손가락에 든다. 반찬도 기립 박수감이다. 잘 익혀 큼직큼직 썬 무김치가 사근사근 시원하다. 젓갈 없이 담근 배추김치가 개운하면서도 감칠맛 난다. 무채·콩나물도 아삭아삭하다. 찌개 국물에 비벼 먹기 딱 좋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떠나보낸 뒤 소머리국밥과 설렁탕을 차리지 않는다. 아궁이를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나서일까. "겨울 오니까 다시 끓여야지" 한다. '이제 기운 차려야지' 하는 말로 들린다. 지난가을 다닌 음식점 중에 유난히 사람 냄새 물씬한 노포(老鋪)가 많았다. 손맛 깊고, 인심과 정(情)은 더 깊은 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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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속초 중심가 중앙로 뒷골목 연지한식에서 아침 백반 상을 받았다. 집에서 먹듯 꾸밈없이 친근한 13찬에 된장찌개가 올랐다. 고들빼기김치 오이김치 무생채 무말랭이무침 가지무침 호박무침 꽁치조림…. 특별한 반찬은 없어도 된장부터 배추김치까지 사다 쓰는 건 안 보인다. 그것도 전날 만들어둔 게 아니라 대부분 아침 문 열기에 앞서 버무린 듯하다. 진한 양념으로 덮지 않아 생생한 재료 맛을 음미하며 하나씩 찬 그릇을 비웠다. 된장찌개도 달짝지근하거나 짜지 않고 삼삼하다.
연지한식 기와집은 일대에서 제일 오래됐다. 여관을 하던 일흔아홉 할머니가 25년째 식당을 꾸린다. 가운데 아담한 좌식 공간은 여관 안마당이었다. 거기를 에워싼 크고 작은 방들에서 옛 ㅁ자 집 흔적을 본다. 할머니는 편찮아 아드님이 나와 있다. 어머니 여관 밥 먹어봤던 단골들이 지금도 찾아온다고 했다. 그래서 되도록 조미료는 안 넣는다고 했다. 7000원 백반 상에 속뿐 아니라 마음까지 편안하다.
단풍 보러 내장산에 갔다가 정읍 충남집에 들렀다. 사철 6000원짜리 쑥 된장국을 내는 집이다. 늦가을에 쑥국이라니. 그런데 영락없는 봄 향기, 봄맛이다. 김치와 갓김치, 무장아찌도 간이 딱 맞는다. 토하젓 비슷한 젓갈도 올랐다. 고춧가루로 버무려 한 해 숙성시킨 새우젓이다. 새우는 녹아 없어지고 새우 향만 남은 밥도둑이다. 여든두 살 할머니는 오뉴월 내장산에서 캐온 쑥을 데쳐 얼려둔다고 했다. "내장산 쑥 아니면 그 맛이 안 나." 열어 보여주는 냉동실에 곱게 나눠 싼 쑥이 차곡차곡 쌓였다.
할머니는 충남 강경에서 익산으로 시집와 서른다섯에 홀로 됐다. 여섯 남매 먹여 살리려고 정읍 이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월급이 밀리자 일수 빚 내 식당 사들인 지 44년. 딸이 아팠던 날, 친정어머니 장례 치른 사흘 빼곤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했다. 지나간 세월 따라 눈이 허공을 더듬는다. "아프려야 아플 새가 없었어." 동백기름 바르고 빗어 넘겨 쪽 찐 머리가 한 올 흐트러짐 없다.
정읍 간 김에 임실 강진시장 국수가게 행운집까지 내달렸다. 2년 전 3000원에 여섯 반찬 올랐던 국숫상과 주인 할머니가 여전한지 궁금했다. 문 앞에서 돼지 머리 삶아 살 발라내던 할머니가 반색한다. 다리에 깁스를 했다. 달포 전 넘어져 뼈를 다친 뒤 문을 닫았다가 며칠 전 억지로 나왔다고 했다. "아들은 말리지만 단골들이 성화여서…." 실은 퍼주기 좋아하는 할머니가 좀이 쑤셔 못 배겼을 것이다.
부엌 바구니에 연한 얼갈이배추 속잎이 봄빛으로 담겨 있다. 무쳐 먹으면 맛있겠다 생각했더니 금세 무쳐 내준다. 머리 고기와 김치 셋, 새우젓까지 여섯 찬이 변함없다. 국물이 안 보이게 양푼 가득 담은 국수도, 3000원 하는 값도 그대로다. 어스름 저녁 손님은 공짜 머리 고기에 막걸리 두 통을 비우는 농부뿐이다. 맥주·소주는 3000원이면서 막걸리는 2000원 받는다. 시골 장터 인심이다.
마침 큰아들이 밭에서 트럭 가득 무를 뽑아 왔다. 할머니가 농부 손님에게 튼실한 무를 넷이나 들려 보낸다. 농부 입이 벌어졌다. "요즘 무 맛있을 철이여. 생채 해먹어." 우리한테도 한 다발 안긴다. 2년 전 다듬던 상추를 신문지에 한 무더기 싸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