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사적과 3.1운동 인물 - 기억해야 할 믿음의 선진들 (1)
총회사적 제7호인 부산진일신여학교는 호주장로회 여자전도부에 의해 1895년 좌천통의 한 초가에서 3년 과정의 소학교로 시작되었습니다.
주경애는 일신여학교 교사로서 동료 교사인 박시연과 11명의 고등과 학생들과 함께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였습니다. 당시 태극기의 재료로는 김반수 학생의 부모님이 딸의 혼수용으로 마련해 둔 옥양목 한 필도 있었습니다. 3월 11일, 교사와 학생들은 교문을 뛰쳐나갔습니다. 곧 100여 명의 주민들이 시위에 가세하여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습니다. 이후 만세 시위는 3.13 동래고보 봉기, 3.18 동래범어사 학생의거, 3.29 구포시장 의거 등으로 이어졌으니 일신여학교는 부산.경남 지역 3.1운동의 진원지가 되었습니다.
시위 후 일경에 검거된 교사와 학생들은 여성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문을 당하면서도 의연히 민족독립정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등과 4학년 김응수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제 밥을 빼앗으면 달라고 운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돌려달라고 시위하는데 무엇이 나쁘냐"고 반문하여 오히려 심문하는 일경을 당황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경애와 박시연 교사는 징역 1년 6개월, 학생들은 징역 5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모시실을 무릎에 비벼 뽑는 강제노동으로 무릎이 벗겨지는 혹독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 3.1 운동 100주년 기념 주간 말씀묵상집, 첫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