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동안 대원들 식단을 마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고소 식량 계획은 평지보다 산소가 부족한 관계로 취사방법, 칼로리, 무게, 소화흡수 등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원정을 처음 준비하는 나로서는 먼저 갔다온 팀들의 보고서를 충분히 검토하고 나름대로의 식단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준비했다.’
위의 글은 지난 여름의 유니버시아드대회 성공을 기원하는 대구경북학생산악연맹(회장 손익성)의 로체 원정대의 식량보고 머리글이다. 이 보고에는 국내와 현지에서 구입한 식량 목록이 수록되어 있고, 주식과 부식, 그리고 간식과 차류로 분류해서 설명해 두었다. 운행식을 캐러밴식, 베이스캠프식, 고소식으로 나누면서 중량과의 싸움을 나열해 놓기도 했다. 준비한 일부 품목들이 고소에서 적절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도 많았음을 실토했다.
식단을 다양하게 개발하지 못해 몇 개 메뉴로 반복한 것이 식량 담당으로서 대원들에게 죄송스러웠다는 말과 함께 아무런 불평없이 맛있게 먹어 준 대원들에게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는 말로 이 보고서는 끝을 맺는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상투머리 돌쇠 강경모 대원은 지금 상주 갑장산 자락에다가 ‘초가집’이라는 이름의 전원카페를 지어 놓고 찾아오는 산꾼들과 산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며 괴짜로 살고 있다.
반야사 들목의 인삼송어집 너추리양어장
49번 지방도로에서 반야사쪽 갈림길목에 선 ‘너추리양어장’(043-742-5975)이라는 송어회집은 조립식 건물이라 보기엔 좀 허술하지만, 인삼송어라는 희귀한 송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인삼송어는 인삼을 첨가해 발효시킨 사료를 먹여 키운 송어를 말한다. 때문에 인삼의 효능이 그대로 배어 있고, 물고기 또한 보약 인삼을 먹고 힘차게 자라나 힘이 일반송어의 두 배 이상 되는 등, 거의 자연산에 가까운 육질을 보인다고 한다. 또한 신선도도 오랫동안 유지되며, 불포화지방산(DHA, EPA) 함량이 한결 많다고 한다.
너추리양어장은 송어를 양어장에서 가져온 뒤 며칠 지나서 횟감으로 쓴다. 금방 가져온 것은 맛이 없고, 며칠 지나 사료 성분이 다 빠진 것이라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미리 예약하면 송어를 잡아서 포를 떠서 마른 수건으로 잘 싸서 3~4℃에서 2~4시간 숙성시켰다가 내놓는다. 이렇게 하면 맛이 한결 좋아진다고 한다.
1kg에 13,000원으로 값도 도회지에 비해 싼 편. 2kg짜리 한 마리면 3~4명이 충분히 먹는다. 회를 뜨고 남은 송어뼈를 고아 만든 어죽을 덤으로 낸다.
반야사코스에 떠오른 민박집 반야산장
경북 상주 사람들은 백화산을 ‘상주의 산’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충북 영동에 걸쳐 있는 이 산을 오르는 메인루트는 황간면에 소재한 반야사쪽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에서 나와 49번 국지도(국가지원 지방도)를 타고 북향하면 반야사로 들어서는 좁은 길을 만나게 된다. 이 좁은 길을 따라 반야사에 이르게 되는데, 절에 들어서기 전 마을에 얼마 전에 새로 지었다는 민박집 ‘반야산장’(043-744-6532)이 눈에 띈다.
담장 없이 지은 아름다운 하얀 2층 건물 마당은 온갖 꽃들과 나무들로 잘 꾸며 놓았다. 곱게 물든 황혼의 노부부 백의구-안영자씨 내외가 손님들을 반갑게 맞는다. 오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푸른 산자락, 맑은 물 흘러내리는 물가에다가 비둘기 집 같은 집을 짓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보금자리가 이 곳이라며 노부부는 활짝 웃는다.
취사시설이 잘 되어 있는 대·중·소 9개방에 50명 안팎의 인원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방값은 크기에 따라 2만~10만 원이다.
양강 맑은 물에서 잡아올린 올뱅이해장국
영동에는 금강 상류인 양강의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이 지방에는 맑은 물에서 잡아올린 다슬기로 국을 끓여내는 식당이 많다. 올뱅이국, 또는 올갱이국으로 불리는 다슬기해장국은 이제 충북을 대표할 만한 음식이 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9종의 다슬기가 서식한다. 이 중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자라는 참다슬기와 구슬알다슬기만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고 있다. 건강식품으로 시력에 특히 좋다는 올뱅이국을 백화산 산행길에서 먹어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덤이 될 수 있겠다.
황간역 앞에는 올뱅이국집 세 곳이 있다. 그 중 한 곳 ‘동해식당‘(043-742-4024)은 땅에 납작 주저앉아 있는 낡고 허름한 작은 집인데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몰린다. 4,000원이던 해장국을 얼마 전 5,000원으로 올렸다.
영동읍내에는 월간山에 이미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는 원조올뱅이집 ‘뒷골목’(043-744-0505)이 여전하게 성업 중이다. 주변 업소에서는 모두 음식값을 5,000원으로 인상했지만 아직 4,000원을 고집하고 있다. 뒷맛이 개운하듯 이 집 인상마저 개운하다. 미나리 오이 양파 풋고추와 초고추장을 만들어 함께 비벼먹는 올뱅이무침(15,000원)이 안주로 술맛을 돋군다.
추풍령 나들목에서 황간쪽으로 경부선 철길 건널목 가기 전에 있는 돼지갈비 전문점 ‘추풍령할매갈비’(054-439-0150)는 전국에 꽤나 알려져 있는 업소다. 옥호와는 달리 할매는 계시지 않고 젊은 2세들이 영업하고 있다. 돼지갈비 1인분 6,000원.
상주역 앞에도 있네 황태마을
백화산 취재길에 상주시청을 들렸다. 식당 담당부서를 찾았는데 담당자라는 여직원이 몹시 짜증스러워했다. 상주시내나 백화산 자락에는 추천할 만한 식당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시청에서는 모범음식점이라도 선정해 놓았을 것인데, 참 딱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밤 어떤 사람의 엉뚱한(?) 추천으로 백화산이 아닌 갑장산 자락으로 찾아들었다가 고생만 해 피곤했는데 피로를 더 겹치게 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에 추천할 만한 식당이 없다니. 그런 생각 끝에 미친 것이 열차역과 버스터미널이었다.
상주에는 김천과 영주를 잇는 기차길 경북선이 놓여 있다. 역 앞에는 어느 곳이나 먹거리집들이 성업이게 마련이다. 대구나 경북쪽 사람들은 ‘역전’이면 될 말을 꼭 ‘역전앞’이라고 한다. ‘처갓집’식이다. ‘역전앞에는 값싸고 맛있는 식당이 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혜(?)다. 상주역 앞에도 황태해장국을 먹을 수 있는 ‘황태마을’(054-536-5592)이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깨끗한 식당이었다.
점심 손님맞이에 바쁜 집주인 김영숙(50)씨가 밥을 그릇에 담고 있었다. 자식들 밥상을 차리는 어머니의 숭고한 모습처럼 보였다. 강원도 진부령에서 가져온 황태로 찜과 구이와 전골을 차려낸다. 황태해장국(4,000원)이 단연 인기고, 특별메뉴로 황태칡냉면과 황태칼국수도 차려낸다.
상주 버스터미널 인근 복요리천국 파랑도복집
상주시청에서 만난 영남일보 사회부 이하수 차장이 버스터미널 맞은편 지적공사 옆에 있는 ‘파랑도복집’(054-536-2233)에 가보라고 한다. ‘생복불고기’를 잘 하는 집으로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고 했다. 상주시 무양동에 있는 깔끔하고 시원한 분위기의 집에 들어서면서 처음 느낀 것은 음식값이 좀 비싸겠구나 하는 것이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대표음식이라는 생복불고기가 1인분 15,000원이고, 가장 대중적인 복요리, 복매운탕이 6,000원, 복맑은국(지리)이 7,000원이다.
이 집을 잘 아는 단골들은 복영양탕(9,000원), 밀복매운탕·지리(각 10,000원), 참복까치매운탕·지리(각 13,000원)를 미리 예약해 놓고 식당을 찾아온다고 했다. 복조리사 자격증은 안주인이자 주방장인 강금자(姜今子·48)씨가 갖고 있다. 8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고 넉넉한 주차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상주땅에서 백화산을 오르자면 모동면으로 가야 한다. 모동면 사무소에서 60여m의 거리에 소고기버섯전골(1인분 6,000원)을 전문으로 하는 ‘부산식당’(054-532-9695)이 있다. 한식(4,000원)과 목초삼겹살(1인분 5,000원)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이 식당의 2층은 부산민박(054-533-9919)이다.
상투머리 돌쇠 강경모 대원의 전원카페 초가집
산자락 외지의 도시에서 밤을 맞는다. 저녁밥은 먹었겠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간다? 이럴 때 떠오르는 곳이 술집이나 노래방인데, 상주에서는 이상스럽게 등산장비점 생각이 났다. 먹거리집 보다는 산행안내를 받고 싶어서였다. 시내 곳곳을 둘러 보았는데도 신통한 집이 보이지 않는다. 한 약국을 찾아들어가서는 소화제 한 병 마시고 젊은 약사에게 이 곳에서 가장 크고 가장 좋은 등산장비점 한 곳을 가리켜달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산이 좋은 사람들’(054-531-0048)이었고, 여기서 처음 만난 사람이 산꾼 장헌무씨다.
주성대학 OB인 장헌무씨는 초오유(8,201m)와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올랐고, 에베레스트와 로체 등반에 참가했으며, 지난해에는 중국 우써봉(6,070m) 초등을 기록한 산꾼이다. 고향인 상주에다가 최고의 장비점을 운영하겠다는 당찬 의욕을 보이는 그에게 “장포에 가서 선배가 술 한 잔 사겠다”고 제의했다. ‘장포’(054-535-8818)는 시내 무양동에서 미리 봐둔 술집이다. 숯불막창과 삼겹살을 굽는 이 집에서는 초저녁부터 술꾼들이 북적거려 앉을 틈이 없었다. 후배는 뜻밖에도 상투머리 돌쇠의 ‘초가집’으로 갔으면 좋겠단다.
상주에 가면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강경모 후배였다. 그런데 장헌무씨가 그의 집으로 가자고 하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초가집’(054-534-8848)으로 갔다. 시내 중심가에서 5km. 상주시와 낙동면 경계를 이루는 굴티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왼쪽에 있는 집이다. 택시요금이 6,000원을 조금 넘어섰다. 빨간 유도등이 30m나 될까. 유도등을 따라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이 끝나는 곳 ‘초가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하얀 바지저고리 상투머리’가 객을 반갑게 맞는다. 바로 얼마 전 팔공산에서 만났던 긴 댕기머리가 상투머리로 바뀐 것이다.
산꾼 강경모씨는 참으로 별난 꿈을 갖고 괴짜로 사는 인생이다. 별난 차림부터 화제다. 한 때는 빡빡 깍은 머리로 거리를 활보했다. 동내 똘마니 깡패들이 조폭 두목이 나타난 것으로 잘못 알고 형님 대접을 하더라나. 다음 차림이 땅에 닿을 듯한 긴 댕기머리였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모두들 예술가나 도인으로 예우해 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 댕기머리 차림으로 로체 원정길에 올라 식량을 담당했다.
그러고는 아주 최근에 상투를 틀었다. 장가를 가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청학동에서 오셨습니까?” 또는 “오늘 어디 연극공연이 있었습니까?” 하고 묻는단다. 그는 그냥 “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서울 성남고를 나오고 고향땅으로 역유학(?)길에 올라 상주대학 축산과를 졸업했다. 대학 때 산에 입문, 히말라야 원정을 꿈꾸게 됐다고 한다. 이 꿈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생선장사부터 시작했다. 장사는 잘 됐고 히말라야 원정길에 사표를 써야할 일도 없었다. 그러고는 그 첫번째 꿈이 로체 원정으로 이루어졌다.
지금 전원카페로 문을 연 집은 네 살 아래 동생과 둘만의 힘으로 지었다고 한다. 60평 규모 집을 한 달만에 짓자고 했는데, 실제로는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실내 벽면의 민속화는 강경모씨 자신이 그린 그림이다.
파전과 오징어볶음에 동동주 술상이 차려졌다. 음식은 동생 내외가 장만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깊은 밤까지 계속됐다. 30명 안팎의 인원이 함께 잘 수 있는 방과 마루가 있다. 큰 방에다가 히말라야 원정 때 사용했던 우모침낭과 놋쇠 요강을 갖다 놓았다. 방문만 열면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데, 웬 요강이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걸작이다. 아침에 요강을 비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안개 낀 아침 상투머리가 요강을 들고 나가서 집 주변에 있는 나무뿌리에다 붓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요강을 비우는 쏠쏠한 재미의 참뜻을 알았다.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60대산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