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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교리공부 스크랩 예수님의열두제자
늘 맘 추천 0 조회 82 18.09.06 14: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예수님의 12 제자(사도)

  

 

 

 

 

 - 1

 

베드로 [Petrus]
연대
BC 10~AD 65년경 

축일 6월 29일

다른이름
시몬, 케파(게바) 
가족관계
안드레아와 형제
출신지역
갈릴레아 베싸이다 (뱃새다)
주요행적

초대 교황

요한 또는 요나의 아들로 이스라엘

갈릴레아 지방 베싸이다 출신 어부였다.

결혼후 카파르나움으로 이주해 장모와

함께 살았다. 

원래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세레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로부터 "두려워 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는

부르심을 받고 예수의 첫번째 제자가 됐다.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님으로부터

"반석" 이란 뜻의 "베드로"(아랍어로는 케파)

라는 이름을 얻었다.

 

부활한 예수로부터 수위권을 받은 베드로는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교회 안에서  으뜸 사도로 활동했다.

베드로는 교회안에선 설교자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겐 선교사였다.

또 바오로(바울)의 오해를 바로잡아 주는

권위자였다.

 

로마 교회 창립자인 그는 바오로(바울)와

함께 협력해 로마지역을 선교하다 체포되

 65년 네로황제의 대박해 기간중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그의 유해는 현재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안장돼 있고, 두개골은

사도 바오로(바울)의 두개골과 함께 옛 교황

청이었던 로마 라테란 요한 대성전 제단

위에 모셔져 있다.

 

 

- 2

 

요한 [Ioannes]
연대
AD 6년경~AD 100년경 

축일 12월 27일 

다른이름
흔히 사도 요한으로 불림
가족관계
대야고보의 동생, 제베대오와 살로메

사이에서 출생

출신지역
갈릴릴레아
주요행적

요한 복음서와 묵시록의 저자이며,

제베대오의 아들로 (대)야고보의

동생이다.

 

요한은 처음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사도행전에서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며 투옥당하기도

했다. 성 바오로는 야고보와 베드로와

함께 요한을 일컬어 ‘교회의 기둥’

이라고 불렀다.

겐네사렛 호수에서 형 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됐고, 예수의 영광

스러운 변모를 목격했으며, 최후의

만찬 후 예수께서 겟쎄마니에서

기도할 때 함께 있었다. 

 

또 예수의 명에 따라 성모 마리아가

영면할때 까지 모시고 산 제자였다.

요한은 사도 (소)야고보와 함께

예루살렘 공동체의 중추적 인물로

49년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 참석했고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에페소에서 선종하였다.

 

 

 

 - 3

 

야고보 [Iacobus]
연대
?~AD 44년경 

축일 7월 25일

다른이름
야곱, 알패오의 아들인 작은 야고보,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대야고보로 불림.

가족관계
요한의 형, 제베대오와 살로메의 아들
출신지역
갈릴레아
주요행적

예수의 12사도 가운데 첫 순교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대 야고보`라 부름, 야고보는 우리말로

"발꿈치를 잡는 자"란 뜻이다.

야고보는 겐네사렛 호수에서 배를 띄워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예수님의 부르심

받았을 때 아버지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으나 곧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인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였다.

그는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는 모습과

부활후 발현한 모습을 지켜 보았고,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고, 야이로의 딸

되살리는 기적을 행할때 함께 있었다.

 

아울러 예수로 부터 "천둥의 아들"이란

뜻의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받았다.

또 열두사도중 가장 먼저 순교했고,

유일하게 순교 사실이 신약성경에

전해지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스페인 서북부 지방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복음을 전하

 팔레스티나로 돌아왔다가 헤르데

아그리빠 1세의 박해때 체포돼 44년 경 

순교했다. 유해는 처음엔 예루살렘에

안장됐다가 훗날 산티아고데 콤보스델라로

이장됐다.

 

 그는 스페인과 과테말라, 니카라과의

수호 성인이다.

 

 

 

- 4
안드레아 [Andreas]
연대
?~AD 69년  

축일 11월 30일

다른이름
안드레아 안드레
가족관계
베드로와 형제, 아버지는 어부로 요나,

어머니는 요안나

출신지역
갈릴레아 베싸이다 (뱃새다)
주요행적

사도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 란

 '남자답다'라는 뜻.

 어부 출신으로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

으나 예수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 열두제자 중 요한과 함께

가장 먼저 예수님님을 따랐으며 

시몬 베드로를 인도해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된다.

 

 안드레아는 신약성경에 모두 12번

 나오는데 예수께 최후의 심판이

언제 일어날지를 질문하고,

예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로 5000을 먹이는 기적을 행할때

한 소년이 빵과 물고기를 갖고 있음을

 예수께 알린다. 

 

그는 초대 교회 신자들로부터 예수께

 "맨 처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

이란뜻의 그리스말(프로토클레토스)

라 불렸고, 흑해 주변지역을 선교했다.

예수님 사후 소아시아, 스큐티아,

그리스 등에서 전도하다 기독교를

말살하라는 파타라스 총독에 붙잡혀

파트라이에서 "X" 자형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

스코틀랜드 국기에 새겨진 X는 수호

인인 안드레아 사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

에 모셔졌다가 357년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의 명으로 순교지인 파트라이

로 옴겨졌다. 그후 1208년 이탈리아

아말피 안드레아 성당으로 이장됐고,

15세기에는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옮겨졌다,

그러다 교황 바오로 6세가 1964년 9월

 그리스 정교회와 이룬 화해의 표시로

그의 유해를 다시 파트리아로 옮겼다.

 

동방 정교회는 안드레아 사도를 초대

세계 총대주교로 기리고 있다.

 

 

- 5
야고보 [Iacobus]
연대
?~AD 62년

 축일 5월 3일

다른이름
작은 야고보
가족관계
알패오의 아들, 모 마리아, 마태오의 동생
출신지역
갈릴레아 가버나움
주요행적

소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로 키가 작거나

다른 사도들에 비해 나이가 어려 붙여진

애칭이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신약성경

에 모두 4번 나온다.

 

야고보는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두터워 엄격

하고 경건한 수양 생활로 고기와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았으며, 성령 강림 이후 예루살렘

교회를 위탁받아 예루살렘의 첫 번째 주교로

선출되어 교회를 다스리는 등 포교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저술했다.

 

전승에 따르면 팔레스티나와 이집트에서

선교를 하다 체포돼 신전 꼭대기에서 내던져

진 다음 곤봉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유대 역사가 프라우비오 요세푸스는 야고보가

유대인 폭동(AD 62) 때에 순교하였다 하여

 '의인 야고보’로 불렀다.

열 두 제자 중에서 가장 미남이었다는

일화가 있으며 기도 또한 가장 많이 한

제자이기도 했다. 

 

 

 

- 6
시몬 [Simon]
연대
?~?

축일 10월 28일 

다른이름
 셀롯시몬
가족관계
출신지역
가나안
주요행적

시몬은 가나안 사람으로 사도가 되기

전에는 바리사이파로 구성된 극단적

인 유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열혈

의 일원이었으며,  열혈당원은 로마 

제국과 그 동조자들에게 무력으로

대항할 것을 주장하던 유다 민족주의

자들이었다. 예언에 따라 메시아가

이 땅 위에 강림하면 군대를 이끌고

로마 제국을 몰아내 조국을 해방시켜

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래서 초라한 행색을 한 예수님을

결코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예수님의 설교와 기적을 듣고 본

후 감화되어 제가가 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시몬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천사에게 들은 목자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또 동방교회에서는 그가 카나 혼인

잔치의 주관자라고 한다.

유다 타데오와 함께 페르시아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벌이다

톱으로 몸이 두 동강나는 형벌로

순교했다.

그래서 그의 상본에는 큰 톱이나

십자가가 표현되고 있다.

그의 유해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 산맥 서쪽의 니코피우

스에 안장돼 있다.

 

 

- 7
필립보 [Philippus]
연대
?~?

축일 5월 3일 

다른이름
 빌립, 그리스 북동부 해안에

있던 고대도시 이름과 같음.

가족관계
출신지역
갈릴레아  뱃싸이다
주요행적

베싸이다 출신으로 그리스말 `필립보`는

'말의 친구` 라는 뜻이다.

필립보는 사도 안드레아처럼 세레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아 에서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의 제자가 된다.

 

그는 바르톨로메오와 동일 인물로 추정

되는 나타나엘을 예수께 데려가 12사도의

일원이 되게 한다.

그는 나타나엘 에게 나자렛 출신 예수를

메시아로 소개하면서 "와서 보시오"라는

명언을 남긴다.

그는 5000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에서

예수와의 첫 대화자로 등장하고

그리스 출신 이방인들을 예수께 이어주는

매개 역활을 했다.

 

또 예수께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하고 청했다. 전승에 따르면

예수를 따르기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청한 제자였다.

성령강림 후 오늘날 터키 땅인 프리기아

지역을 선교한 필립보는 62년경 도미티아

누스 황제 박해 때 오늘날 파묵칼레로

알려진 `히에라폴리스`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했다.

 

 

 

- 8

 
마태오 [Matthaeus]
연대
?~?

축일 9월 21일

다른이름
마태, 레위, 세리(稅吏)마태
가족관계
알패오의 아들, 모 마리아, 작은 야고보의 형
출신지역
갈릴레아 가버나움
주요행적

그리스말 `미테오`는 히브리말` 미티아`에서

유래한 말로 `야훼(여호아)의 선물'이란

뜻이다.

갈릴래아 출신으로 레위족 알페오의 아들인

 그는 카파르나움 근처에서 다마스커스와

아크레를 잇는 도로를 통해 수송되는 물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세관원

으로 일하다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됐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날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사도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성령이 충만하여진 마태오는 천국복음을

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예수님 그리스도

만을 높이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을 위해 '마태오복음'을

기록하여 왕되신 예수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랑의 빛을 갚는 헌신된

삶을 살았다.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에티오피아와

페르시아 타리움에서 선교했고, 창, 칼,

또는 도끼로 죽임을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그의 문장은 붉은색 바탕에 은색 돈주머니

 3개가 역삼각형 형태로 그려져 있다.

탐욕의 죄를 범해 부정한 재산을 모았던

세리 마태오가 비록 죄인이었지만 자신의

죄를 기꺼이 속죄하고 예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므로써 오히려 더욱

은총을 받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9
토마스 [Thomas]
연대
?~?

축일 7월 3일

다른이름
 도마, 쌍둥이란 뜻의 디두모
가족관계
출신지역
갈릴레아
주요행적
토마스는 갈릴레아 출신으로 게넷사렛

호수에서 예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됐다.

아랍어 "토마"는 우리말로 `쌍둥이`란 뜻으로

요한복음서도 그가 쌍둥이임을 밝히고 있다.

요한 복음서 시리아 사본에 따르면 토마스의

쌍둥이 형제 이름은 "유다" (이스가리웃

유다가 아닌 다른 유다)라고 한다.

 

예 수님이 부활하여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

났다는 증언을 처음에는 “내 눈으로 그 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 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라며 믿지 못하였다.

여드레가 지나고 사도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하고

그 표징을 보여 주자 토마스는 그제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하였다.

요한 복음서는 토마스가 예수에게

충실하고 용기있고 솔직하고 겸손한제자로

"의심많은 토마스"란 별명이 붙지만 부활한

예수의 중요한 증인으로 나타난다.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는 성령강림 이후

인도로 파견돼 많은 인도인들을 개종시켰다.

토마스는 선교도중 힌두교 사제들이 던진

창에 맞아 순교했다.

그의 유해 일부는 시리아의 에데사로 옮겨져

 보존돼 있다. 또 인도 첸나이 성 토마스

산 성당에도 유해 일부가 있다.

토마스는 1972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인도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됐다.

건축가, 예술가, 목수, 조각가의

수호 성인이다. 

 

 

 

- 10

 

바르톨로메오 [Bartholomaeus]
연대
?~?

축일 8월 24일

다른이름
바돌로메, 나다니엘
가족관계
출신지역
갈릴리 가나
주요행적

히브리 말로 바르톨로메오는

"높은곳에 계시는 분의 아들" 또는

 "톨마이 가문의 아들"이란 뜻이다.

바르톨로메오는 요한 복음에 나오는

 '나타나엘' 과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하느님의 선물' 이란뜻의 '나타나엘' 과

동일 인물이면 그는 갈릴레아 카나 출신인

필립보를 통해 예수의 제자가 됐다.

하지만 [12사도의 가계]에 따르면 그는

납달리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과

이름이 같아 예수께서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전한다. 

예수께서는 바르톨로메오를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 , '기도하는 사람' 이라고

했다.

 

바르톨로메오는 소아시아 프리기아를

거쳐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했고,

그리스 말로 쓰여진 마태오 복음을

히브리 말로 옮겼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메소포타미아, 파르티아

(지금의 이란), 리카오니아(지금의 터키),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활동을 하였고, 

그는 마귀들린 아르메니아 폴리미오스

왕의 공주를 치유한 후 왕을 개종시켰다가

왕의 측근들과 이교 사제들에 의해 체포돼

산체로 껍질이 벗겨지고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유해는 로마 테베르강가에 있는 성 바르톨

로메오 성당 제대밑에 안치돼 있다.

그의 순교 장면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경당에 그린 벽화중 '최후의 심판' 에서

잘 드러난다.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옆에 성모마리아, 그리고

그리스도의 발아래 있는 두사람의 성자

가운데, 오른쪽 성자가 벗겨진 사람의

피부껍질을 들고 있는 이가 바로 사도

바르톨로메오 이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자신을 나타내 보인

사람 중의 하나이며, 예수님은 그를 보고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고 하셨다.

바르톨로메오는 '주님이 자기 마음

미리 아시고, 또 필립보와 만나기 전에

무화과 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과 이스라엘의

왕으로 믿었다.

 

 

 

- 11
  
타데오 유다 [Iudas]
연대
?~AD 62년

축일 10월 28일

다른이름
다데오, 레비어스
가족관계
야고보의 아들
출신지역
주요행적

 

     타데오는 야고보의 아들로 예수의 친척이었다. 

     그리스말 '타데오'는 우리말로 '용감한 사람'

     이란 뜻이다.

     그의 히브리 이름은 "유다"로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라는 뜻을 갖고 있다.

     타데오는 시몬과 함께 열혈( 젤롯)당원으로

     활동하다 예수의 부르심을 받았다.

     에우세이비오는 [교회사]에서 그가

     '유다서'의 저자라고 한다.

 

     성경에 다대오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단

     뿐이라 그에 대해 자세히는 알 수 없으

     묵묵히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제자였다.

     타데오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선교하다

     시몬과 함께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

     그의 유해는 현제 바티칸 성 베드로 성전

     안치돼 있다.

     초세기부터 타데오는 신자들 사이에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자로 공경돼 왔다.

 

 

 

  

- 12
          

       이가리옷 유다 [Iudas]

연대
?~AD 32년경
다른이름
 가리옷 유다, 가롯 유다
가족관계
출신지역
 가리옷
주요행적

타데오 유다와 구별하기 위해

'가리옷 유다' 라고 표기한다.

후세에 예수를 배반한 때문에 사도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12제자에서도

제외하고 이스가리옷 유다의 빈자리를

마티아로 채우기도 한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을 때

가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사도들이 한창

식사를 하던 도중에 '내가 진실로 너희들

에게 말하노니,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하고 조용히

말하였다. 이에 사도들이 모두 근심하며

저마다 자기가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그 자가 누구인지 가르쳐달라는 사도들의

성화에 못이겨 예수님은 '나와 함께 접시

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 자가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빵 한 조각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유다에게 가져다 주었다.

 

유다는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예수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 중 로마

군인에게 잡혀갔다.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또 다른  

- 12

 

   

 

마티아 [Matthias]
연대
?~?

축일 5월 14일

다른이름
 기술자의 주보성인 마티아
가족관계
 
출신지역
주요행적

가톨릭에서만 인정

       마티아는 그리스말 "마티티아"의 약칭으로

       우리말로 "야훼(여호아)의 선물"이란 뜻이다.

       그는 이스가리옷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려

       사도로 선출된 예수의 제자이다.

 

       후대 전설에 의하면 성 마티아는 예수님께서

       파견하였던 72명의 제자(루카 10,1-12)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또 자캐오(Zachaeus) 아니면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와 동일 인물

       이라고도 한다. 

 

       열 두 사도로 선출된 사실 이외에 그에 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 후대의 다소 불완전한

       전승에 따르면  그는 거의 30년 이상 유대아

       (Iudaea)와  카파도키아(Cappadocia),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설교하였고, 카스피해

       (Caspian Sea) 연안에서 큰 박해를 맞이하여

       콜키스(Colchis) 또는  예루살렘(Jerusalem)

       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온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십자가형 또는 참수형을

      받았다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의 유해는 성녀 헬레나에 의해 독일

      트리에르 지방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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